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로 국회를 개혁하라
공화주의로 국회를 개혁하라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6.07.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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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의회주의냐, 공화주의냐

개헌이 필요하다면 공화제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는 바람직하며, 국회 해산권과 국가 비상시 취할 수 있는 비상대권이 부활되어야 한다 

정치질서란 누가 설계하거나 고안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질서다. 그런 질서를 자연적 질서(Natural Order)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에 대한 오랜 현자(賢者)들의 탐구와 성찰에도 불구하고, ‘정치란 무엇이며, 왜 그런 질서가 형성되는가?’에 대한 대답이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비교적 선명하고 보편성이 있는 설명력을 가진 한 정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이름은 칼 슈미트인데,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이름이다. 

칼 슈미트의 천재성 

하지만, 칼 슈미트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론은 대단히 영향력이 커서, 오늘날 우리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위헌(違憲) 정당으로 판결했던 원리, 즉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허락할 수 없다’는 ‘결단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슈미트라는 학자의 이름이 우리에게 생소한 것은 그가 나치 협력자였다는 오점(汚點) 때문인데, 여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지만 나치라는 금기에 철저한 유태인들의 영향력에 의해 오늘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천재적인 사상가라 할 수 있다. 

칼 슈미트의 천재성은 그가 정치질서의 등장 원인을 ‘적과 동지의 구별’로부터 파악하고 있는 데서 비범하게 드러난다. 즉 인간은 처음에 무리지어 사냥을 하면서 사나운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이를 공공의 적(public enemy)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의 적(敵)은 자연스럽게 ‘부족의 사냥터’라는 공익(公益)을 보호하려는 개념으로부터 사냥터를 침범하는 부족에 대한 적 개념으로 나아가게 된다. 

정치적 질서는 이렇듯 공공의 이익을 외부의 적들로부터 지키려는 동기에서 개인들의 연대로 시작되고, 그 결과 한 정치공동체의 정치질서는 언제나 ‘만장일치’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만장일치의 규범이 국가 공동체로 실현되면 그것이 헌정(憲政)의 개념이다. 

칼 슈미트는 이러한 성찰로부터 ‘민주주의란 동질적인 사람들이 이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명쾌한 명제를 얻었다. 따라서 한 정치공동체의 만장일치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자는 그 정치공동체에 ‘공공의 적’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헌정을 수호하기 위한 최고 통치자는 헌법의 제정권자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비상시에 헌법을 초월하는 ‘비상적 결단’의 권능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독재를 옹호하는 것 같은 슈미트의 결단주의 정치철학은 그러나 정치적 현실이 도덕과 법의 규범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위협에 대응하는 질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실존적 상황임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국가 위기를 맞은 국민 개개인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그 해결 방안이 국민들 사이에 갈려져 있다면 통치의 최고 결정권자는 도덕적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철학은 나치당이 바이마르 헌법의 자유주의적 이념을 이용해 합법적 선거로 파시즘을 구현했을 때,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를 저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시사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대통령은 바이마르 헌법에 의해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졌는데, 대통령은 직접선거로 선출되기는 하지만 임기가 7년에 이르렀고, 의회를 해산할 수 있었으며, 긴급명령권 및 군대의 최고사령관 지위도 가졌다. 결국 공화제에서 독일 대통령은 자신에게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 공화제의 본질은 군주와 의회가 결합되는 혼합정이며, 주권의 결정은 군주나 헌법이 정한 대통령이 한다는 데 있다. 사진은 대통령 취임식을 국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습.

민주주의의 본질적 하자(瑕疵) 

흔히 의회를 ‘민의(民意)의 전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본질로 자리 잡고 있다. 과연 대의(代議)로 선출된 의원들이 민의를 대의하는가 라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즉 우리는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 ‘우리의 뜻대로 하라’고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리라’고 선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의원들 사이에도 의사가 갈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수결의 원칙’이 해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칼 슈미트는 그것은 ‘다수의 독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하자를 목도하게 된다. 의회는 주권을 대리할 수는 있어도 결국 대표하지 못하며, 대의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주권의 위임결정은 오로지 최고 결정권자에게만 주어진다. 공화제라면 그 인물은 바로 ‘국가의 원수’다. 

