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혁명으로 정치 선진화를!
선거제도 혁명으로 정치 선진화를!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9.0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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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선거제도 개혁의 쟁점 사항들

권역별 비례대표제, 오픈 프라이머리,

석폐율 제도가 정치 선진화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정치권이 선거제도를 놓고 치열한 수 싸움에 접어들었다. 2015년 총선의 운명을 가를 선거제도 개혁은 여야(與野) 모두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다.

뿐만 아니라 해산된 통진당의 재건을 노리는 세력들과 소수 정당들에게도 이번 선거제도 개혁은 초미의 관심 사항이 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2014년 10월 30일 현행 선거구 제도에 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렸다.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 대 1에 달하는 것은 위헌(違憲)’이라는 이유였다. 헌재(憲裁)는 공직선거법 25조 2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15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별 인구 편차가 2 대 1을 넘지 않도록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헌재 판결에 따라 조정되어야 할 선거구는 무려 62개에 달한다. 인구 상한 초과 선거구는 37개로서 주로 수도권과 기타 도시 지역에 몰려 있고, 인구 하한 미달 선거구는 25개로서 대부분 강원·전북·전남·경북 등 농촌 지역에 퍼져 있다.

이 62개 선거구만이 아니라 그 많은 선거구들의 주변 선거구들까지 거의 모두 손질해야 하는 바, 이는 결국 나라 전체에 걸쳐 전반적인 선거구 재획정 작업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그리고 정의당 등에서는 백가쟁명식의 선거제도 논의안이 터져 나왔다. 단지 선거구 조정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정수와 공천 방법, 지구당 운영, 비례대표 등 선거와 관련된 모든 쟁점이 일거에 등장했다. 

하지만 협의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선거제도가 마련되느냐에 따라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불문의 정치공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한은 올해 12월 31일까지이지만, 선거구는 선거 6개월 전에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새민련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만 무성하고 합의안이 나오지 않자 중앙선관위가 나섰다. 선관위의 개혁안은 선거구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메뉴를 내놓았다. 이 메뉴판에 정의당은 환호했고, 새민련은 입맛을 다셨으며, 새누리당은 떨떠름한 것이 현재까지 정치권의 반응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란? 

도대체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뭐기에 이렇게 온도차가 심한 것일까. 이 문제를 분석해 국회 토론회에서 보고한 최태원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현행 선거제도는 1인 2표의 투표권을 통해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한 표는 지역구 의원에게 투표하여 지역 대표를 선출하고, 다른 한 표는 정당에 투표해서 비례대표 의원을 선발한다. 이렇게 해서 전국적으로 3% 이상 득표한 정당에 득표율에 따른 비례 의석이 배분됐다. 이런 제도를 ‘병립형 비례대표제’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선관위가 제시한 선거제도는 전국을 6개의 권역으로 나눠 국민들이 싫어하는 의원 정수 증대는 포기하는 대신 소선거구 의석은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은 100석으로 늘려 6개 권역에 300석을 배분한 후, 각 권역 내에서 ‘독일식 연동제’에 의해 각 정당의 의석수를 확정 짓자는 안이다. 

선관위의 제안에 따라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면 권역별 평균 의석수는 50석이 되며, 그 중 33석 정도는 지역구 의원이, 나머지 17석 정도는 비례대표 의원이 차지한다.

이때 평균적 권역에서 어느 한 정당이 10%를 득표할 경우 그 정당의 해당 권역 의석수는 (50석의 10%인) 5석으로 ‘확정’되며, 그 5석은 그 정당이 지역구에서 몇 명의 의원을 배출했는지에 따라, 즉 지역구 의원 수에 ‘연동하여’ 그 구성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그 정당이 3개 지역구에서 승리했다면, 3석의 지역구 의석과 2석의 비례대표 의석으로 5석이 구성된다. 만약 어느 지역구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면, 그 5석은 모두 비례대표 의원의 자리가 된다. 이와 같이 모든 정당은 최소 조건인 전국 득표율 3% 이상만 획득하면 모든 권역에서 자신의 득표율에 비례하여 국회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정당이 6개 권역 모두에서 평균 득표율 10%를 얻어내면, 그 정당은 당장 30석 이상의 국회의석을 가진 유력 정당이 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관위의 설명에 따르면 ‘권역별 연동제’ 도입 제안이 채택될 경우 선거제도의 득표-의석 간 비례성이 크게 높아지며 민의(民意)를 잘 반영하는 이념과 정책 중심의 온건 다당제가 발전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다당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내각제에서는 다당제가 유효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는 양당제 구도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이번 선거제도 개혁이 내각제 개헌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농촌 지역 선거구 너무 많다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새민련의 경우 부산-영남에서 자당(自黨) 지지율이 광주-호남에서 새누리당 지지율보다 높기에 선호될 수 있다. 또한 수도권과 호남에 풀뿌리 조직을 갖췄던 구(舊) 통진당의 경우, 이름만 바꿔 신당을 창당하고 후보를 내면 수도권과 호남권을 중심으로 세력을 복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따라서 2016년 총선에서 ‘신(新)야권 연대’ 출범은 기정사실화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선관위의 선거개혁안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권을 중심으로 비례대표 축소론이 등장했다. 사실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정원에 제한 없이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회의원 정수를 300인으로 여야가 합의한 상황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면 선거구 조정에 따른 도시와 농촌 간에 대표성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농촌 지역의 지역 대표성 약화를 방지하면서 선거구 인구 편차 2 대 1의 헌재 판결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농촌 지역 선거구는 지금 그대로 유지한 채 수도권과 도시지역 선거구를 증대시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을 감소해야 한다. 

