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거버넌스 구조부터 개혁하라
국가 거버넌스 구조부터 개혁하라
  •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 승인 2016.06.30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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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서서히 다가오는 경제위기 그림자

한국 경제는 제도 자체가 부실한 데다 비전문가들의 아마추어 식 의사결정, 또 조직 자체의 경직성으로 인해 위기를 반복할 가능성 농후. 경제정책의 의사결정과 추진구조, 즉 거버넌스 구조부터 혁신해야 위기 재발 막는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경제위기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 외환위기(foreign currency crisis),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위기로 나눠 볼 수 있다. 흔히 금융위기(financial crisis)라고 하는 위기는 학계에서는 은행위기와 외환위기로 나눠 부른다. 

은행위기는 금융기관이 빌려 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부실여신이 증가한다. 그 결과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이 하락, 여신(與信)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 금융기관 전반으로 확산되어 시스템 위기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금융기관이 빌려 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부실여신이 증가하는(즉 돈을 뜯기는) 현상은 어떻게 발생할까. 

우선 순수한 금융의 논리에 의한 엄격한 사전 대출심사, 사후 감시라는 금융 중개 기능이 작동하기 보다는 금융기관이 관치(官治) 하에 있어 정치권이나 정부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해서 발생한다. 

두 번째는 금융기관이 관치 하에 있지 않아도 금융기관이 대출기업의 업황 판단을 잘못하거나, 대출기업에 대한 정보를 잘못 판단하여 사전 심사와 사후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금융경색이 심화되면서 경제가 위축된다. 초기에 일부 기업들의 부도로 일부 금융기관의 부실여신이 증가해 여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시중에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다른 기업들의 부도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다른 금융기관들의 부실여신을 증가시켜 시스템 위기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이나 금융당국은 초기 일부 금융기관들의 부실 여신이 증가할 때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징후가 보이면 문제의 금융기관에 긴급여신을 공급하여 해당 금융기관의 위기가 금융 전반의 시스템 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작은 위기 재빨리 수습해야 큰 위기 막는다 

한국처럼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큰 나라에서는 “대기업 대출로 인한 부실여신을 왜 중앙은행이 지원하느냐”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적기에 중앙은행이 위기를 예방하지 못해 위기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1997년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이 한보철강 등에 대출한 여신이 회수되지 않아 부도 위기에 처하자 한국은행에 각각 6000억 원씩의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학자와 언론들은 “대기업에 대출하다가 부실에 빠진 은행에 자금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반대 여론을 부추겼다. 결국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고유의 최종 대부자 기능을 포기했다. 

그 결과 두 은행은 부도가 나고 그 여파는 금융시장 전반의 시스템 위기로 확산됐다. 다른 기업들의 연쇄부도, 그에 따른 다른 금융기관들의 부도를 몰고 오면서 금융위기의 서막이 열렸다. 

지금도 시중에는 전문성 없는 금융전문가나 ‘정의의 사도’가 너무 많다. 이들은 올바른 정책판단을 그르쳐 위기를 증폭시킬 정도로 여론을 오도한다. 전문성을 토대로 정책을 결정해야 할 정책당국마저 여론을 의식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외환위기(foreign currency crisis)는 한 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서 대외적으로 지급해야 할 부채의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해 국가적으로 부도가 나는 현상이다. 한국은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2008년에도 외환보유액이 부족했으나 미국과 통화 스왑을 체결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때의 위기를 외화유동성 위기라고 정의해 1997년의 외환위기와 구분하기도 한다. 

▲ 경제위기의 핵심에는 정부·국책은행 등의 전직 관료들이 관리 감독 대상인 기업체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부실을 양산하는 정피아·관피아의 제도적, 인적 부조리가 자리 잡고 있다.

위기는 왜 오는가? 

대체로 은행위기가 발생하면 은행에 대출해 준 외국 국제금융기관들이 대출자금을 회수하면서 외환위기도 같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금융위기 연구의 대가인 라인하르트와 카민스키는 쌍둥이 위기(twin crisis)라고 명명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제 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쌍둥이 위기가 발생한다. 

금융기관이 대출해 준 기업의 업황에 대해 판단을 잘못하거나, 금융기관이 관치의 지배 하에 있어 금융 논리보다 정치권의 입김이나 정부 의중을 고려하거나, 기업의 강성노조가 기업구조조정을 강력 반대하여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업 부실이 증가해 금융기관의 부실여신 증가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는 외국 금융기관들이 대출해 준 돈을 회수하거나 평상시에는 언제나 대환(roll over)를 해주던 돈을 대환을 해주지 않아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1997년 기아자동차 부실을 두고 1년 내내 데모와 시위로 구조조정이 제 때 이뤄지지 않자 외국 금융기관들은 대출해 줬던 돈을 1997년 말에 일시에 회수해 가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지금도 그런 우려가 증가하고 있어 걱정이 크다. 

