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쪽잠에 줴기밥’, 南은 ‘수염 정치’
北은 ‘쪽잠에 줴기밥’, 南은 ‘수염 정치’
  • 백요셉 미래한국 인턴기자
  • 승인 2016.08.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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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탈북 기자가 본 남북한의 ‘정치쇼’

수염 기르기 같은 얕은 꼼수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 보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일 수 있다 

북한에는 ‘쪽잠에 줴기밥(주먹밥)’이라는 말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에 김정일이 굶주리는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 하며 ‘쪽잠에 줴기밥’으로 현지 지도를 이어갔다는 조선중앙방송의 집요한 선전으로 생긴 말이다. 이를테면 북한판 ‘서민 코스프레’를 의미하는 표현이기고 하다.

그렇게 독재자 김정일은 ‘쪽잠과 줴기밥’ 뒤에 숨어 ‘한없이 검소하신 인민의 지도자’로 둔갑했다. 하지만 수십 년 째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며 지독한 굶주림에 찌들대로 찌든 북한 주민들은 희대의 폭군 김정일을 검소한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남한의 정치인들은 너도 나도 수염 기르기가 유행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수염의 정치학’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수염을 기르고 민생 투어를 한다. 이를 정말로 민생 투어로 볼 것인지 아니면 ‘민생 관광’으로 볼 것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 행동을 꼭 민생 투어라는 명분 하에 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 ‘수염정치’에 빠진 정치인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좌)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우)/연합

면도를 못한 걸까, 안한 걸까 

8월 1일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전남 진도 팽목항을 시작으로 소위 민생 투어를 시작했다. 왜 수염을 길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남자가 돼 보면 안다.

이거 깎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라고 했다. 지난 9일부터 2차 민생 투어에 나선 김 전 대표는 또 자신의 SNS에 전북 남원시의 한 마을회관에서 직접 빨래를 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와 관련 같은 당의 정우택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서 “속옷을 빠는 모습도 나오던데 좀 남사스럽지 않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네티즌의 반응 역시 대부분 부정적이다. “국민을 다 빈민촌 거지로 보는 거냐”, “민생을 투어로 하는가요? 무슨 놀러가는 겁니까”, “이거 문재인 코스프레 같다” 등의 의견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역시 지난 6월 중순부터 약 1개월 동안 네팔과 부탄에 머물면서 수염이 덥수룩한 자신의 모습을 SNS에 게시해 화제가 됐다. 당시 문 전 대표가 기른 수염에 대해 그의 측근은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남성들이 흔히 하는 행동 이상의 의미는 없다”면서 “정계 입문 전인 2004년 히말라야에 갔을 때도 수염을 길렀다”고 해명했다.

문 전 대표는 부탄 방문 기간 동안 체링 톱게이 수상, 카르마 우라 국민행복위원장 등 부탄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났다. 문 전 대표에 따르면 이번 방문이 ‘국민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됐다고 한다. 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가 멀리 부탄까지 가서 찾은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노숙자를 연상케 하는 지저분한 수염을 좋아하는 정치인들로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빼 놓을 수 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시장은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후보 사퇴 기자회견장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나타나 거지 코스프레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정치인 수염 기르기의 원조 격은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이다. 그는 지난 2008년 18대 총선과 지난 2013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칩거에 들어가면서 수염을 길렀다. 손 전 고문은 그보다 앞선 2006년 경기도지사 퇴임 후 장장 1만2000여㎞의 100일 대장정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정치 쇼 지겹다”는 반응 

정치인들이 지저분하게 보일 수도 있는 덥수룩한 수염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는 민의(民意) 청취, 혹은 새로운 정치의 준비, 또는 자아 성찰 같은 메시지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과 귀에도 그렇게 보이고 들릴지는 확실치 않다.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역겨움을 자아낼 수도 있다. 구시대적인 정치 선전, 즉 구태 정치로 보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김 전 대표나 문 전 대표, 박 시장 같은 유력 대선주자들의 서민 코스프레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면 네티즌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반응들을 쏟아내곤 한다.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면 저런 코스프레가 통할 것으로 생각한 걸까” 
“정치 쇼 지겨워요. 연기는 말고 일 좀 잘 하시죠” 
“요즘 저런 쇼맨십에 넘어가는 사람도 있나”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네요.”

초선 의원이나 중진 의원도 아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들이 이미지만을 위해 거지 코스프레를 시도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얕은 꼼수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 보겠다는 것은 어쩌면 네티즌의 말대로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의 이런 소위 서민 정치를 보면서 과거 북한 조선중앙방송에서 선전선동으로 방송했던 ‘쪽잠에 줴기밥’이 생각난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비참한 인민’이라는 기만술로 2000만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던 북한 독재자 김정일의 교활한 꼼수와 때만 되면 노숙자와 같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남한 대권 후보들의 뻔한 코스프레가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경직된 북한 사회에서 독재자의 선전선동은 통할 수밖에 없다. 마음 속으로는 믿지 않아도 겉으로는 믿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그런 기만술이 통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 대한 반영일 것이다. 결국 국민들의 최종적인 판단은 표가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서도 김정일의 민생 투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주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그런데 모든 정보가 개방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 국민이 지저분한 수염과 노숙자 같은 초췌한 몰골에 속아 넘어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향한 진심과 변함없는 열정이고, 이런 모습을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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