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의원 재판 2년 째 감감 무소식
한명숙 의원 재판 2년 째 감감 무소식
  • 정재욱 기자
  • 승인 2015.06.30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적] 한명숙 재판 미스터리

대법원, 관례 깨고 21개월 째 판결 지연. 한명숙 의원은 민주통합당 대표 거쳐 국회의원職 유지

 

‘야당 무죄(野黨無罪), 여당 유죄(與黨有罪)’.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패러디한 말인데, 얼핏 생각하면 권력을 잡은 여당이 무죄이고 반대인 야당이 유죄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0년 7월 20일 기소된 이래 5년 가까이 형이 확정되지 않고 있는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빗댄 주장이다.

▲ 대법원이 9억여 원 수수 의혹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을 주저하는 사이 한명숙 의원은 이미 19대 국회의원의 임기 대부분을 마쳤다.

지난 5월 시민단체 ‘자유청년연합’과 ‘국민행동본부청년위원회’는 한명숙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을 맡은 대법원 2부 이상훈·김창석·조희대 대법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단체들은 “한명숙 의원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20개월 가까이 늦어지고 있다”며 “대법원이 정치권 눈치를 보고 판결을 늦추는 것 아닌가 의심 된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 2부에서 판단이 어려우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열어서라도 심판해야 함에도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2013년 9월 16일 서울고법 형사6부가 1심의 무죄를 깨고 징역 2년, 추징금 8억8302만 원을 선고해 같은 달 30일 대법원에 접수된 이래 이제껏 최종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소송촉진법 제21조는 형사재판의 선고기간을 1심 6개월, 2심 4개월, 3심 4개월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강행 규정은 아니지만 소송 지연을 막기 위한 특례법이다.

이 법대로라면 한 의원의 사건도 1년 2개월, 즉 2011년 말에는 마무리됐어야 했다. 처리할 사건이 많은 대법원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평균 8개월인 3심의 처리 기간에 비해서도 선고가 이례적으로 지연되는 셈이다.

이번에 대법원의 해당 재판부를 고발한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완구 전(前) 국무총리는 3000만 원 수수를 의심케 하는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 한 장으로 취임 70일 만에 총리 직을 사퇴했다. 또 새누리당의 송광호·조현룡 의원의 경우 각각 6500만 원과 1억6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 4월 24일 브리핑을 통해 “한명숙 의원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정 구속되지 않았고, 2심 선고 이후 1년 7개월이 넘도록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박상옥 신임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반대한 이유


한명숙 의원은 국무총리 시절인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전(前)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 씨에게 미화 32만7500달러와 현금 4억8000만 원, 1억 원짜리 자기앞수표 1장 등 총 9억4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한만호 씨가 한명숙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번복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한 씨의 진술이 번복되기는 했지만, 한 의원의 동생이 한 씨가 발행한 1억 원짜리 수표를 사용한 점 등 여러 증거에 비춰볼 때 한 의원이 돈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면서 한명숙 의원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했다. 한만호 씨와 한명숙 의원이 총리 공관에서 만찬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고, 돈이 오간 뒤 통화를 한 기록이 있다는 것도 유죄의 근거가 됐다.

한명숙 의원은 이밖에도 총리 재임 중이던 2006년 12월 20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인사 청탁과 함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재판을 받은 경험도 있다. 이 사건은 무죄가 확정됐지만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재판 과정에서 “5만 달러를 직접 줬다”에서 “한 전 총리가 보는 데서 의자에 놓고 나왔다”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곽영욱 5만 달러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의혹이 남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9억여 원 수수(收受) 의혹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을 주저하는 사이 한명숙 의원은 이미 19대 국회의원 임기(2012년 5월 30일~2016년 5월 29일)의 4년 중 3년 이상을 채웠다. 만약 한 의원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원외 시절에 기소돼 국회의원이 된 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판결이 지연돼 의원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형국이 된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검토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라고 판결 지연에 대해 해명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법리적으로 복잡한 쟁점이 많지 않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법원이 야당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제2부의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 2월 17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해 재판부에 공석이 생기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한 박상옥 신임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야당이 반대, 인사청문회 자체를 거부하는 식으로 일정을 지연했기 때문이다. 이에 여당은 한명숙 의원의 재판을 지연하기 위해 야당이 신임 대법관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야당의 親盧 지도부 구하기?


당시 야당이 빌미로 삼은 이유는 박상옥 대법관이 1987년 고(故)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사건의 축소와 은폐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덮으려 한 것은 경찰이었고, 검찰은 오히려 이런 정황을 밝혀낸 바 있다.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 4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통과를 지연시키면서까지 한명숙 구하기 나선 것은 아닌지 국민과 언론은 의심하고 있다”면서 “오늘이라도 당장 박상옥 후보자를 당당하게 인준해 관련 재판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옥 신임 대법관은 지난 5월 6일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임명동의안이 처리됨으로써 5월 8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이제 더 이상 대법원이 판결을 미룰 이유가 없는 셈이다. 야당 정치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대법원이 최종심을 내놔야 할 때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