사이버시대의 사상전쟁
사이버시대의 사상전쟁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1.0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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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책 <전쟁과 반전쟁>에서 ‘인간은 일하는 방식대로 전쟁을 수행한다’라고 썼다.

인류가 돌을 사용하던 시기에는 전쟁에 돌을 들었고, 사냥을 하던 활은 적의 심장을 겨눴다. 농업혁명을 가져온 낫과 칼, 그리고 도끼는 그대로 전장에서 무기가 됐다.

강물을 막아 논에 물을 대던 저수지 축조 기술은 공성전(攻城戰)에서 수공(水攻)의 전술로 사용됐고 증기 자동차는 전차로, 발파용 다이너마이트는 폭탄기술로 진화했다.

핵을 이용하는 시기에 핵이 무기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오늘날 디지털 IT혁명의 시대에 IT를 무기로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IT를 무기로 하는 전쟁이 현재 진행 중이며 전선 없는 전쟁이라 불리던 4세대 전쟁을 넘어 이미 전 세계가 전례가 없는 ‘이상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는 점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디지털 IT전쟁의 수행자들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다. 바로 ‘소프트 에너미’(Soft Enemy)가 그것이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은 ‘스마트 워’(smart war) 또는 ‘쿨 워’(cool war)라고 일컬어진다. 이것이 6세대 전쟁이다.

소프트 에너미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헥티비즘(hacktivism)이라 불리는 해커들의 행동주의는 우리에게 ‘어나니머스’(익명)라는 이름으로 이미 익숙하다.

그들이 아나키스트들인지, 아니면 적성국들이 운영하는 해커부대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소프트 에너미들은 단지 해킹이나 사이버 테러만을 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적과 적으로 만나 사상전을 펼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해커 전쟁

오늘 대한민국에도 그러한 ‘소프트 에너미’들이 활동하고 있다. 북한 정찰총국이 운용하는 3000여 명의 사이버 부대와 함께 우리가 ‘종북(從北)’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물론 종북의 개념은 신중하게 사용돼야 한다. 그 범위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한 김정은 집단의 대남혁명론에 찬동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정체제를 부정하고 적화(赤化)통일을 추동하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故) 황장엽 선생은 간첩을 포함해 그러한 종북형 소프트 에너미들이 남한 내에 약 3만 명 이상일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손에 무기나 삐라를 들지 않는다. 그 대신 키보드와 스마트폰을 손에 든다.

2014년 4월 국가안보전략연구소(INSS)가 ‘국가안보와 사이버공간’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는 바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프트 에너미들의 활동 현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학술회의에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이 발표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유 원장에 의하면 사이버공간을 활용한 북한의 안보 위협은 1990년 중반 이래 확대·발전하며 정교하게 전개돼 오고 있다. 그는 최근 북한이 전개하고 있는 대남 사이버 안보 위협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북한은 정권적 차원에서 대남혁명전략의 일환으로 사이버공간을 활용한 안보위협을 자행하고 있다. 무려 3000여 명의 사이버요원이 임무와 작업별로 세분화 돼 대남공작에 투입되고 있고, 다양한 공작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 유원장의 설명이다.

둘째, 북한은 해외에 개설한 140여 개의 웹사이트 외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대남심리전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 등 모바일 첨단기술화에 배경을 두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공작이 국내 IT기술 발전에 대응해 진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해외 개설 웹사이트를 통해 게시한 대남선전물은 2011년 2만7090건, 2012년 4만1373건, 2013년 3만여 건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선전문들이 국내에 유포돼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2012년 총선·대선시 북한 통일전선부가 직영하는 중국 선양 사이버거점에서 SNS를 통해 배포한 정부·여당 비방글이 1만4000여 건에 달하며 정찰총국과 통전부가 보유한 SNS계정이 300여 개라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경찰이 차단한 안보위해 트위터계정만 300여 건에 달한다.

