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EU 탈퇴, 진짜 의미는?
영국의 EU 탈퇴, 진짜 의미는?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6.07.0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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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브렉시트(Brexit) 그 후

파운드화 가치 방어와 금융시장 투명화 위해 브렉시트 추진했다는 說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브렉시트(Brexit)’가 현실이 된 것이다. 72%에 이르는 투표율은 수십 년 만의 일이었다. 투표한 영국 국민 가운데 51.89%가 브렉시트를 찬성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브렉시트의 표면적인 이유는 “주는 것에 비해 받는 게 너무 적다”는 점과 난민 강제 할당이었다. 연 200억 달러 이상을 EU에 내지만, 실제 영국이 받는 혜택은 1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 북아프리카와 이라크,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난민 가운데 수만 명을 영국이 받아야 한다는 압력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다른 점에 주목한다. 영국 경제를 다시 되살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영국 보수당이 파운드화 가치 방어와 금융시장 투명화를 위해 브렉시트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 금융계는 브렉시트 결과에 즉각 반응했다.

영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4%로 강대국이기는 하나 미국은 물론 중국에 비해서도 작은 편이다. 그런데 왜 브렉시트로 인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는 것일까. 

영국은 세계 최고의 금융국가로 꼽힌다. 밀레니엄 브릿지를 넘어 왕립증권거래소 일대에 형성된 ‘더 시티’ 덕분이다. 여기에 비좁은 ‘더 시티’를 보조하기 위해 템즈강 건너편에 새로 형성한 카나리 워프도 영국의 금융 허브 역할을 돕고 있다. 

‘더 시티’의 본격적인 발전은 18세기 말 로스차일드 가문의 아들 중 한 명인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가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이후 나폴레옹과 넬슨 제독의 전쟁 등을 통해 엄청난 재산을 번 로스차일드 런던 지점은 ‘더 시티’를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뒤 18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 철도 건설, 철강 생산, 석유화학 산업 발전 등으로 밴더빌트, 록펠러, 카네기, 모건 등 재벌이 생겨났지만, 이들도 런던 ‘더 시티’의 군주인 로스차일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로스차일드의 공식 재산이 크게 줄어들고, 뉴욕이 세계 최대의 금융허브로 등장했다. 전후(戰後) 일본과 독일의 재건과 발전,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금융 허브의 탄생 등으로 전 세계 금융 허브는 뉴욕과 시카고, 도쿄, 프랑크푸르트, 홍콩 등이 꼽혔다. 이런 추세는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가능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는 독일과 프랑스가 혼란을 막기 위해 중국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더 시티’의 핵심세력은 중국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런던의 ‘더 시티’는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1999년 12월 중국의 WTO 가입, 2000년 5월 러시아에서 KGB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 2001년 9·11 테러 이후 ‘걸프협력회의’ 회원국들의 막대한 오일 머니가 ‘더 시티’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런던 ‘더 시티’에는 251개의 전 세계 은행과 다국적 회계법인, 로펌, 전략컨설팅, M&A 등 금융전문 컨설팅 업체 1200여 개가 모여 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세계 채권 거래의 70%, 파생상품의 49%가 ‘더 시티’에서 거래되고 있다. ‘더 시티’가 이처럼 뉴욕을 능가하는 금융 허브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뭘까. 

중국은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뒤 2년 동안 원로들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어졌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공산당을 장악한 뒤 1981년까지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국가 주석을 지냈다. 

덩샤오핑은 자원도,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남아도는 노동력을 발판으로 홍콩을 통한 가공무역 등에 집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산 제품도 쓸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해외 자본들의 중국 투자가 해마다 증가했다. 

1997년 2월 덩샤오핑 사망 뒤 그의 뒤를 이은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자유무역체제 편입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기를 희망한다. 당시 클린턴 미 행정부는 중국의 WTO 가입을 받아들인다. 