전반적인 경제위기(economic crisis)는 정치·경제·사회 등 복합적 이유로 인해 경제 전반이 침체를 지속하는 현상이다. 경제위기는 다양한 정치 사회적 이유로 인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발생 ▲국가부채나 재정적자 수준이 높아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임금 수준이 생산성이나 경쟁 상대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 기업 투자 위축 ▲기업 투자환경을 옭죄는 규제가 급증하여 투자 위축 

한국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은행위기, 외환위기, 경제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나 잘못된 환율정책으로 수출이 부진하면 수출호조를 예상하고 투자한 기업들의 설비투자 가동률이 떨어진다. 이 경우 빌렸던 대출금 원리금 상환을 하지 못해 금융부실이 증가하고, 은행위기 가능성도 높아진다.   

수출 감소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지면 외환위기 가능성도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고용도 악화시켜 소비가 둔화되고, 기업 투자도 위축되어 경제 전반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2012년 이후 원화가 엔화에 대해 50% 정도 절상되면서 수출이 장기간 부진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제조업 가동률이 71%까지 급락하여 고용·소비·투자 불안이 장기화하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경우다. 

금융위기·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 

문제는 이런 경제위기가 왜 발생하는가, 특히 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 침체, 보호무역주의 증가 등 대외적 요인도 중요 변수이지만, 대내적으로는 경제정책의 의사결정과 추진구조, 즉 거버넌스가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대내적인 거버넌스는 1)제도적 요인, 2)부처 장·차관, 한국은행 총재 등 정책당국 책임자의 임명구조, 3)정책당국의 조직문화로 나눠 볼 수 있다. 

1)제도가 위기를 초래할 개연성 내포 

현재 한국의 금융제도는 최상위에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관장하는 금융위원회가 있고 그 산하에 금융위원회의 지휘를 받아 금융감독과 검사업무를 수행하는 금융감독원이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정책금융의 경우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국책은행과, 국책은행이 관리하는 300여 개의 관리기업들이 있다. 

우선 적극적인 금융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정책과, 금융산업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감독정책을 같은 당국에서 다루는 것은 정책 간 상호 충돌 문제가 야기될 위험이 있다.  적극적인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금융정책의 목적 달성을 위해 금융산업 안정을 위한 금융감독정책이 소홀해 질 개연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의 지휘를 받는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들을 감독하는 과정에서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추구하고 있는 금융산업 발전, 지역경제나 서민경제 안정 등 정치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금융정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 결과 금융감독이 소홀해지면서 금융 부실을 초래하게 된다. 전형적인 경우가 2011년 발생한 발생했던 전대미문의 저축은행 사태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막대한 부실문제는 정책금융체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국책은행-국책은행 관리기업으로 수직 연결되어 있는 제도 하에서 국책은행이 금융 논리만으로 여신을 공여하거나, 사후적으로 감시 관리를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국책은행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도 금융위원회의 지휘를 받으므로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부실여신이 발생할 개연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금융감독원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필자는 누누이 지적해 왔다. 1997년 금융위기 때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던 IMF(국제통화기금)도 한국과 체결했던 양해각서(MOU)에서 이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 

금융감독정책을 결정하는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감독원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금융감독원 내부로 들어오고, 금융감독원은 한국은행과 같은 독립된 기구가 되어야 한다. 
현재 국제금융은 기획재정부에서, 국내금융정책은 금융위원회에서 관장하고 있다. 글로벌화 되어 있는 경제라는 점을 고려해 금융위원회의 권한 중 금융정책 기능을 떼어 내 국제금융 및 국내금융을 단일 부처에서 관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정책당국 책임자의 임명구조가 위기 가능성 내포 

청와대는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및 금융감독원장을 임명하고 있다. 장차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문제는 금융정책이라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의 최고 정책결정권자에, 때로는 전문성이 부족한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비전문가들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장 임명에도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 관리기업의 경영진 임명에도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사구도 하에서 정(政)피아와 관(官)피아가 감사·사외이사·고문 등으로 관리 기업에 내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책금융기관도 관리하고 있는 기업에 관재인이나 감사를 내려 보내고 있다. 정피아나 관피아가 관리기업의 경영진·감사·사외이사로 내려와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감독과 검사를 받는 정책금융기관이 관리기업을 제대로 감독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정책금융기관이 내려 보낸 관재인이나 감사는 더 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와 있는 경영진에 대해 힘을 못 쓰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더 힘 있는 배경을 가지고 내려온 경영진이 정책금융기관이 내려 보낸 감사를 파면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또 기업의 강성노조나 지역 경제단체들은 지역구 출신 정치인, 심지어 노조는 야당 시민단체 등과 연대하여 정책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요구를 거절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기업의 부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기 전에 사전심사를 엄격히 해야 한다. 돈을 빌려준 후에도 사후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시정하거나 사전에 구조조정을 해서 부실을 예방해야 한다. 이런 금융의 기본원칙은 정피아, 관피아 제도 하에서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결국 부실기업이 늘고 부실여신이 증가해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까지 정피아, 관피아, 정책금융기관, 관리기업의 경영진, 노조 등이 한통속이 되어 폭탄 돌리기를 계속한다. 그러다 마침내 부실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정(政)피아·관(官)피아가 판치는 인사 구도 혁신해야

더 큰 문제는 폭탄이 터지고도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위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성 없는 관피아, 정피아가 판을 치고 있는 인사구도를 혁신해야 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가개조를 주장하고 있겠는가. 