그는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자가 된다. 따라서 의회는 국민을 대리해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결정하는 장소가 아니라, 공론(公論)으로 토의하는 장이고, 결국 합의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합의가 되지 않으면 다수결로 표결하여 그 의사를 정리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입법이 되었을 때, 최종 심의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공화제에서 대통령은 헌법이 그 권한을 보장하는 존재이고, 의회는 그 하위법으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을 제약할 수 없다. 즉 공화제에서 대통령은 헌법안의 군주와 같은 존재다. 독일 나치당의 발흥은 독일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의회 견제 권력을 대통령 스스로 포기했던 ‘비결단성’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공화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의문을 갖게 된다. 공화제에서 의회는 무엇이며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 문제는 국민주권의 행사 책임과 권한의 문제로 들여다봐야 답이 보인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제에서 국민주권은 국민 개개인에게 분할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단일한 인격체에 통째로 주어진다. 즉 국민 개개인은 투표 외에는 각자의 주권으로 통치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권은 항상 위임을 통해서만이 행사된다. 

민주주의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주권 행사의 최고 결정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다. 현대 정치론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데, 주권의 최고 결정은 의회에 있다는 의회우월주의와,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행정우월주의가 대립한다. 

이 문제는 의원 내각제나 총통제를 하는 국가에서는 비교적 쉽게 결론이 나는 것이지만,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혼합한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갈등을 불러오는 문제다. 대표적인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즉 국회와 정부가 대립하면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화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얻게 된다. 

공화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흔히 공화(共和)라는 한자의 뜻이 ‘함께 화합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일이 자주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해가 있는데, 공화(共和)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죽서기년(竹書紀年)>과 <여씨춘추(呂氏春秋)> 등에는 공(共)이라는 지역의 제후였던 화(和)가 천자(天子)를 대신해 집정(執政)을 하여 공화(共和)라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공화라는 원래의 뜻은 우리가 번역해 알고 있는 Republic이 아니다. Republic이란 말은 로마의 키케로가 플라톤의 <국가론(Politeia)>을 보고 그 체제에 붙인 이름, res publica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공공적인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때 Public이란 단어는 ‘비배제적 포용’을 의미한다. 즉 플라톤이 말한 국가란 폴리스(Polis)이며, 그의 국가론은 폴리스에 모두 참여하는 평등한 시민들의 덕성에 관한 책이다. 

아테네 폴리스는 초기에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의무였다. 따라서 민회(民會)는 선거가 아니라, 추첨을 통해 선출했다.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말라는 의미였으며, 시민 모두에게 국정 참여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리스의 폴리스 정신을 계승한 로마는 집정관, 원로회, 민회 등 3부로 정치체제를 만들었는데 이는 군주, 귀족, 평민이라는 신분계급의 권력을 3분한 체제였다. 따라서 로마의 공화제는 신분 계급들이 국가 권력을 분점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이를 단일 주권 체제로 개편하려 했던 이가 바로 시저(카이사르)였다. 

그는 공화제 하에서 로마의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로마는 제국으로 나아가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황제(Emperor)의 최고 존엄(Vetum Imperium)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랬던 시저는 이에 반대하는 그룹들에 의해 암살되고 만다. 하지만 이후 로마의 황제제도는 시저의 뜻대로 나아갔다. 

입헌군주제가 공화제의 근본정신 

국가주권의 최고 결정권에 대해 시저의 정치적 판단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시저에 앞서 250개나 되는 그리스 폴리스들의 정치 행태를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들이 왕정, 귀족정, 혼합정 등을 채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가운데 군주와 민회가 결합된 혼합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오늘날 우리가 공화제라고 부르는 정체(政體)가 바로 혼합정이다. 이 혼합정이 타락하면 민주정(Democracy)이 된다고 봤다. 즉 혼합정의 군주권력이 민회에 점령당하면 그것이 민주주의가 되며, 그러한 민주주의는 타락한 정체(政體)라는 것이다. 