이후 중국 공산당의 목표인 ‘세계의 공장’은 현실이 됐고, 중국은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 불과 6년 만에 외환 보유액이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은 이처럼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내건 목표인 경제력을 무기로 한 세계 공산화와 제국주의 세력 타도는 잊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바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을 무너뜨릴 전략을 모색했다. 2006년 발간된 쑹훙빈(宋鴻兵)의 <화폐전쟁>은 중국 공산당의 속내인 ‘금융전쟁’을 예고한 것이었다. 

중국의 금융전쟁 

2007년 4월 중국은 국영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400억 달러 어치를 ‘더 시티’에서 투매했다. 미국과 영국 투자은행들은 이를 매입, 혼란을 막아보려 했지만 도미노 현상은 막지 못했다. 

2008년 들어 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이 파산하거나 타 회사에 합병됐다. 9월에는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AIG, HSBC, 바클레이즈 등 보험사나 은행들도 수십억 또는 수백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중국 공산당은 2007년의 성공을 바탕으로 ‘더 시티’를 서방 국가들을 견제하고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투사하는 창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적(敵)의 중심을 친다’는 전략이었다. 

2015년 10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영국을 방문, 500억 달러 상당의 투자와 협력을 약속하고, 비슷한 시기 5000억 원 어치의 위안화 표시 채권을 ‘더 시티’에서 발행하고 런던 증시에 상장한 것, 시진핑이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사업’에 필요한 8조 위안 가운데 상당액의 정부 채권을 ‘더 시티’에서 발행하겠다고 밝힌 것 등은 중국 공산당이 ‘더 시티’를 어떻게 보는지를 잘 설명하는 증거다. 

‘더 시티’에는 중국 이외에 다른 세력들도 중요한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다. 

1990년대 중후반 러시아를 극심한 빈곤에 빠뜨렸던 보리스 옐친 정권이 끝난 뒤 러시아 국민들은 KGB 출신의 정치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선택했다. 푸틴은 집권 후 러시아 재벌들을 부정부패 혐의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푸틴 정권에 대적하려 했지만, 푸틴에게는 KGB 요원과 FSB(연방보안국), SVR(해외안보국) 요원들이 있었다. 

서방 정보기관과 달리 체제 전복 및 암살, 고문 등에 특화된 구(舊) 소련 정보요원들은 옐친 정권에서 헐값에 공기업을 불하받았던 재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그 결과 3~4년 사이에 러시아 재계 순위가 크게 바뀌었다. 2005년이 되자 러시아 재벌 대부분은 푸틴의 측근 또는 지지자로 바뀌었다. 

푸틴 정권에 반대하던 일부 재벌들은 영국으로 도피했다. 이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영국 시민권을 얻은 뒤 도심 지역에 초호화 저택을 매입해 호화 생활을 했다. 2013년 3월 사망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첼시 구단을 사들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등이 대표적이었다. 

푸틴 정권을 통해 급성장한 올리가르히들도 일이 있을 때만 러시아에 가고, 대부분의 생활은 런던에서 하는 일이 많아졌다. 언론에 나타난 것만 봐도 예브게니 레베데프, 블라디슬라브 도로린, 알리셔 우즈마노프 등이 그런 사례다.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은 중동, 인도 재벌과 함께 런던 메이페어 지역의 초호화 주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이 런던을 찾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금융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즐비하고, 이들을 활용하면 조세피난처를 통해 비자금을 세탁하거나 숨기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중동 갑부들도 ‘더 시티’ 핵심세력 

러시아 올리가르히와 비슷한 이유로 영국 런던에 몰리는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걸프연안협력회의(GCC)’ 회원국의 귀족들이다. 영국이나 EU 지역에서 아랍어로 된 번호판을 단 슈퍼카를 몰고 다니는 이들 대부분이 GCC 회원국 귀족들이다.  

이들은 부족장의 가족들로 GCC 국가 정부가 벌어들인 오일 머니 가운데 상당액을 배당받는다. 그 결과 특별히 사업을 하지 않아도 돈이 넘쳐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만수르의 알나하얀 가문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지역 부족장의 아들이다. 이런 GCC 국가의 석유재벌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 런던이다. 

