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정치 노조의 힘 크게 약화될 것
[2025년 한국] 정치 노조의 힘 크게 약화될 것
  •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5.06.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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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특집] 10년 후 한국의 勞組

‘박근혜 정권 1년 이대로는 못 살겠다 국민대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 슬로건 같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최대 노동조합이 파업을 위해 내건 구호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14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이 같은 구호 아래 총파업을 실시했다.

파업의 전면에 내세운 명분 그대로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 탄압이나 공기업 민영화 반대 같은 노동 관련 이슈뿐만 아니라, 국정원 대선(大選)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 민주주의 후퇴 반대, 박근혜 정권 퇴진 등의 정치적 요구의 관철을 위해 강력하게 투쟁했다.

노조가 이렇게 정치 파업을 하는 사이, 귀족 노조라 불리는 거대 노조의 기득권은 강화돼 왔다.

올해 임단협에 ‘국내와 해외 생산량을 노사(勞使) 간 합의해서 결정한다’는 조항을 넣은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1인당 평균 연봉은 현재 8000만 원을 넘는다. 각종 복지 혜택까지 합치면 1억 원 가량 된다.

대기업 노조들은 갖고 있는 특혜를 지키기 위해 입사 관련 특권도 만들어놓고 있다. 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600여 대기업 가운데 29%인 180여 기업의 단체협약에 직원 가족의 채용 특혜를 보장하는 ‘고용 세습’ 조항이 들어 있다.

퇴직자의 자녀·배우자를 우선 채용하거나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정년퇴직을 했거나 장기근속을 한 경우에도 자녀 채용을 보장해 주는 회사도 있다.


‘정치 노조’와 ‘특권 노조’, 10년 후에도 봐야 하나? 

일반 경제 상황과는 동떨어진 이런 정치 노조, 특권 노조는 10년 후에도 유효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민주노총이 현실 정치에 적극 개입하고, 파업이 정치 파업으로 변질될수록 노동자 조합원들과 산하 노조의 파업 참여도는 현저히 약화됐다. 특히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산하 조직 장악력도 떨어지는 양상이다.

민주노총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규명을 주장한 2014년 2월 총파업에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최대 비중(약 70%)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차 노조가 조합원 투표를 통해 총파업에 불참했다.

기아차 노조가 민주노총 총파업에 불참한 것은 지난해 총파업이 처음이었고, 현대차는 세 번째였다. 당시 조합원 투표에선 파업 참여 반대율이 60%를 훌쩍 넘어 현장 조합원들의 정치 파업에 대한 반감을 보여줬다.

지난 4월 24일의 총파업도 마찬가지다. 총파업 집회는 서울시청 광장 등 전국 17개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거행됐지만, 참여율은 전체 조합원의 6% 미만에 그쳤다.

실제 파업에 참여한 인원도 전체 조합원 65만여 명 가운데 3만7500여 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조합원 투표에서 불참이 결정됐던 현대차는 올해는 총파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정적인 정서를 고려해 투표를 거치지 않고 노조 간부들만 참여했다.

금속노조는 지난 2006년 6월 현대차를 비롯한 금속노동자들이 조합원 투표를 통해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선언함으로써 출범한 노조다.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 노조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일반 기업체 노동자들과 함께 산별노조라는 동일한 조직에 참여하면서 민주노총의 협상력을 높여준 것이다.

하지만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차 노조가 금속노조,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연이어 불참함으로써 산별노조의 위상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다.

산별노조의 정치화에 대한 반감은 산별노조의 원조 격인 미국과 유럽에서 더 두드러진다.

2014년 2월 미국에서는 테네시 주(州)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 노동자들이 자동차 노조 상급단체인 미국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美 UAW와 英 TUC도 약화 

UAW는 과도한 복리후생과 임금인상 요구를 함으로써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2류 회사로 전락하도록 했던 강성노조다.

경쟁력 하락을 우려한 테네시 주 폭스바겐 근로자들 스스로가 산별노조로의 편입을 반대한 것이다.

또 산별노조 운동으로 계급투쟁을 선도했던 영국의 노동조합회의(TUC)도 1999년 이래 기업과 목표를 공유하는 파트너십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과거 산별노조인 서비스 노조 산하에 있던 독일 기관사노조(GDL)도 지난 5월 파업을 발표하며 독자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거대 노조는 여전히 정치 운동을 주요 과제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과연 우리 경제는 노조가 정치 파업을 벌이고 고용 세습을 할 만큼 녹록한 상황일까. 청년실업률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올해 1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9.2%로 실업자 수가 무려 39만5000명에 달했다. 취업 준비생이나 고시 준비생까지 포함한 체감(體感) 실업률은 12%에 육박했다.

▲ 한국의 노조가 진보정치를 내세우며 정치파업에 매달릴수록 현장의 조합원들은 노조를 등지고, 결국 노조 권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올해 신규 채용 규모도 작년에 비해 감소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100인 이상 377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 신규인력 채용동태 및 전망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의 신규인력 채용 규모는 전년 대비 3.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3.4% 감소됐고, 중소기업(300인 미만)은 6.5%로 감소 폭이 확대됐다. 특히 올해 ‘신규인력 채용계획이 있거나 이미 채용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59.1%로 최근 5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의 신규채용은 지난해 12만9989명 대비 6.3% 감소한 12만180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기업들이 채용 계획을 줄이는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조심스러운 원인은 ‘체감경기 미회복’(28.2%)과 ‘정년 연장·통상임금 문제’(26.9%)였다.

