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한국 줄기세포치료 다시 시작할 때
세계최고 한국 줄기세포치료 다시 시작할 때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3.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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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에는 ‘쿠마에의 巫女’라는 에피소드가 첫머리에 등장한다. 그 무녀는 총명하고 신앙심이 깊어 올림푸스 신들의 사랑을 받았고 어느날 아폴로는 그 무녀에게 소원을 한 가지 말하라고 했다.

무녀는 “한줌의 재와 같은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영원한 젊음과 건강을 함께 달라는 말을 그만 깜빡 잊었다. 무녀는 가늠할 수도 없는 나이에 추하고 병들어 작아진 몰골을 감추기 위해 항아리속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그 무녀에게 “무녀야 소원이 무엇이냐”고 놀릴 때마다 무녀는 “죽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줄기세포, 난치병 치료 위한 ‘만능세포’

 

수명 100세의 시대에 인류는 적어도 쿠마에의 무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 현대의학과 약학이 개발하고 있는 줄기세포치료의 방법은 인간의 난치병과 노화에 대해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국내외 많은 연구자들이 치매와 같은 난치성 퇴행적 질환과 염증성 질환, 그리고 간경변이나 암, 손상된 조직의 복구 등에 줄기세포치료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성과는 한마디로 놀랍다.

지난 26일 의학분야 공로자들에게 수상하는 범석상에 연세대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백순구 교수(소화기내과)가 포함됐다. 2013년 간경변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가줄기세포치료를 시행했던 임상실험에서 놀라운 성과를 얻은 공로였다.

백순구 교수는 총 11명의 간경변환자들을 대상으로 환자의 몸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를 배양해 간세포에 이식한 결과 약 90%의 환자에서 간기능의 지표인 알부민 효과 개선을 확인했고 50%의 환자로부터 간경변의 섬유질이 완화되는 증상을 확인했다.

간경변은 일단 진행되면 간암으로 발전하고 간이식외에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는 질병이다. 백순구 교수는 “환자의 몸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가 간에 이식돼 간세포로 생성되는 과정에서 세포를 활성시키는 유익한 물질들이 생겨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줄기세포 임상치료의 성과는 단지 간질환 환자에게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약 60여건의 국내 줄기세포치료 임상시험을 통해 난치성이라고 판명된 망막세포의 괴사를 다시 살려냈고,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죽어가는 심장에 새로운 심장세포들을 만들어 내면서 기적적으로 다시 혈액을 펌프질하게 했다.

반복적 퇴행성 골절염을 가진 무릎환자로부터는 연골조직을 생성해 내기도 했다.이러한 줄기세포는 흔히 ‘만능세포’라고도 불린다. 줄기세포는 아직 분화되지 않은 세포로서 이로부터 뼈, 심장, 피부, 혈관 등 여러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줄기세포는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등의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

뇌세포의 손상으로 인한 치매나 퇴행성 관절염, 피부노화 등에도 줄기세포치료가 적용되면 재생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배아줄기세포다. 배아줄기세포는 인간의 수정란 세포를 활용하기에 생명윤리와 맞닿아 있다.

반면 우리 몸 어디에나 있는 성체줄기세포는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는 없으나 각 표적기관(정해진 장기나 조직)으로는 분화할 수 있다. 따라서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생명윤리 갈등은 매우 적고 제한도 없어서 비교적 연구개발이 용이한 편이다.


활발한 국내 줄기세포치료제 개발

성체줄기세포는 성체(사람)의 골수·제대혈·지방 등에서 분리해 낸 줄기세포를 말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다시 자가 줄기세포와 동종 줄기세포로 나뉜다.

자가는 말 그대로 내 몸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말하고 동종은 같은 조직에서 분리했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서 얻은 세포를 뜻한다. 현재 출시된 줄기세포 치료제는 모두 골수·제대혈·지방 등에서 유래한 성체줄기세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국내 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박사에 의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지만 2005년 그의 실험결과 논문조작 사건을 계기로 연구계와 업계는 파탄이 나다시피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축적된 노하우, 특히 세포 핵치환 기술은 꾸준히 이어져서 2010년 이후 만개하기에 이른다.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치료제 개발과 제품화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3개가 거의 동시에 등장한 쾌거였다. 2011년 7월 국내 바이오 기업 파미셀의 심근경색치료제 ‘하티셀그램’을 필두로 이듬해 1월 메디포스트는 무릎 연골재생치료제 ‘카티스템’을, 같은 달 안트로젠은 크론병 누공 치료제 ‘큐피스템’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 제품들은 세계 최초의 공인 줄기세포 1~3호를 나란히 기록했다. 이러한 기적은 단지 제약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줄기세포치료의 의료 연구개발에는 차병원그룹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이동률 교수팀과 미국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정영기 교수팀은 지난 해 성인의 체세포를 이용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살아 있는 성인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 줄기세포를 만든 세계 최초의 사례였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지 ‘셀스템셀(Cell Stem Cell)’에 게재됐다.


규제 완화 통해 줄기세포 연구지원 나선 해외 각국

국내 굴지의 아산병원 역시 줄기세포치료연구에 본격적인 걸음을 걷고 있다. 아산병원은 2013년 ‘줄기세포 및 재생의학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이듬해인 2014년 5월 주명수 비뇨기과 교수팀이 과민성 방광에 대한 줄기세포치료가능성에 대한 임상단초를 찾는 성과를 올렸다. 과민성 방광은 지금까지 약물치료가 주된 치료법이었다.

