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잠들어 있는 국정원을 혁신할 적임자
15년째 잠들어 있는 국정원을 혁신할 적임자
  • 김민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5.03.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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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자] 신임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현재 한국에서 테러 예방의 핵심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1982년 발표된 대통령령 제47호 ‘국가 대(對)테러 활동지침’에 따라 국정원은 테러정보통합센터와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정원이 국제 테러동향 및 테러조직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를 테러 가능성을 막기 위해 주요 부처와 협조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가 대테러 활동지침’에서 규정하고 있는 테러는 20세기 냉전 시절에나 있었던 사회주의 성향의 무슬림 테러조직, 또는 북한의 파괴공작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크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와 같은 일은 예방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의 문제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오면서 개인정보 보호와 인권을 국가안보보다 더 앞세우는 바람에 테러조직이나 테러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불가능하다. 

국정원은 2000년부터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국정원은 현실에 맞춰 몇 가지 법안을 준비했다. 

현재의 국정원 관련법이 20세기 상황만을 반영한 결과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2008년 10월 말부터 시작됐다. 당시 여당은 ‘국정원법 개정안’, ‘국정원 직원법 개정안’, ‘비밀보호관리법’, ‘국가 대(對)테러활동 기본법’, ‘국가 사이버위기 관리법’, ‘통신비밀 보호법’을 발의했다.  

‘국가 사이버위기 관리법’은 국가나 대기업의 인프라 시스템에 사용하는 스카다(SCADA) 망 등에 대한 해킹을 막고, 정부 차원에서 사이버 공격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 현재 국정원은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모든 악몽을 떨쳐내고 언제쯤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권 시절 드러난 ‘미림 팀’과 같은 국정원의 불법감청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이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하던 감청도 대상범죄와 수준을 법률로 정해 불법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2012년 12월, 소위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지면서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은 활동범위의 확대는 배제한 채 ‘정치적 중립’만을 강조하는 식으로 수정됐다. 다른 법안들은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3년차를 맞은 현재 ‘테러방지법’과 ‘사이버위기 방지법’만이 발의돼 있다. 

‘테러방지법’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국회 안팎에서는 이번 국회에서도 ‘테러방지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마저도 이 법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국정원을 ‘악마의 조직’ 대하듯 한다. 그 이유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던 탓이다. 당시 정보기관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었다. 


국정원은 어떻게‘野性’을 잃었나?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보안사(現 기무사)의 위세가 커지는 듯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세직, 장세동 씨 등이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안전기획부의 수장(首長)으로 임명된 후 예전과 같은 화려한 명성을 되찾았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간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자 전 세계 정보기관들은 다른 나라의 산업기밀 탐지와 관련된 산업 스파이 관련 활동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안기부도 이런 경쟁에 합류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 한국에 산입기밀을 빼앗긴 미국 등 주요 강대국의 입맛은 썼다.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에서 첩보 수집을 하는 해외의 가장 위험한 5대 기관으로 이스라엘 모사드, 중국 국가안전부(MSS), 프랑스 대외정보총국(DGSE)과 함께 한국 안기부(ANSP)를 꼽았다. 

한시절 ‘잘 나가던’ 안기부는 1997년 말 소위 ‘북풍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권은 1999년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과거 중앙정보부 출신의 이종찬 씨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하여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 권총 사격 훈련 중인 국정원 요원들. 국정원은 1997년 말 '북풍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과격한 ‘개혁’으로 인해 국정원의 본연의 임무인 대공수사 기능, 대북정보 및 해외정보 수집 역량은 크게 허약해졌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 개혁 명분은 ‘문민 우위 정보기관으로의 개혁’과 ‘해외정보, 산업정보 역량 강화’, 그리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예산 사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정원에서 옷을 벗고 나온 요원들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의 국정원 개혁은 사실상 국정원의 야성(野性)을 억제하기 위한 ‘거세’나 다름없었다고 비판한다. 

국정원 1급 간부 출신인 송영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는 “1998년 4월 1급 간부 수십여 명을 포함한 안기부 직원 581명, 대공경찰(보안수사대) 2500여 명, 기무사 요원 600여 명이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김유송 전(前) 인민군 상좌(중령과 대령 사이 계급)는 1998년 10월 북한 인민군 주요 보직에 있던 장성들이 대대적으로 숙청되었는데, 이것은 남한 정부에서 제공한 대북 휴민트(humint) 정보에 의한 숙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10여 년 뒤 모두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 정권의 국정원 거세작업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대북공작과 대북정보 파트를 대폭 축소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한 술 더 떠 국정원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라며 정보요원들에게 개인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했다. 정보요원들의 개인 신용카드 사용은 세계의 정보요원들이 금기시하는 행동이다. 

