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는 ‘교육 평등주의 파괴’
탈출구는 ‘교육 평등주의 파괴’
  • 미래한국
  • 승인 2015.11.0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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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특집] 교육이 희망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 선택권 돌려주고, 정부는 교육에서 물러나야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과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교육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선입견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전자는 교육이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고, 후자는 개인은 교육을 통해 개천의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 곧 출세와 성공의 기회라는 것이다.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교육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에 맡겨서는 안 되고 국가가 관장해야 한다는 교육 국가주의로 넘어간다.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성공을 위해 국가가 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국가 주도의 교육이 무수히 많은 문제를 양산했고, 잘못된 교육 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고통을 받고 신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도 교육을 국민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교육을 국가 발전과 개인 성공의 길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선입견이 강고했기 때문이다. 

교육이 국가와 개인의 발전에 결정적이기 때문에, 평등이 마음의 습관으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의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교육 평등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교육 평등주의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교육 평등을 관장하게 되어 평준화 정책을 낳았다.

평준화 정책은 공교육을 강조하게 되고, 공교육 정상화는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지상 과제가 되었다. 공교육 정상화를 뒷받침하려는 철학이 바로 평준화 정책이고, 교육 평등주의의 철학이다. 

교육 평등주의가 낳은 비극 

특히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에 출세와 성공의 도구로서 교육의 역할을 생생하게 체험한 세대들은 교육의 위력을 실감하고 그것을 자식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평준화 정책으로 오히려 부실해진 공교육은 부모들의 강력한 교육열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교육 열풍을 낳았다.

학부모들은 스스로 사교육 열풍을 일으키고, 그 함정에서 빠져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정부에게 사교육을 없애라고 외치는 이상한 현상도 초래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한 정부는 모든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을 사교육 감소에 맞추고 있지만,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는 기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 원인은 정부와 국민들의 교육 평등주의와 국가의 평준화 정책에 있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사는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안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문민정부 이전의 교육정책은 산업화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문민정부의 교육 정책은 정보화 사회와 지식기반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미래를 선취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권의 실제 교육 정책의 철학적 기초는 교육 평등주의와 평준화였다. 

대학입시 정책에서 문민정부는 본고사 금지를 명문화하고 내신을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내신의 제도화’에 주력했다. 대도시의 1등급 학생과 농어촌 고교의 1등급 학생이 동일한 내신 등급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서울의 특목고 1등급 학생도 동일한 내신을 받는다. 

내신 제도는 학업성취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동일한 등급을 부여하는 마법을 부렸다. 모든 학교와 학생이 평준화되었다는 터무니없는 가정 위에 세운 것이 내신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본고사 폐지와 내신 도입은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가 결행했고, 고교 평준화는 1974년 박정희 정부가 단행했다. 이런 정책의 명분은 ‘망국적 과외’를 잡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본고사 폐지와 내신 도입은 성격이 서로 다른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같은 이념과 철학을 품고 있다. 곧 평등주의 사상이다. 본고사를 폐지하고 그것을 내신으로 대치하면 과외가 사라지고,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교육의 기회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본고사는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만 내신은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는 현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정책 입안자들의 전제였을 뿐이다. 고교 평준화와 본고사 폐지는 오히려 사교육을 부채질했다.

학력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그들 모두를 충족시켜야 하는 교육은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배울 것이 없어 학원으로 달려가고, 못하는 학생은 너무 어려워 학원으로 가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 전교조는 사교육의 폐해를 지적하지만, 실상 사교육을 초래한 공교육 부실화의 주범은 그들이 주장하는 교육 평등주의다.

본고사 3년 만에 폐지, 외국어고만 남아 

고교 입시가 있었던 이전과 달리 학교 교육에서 모든 학생이 만족하지 못하고 사교육으로 달려가야 할 상황에서 돈이 없어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점점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 고교평준화가 정반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그동안 평준화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부는 평준화 해제, 고교입시와 본고사 부활을 추진했지만 고등학교 교육을 더욱 기형적으로 만들었다. 노태우 정부는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를 확대하고 본고사를 시행했다. 

그러나 본고사는 3년 만에 금지되고, 외국어고만 살아남았다. 평준화 옹호론자들은 외국어고가 교교 서열화, 고교 입시의 사실상 부활, 평준화 균열, 중학교의 입시학원화, 초등학생의 선행학습 과외 창궐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평준화 정책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확고한 신성불가침의 정책으로 살아남았다. 어느 정부도 평준화 정책에 도전하지 못했다. 평준화 정책을 우회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 혁신학교 등이 탄생했지만 이런 학교들은 많은 논란만 불러 일으키고 실제적인 문제만을 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평준화 정책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 대학 입학전형 방식은 현재 그 종류가 2000개가 넘는다.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금지로 전형 방법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평준화 정책이 굳건히 실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평준화 정책은 그 정책이 내세운 거대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창의성 향상은 고사하고 학교 교육의 질을 하향평준화하고, 사교육을 증폭시키고, 공교육 불신을 강화하고, 어려운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평준화 정책은 한국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조기유학을 부추김으로써 가정경제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3불(不) 정책 가운데 하나인 기여입학제는 우리나라에서 시행해 본 적이 없는 제도다. 이 제도는 사립대학의 재정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1990년 일부 단체들이 도입 필요성을 검토했지만 대학입시 부정사건 여파와 반대 여론으로 논의 자체가 중단되었다. 사립대학들은 재정난 해소를 위해 이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기여입학제 가능할까? 

