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독립기념일’로 바꾸자
‘광복절’을 ‘독립기념일’로 바꾸자
  • 미래한국
  • 승인 2015.08.0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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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 광복절의 올바른 이해와 개선 방안

1949년 정부의 ‘독립기념일’ 안(案)을 국회에서 ‘광복절’로 변경, 이후 ‘건국’ 사라져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교과서포럼 공동대표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세계만방을 향해 독립을 선포했다. 1949년 6월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거기서 4대 국경일은 3·1절, 헌법공포기념일, 독립기념일, 개천절이었다. 동년 8월 15일 정부는 제1회 독립기념일을 성대하게 경축했다. 그런데 동년 9월 위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바뀌었다. 

광복절의 ‘광복’은 무엇을 영광스럽게 회복한다는 뜻이다. 1910년대부터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광복조국’ 또는 ‘광복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광복’ 두 글자만으로도 조국을 또는 독립을 영광스럽게 회복하는 투쟁이란 뜻이 충분했다. 

국회가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바꾼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독립이나 광복이나 그 뜻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명칭 변경에 불과했다. 그래서 정부는 1950년을 제2회 광복절로, 1951년을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해방일과 독립기념일이 겹쳐

그런데 1951년부터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하 신문은 제3회 광복절을 제6회 광복절로 부르기 시작했다. 광복절의 기원이 1945년 8월 15일로 바뀐 것이다. 이후 정부도 슬그머니 광복절의 기원을 그렇게 바꿨다. 그래서 1954년은 제9회 광복절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광복절의 주년은 1945년을 기점으로 헤아려졌다. 지난 60년간 광복절은 한국인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경축되어 왔다. 

이 같은 혼란이 발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역사의 우연이다. 만약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한 최초의 정치적 절차인 총선거가 1948년 5월이 아니라 3월에 실시되었더라면, 독립 선포는 그해 6월 중에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면 독립기념일이 8월 15일과 혼동될 리 없었다.

5월 10일에 총선거를 실시했기 때문에 5월 30일 제헌의회가 소집되었고, 동 의회가 7월 17일 헌법을 제정했고, 7월 24일 그에 따라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어 취임했고, 그의 주도로 8월 4일까지 행정부의 수립이 완료되었다. 그래서 3년 전 해방의 기쁨도 함께 경축하는 의미에서 가까운 8월 15일로 날을 잡아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하필이면 광복절에 정부수립을 공표하는 바람에 광복절과 건국(독립)기념일이 겹쳤고, 그것이 건국절을 사라지게 만든 요인이 됐다.

그 이전 3년간 남한은 미군정 하에 있었으며 독립국가가 아니었다. 당시 신문을 보면 1946년 8월 15일은 해방 1주년이었다. 1947년 8월 15일에는 해방 2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열렸다. 그에 관해 동아일보는 “백만 인민 자주독립 절규”라는 굵은 제목을 달았다. 광복절이란 말은 있지도 않았고, 1945년 8월 15일에 독립했다는 의식도 없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자주독립을 절규하는 기간이었다. 

당시의 실정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대한민국 정부가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독립기념일)의 대상으로 경축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은 우연하게도 8월 15일이 그 날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방과 독립의 기쁨을 함께 경축하자 했는데, 어느 듯 해방의 기쁨이 독립의 기쁨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반일(反日) 민족주의다. 1948년 건국 당시만 해도 개인, 자유, 독립과 같은 근대문명의 기본 가치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는 낮은 수준이었다. 다수의 한국인은 여전히 전통 성리학의 윤리 속에 살았다.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인은 공산주의 이념을 선호했다. 자유 이념을 신봉한 한국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실정에서 신생 대한민국은 국민 통합을 위해 반일 민족주의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교육되지 않고 반일 민족의 일원으로 양성되었다. 

그 점은 크게 말해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일은 한국인의 존재 이유가 되어 버렸다. “일본아 후지를 자랑마라, 우리에게도 백두는 있다”는 식이다. 일제는 우리를 노예처럼 부렸다. 총독부는 우리의 토지와 식량을 수탈했다. 이런 식의 노예론 내지 수탈론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종교적 신앙으로 학생들의 뇌리에 주입되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서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맞은 기억이 자유인의 국가가 독립을 했다는 기억을 압도했다. ‘광복’은 캄캄한 암흑을 뚫고 광명한 빛이 찾아왔다는 식의 전혀 엉뚱한 뜻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의 해방과 동시에 독립을 성취했다는 환상의 기억이 성립했다. 