정보요원이 소지한 카드 번호만 알면 그가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식사는 무엇을 했는지 등 모든 동선(動線)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금융기관의 보안망이 워낙 허술해 국정원 요원들의 신용카드 번호가 상당수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안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제자리를 찾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조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국정원 수뇌부는 ‘반(反)이명박 세력 때려잡기’에만 급급하는 등 애써 만들어 놓은 국정원의 탈(脫)정치화 분위기를 망쳤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육군참모총장 출신 남재준 씨가 원장에 취임했다. 남 원장은 이스라엘 모사드 등 ‘야성’을 가진 해외 정보기관을 모델로 국정원의 위상을 원상복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년 만에 물러났다. 


“박근혜 주변 인물 가운데 정보 분야의 최고수는 이병호” 

남 원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주일 대사가 지난해 7월 국정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안기부 차장 출신이긴 하지만, 이미 20년 넘는 세월을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지자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후임 이병호 원장은 안기부 제2차장 출신이다. 

발표 당시 언론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하던 국정원 요원들마저 “이병호가 누구야?”라며 지인들에게 전화를 거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병호 원장은 1940년생으로 올해 75세. 육사 19기로 1963년 2월 육군 소위로 임관 이후 1970년 중앙정보부에 입사해 정보 세계에 입문했다. 

1993년 안기부 2차장에 임명됐고, 1997년 이병기 씨에게 2차장 자리를 물려준 뒤 퇴임했다. 이후 주(駐)말레이시아 대사, 2000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를 역임한 후 울산대에서 국제관계를 강의했다. 

일부 좌파 언론과 야당은 이병호 전 안기부 2차장을 신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데 대해 강력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부 매체는 “국정원 개혁 반대세력”이라고 비판하고,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퇴임 뒤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보면 너무 편향돼 있다. 특히 대북관계에 대해 너무 경직돼 있다”며 험난한 청문회를 예고했다. 

하지만 안보 전문가들은 호평 일색이다. 국정원에서 30년 이상 근무했던 전문가들은 이병호 원장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잘 한 인사”라고 평했다. 1980년대 세계 10대 정보기관으로 평가받던 안기부에서도 최고의 해외 요원으로 꼽혔고, 조지타운대에서 안보학 석사 학위를 받고, 이후로도 후학을 양성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국내 최고의 정보요원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현직 국정원 요원들은 ‘대선배’가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7년 동안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전설적인 대선배의 귀환’에 호기심과 기대를 갖는 모습도 보였다. 

국회와 일부 언론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향한 온갖 비난과 비판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병호 원장이라면 이런 장애물은 쉽게 이겨낼 것으로 보인다. ‘가혹한 청문회’를 예고한 야권의 엄포도 사실 큰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체제 수호형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이병호 국정원장을 곤혹스럽게 만들 장애물은 정치권과 언론보다는 국정원의 현실일 가능성이 많다. ‘야성’을 상실하고 주눅이 든 현장요원들, 크게 줄어든 가용자원 등 예상보다 위축된 모습에 놀랄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국 정보기관에는 수십억 달러짜리 첩보위성도, 수억 달러짜리 첩보 장비도, 김정은 주변이나 시진핑(習近平) 옆에서 활동하는 휴민트도, 마음대로 공작금을 쓸 수 있는 권한이나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국 정보기관과 역사를 함께 한 그라면 이런 난관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안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7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거나 과외를 맡았던 ‘외교 안보 전문가’들 가운데는 ‘통일지상주의자’, ‘친중(親中) 사대주의자’들이 적지 않게 숨어 있다. 이들은 현재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국정원이 야성을 되찾고, 21세기형 정보기관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 즉 정무적 권력기관이 아니라 체제수호형 정보기관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런 ‘인(人)의 장막’을 헤집고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월간조선’ 2013년 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병호 원장은 “대북(對北)정보의 한계 상황은 프로만이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지난 15년 동안 국정원은 잠들어 있었다. 오랜 동면(冬眠) 때문에 근육도 위축되고 영양분도 많이 소진됐다. 

수십 년 전 정보기관의 겉모습만 기억하는 권력자들이 전문가도 아닌 측근을 정보기관의 수장(首長)으로 임명하면서 본연의 임무까지 망각하라고 강요하는 일도 많았다. 안보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소할 사람으로 이병호 원장을 꼽는다. 

1970년대 냉전 시절과 1980년대 데탕트 분위기로 세계 정보계가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였을 때 현장을 누빈 ‘프로페셔널 요원’ 이병호 원장이라면 주눅 든 젊은 요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 국정원이 정무적 권력기관에서 벗어나 체제를 수호하는 정보기관으로 변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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