주명수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교수는“후속 연구가 이어져 줄기세포치료가 임상에 적용되면 과민성 방광 환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를 통해 고령화사회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국내기업들의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이 급물살을 타자, 정부 정책도 전향적으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독일, 심지어 중국마저 규제완화와 법개정을 통해 자국 줄기세포치료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재생의료법을 제정하고 약사법을 개정해 줄기세포의 치료 및 상업화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본격적인 지원과 규제개혁을 통해 줄기세포치료에서 세계 정상급을 차지하겠다는 의도인데, 여기에는 2012년 일본의 무명과학자 야마나키 박사가 역줄기세포로 노벨상을 탔던 것도 주요한 계기가 됐다.

일본 당국은 줄기세포치료제에 대해 후생노동성이 마련한 안전성과 유효성 기준을 통과하면 시판에 앞서 ‘7년을 초과하지 않는 기간 내’에 ‘조건기한부 승인’을 내주기로 했다.

즉 임상3상을 거치지 않고도 조기에 줄기세포 치료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벽을 낮춰준 것이다. 일본 정부는 또 줄기세포치료제를 ‘선진의료’로 분류해서 의료보험 대상 품목으로 지정하는 파격적 지원책도 내놨다.


줄기세포치료제, 신약인가? 의료기술인가?

이러한 외국의 흐름에 따라 우리 정부도 줄기세포치료제의 임상과 허가에 상당한 유연성을 부가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줄기세포치료제 평가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줄기세포치료제의 경우 보통의 제약처럼 1차, 2차, 3차에 이른 임상실험이 아니라 2차임상만으로 상용화를 허가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줄기세포치료를 요하는 환자들이 대개 난치성이나 희귀성질병 보유자라는 점과 줄기세포치료제의 특성상 그 임상적 효과를 검토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줄기세포치료제를 정부가 ‘의약품’으로만 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줄기세포치료제의 개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줄기세포의 치료 범위가 워낙 다양하고, 여기에는 의료기술과 장비 등이 모두 함께 적용되기 때문에 단순 의약품으로만 규제하게 되면 환자의 접근권이 지나치게 제약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의료술이 줄기세포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의술로서 임상실험 없이 줄기세포치료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일본은 과거 의사들의 ‘자유진료’ 항목으로 환자에 대한 줄기세포치료를 허용해 왔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일본을 방문해 자기 몸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한 주사형 줄기세포치료를 받게 되자 일본 사회에서 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게 됐고 일본은 이를 ‘재생의료’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제도화에 나섰다.

동시에 줄기세포치료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는 경우 환자는 그러한 치료가 허용되는 ‘선진의료 지정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진료행위는 불법이다. 줄기세포치료 처방을 의술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 줄기세포치료에 많은 임상데이터를 갖고 있는 국내 한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 관계자는 “복지부가 임상에 관한 한, 지나치게 대형병원만을 중시하고 줄기세포치료제 개발 벤처회사들이 확보한 임상자료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수많은 줄기세포치료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그 예후와 치료후 부작용이나 증상을 모니터한 자료가 많지만 보건당국은 줄기세포치료제를 ‘의약품’으로만 보는 관점에 묶여서 이러한 환자 치료와 이후 병력 데이터를 보려 하지 않는다.


동일한 줄기세포 치료 일본은 합법, 우리는 불법

이와 관련해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입각해 진료를 시행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응급임상제도를 확대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개별적으로 응급임상을 승인하도록 하는 것은 행정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보건당국의 반대의견에 부딪혀 있다.

하지만 세계의사회(WMA)가 196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총회에서 채택한 윤리강령인 헬싱키선언에서는 환자에게 기존의 치료법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의사는 환자의 동의를 얻어 연구 계획에 의해 자유롭게 치료를 행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환자의 접근권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환자의 생명권이 환자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내려고 한 정치인도 있다.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3선·충남 천안갑)이 2012년 8월 대표 발의한 ‘줄기세포 등의 관리 및 이식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줄기세포 치료의 경우 별도의 임상절차를 거치지 않고 의사의 판단에 따라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법안은 관련 부처의 소극적인 입장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줄기세포 가운데 특히 지방에서 추출하는 자가줄기세포는 자신의 몸에 이식했을 때 거부반응이나 부작용이 보고된 바가 아직은 없으며 원리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생각하지만 정부 당국의 태도는 전혀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오히려 약사협회에서 줄기세포치료를 의술로 보고 특정분야의 경우 임상 없이 줄기세포치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줄기세포치료의 경우 질병 하나하나마다 그에 해당하는 의약품 허가 임상을 거치기에는 지나치게 비용과 비효율이 높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본은 이를 위해 줄기세포 전문 치료병원에 대한 허가를 승인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줄기세포치료의 경우 안전성이 입증된 분야에는 환자의 동의하에 치료후 사후 평가를 진행해 임상을 확인한다는 방식이다.이렇듯 일본의 발빠른 대응에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경우 현재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줄기세포치료의 산업화 동력은 일본의 특허화 전략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이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이에 우리 정부도 자가 줄기세포 치료의 경우 연구임상과 상업임상을 합쳐서 1상으로 끝내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줄기세포치료를 적극 의술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만큼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병원을 공급자로, 줄기세포치료를 원하는 환자를 수요자로 하는 전문병원 지정 내지는 설립도 추진할 필요가 제기된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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