경제위기와 관련이 있는 부처는 금융당국 외에도 통화당국(한국은행)과 재정당국(기획재정부)이 있다. 한국은행 총재와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제는 금융당국처럼 통화·재정 분야도 통화, 환율정책, 재정정책이라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자리에 때로는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나 정치인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는 한국은행 총재는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여전히 통화 환율정책에 대한 전문성이나 정책 방향에 대한 인식보다는 단순히 과거 경력이나 지명도 등에 의해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화·환율·재정정책은 경기가 과열되면 안정시키고, 침체하면 부양하는 단기 안정화 정책이다. 때문에 경제동향 파악과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출중해야 하고, 경제동향과 전망에 대응하는 정책수단별 파급효과나 영향력에 정통한 전문가여야 한다. 

통화·환율·재정정책은 학문적으로도 학파가 갈라져 대립하고 있을 정도로 논란이 많은 분야라서 경제를 보는 인식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환율-저금리론자인가, 저환율-고금리론자인가, 재정에서는 작은 정부론자인가 큰 정부론자인가 하는 등이다. 

선진국에서는 중앙은행 총재나 재무장관은 전문 역량을 갖춰야 하고 대통령이나 수상의 정치적 비전을 공유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추구하는 아베노믹스를 가장 잘 이해하고 통화 환율정책 면에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물이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라는 판단 하에 그를 일본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아베노믹스는 구로다노믹스라고 할 정도로 아베와 구로다는 호흡을 잘 맞추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통화·환율의 최고 전문가이면서 대통령의 경제 비전을 통화정책 면에서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인물을 연준의장에 임명하고 있다. 미국 사상 최장기 호황을 이끌어 낸 앨런 그린스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미국을 가장 빨리 회복시킨 벤 버냉키 등이 그런 인물이다. 

이러한 과정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함께 국가경제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추진할 적임자를 선택한다. 임명 후에는 독립성에 침해되는 어떤 정책이나 언행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선진국이다. 심지어 대통령이 연준의장을 초대해 정책 협조에 대해 조언을 듣기도 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가 된 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당시 연준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이었다.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경험한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는 국제금융에 정통한 전문가가 이런 자리에 임명되는 것이 중요하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외화유동성 위기, 그리고 다시 반복될지도 모를 위기의 전야를 앞두고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는 왜 이런 전문가들이 정책당국의 수장이 되지 않는가, 왜 위기를 반복하는가, 그리고 대통령은 얼마나 통화·환율·재정당국의 수장들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인사가 만사다. 잘못 임명된 정책 당국의 수장들은 그를 임명해 준 대통령의 정부를 실패로 몰고 가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린다는 점이 비극이다. 

3)정책당국의 경직된 조직문화 

금리·환율·재정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 경제 동향과 전망에 대해 가까운 장래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는지, 침체를 지속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인식, 대응정책 수단의 선택과 효과에 대한 인식 등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진단과 처방이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활발한 토론을 통해 가장 정밀한 진단과 최선의 대응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조직문화는 토론이 용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1997년 위기가 다가오고 있을 때 한 정책당국의 고위 책임자가 핵심부서 과장급 이상을 소집했다. 위기가 오고 있는지, 온다면 예방을 위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를 이 자리에서 계급장 떼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아무도 발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지정해서 발언을 유도해도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영리한 과장들은 갑자기 회의가 소집되는 바람에 질문하는 윗사람의 의중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조직 내 토론이라도 윗사람의 의중과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철 모르는 직원이 윗사람의 의중과 다른 의견을 개진할 경우 대부분 좌천이나 한직으로 밀려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윗사람도 대부분 낙하산이나 회전문식 공무원 인사 관행으로 오기 때문에 전문성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윗사람의 비전문적 식견으로 내린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우 곧바로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실책이 나올 수도 있다. 

왜 한국의 관료사회에서는 토론이 불가능할까? 

외국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토론이 한국 조직에서는 불가능할까. 이유는 인사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활발한 조직 내 토론이 가능해지고, 최선의 정책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인사를 상위 인사권자가 독점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특정 국장을 선임할 경우 상위, 차상위직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자격을 갖춘 응모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통해 비전과 전문성을 검증한 다음 선임한다. 

수년 전 명망 있던 한 대법원장이 판사 임용을 임용위원회에서 하자는 제안에 대해 “인사는 내 고유 권한이며, 위원회에서 할 경우 조직 통솔이 안 된다”면서 거절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수평적, 개방적 조직 운영으로 조직원 각자 모두가 창의적 혁신적 능력을 발휘하는 조직이나 국가가 성장하는 시대 아닌가. 

한국에서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금융제도를 비롯한 각종 제도를 선진국형으로 개혁하고, 부처 장차관과 한국은행 총재 등 정책당국 책임자의 임명구조를 대통령과 비전을 공유함은 물론 전문적 역량이 있는 인사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책 당국의 조직문화도 수평적 개방적으로 바꾸는 등 국가 경제정책의 의사결정과 추진구조, 즉 거버넌스에 대한 일대 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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