GCC 국가 부족장 귀족들은 ‘더 시티’를 통해 자신들의 재산을 운용하거나 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몰래 자금 지원을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더 시티’를 활용한다. 

이슬람 교리 가운데 자신이 지닌 돈 또는 수입의 2% 가량을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주는 자캇(희사)이라는 게 있다. 문제는 런던에 살고 있는 귀족 이슬람 인사들의 자캇이 지하드의 방편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알 카에다의 두목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업체 ‘빈 라덴 그룹’의 자금 가운데 일부를 사용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인 살라피즘에 빠진 일부 이슬람 부족 귀족들은 자캇을 영국이나 중동 지역의 테러조직들에게 희사하는 일이 많다. 그 자금은 ‘더 시티’의 투자은행을 통해 테러조직이 조세피난처에 개설한 유령회사의 계좌로 들어간다. 테러조직의 유령회사는 영국과 EU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조직들에게 테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이처럼 중국, 러시아, 중동의 재벌들이 몰려든 덕에 런던은 세계에서 천만장자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2013년 조사한 결과 런던에 거주하는 천만장자가 4200여 명을 넘어 세계 1위로 나타났고, 10억 달러 이상 재산을 가진 재벌은 54명이 거주, 뉴욕, 모스크바에 이어 3위로 나타났다. 

국민투표 결과 영국의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사람이 50% 가까이 나타난 이유는 영국 경제의 추락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러시아·중동 재벌 덕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다. 특히 런던의 경우 집값이 비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60% 이상이 브렉시트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과 러시아, 중동 재벌들이 영국에 가져온 돈을 다시 빼가면서, 부동산 가격과 이를 토대로 한 임대료 폭락, 사치품 유통 및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현상이다. 

영국 시민권을 가진 중국, 러시아, 중동 재벌들의 반대도 심하다. 영국이 EU의 블록 안에 있으면, 자신들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탁한 자금을 영국으로 들여온 뒤 EU에 투자하거나 EU 국가를 통해 다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 투자하는 것이 매우 수월하다. 하지만 영국과 EU 간의 통로가 사라지면 이런 경로를 거치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이 브렉시트 투표 직후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EU 탈퇴는 2019년이 되어야 완료된다. 그 사이 영국과 EU, 북미 지역의 금융시장과 국제 외환시장, 원자재 시장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영국 파운드의 경우 브렉시트 결정 직후 하락세를 보였지만, 영국을 활용해야 하는 세력들과 국제 투자은행의 필요에 따라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중기적으로는 파운드화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에 거액을 투자한 중국과 러시아 재벌, 중동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이전까지 파운드 가치는 서서히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신 금을 필두로, 은, 백금, 팔라듐과 같은 비철금속 중 귀금속, 다이아몬드 등 보석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금에만 투자할 경우 향후 중국 경제의 경착륙 등 외부 변수에 따라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화 가치 상승은 달러와 엔 가치를 지금보다 더욱 높일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재벌, 중동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투자하고 운용하기 위해서는 기축통화를 활용해야 하는데, 수천억 달러 이상의 거액을 별 다른 무리 없이 유통할 있는 통화는 지구상에 달러, 엔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유로화의 가치는 점점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유로화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경제적 문제 보다는 정치·사회적 문제가 원인이 될 것이다. 영국이 EU로부터 탈퇴를 선언하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찾아드는 대규모 난민은 유럽 대륙이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독일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프랑스가 돕는다 해도 영국만큼 ‘무조건 지원’을 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난민 때문에 일어나는 회원국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고 테러를 막는 데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일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고, 동유럽과 남유럽 경제도 덩달아 악화될 게 분명하다. 

한국의 선택지는?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중국에 매달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고립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러시아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머지않은 시기에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의 EU 탈퇴와 함께 동유럽의 이탈, 종국에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해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미국의 새 정권은 고립주의를 택하고, 러시아는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냉전 수준에 맞먹을 정도로 회복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은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내세워 EU 회원국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수출입이 전체 경제 규모의 85% 수준인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지금부터 심각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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