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수는 무엇을 할 것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6.03.29 14: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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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풍향계] 20대 총선의 역사적 의미

보수는 가치승계적 정권교체를 통해 이전 정치세력과  연계된 세력이 집권해야

정치적 역량 확대, 정파성 극복 가능 

2016년 4월 총선이 끝난 후 우리 정치는 어떻게 전개될까. 사실 이 질문이 총선의 승패보다 더 깊은 의미로 회자되고 있다. 권력은 투쟁으로부터 나오며, 정치의 무게중심을 따라 권력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과 야당, 각 당의 무게중심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총선 이후 정국은 새로운 질서의 등장이 아니면 파탄으로 치닫게 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일단 총선 이후 정국 전망이 지금 필요한 것은 총선 이후, 각 정파 간에 미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살벌한 권력투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부자(父子)간에도 나눌 수 없고 태양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동서고금의 정치원리는 이제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거대한 소용돌이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레임덕이 초래될 수도 있고, 역으로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내에 혁명적인 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만큼 현 정치권에서 박근혜라는 무게중심의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전망해 보는 것은 이번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보수진영의 전략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 통일이 다가오는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는 누가 국가의 앞길을 예비하고 인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2월 박대통령의 국회연설 모습.

장면 1. 식물 대통령 박근혜와 새누리당 내 각자도생 

항상 그렇듯이 현재 권력이 미래권력 창출에 회의감이 제기되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권 전체에 레임덕이 온다. 당은 무력해지고 분열된다. 행정부의 관료들은 야당에 줄을 대려 경쟁하고 서로 정보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새누리당이 야권에게 패배해서 현재 의석수보다 크게 줄어 과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친박계가 얼마나 살아서 돌아오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여권의 무게중심이 유지되지 못하면 새누리당은 끝없는 분열 속에서 각자도생을 모색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의 뇌관은 유승민 의원이 갖고 있다. 그가 무소속 출마로 당선되면 그는 현재권력으로부터 미래권력을 창출하는 동인(動因)이 된다. 당내 권력의 무게중심은 급속히 이동하게 될 것이며, 대통령은 당적을 포기할 것이고 이후 정국은 야당의 우세 속에 메이저 언론들도 편들기가 시작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는 길은 박근혜라는 현재의 무게중심을 통해 미래권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 순리라는 인식이 새누리당과 지지자들 사이에 공유되어야 한다. 즉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의미가 현재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세력으로 해서 미래의 권력도 그 적자(適者)로부터 탄생해야 한다는 질서에 동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역시 총선 후, 격렬한 당내 투쟁 과정에서 승리한 쪽의 헤게모니가 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는다면 비박(非朴)진영은 개별적으로 친박(親朴)에 협조하는 대신 미래권력에서 지분을 얻는 쪽의 타협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이 시나리오가 가장 최선이다. 하지만 현실정치란 최선을 허락하는 법이 드물다. 이 시나리오가 가능하려면 대통령의 영도력이 선거 후 탁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면 2. 대통령의 리더십 유지, 미래권력의 등장 

이 시나리오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획득하고 이후 당권 투쟁에서 친박이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경우다. 이 투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박의 정권 재창출을 주도할 다크호스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암묵적으로 대통령의 적자가 된다. 황태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인물이 대통령이 마음에 품고 있는 적자가 아니라면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이 문제가 여권 내에서 가장 힘든 상황을 만들게 된다. 새누리 의원들과 당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눈치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장면 3. 비박의 부활, 친박의 몰락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잃고, 친박계가 야권에 패배하며 반박(反朴)의 상징 유승민 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비박진영은 유승민 의원의 복당 문제를 도화선으로 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투쟁력을 친박과 대통령에게 쏟아 붓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거대한 십자포화의 불길이 대통령의 정치생명과 친박 진영을 향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유승민 의원은 차기 대권의 반열에 가장 유력하게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새누리당은 보수 정체성을 크게 잃고 포퓰리즘으로 경도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과 경제민주화의 제2라운드에 돌입하고 불황에 대한 재벌 대기업 책임론과 유승민 의원이 야당 의원들과 공동 발의한 사회적 경제법이 재발의되면서 초반에 통과된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대한민국은 반공의 국시는 유지되겠으나, 사회 경제적으로는 사민주의 성향이 뚜렷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새누리당과 야당은 서로 포퓰리즘 경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 

총선 후의 시나리오는 이 세 가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어떤 상황이 선(善)이냐는 판단은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철학적 바탕에서 이 문제들을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 유승민 의원이 총선에서 당선돼 새누리당에 복당한다면 여당은 보수 정체성을 잃고 야당과 경제민주화 대결을 벌일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박대통령에게 공개 사과 하는 모습.

정치적 질서의 출발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 

현실정치에 있어 정치공동체의 등장과 정치질서의 확립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은 독일의 법철학자이자 정치신학자인 칼 슈미트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나치에 부역한 이유로 종종 그의 이론이 거부되기도 하지만,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근대 헌법 이념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정치적 상대주의로부터 결국 체제의 위기 순간에 최고 지도자는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단주의’로 요약된다. 

