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敵(적)’들에게 관용은 없다
‘자유의 敵(적)’들에게 관용은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8.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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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국정원에 헌법수호를 命하라

각국 정보기관, 체제 수호 위해 사회 위협세력에 무자비할 정도로 단호히 대응

국가정보원을 둘러싼 야권 공세가 막무가내다. 국정원의 어떤 설명도 음모론 차원에서 거부된다. 심지어 ‘종교 집단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국가정보원이 2012년 이탈리아 보안업체로부터 구입한 해킹프로그램은 합법적 구매였고, 그것도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된 것이다. 문제는 이탈리아 업체가 해킹을 당해 그 정보 내용들이 공개되었다는 것인데, 35개국 97개 정보기관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선진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은 체제위협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대응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사진은 독일 헌법수호청.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이 사건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과 진보적인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정략적 포인트로 삼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사이버 댓글로 자신들의 집권 기회를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진보 내 정치적 균열과 헤게모니 투쟁에서 보다 선명하게 국정원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쪽에 진보 시민들의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당(公黨)으로서의 책임의식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야당은 현재 계파투쟁을 통해 차기 총선의 공천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식 치킨게임에 빠져 있다. 저열한 차원의 내부 권력투쟁이 밖으로는 국정원을 제물로 삼는 선동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이렇듯 정쟁(政爭)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 배경에는 우리 언론과 국민들이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을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 시절의 인권탄압기구로 인지하는 낡은 유산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라고 불렸던 이름으로부터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 탄압이라는 연관성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시각으로 볼 때 국가정보기관이란 야권이 결코 길들일 수 없는, 그래서 자신들이 정권을 잡더라도 언제든 자신들을 배신할 수 있는 반(反)민주, 친(親)보수 위협세력이라고 보는 무의식적 반감이 더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시 말해 검찰이나 경찰, 군(軍)과는 달리, 국정원 직원들은 절대로 민주화 세력의 편이 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경계심과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국정원의 해명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국정원에 가서 확인할 수 있는 감찰 대상자에 대한 신원 파악조차 하지 않으려 드는 것일까. 

안수명 씨 정체를 모른체 한 진보매체들 

한 예로 처음 국정원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 진보 매체는 서울대 동창 명부와 재미 과학자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국정원 자료를 조합해 그 대상이 바로 천안함 폭침 때 북의 소행을 부정했던 안수명 박사라는 사실을 공개했고, 이 문제가 야당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었다. 

당시 언론의 태도는 재미과학자 안수명 씨가 순수한 민간인인 것처럼 보도했지만, 사실 그는 미국의 중요한 안보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안수명 씨는 2013년 11월 중국으로 건너가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 미국의 국익에 위해가 될 수도 있는 논의를 한 혐의로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연구실의 컴퓨터 압수수색을 받았고, 비밀취급인가권이 취소됐다. 

당연히 국정원으로서는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계속 해 온 안 씨가 중국으로 건너가 정체불명의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는 정보를 알았다면 그를 추적하고 첩보 차원에서 그의 메일을 해킹하려 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안 씨는 국정원의 그런 행위가 자신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면 미국 사법당국에 고소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팩트(fact)들에 대해 허위가 명백한 거짓말을 했음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그는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않은 상태다. 

적어도 사건이 이 정도에 이르면 문제를 제기했던 야당과 진보단체들은 자신들의 근거 없는 의혹들을 거두고 국정원이 정말로 아무런 혐의가 없는 민간인들을 마구 사찰하는 불법 행동을 했는지 따져보면 되는 일이었다. 그 방법은 국회 정보위를 통해 일단 비공개로 조사하고,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거나 국정원이 정당하게 사실 판단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면 되는 문제였다.

▲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독일 헌법수호청은 좌파당 당수를 포함한 체제 변경 세력에 대한 감사를 당연한 임무로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헌법수호청에서 보고를 받고 있는 메르켈 총리.

독일 헌법수호청의 활약 

하지만 이후에도 국정원에 대한 ‘묻지마’ 식 의혹 제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히 새민련 의원들의 국정원 흔들기는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전병헌 최고위원이 “지금 국정원장의 태도와 입장을 보면 아무런 근거와 논리도 없이 나만 믿으라고 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은 야당의 국정원 인식이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새민련은 자신들이 제기한 국정원의 재미교포 안수명 박사 해킹 의혹에 대해서는 용공(容共)의 전모가 모두 드러났음에도 일체 언급이 없다. 이쯤 되면 새민련 자체의 정체성이 반(反)자유민주적 정당으로 해산된 통진당과 무엇이 다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다. 과연 새민련은 국정원에 떳떳한 정당일까.

지난 총선에서 종북으로 비난받았던 통진당과 야권연대를 통해 RO(Revolution Orgarnization, 무장혁명 인민기구) 이석기와 같은 인물을 국회에 입성케 한 점에 대해 새민련은 국민에게 사과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석기 RO 조직을 적발해 낸 것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국가정보기관들은 어떨까.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12년 2월, 독일은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인 사찰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좌파당’의 당수 게지네 뤼치와 그레고어 기지 원내대표, 그리고 페트라 파우 연방하원 부의장 등 굵직한 정치인들이 비밀리에 사찰을 당해왔던 것이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 사건을 특집으로 다뤘다. 당사자들의 항의는 거세고 격렬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 사찰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한 여당(기민당) 그뢰에 사무총장의 대답은 이랬다. 