셋째, 유동열 원장은 북한이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흑색선전뿐만 아니라 북한의 영화·음악·소설·문헌 등을 집중 전파하는 ‘사이버 문화심리전’을 강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이른바 ‘문화 영향공작’의 일환이다.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이 개설한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손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북한이 사이버상에서 친북문화 붐(boom)을 조성시키며 고차원적인 적색(赤色) 문화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사이버 댓글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사이버 심리전 전담부서를 통일전선부와 정찰총국 등에 두고 있는데 이른바 이들 ‘댓글팀’이 사이버심리전공작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정보당국과 탈북자들이 가진 북한 내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이들 사이버 전담 부서에는 200명이 넘는 ‘댓글전문요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공개게시판, 토론방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블로그 등의 개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조작된 정보를 보낸다. 이처럼 북한 사이버댓글 요원들이 국론분열과 시위선동 등 사회교란을 부추키고 있다는 분석이 학술회의를 통하여 이미 나왔다.

그러한 점은 국내 종북카페로 알려진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세계 물흙길 연맹>, <통일파랑새> 등이 사이버상에서 민간 친북통일전선을 구축했다가 국정원 등에 의해 적발돼 처벌된 사례가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디도스 공격과 악성 코드의 폐해

이러한 소프트 에너미들은 자신들의 사이버 활동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매개체’를 확보하는 사이버 테러를 자행한다.

실제로 2012년 당국은 북한 정찰총국과 연계해 DDoS 공격용 악성코드와 사행성 게임을 국내에 반입해서 북한 공작원으로 하여금 DDoS 공격용 악성코드를 웹하드, SNS 등을 통해 유포토록 한 사행성게임 수입브로커 조모 씨를 적발했다.

포커, 바카라 등 게임 설치시 DDoS 공격용 악성 코드를 함께 반입했고, 북한 공작원이 이를 유포해 실제 2700여 대의 컴퓨터가 DDoS 공격용 악성코드에 감염돼 이른바 좀비PC가 됐다.

그중에서는 인천공항 등 상대로 악성코드의 전파를 시도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악성코드는 2013년 3.20과 6.25 사이버공격시 사용된 악성코드와 일치해 북한 소행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평가되기도 했다.

또한 2013년 7월 당국은 학생운동권 출신의 국내 정보기술(IT) 업체 대표 김모 씨(50)가 북한 정찰총국 간첩과 접촉해 북한 사이버요원에게 국내 전산망 서버 접속 권한을 넘겨 국내외 개인용 컴퓨터(PC) 약 11만 대가 좀비PC로 감염된 사실을 적발하고 검거한 바 있다.

북한 사이버공작요원들은 이를 이용해 국내 전산망에 침투한 뒤 악성 바이러스를 유포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단지 파괴와 선동이 전부일까.

이들의 활동 목적이 다름 아닌 사상전(思想戰)에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 황장엽 선생은 ‘민주주의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공산주의의 사상전(思想戰)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사상전의 목적은 상대가 자기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신심(信心)을 잃게 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무력만을 사용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먼저 적과의 투쟁에서 사상전을 벌여 정신적 힘에 타격을 준 후, 외교전으로 적의 사회적 협조력에 타격을 주며, 마지막으로 적의 물질적 힘에 타격을 줘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사상전과 관련해서는 기억할 만한 사건이 있다. 1954년 미 고등법원 판사 월리엄 더글러스는 콜롬비아대학 동창회 연설에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공과 소련과의 사상전에 패하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아시아인들은 자본주의를 ‘착취의 공장’이라고만 알고, 자본주의의 번영원리와 일반책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사회주의자들”이라며 “미국은 그들이 보기에 달러와 상품, 그리고 무기를 파는 상인들에 그치고 있는 반면, 중공과 소련은 아시아인들에게 ‘사상의 상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냉전의 시대에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과의 사상전에서 밀리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더글러스 판사는 “아시아인들은 소련 위성국가들의 운명을 잘 알기에 미국과 제휴를 원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른다”며 “이러한 경향이 계속되면 결국 아시아는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았다.

 

민과 군이 따로 없는 스마트 전쟁

그로부터 5년 후인 1959년 2월 26일 경향신문에는 기이한 내용의 짧은 외신기사가 등장한다.

기사의 제목은 “월남은 사상전(思想戰)에서 승리했다”였다. 1959년이라면 월남전이 벌어지기 1년 전이다. 당시 이 기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교황 사절이었던 로렌스 브랜치, 프랑소아 잔 등이 베트남을 방문한 후 베트남의 한 현지 언론(VP)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 것이었다.