칼 슈미트는 의회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한다. 국민에게 부여된 주권은 양도가 불가능하고 분할될 수 없기에, 그런 주권을 위임받은 최고 결정권자는 민주주의의 실패 과정에서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자신의 정치철학이 담긴 <정치신학>의 서두를 ‘주권자란 결단할 수 있는 자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슈미트는 모든 정치질서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들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지키고자 ‘만장일치’로 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때 성립된 정치공동체는 국가를 수립하며, 그 주권을 최고 통치자에게 위임하게 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주권은 단일하고 분할될 수 없기에 그 주권의 행사자는 누구인가가 된다. 주권은 국민 개개인에게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단일하게 부여된 것이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은 그러한 주권을 자신의 뜻에 따라 대리할 선출자를 뽑지만, 각자 개인들의 의사는 각자 다르기에 주권은 대의되지 못하고 대리될 뿐이다.

따라서 슈미트는 민주주의를 ‘동질적인 사람들이 이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시스템으로 봤고, 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즉 의회가 자신의 기능을 못할 때 주권자는 완전한 명령권(Vetum Imperium)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의 적, 자유의 적들로부터 주권자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은 비상시 ‘최고 존엄’이 된다. 프랑스 드골 체제에서 프랑스 헌법은 이를 대통령의 ‘비상대권’으로 명기했다. 대통령의 완전한 명령권은 헌법에 까지 미치기에 대통령의 비상대권은 그 명령으로 헌법의 일부, 또는 전체를 중지시킬 수 있다. 이는 ‘보호하려는 자는 보호 대상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최고 통치자로서 의회나 사법부가 아니라, 오로지 국민에게만 책임을 지며, 국민을 위해 가장 도덕적인 결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칼 슈미트의 정치철학이 ‘정치신학’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철학은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의 이념적 배경이 된다. 

위기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는 주권자인 국민을 대리해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결단하지 못하면 그는 주권자의 대리인이 아니다.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철학은 그가 나치에 동조했음에도 역으로 나치 이후 독일의 공산당과 반민주적 정치세력들을 위헌 정당으로 해산할 수 있는 법이념이 되었다. 즉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허락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없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법정치 이념이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법정치 이념은 박근혜 정부에서 통진당 해산에 ‘결단주의’로 시행되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 결단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결단의 범위와 효력은 헌법에 미치고 그 책임은 오로지 국민에게 지면 된다. 따라서 공화주의는 자유와 민주의 결합이 아니라, 군주독재와 민주 간에 결합이 된다. 

한 사회에 자유는 전제 없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 자유를 통해 주권자는 현명하고 유능한 군주와 민주적 의회라는 두 질서를 결합한 것이다. 이는 홉스가 ‘모두가 복종해야 하는 리바이어던’의 필요성에 입각한다. 홉스는 모든 정치질서는 결국 전체주의와 아나키,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며 공화제는 이를 중용의 철학으로 유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칼 슈미트는 홉스의 이러한 정치사상을 수용해서 인민은 자연 상태에서 국가라는 질서를 수립하지만, 국가 안에도 여전히 자연적 질서(아나키)가 존재하므로 이를 ‘자유와 민주수호’에로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기가 아니라 등불을 들자 이런 정치철학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실적인 정치세력의 구심점이다. 이것은 그가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박근혜라는 정치인으로서 축적해 온 정치적 자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일 때에라도 30%의 지지층이 존재해 왔다. 동시에 박근혜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승계한 보수정치 세력의 아이콘이 되어 왔다. 이 점은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한국 정치세력의 한 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퇴임 이후에도 한국 정치질서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이 차기 정권을 재창출할 때만이 보수정치 세력의 맥락이 유지된다. 박근혜 격하를 통해 집권하는 또 다른 보수세력이 등장한다면, 이는 보수의 정권 재창출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상당히 심란하다. 보수는 가치승계적 정권교체를 가져보지 못하고 이전 정치세력과 단절을 통해 새로운 정파를 만들며 집권해 왔다. 이 과정에서 보수 정치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갈가리 찢어지고 어제의 동지들이 내일은 서로를 헐뜯어야 하는 정적들이 되어 왔다. 그 결과는 보수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의 축소와 정파성이었다. 

초정파적인 보수 아젠다에 봉사하는 시민사회는 아예 그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못하거나,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보수 진영의 컨트롤 타워가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한 번쯤은 끊어 내야 한다. 이 과정은 각자 개인들의 정치적 선호를 초월해야 하는 문제다. 그 대신 대한민국의 발전과 다가올 통일의 아젠다에 각자가 지지하는 정파성의 대결 무기를 내려놓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단 하나의 존재’는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타협과 양보로 구축된 보수 시민들의 정치적 주권을 대리해야 할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는 The One, 즉 메시아이자 구세주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세력, 특히 보수 시민세력에게도 The One이 필요하다. 정치적 메시아가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그 The One일지, 아니면 그가 세례 요한처럼 그 뒤에 올 The One을 예비하는 자인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이 눈앞에 오고 있고, 대한민국은 과거 구한말 때와 같이 풍전등화의 시험기로 나아가고 있다. 

누가 대한민국의 앞길을 예비할 것인가. 그는 우리와 함께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 보수는 서로를 향해 든 각자의 무기를 내려놓고 대신 등불을 들어야 할 때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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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 2016-04-27 17:49:43
반성은 안하고 칼슈미트를 들먹이네 ㅋㅋㅋㅋㅋㅋ 무능하고 부패한 세력이 주권자의 위치에 서는걸 칼슈미트도 반대했음. 정치신학적 정치라면 애초에 민심 역풍분다는거 자체가 말이안되고 칼슈미트이론으로 주권통치의 적은 바로 당신들이다. 반성을 좀하고 칼슈미트 정치신학을 꺼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