이 생각은 플라톤에게서도 나타난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자들의 중우(衆愚)정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때 플라톤이 Democracy라는 말에서 Demos로 본 사람들은 폴리스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시민(市民)이었으며, 중우(衆愚), 즉 어리석은 군중은 오클로(Ochlo)라는 말로 표현됐다. 즉 그리스의 시민, 데모스로서 책임과 의무를 갖지 못한 ‘떼거리’, 오클로들의 정치가 바로 Ochlocracy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말한다면 ‘떼법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Democracy에 대한 해석은 놀랍게도 메이지 유신 태동기에 일본 다이묘의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이를 민주(民主)라고 번역한 것은 천황 중심의 존왕양이(尊王攘夷)로 가려는 정신에 데모크라시는 매우 위험한 사상임을 간직한 것이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이 Democracy를 ‘민본(民本)주의’라고 해석했다. 이승만은 당시에 입헌군주제에 뜻이 있었다. 사실 그것이 공화제의 근본정신이었다. 

우리는 공화제의 본질이 군주와 의회가 결합되는 혼합정이라는 것과, 주권의 결정에 있어 의회가 아니라 군주, 즉 입헌공화제에서는 헌법이 정한 대통령이 그 최고 결정권자이자 국민에게만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라고 명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공화제에서 의회 우월주의로 간다면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의 원수가 아니라, 의회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행정의 최고 집행관에 불과하게 된다. 그 폐해는 미국 독립혁명 시기에 존재했던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가 여실히 보여줬다. 

아메리카 13개 식민지(독립 이후 각주)의 통일적 행동을 군사 ·외교 ·재정에 걸쳐 지도하기 위해 결성된 대륙회의는 중구난방에 빠지고 일관성도 없었으며 각 주의 이해관계에 얽혀들면서 아무 것도 해낼 수 없었다. 이때 대통령, President는 그저 의회의 수반으로서, 이들 의회의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결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이듬해인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서 오늘날 아메리카합중국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President로 조지 워싱턴을 선출하게 된다. 그는 세계 최초로 헌법이라는 제도로 규율되는 군주였다. 이로써 미국은 명실상부한 Republic의 위상을 갖추게 된다. 당시 미국인들이 벤치마킹한 모델은 다름 아닌, 로마의 공화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의 공화제가 신분 계급에 의한 권력 3분(分)의 체계였다는 점인데, 오늘날 공화제에서는 그런 제도가 없다. 다만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공화제와 관계없다. 로마에서처럼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계급들 간에 국가 권력을 분점하여 타협의 균형을 이룰 수는 있어도, 단지 권력의 집중을 막겠다고 국가의 권력을 셋으로 쪼개는 정치철학의 토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회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의회독재 

칼 슈미트에 의하면 3권 분립은 프랑스 혁명기에 파리 코뮌의 시민정부가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폭정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적 아이디어였으며, 그 이념적 기반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설에서 왔다. 

슈미트는 국가란 언제나 ‘전체국가(Total State)’를 의미한다고 봤다. 슈미트는 그러한 전체국가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이로부터 어떻게 하면 개인들의 자유와 민주적 질서가 보장될 것인지가 관심이었다. 이는 홉스가 일찌감치 간파한 바와 같이 정치질서는 무정부주의와 전체주의 어느 한 쪽으로 기우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이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지난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칼 슈미트는 현대의 의회 민주주의는 타락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는 공화제에서 공론의 합의기구로 존재해야 하는 의회가 대의되지도 않는 주권을 위임받아 대의에 나서려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는 ‘의회독재’라는 개념으로 비판된다. 

슈미트는 그러한 의회주의의 타락을 진보적 자유주의 정치이념에서 찾는다. 정치적 질서가 적과 동지의 구분으로부터 등장한다는 진실을 외면하기에 의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치의 게임장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의회는 국가 안에 존재하는 무질서적 자연 상태의 등장에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국회가 보여주는 행태가 바로 그렇다. 그런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나오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그 방향은 공화제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의 중임제는 바람직하며, 그 권한은 축소할 것이 아니라 강화되어야 한다.

즉 국회 해산권과 국가 비상시 취할 수 있는 비상대권이 부활되어야 한다. 그래야 의회주의가 타락하는 현실과 국가의 위기 시에 주권의 최고 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와 같은 것은 공화주의 정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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