기여입학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경직된 입시제도의 모순을 타개하여 사학의 설립이념을 구현하고 대학 간 자유 경쟁을 통한 발전을 촉진한다. 사립대학의 심각한 재정난을 해소하고, 사회유휴자본의 음성적, 낭비적 지출을 양성화하여 정규교육 재원으로 유인함으로써 보다 질 높은 대학교육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여입학제를 통해 확보된 재정을 학생 장학금 등에 투자하면 오히려 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선진 외국에서는 법 규정 없이 기여 입학이 공공연하게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의 채택 여부를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명시한 헌법에 저촉되며, 민주사회의 토대인 실적주의와 성과주의를 말살하고, 배금주의를 조장하며, 사회계층의 세습화와 계층 간 위화감을 심화시키고, 대학 간 불균형적인 발전을 초래한다는 반대에 밀려 허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 학생 납입금 인상이나 정부 지원 강화를 주장할 명분을 잃게 되고, 구체적인 시행 과정에서 운영상의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의견도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논리다. 

기여입학제에 대해 반대하는 명분은 다양하지만 그 명분들은 대체로 평등주의로 귀착된다. 교육의 기회 균등을 말살하고, 위화감을 조성하고, 대학 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계층의 세습화를 초래하고,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없앤다는 것은 모두 평등에 기초한 주장이다. 교육 평등을 실현하려면 더 많은 정부 재정이 대학에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등주의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 교육 문제의 해결책은 정부 대신 학부모·학생이 교육 선택권을 갖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3월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내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는 장면.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평등을 추구하려 하면, 외부의 강제력 동원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있는 합법적인 기구는 국가가 유일하다.

따라서 평등주의에 기초한 고교평준화와 기여입학 불가는 필연적으로 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의 강화로 넘어간다. 국가 개입 강화는 교육에서 개인의 선택할 자유를 침해하고, 교육에 대한 국가 재정을 가중시킴으로써 국민 부담을 확대하여 이중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한국 교육은 국민 대부분이 불만스러워 하고, 모든 정부가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 정책을 바꿨지만 변한 것은 없다. 현 정부도 4대 개혁 가운데 하나로 교육 개혁을 설정했지만, 그 정책이 실효를 거둬 교육이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는가?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 씨는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고교 입시·본고사를 부활시키자’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의 뿌리를 교육에서 찾았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 가운데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교육 개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 13%를 넘는 청년 실업의 원인도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많은 기형적인 교육 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OECD 회원국의 취업자 중 대학 졸업자의 평균 비중은 37%, 고졸 이하 비중은 63%인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게다가 대졸자를 기업에서 채용하려면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 교육은 양과 질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게 윤 전 장관의 주장이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보편성(평준화)과 수월성(특수교육)의 조화라고 설명하지만, 이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우리 교육은 아직 평준화 논리에 따른 본고사 폐지, 고교 등급제 폐지, 기여 입학제 금지의 틀에 갇혀 있다.

평준화를 깨지 않고 우회적으로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과학고와 외국어 같은 특수 목적고는 본래 취지와 상관없이 대부분 경영대, 법대, 의대로 진학하는 것이 현실이다. 평준화를 기본으로 삼은 교육이 필연적으로 결과한 부작용이다. 

국가의 미래 위해 교육개혁 결단해야 

그가 제시한 대안은 인재를 기르는 데 효과적이었고, 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덜했던 예전 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변별력이 없는 수능을 없애고 본고사 부활 ▲고교 입시를 부활시켜 고등학교 진학 시점부터 대학 진학자와 취업 희망자 구분 ▲사립대학이 기여 입학자를 받도록 허용 ▲기존 사립대 지원금을 국·공립대에 집중해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국·공립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립대학은 등록금과 기여 입학금 등으로 자율적인 경쟁 시장에 나서도록 하자는 의미이다. 

그는 교육 개혁은 전체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어 실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교육정책은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라의 미래를 보고 결단해야 하는데, 국민 눈치를 보는 정치인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먼저 얻으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평등주의에 사로잡힌 대부분의 국민이 이런 개혁을 공부 잘하거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개혁에 동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은 평등을 파괴하는 정책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리드먼의 지적처럼 우리가 자유를 먼저 추구하면 자유와 함께 평등도 얻게 되지만, 평등을 먼저 추구하면 자유와 평등 모두를 잃게 된다.

우리 교육이 봉착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 선택권을 부여하고, 정부는 교육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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