그리고 1년 후 미국은 월남전에 참여했고 1968년 파리평화회담에서 월맹에게 기만당한 후 1971년부터 미군 철수로 발을 뺐다가 1975년 사이공은 월맹, 즉 베트콩에게 함락되기에 이른다.

전력과 병력에서 베트콩은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1975년 패망한 월남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세계 5위권의 군사력을 보유한 월남이 패전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열세인 쪽은 월맹이었으며 공산주의자는 전 국민의 0.25%인 5만 명에 불과했다.

베트콩의 리더 호치민은 모택동의 전술, ‘인민은 바다와 같고, 혁명군은 물고기와 같다’는 통일전선 원리에 충실했다.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반미의식과 민족주의, 공산주의 이념의 선동은 월남의 군인들에게 동족인 월맹군을 향해 총을 쏘지 말고 미군을 향해 총을 쏘라고 부추겼다. 그 결과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작전을 하던 중 기수를 돌려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미 육군의 해리 서머스(Harry G Summers) 대령은 저서 <미국의 베트남전쟁전략>을 통해 “우리는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는데 결과적으로 비참한 패자가 됐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사상전의 패배’를 결정적인 이유로 지적했다.

월남전이 벌어지기 1년 전,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사상전에서 패배하고 있다’며 ‘이를 방치하면 미국은 아시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했던 더글라스 판사의 경고가 적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월남전 발발 1년 전, “월남은 사상전에서 월맹에게 이겼다”라고 말한 교황사절단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판단이 틀렸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베트남 내 공산주의자는 전 국민의 약 0.5%, 그야말로 ‘한 줌의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소수가 다수의 국민들을 돌아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상전의 전사(戰士)’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글라스 판사가 우려했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착취’이고 ‘미국은 베트남 인민들의 고혈을 짜먹는 흡혈귀’라는 식의 여론전을 수행했다.

총을 들고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사상과 매체를 가지고 사상전을 벌이는 ‘부드러운 적(敵)’, 곧 소프트 에너미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소프트 에너미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월남에 결정적인 국론 분열을 일으켰던 제1야당의 지도자 쭝딘주였다.

그는 1967년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월맹의 간첩이었다. 쭝딘주는 선거에 나와서 유세를 하며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슬퍼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민족감정과 반미의식을 조장하며 내부의 적으로 활약했다.

이러한 월남전의 역사가 오늘 대한민국의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만일 가능성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이 소프트 에너미들과 대항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해킹과 사이버테러라면 그것은 기술적 대응의 문제다. 하지만 사상전을 통한 이념적 공세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합법적 공세를 무력화시키려면 소프트 에너미들의 선동과 루머를 추적해서 진실과 사실이라는 처방으로 감염자들을 치유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동시에 ‘진실의 유통량’을 늘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다만 누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심리·사상전 대응 조직 필요하다

그러한 어려움은 소프트 에너미들을 상대하는 스마트 전쟁에 민과 군이 따로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사이버 안보 차원의 심리·사상전에 대응할 민관군 협력조직이 필요하며 이는 크게 방어군과 공격군으로 편제되는 시스템이 필요할 수 있다.

방어군의 역할은 사이버 사상전 공세의 내용을 분석해서 팩트의 오류와 허점을 도출해 내고 이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민관군의 협력체제로 이뤄진 싱크탱크에서 이뤄질 수 있다. 반면에 그렇게 개발된 대응논리를 확산하는 공격군의 역할은 순수한 민간 시민군에게 넘겨져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국민들이 갖는 건전한 이념의 확산 보급이다.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역사 경로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튼튼하게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학교 교육에서 먼저 이뤄져야 하고 활발한 시민토론과 공론의 장, 그리고 언론들을 통해 확인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온갖 구정물들이 모여들더라도 정화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인터넷 포털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노선을 가진 언론들의 기사들이 많이 노출될 필요가 있다. 현재 포털들에 검색되는 기사들의 이념적 성향은 좌파 내지는 중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뉴스를 유통하는 포털의 운영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에 자유가 있다고 해서 뉴스를 유통하는 포털에게 모든 언론사가 동등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엇이 국민들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뉴스 포털들이 판단할 수 없거나 이를 방기한다면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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