“체제 변경을 요구하는 자가 감시 대상이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독일의 국가정보기관은 무소불위한 권력을 갖고 있는가? 일단 그 이름부터가 범상치가 않다. ‘헌법수호청(Bundesamt fur Verfassungsschutz: BfV)’이라고 불리는 독일 국가정보기관은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한다. 당시 정치인 사찰에 대한 헌법수호청장의 태도는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 니더작센 헌법수호청의 바르겔 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놓고 “좌파당 의원들에 대해 비밀정보기관적 감시를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라이프치히 소재 연방행정재판소는 2010년 7월 좌파당의 원내대표인 보도 라멜로 의원에 대한 감시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핵심은 ‘자유의 한계’였다. “체제 변경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연방법원은 판결문에 명시했다. 

체제 수호에 가혹하고 단호히 맞서는 것은 당연 

독일 헌법수호청의 활동은 감시에만 그치지 않는다. 설립된 해인 1950년부터 1993년까지 5000여 명의 요원들이 377개의 반체제 단체와 이적단체, 극렬분자 단체를 찾아내 이들 조직을 해체하고 그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또 1986년까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 350여만 명에 대해 ‘헌법 충성도’를 심사, 그 중 2250명을 탈락시켰다. 현직 공무원과 교사에 대해서도 ‘헌법 충성도’를 조사해 2000여 명을 중징계하고 256명을 파면시켰다. 

독일이 이렇게 반체제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의 적(敵)’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토안전법(Homeland Security Act)’과 ‘애국법(Patriot Act)’을 만들어 테러조직과 사회위협세력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구금하고 유죄가 밝혀지면 테러범 수용소에 평생 가둘 수 있게 만들었다. 캐나다는 ‘국가기밀법(Official Secrets Act)’, 영국은 ‘공공기밀보호법(Official Secrets Act)’, 중국은 ‘국가안전법’ 등을 통해 체제 수호와 공안기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국가들에 비해 우리 국가정보원의 역할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길규 전(前)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정보(intelligence)는 지식인가, 활동인가, 조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정보는 지식인 동시에 활동이고 조직이라는 말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이를 단순히 지식으로 파악하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를 비롯, 국내 진보적 성향 학자들을 비판했다. 

이길규 교수의 이런 주장은 과거 김대중 정부가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힘의 논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 관점을 버리고, 평화질서라는 ‘이상주의’ 관점을 ‘국가안전기획부’에도 적용시켜 그 이름을 지금의 ‘국가정보원’으로 만들었던 것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대공(對共), 대간첩 작전은 유명무실하다 할 정도로 약화됐고 현재 ‘국정원 해킹 사태’에서 보듯 국정원은 정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정준표 영남대 교수에 의하면 국가 정보기관의 역할을 ‘인텔리전스’로 받아들인 국가들은 자국(自國) 정보기관에 적을 제거하는 은밀한 공작의 ‘닌자’와 적의 정보를 은밀히 캐내는 밀정으로서 ‘간자’(間者)의 역할을 부여했다. 반면에 ‘인텔리전스’를 공개된 정보와 지식으로 받아들인 국가들은 정보기관에 이를 분석하는 학자(學者) 역할을 부여했다고 한다.

때로는 적들에 대한 암살도 서슴지 않아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국가정보기구 이론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학자, 로웬썰(Mark M. Lowenthal)의 ‘인텔리전스’론에 가장 충실한 경우다. 로웬썰은 “인텔리전스란 최종정보(finished intelligence)인 분석물 뿐만 아니라 특정 비밀공작 및 방첩활동 그 자체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국가정보기관론은 정설(定說)로 여겨지며 국가정보기관을 ’정보 수집 및 분석기관‘으로 보는 램덤(A. Ramdom)의 주장은 소수 이설(異說)에 불과하다. 

인텔리전스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는 적으로부터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사전에 적을 제압하기도 했다. 인텔리전스를 단순히 정보 분석으로만 여겼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의 그러한 ‘학자적 정보기관’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어 2000년 9·11 테러 때 FBI가 입수한 테러 첩보를 CIA 정보분석관들이 무시하는 상황을 낳기도 했다. 

반면 이스라엘 모사드는 2011년 11월 12일 이란 테헤란 인근 미사일 기지를 폭파해 이란 혁명수비대원 17명을 제거했다. 이 일로 이란 핵무기 개발에 관여한 핵물리학자를 포함해 과학자 다수가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2008년 2월 12일 헤즈볼라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모사드에 의해 암살됐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2인자이자 ‘검은 9월단’의 전략가 알리 하센 살라메, 검은 9월단 지도자 아부 유세푸, 이라크 초장거리포 개발자 제럴드 폴 등 테러리스트와 과학자가 모사드에 의해 제거됐다. 

문제는 오늘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대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그러한 소수 이설에 의해 개편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 국정원이 ‘방첩’과 ‘사이버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독일의 헌법수호청이나 이스라엘 모사드와 같은 방첩과 공작의 기능을 다시 되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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