문제는 과연 농촌 선거구의 현행 유지가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문제는 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치의 대표성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한국의 경제·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부가가치가 국부(國富)의 절대를 차지하는 현재에서 과연 지금과 같은 과다한 농촌 선거구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문제는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영국이 해양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이전, 네덜란드가 먼저 해양제국으로 성장했던 배경에는 의회 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17세기경 동인도 회사를 통해 해양무역에 나섰던 네덜란드는 의회 개혁으로 인해 기존의 농촌을 대표하던 의원들이 대거 물러나고 무역상들과 선주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의회에 입성했다. 그 결과 선박에 대한 규제와 무역 규제가 풀리면서 네덜란드는 영국보다 앞서 해양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산업혁명기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었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 경자유전(耕者有田) 전통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관행 속에서 산업 고도화 시기에도 여전히 농촌 선거구의 과도한 대표성을 시정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여야 모두 농촌 선거구를 현행대로 유지가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절대善이 아니다 

선거구 문제와 별도로, 이번 선거제도 개혁의 쟁점에는 개방형 국민경선제라는 오픈 프라이머리 역시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각 정당의 후보 공천에 민의를 반영해서 정치 참여율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폐해와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국민개방형 경선이 정당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당을 ‘party’라 부르는 것은 정책과 이념이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이 서로 결사체를 이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국민 대표성을 갖는 정당 내 의원 후보는 그 정당의 유권자들이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만일 어느 정당이든 국민 개방 경선을 하게 되면 두 정당 후보들의 노선은 대중 추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 변별력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원들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하게 된다는 지적은 국민개방형 경선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국민 개방 경선, 즉 오픈 프라이머리를 시행 사례로 제시하고 있지만, 미국의 모든 주에서 오픈 프라이머리가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51개 주 가운데 16개 주만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고 있으며, 나머지 주들은 국민+당원 혼합형 경선이나, 아예 당원만으로 치러지는 폐쇄형 경선(colosed primary)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개방형 오픈 프라이머리는 서로 경쟁 상태에 있는 두 당의 경우, 당원을 동원해 상대 당의 후보 가운데 가장 지지율이 낮은 상대에게 표를 몰아줘서 경쟁 후보로 등장시키는 ‘역선택’ 문제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예비선거에서 이 문제는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국민개방형 경선, 즉 오픈 프라이머리와 결합될 경우, 선거구에 따라 복잡한 상황들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선거구 조정에 따라 중선거구가 등장할 경우 새누리당이나 새민련의 중앙당 차원에서 선거운동은 피할 수 없게 되며, 역선택을 비롯해 부정 선거 시비는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석패율제 

이 밖에 선거제도 개혁안으로 석패율제도가 논의 선상에 올라와 있다. 석패율제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시도 단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동시 출마를 허용하여 열세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정당의 지역 편중 현상을 완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석패율제는 중진급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선관위 개정 의견은 그런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한 순위에 반드시 2인 이상을 등록하여 경쟁을 하게 했고, 한 권역의 지역 선거구에서 5분의 1 이상을 차지한 정당의 비례대표 중복 후보는 의석 배분 순위에서 제외시키는 규칙을 제시한 까닭에 중복 출마로 당선될 수 있는 권역은 정당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혁안에는 눈에 띄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후보 경선에 여론조사를 위해 안심번호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안심번호의 경우, 정당의 후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전화번호가 노출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이는 사생활 보호의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성향을 사전에 파악한 정보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정치 여론조사가 반복되면 특정응답 번호에 대한 성향을 체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정보들이 축적되어 경선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가 당의 공식조사와 후보의 의뢰조사 간에 차이가 발생해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당내 경선 후보 여론조사의 응답번호를 안심번호로 대응하게 하면 사전 인지 정보를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안심번호는 최장 1주일 후에는 남지 않게 된다. 

당내 경선 매수죄 관련 자수자 특례규정도 주목된다. 당내 경선에서 매수 행위가 당사자 사이에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제안됐다. 이에 대한 효과적 처벌을 위해서는 매수 행위에 가담한 금품 등의 수수자 또는 중간 제공자 등이 자수할 경우, 그 형을 감면시켜 주는 제도다. 

무엇보다 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혁안에서 눈에 띄는 부가 사항은 후보 사퇴에 제한을 두는 것과, 후보 사퇴 시 선거 보조금을 반환하게 하는 방안이다. 선관위는 정당의 후보가 사퇴할 경우, 거소투표용지 발송 마감일 전 2일 후부터는 후보 사퇴를 할 수 없도록 제안했다.

기존의 투표 하루 전 사퇴와는 다른 규정이다. 이는 정당 간에 후보 단일화를 핑계로 유권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악폐를 방지하는 데 유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후보 사퇴자의 선거 보조금 반환은 대통령 선거의 경우 소속 후보가 사퇴·사망·등록 무효된 경우, 그 밖의 선거에서는 소속 후보 전원이 사퇴·사망·등록 무효된 경우 지급받은 선거보조금을 반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군소 정당이 야권 단일화를 이유로 후보 간 나눠먹기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통진당 후보 사퇴와 관련해 선거 보조금 반환 문제가 국민들 사이에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던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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