특히 대기업은 ‘정년연장·통상임금 문제’(36.5%)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 기업들이 정년연장과 통상임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인건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근로자의 해고뿐만 아니라 임금 체계 개편마저 자유롭지 않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다.


경직된 노동시장 이유로 신규 채용 꺼려 

우리의 노동 경직성 지수는 지난 2006년 28.3포인트에서 2013년 35.8포인트로 7.5포인트 높아졌다.

OECD 국가들이 같은 기간 동안 1.2포인트 하락(2013년 28.3)한 것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우리 경제의 침체 상황을 극복하고 신규 일자리의 창출을 위해선 민주노총 같은 거대 노조의 정치 운동을 극복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10년 후 노조에 대한 예측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노조의 개혁 방향을 찾는 것과 같은 문제일 것 같다.

독일은 노동시장과 노조의 개혁을 지난 2003년 친(親)노동 성향의 사민당 정부 시절 ‘하르츠 개혁’을 통해 완성했다.

근로자 해고 보호의 완화, 기간제 사용 기간 확대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개혁을 통해 독일은 지난 2008년 고용률 70%를 달성했으며, 현재는 올해 초 실업률 4%대(청년실업률 7%)를 나타내고 있다.

▲ 독일은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아젠다 2010'을 실행함으로써 이후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 사진은 '아젠다 2010'을 주도한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노동 개혁 이전, 독일은 1990년대부터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로 신음하고 있었다. 하르츠 개혁 직전인 2002년만 해도 실업률이 10.1%까지 치솟았으며, 실업자 수가 4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하르츠 개혁은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발표한 조세·사회·노동시장에 대한 포괄적 개혁 프로그램인 ‘아젠다 2010’에 포함된 노동개혁안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개혁을 이끌었던 노동개혁위원장 페터 하르츠의 이름에서 명명됐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하르츠 전(前)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은 하르츠 개혁의 4가지 법안을 이렇게 소개했다.

첫째 ‘미니 잡, 단기직, 퍼스널 직’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창출이다. 독일에서 말하는 미니 잡은 일반적으로 청소, 보육사, 노인 돌보미 등 가사직에서 많이 적용된 일자리로, 불법 노동직이 많이 종사하고 있었다. 이를 양성화함으로써 9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두 번째 개혁안은 ‘개인 창업’이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개인적 창업을 쉽도록 만든 법안으로 4000개의 창업 기업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관청을 에이전시처럼 유연하고 일처리가 빠른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한 ‘연방 에이전시’ 만들기였다.

네 번째 법안인 ‘실업급여 수령 기한의 축소’(실업급여 수당을 32개월에서 12~18개월로 축소)가 노동계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를 위해 당시 독일 노동개혁위원회는 지역적·물질적·기능적·사회복지적 한계라는 4가지 한계를 만들어 적용했다.

지역이 문제라면 타 지역으로 이동시켜 줬으며, 일자리가 없다면 제공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일자리를 제공했는데 거절한다면 왜 거절하는지 사유를 밝히도록 했고, 그에 따른 불이익까지 가능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실행력이 관건 
 
독일의 ‘아젠다 2010’ 등 선진국 사례를 볼 때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한 모범답안은 이미 나와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노동시장 개혁의 조건을 제시한다. 

① 현행 2년인 비정규직 계약 기간의 업종별 다양화.

② 최저임금제의 폐지, 직무에 따른 임금제·임금피크제 등의 활성화. 

③ 연장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할증임금 강제 규정의 폐지를 통한 장시간 근로 유인의 해소. 

④ 까다로운 경영상 해고 요건의 완화를 통해 고용 분위기를 수월하게 조성. 

⑤ 다양한 고용형태의 보장 : 정규직 과보호로 인한 사내하도급 근로와 기간제 근로자 파견 등에 대한 규제의 완화.

⑥ 노동조합 관련 제도의 개선 : 노조가 생산성 향상을 주도하는 상생 파트너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합의 구성 및 단체 행동에 대한 특권의 해소.

⑦ 노사정(勞使政)위원회 폐지 : 정치적 논리에 따른 노동 관련 해법을 지양, 합리적인 방안 추구. 

관건은 정부의 실행이다. 독일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정부의 단호함을 강조한다.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이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선 정부가 정권을 잃을 각오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대담에서 “독일도 노동시장 개혁 이전에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단체를 통해 합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당성 있는 정부가 중심이 돼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개혁의 시행과 효과에 시차가 있다 보니 개혁에는 정치적 반대가 따르고 정치인들은 개혁을 추진하기를 꺼리는 게 당연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슈뢰더 전 총리는 “정권을 잃더라도 국익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04년 ‘아젠다 2010’을 수행한 뒤 2005년 총리 직 연임에 실패했다.

노동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불법 파업에 대처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대응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조의 정치운동 성향이 강한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총파업이 ‘쟁의 목적이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된 사항이어야 한다’는 현행법을 위반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이 유일한 해법이다.

마거릿 대처 총리는 강성 노동조합 때문에 몸살을 앓았던 영국에서 장장 1년에 걸친 노동계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으로 일관해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다.

이후 영국에서는 노조의 정치적 불법파업이 사라졌다. 정치와 계급 논리에 좌우됐던 노조의 활동이 경제 논리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우리 노조도 바뀔 때가 됐다. 2025년에도 지금처럼 전국 단위 노조가 광우병 촛불시위, 세월호 추모집회 같은 제2, 제3의 반(反)정부 시위에 경제를 볼모로 삼고 있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노조가 좋아하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 국민대회’가 그들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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