필자는 얼마 전 나이 30대의 관료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그들이 1945∼1948년 한국인이 미군정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는데, 따지고 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정부가 그런 식의 기억에 입각하여 광복절을 기념한 지가 이미 60년을 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정부 고관들도 건국사에 無知

셋째는 학문하는 정신의 결여다.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서는 우리의 건국에 도움을 준 우방으로부터 축전이 날아온다. 1952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의 4회 독립기념일을 축하한다고 했다. 1968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국의 건국 20년을 축하한다고 했다. 2010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62회 Korean Independence Day를 축하한다고 했다. 

이렇게 지난 60년간 한국 정부는 그가 헤아리는 주년과 상이한 주년의 독립기념 축전을 받으면서도 그에 대해 무심했다. 어느 역대 대통령도 왜 광복절이 우방에 의해 독립기념일로 불리는지, 왜 주년의 헤아림에서 3년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의 고관들조차 자국(自國)의 건국사에 무지(無知)했다. 외교부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상이한 주년의 축전을 받고도 이를 상부에 보고하거나 우방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전문적 직능에 기초한 근대적 관료집단이라 할 수 없다. 

정치학자나 역사학자라 해서 다를 것 없다. 2008년 모 정치학회가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준비했다가 몇몇 회원의 항의를 받고 ‘건국’을 ‘정부수립’으로 바꾸는 촌극이 벌어졌다. 몇몇 회원이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에 성립했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라는 단체를 구성했다고 해서 그것이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국가가 되는가. 

또 몇몇 회원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이 이뤄졌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당일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식전에 걸린 것은 그 이전에 국회와 사법부의 수립이 완료되고 마지막 남은 행정부의 수립을 경축하는 취지였다. 5월의 총선거 이후 국회 소집, 헌법 제정, 사법부 구성, 행정부 조직의 모든 과정을 통틀어 건국이라는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함에 하등의 논리적 모순이 없다. 

그럼에도 모 정치학회의 학술대회가 ‘건국’을 ‘정부수립’으로 바꾼 것은 한마디로 말해 정치학회라 하지만 자국의 건국사에 대해 백지 상태임을 폭로하는 수치(羞恥)였다. 다시 말해 정부나 민간이나 진지하게 학문하는 자세를 결여했다. 

건국절로의 변경은 개천절 때문에 쉽지 않아

이처럼 여러 가지 원인이 오랫동안 착종해 왔기 때문에 광복절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바로 잡고, 그에 대한 국가의 의전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광복절의 주년을 바로 잡는 일이다. 1949년 9월 광복절이 제정되고 1950년을 제2회 광복절로 경축했음이 정부의 제반 기록에서 명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對)국민 성명을 통해 그 동안 건국사의 이해에 중대한 착오가 있었는데, 이제 바로 잡아서 올해는 제67회 광복절이라고 선언하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도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고 나라의 생일을 올바로 되찾았다고 기뻐하면서 박수를 칠 것이다. 

다음은 국회의 몫이다. 광복절을 당초의 원안대로 독립기념일로 바꿔야 한다. 앞서 지적한대로 ‘광복’은 원래 ‘광복조국’ 또는 ‘광복독립’의 줄인 말이다. 1949년 당시에는 그렇게 줄여서 무방했지만, 목적어가 빠진 불완전한 말이어서 세월이 흐를수록 무슨 빛이 찾아왔느니 식의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원안의 독립기념일은 그 뜻이 심대하다. 독립은 일제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었다. 15세기 이래 중국과의 사대(事大)관계를 청산하는 뜻에서 구한말 독립협회가 독립문을 세웠다. 그것도 함께 경축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550년 만의 독립이었다. 국가의 독립만이 아니다. 개개 인간 자체가 낡은 윤리와 가치관으로부터 나아가 오도된 정치이념으로부터 해방되는 뜻도 있다. 

‘광복’에는 이 모든 역사적 반성, 교훈, 다짐을 담을 수 없다. 국회가 광복절을 독립기념일로 복구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해마다 독립의 소중한 뜻을 기리는 국경일이 국민적 축제로 벌어진다면, 한국인의 정신문화 역시 크게 고양될 터이다. 지금과 같은 협애한 반일 민족주의로 선진국에 진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싶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명칭 변경하자는 운동이 있다. 건국사를 바로 잡자는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참여하기가 주저된다. 개천절이 사실상 건국절로 경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개천절을 제정한 것은 일본의 기원절(오늘날의 건국기념일)을 본 따서였다. 정부는 개천절을 일본의 건국기념일에 상응하는 의전으로 경축하고 있다. 몇 년 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법률안이 제출되었을 때 국회의 입법자문관들이 개천절과 충돌한다는 의견을 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원안대로 독립기념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선 근거가 명확하여 추진하기가 쉽다. 뿐만 아니라 국가나 개인이나 독립의 깊은 뜻을 새길 때 우리의 정치·사회·경제를 선진화시키는 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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