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합의, 비난을 위한 비난은 이제 그만!
위안부 문제 합의, 비난을 위한 비난은 이제 그만!
  • 미래한국
  • 승인 2016.01.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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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전직 외교 전문가가 바라본 한일 위안부 협정

정대협은 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에 매달리는가?

전직 외교부 일본 전문가

[편집자 주]지난 12월 28일 극적으로 타결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난의 핵심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에 따르면 이는 국제 관계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을 맹목적으로 우기는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원치 않는 행동으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이번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공과를 분석하면서 법적 책임론의 문제점을 고발한 전직 외교부 관료의 글을 익명으로 게재한다.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에 대한 비난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해결안이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난이 더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러한 비난은 비난을 위한 비난일 뿐이다.

▲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무조건 법적 책임 회피라 주장하며 굴욕외교로 낙인찍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번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다음과 같다.

(1)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의 주체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이 과거사 반성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다.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들은 그 동안 독일의 과거사 처리가 일본보다 잘 되었다고 침을 튀기며 양국 사례를 비교해 왔다. 그러면서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EVZ 재단)’을 통한 과거사 처리 노력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따라서 재단 방식 자체를 과거사 반성 회피라고 못 박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이는 법적 책임 논쟁과도 연계된다. 일부 원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법적 책임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준거법의 문제, 시효의 문제 등 실정법적 문제 외에도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의 법체계를 완전히 분리하는 현재의 일본 법체계상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책임 추궁이다.

그것은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구분하기 어려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어떠한 의미에서든 책임을 언급하고 그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협정에서의 재단 방식은 문제가 있다. 바로 설립 주체다.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그 재단에 일본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재원을 내는 것이다. 한일의 공동 노력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일본이 일과성으로 예산을 지급하고 끝내는 방식이 된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일본도 계속 개입하면서 주도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해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진정성을 입증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2) 미래에 대한 역사의 교훈 전달 문제

위안부 문제 해결은 위안부 문제의 입막음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음을 양국이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을 자극하는 국제무대에서의 소모적 외교전은 지양되어야 하겠지만,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후세에 전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한 것은 표현이 매우 거칠고 의미도 분명하지 않다. 일단 문제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관련 법적 책임을 주장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피해 당사자가 일본에 대해 개별적으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애매하다.

문제의 정의가 불명확하니 해결의 정의도 불명확하다. 한국 정부가 이번 합의로 어떠한 의무를 지게 되는지 불분명하다. 일본에 대해 위안부 책임 인정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국제무대에서 여성인권 문제 등의 보편적 이슈의 한 사례로서 위안부 문제가 취급될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피해 당사자의 개별적 책임 추궁 행위를 정부 차원에서 막겠다는 것인지 그 의미가 애매하다.

또한 ‘최종적’이라는 문구로도 이미 충분한데, ‘불가역적인’이라는 핵 시설물 사찰 및 검증에서나 사용하는 개념을 덧붙인 것은 일본 측의 의견이 지나치게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가역적 이라는 표현은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을 대상으로 원상 회복을 할 수 없도록 철저히 제거하고 파괴하는 개념으로나 사용되는 것인데, 이를 국가 간의 약속이나 합의에 사용한 것은 일본이 그만큼 한국의 입장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옭아매 두고 싶은 의향이 반영된 것이다.

‘불가역’이라는 표현을 수용하려면 그 대가로 최소한 일본 내에서의 교육의 문제, 즉 위안부 문제로 대표되는 전쟁의 참화와 반(反)인도적 행위에 대해 일본이 후세에 알리고 전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근린국 배려 정신에 대해서도 재인식한다는 내용 정도를 상징적으로나마 추가했으면 균형이 조금은 더 맞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3) 법적 배상의 의미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배상을 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냐? 일본의 국가불법행위를 전제로 그에 대한 국가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일본 정부가 일본 의회를 설득해서 특별입법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본 행정부는 근거 법률 없이 그러한 배상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국가불법행위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입법을 살펴보자. ‘5·18 민주화운동 보상법’이 대표적인데, 발의 당시 일부에선 국가에 의한 불법행위를 전제로 배상법 명칭을 주장했지만, 결국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배상법’이 아니라 ‘보상법’으로 결정되었다.

광주에서의 군 진압행위 자체를 국가의 불법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올바른 인식이냐는 의견의 차이, 또 불법행위로 인정할 경우 너무나 큰 법적 혼란이 야기되는 현실적 이유, 기타 보수층의 반발 등 복잡한 정치역학 등으로 인해 ‘배상’이 아니라 ‘보상법’으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사에 기인한 국가배(보)상 특별입법을 하는 것이 이토록 지난한 과정인데, 일본에서 여당과 야당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깐깐한 일본의 입법시스템을 통과할 정도로 정합성이 있는 위안부 배상 법안을 도출해 낸다? 그러한 정치적 모멘텀을 이끌어 내려면 한국에서 ‘5·18 민주화운동 보상법’의 입법을 이끌어낸 정도(그나마 배상도 아니고 보상법이다)의 추동력이 필요하다. 일본인들이 일치단결하여 거국적으로 나서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한마디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도 하지 못하는 것을 일본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본인들이 선의로 해석할 길이 있을까?

정대협이 주장하는 것처럼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간적 제한이 있다면, 인권의 관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실사구시의 정신이 왜 그리 배척이 되어야 하는지 본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정대협이야말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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