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뜨고 싶은 과학기술 인재들
한국을 뜨고 싶은 과학기술 인재들
  •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6.09.02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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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핵심 과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핵심 요소는 창의적인 인재의 확보이고,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지난 20세기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 분야에선 혁신의 시기였다. 10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과거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어왔던 자연현상에 대해 이해의 폭은 급속도로 넓어졌고, 다양한 기술 덕택에 인류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최고의 부자나 권력자, 왕보다도 더 잘사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고, 현재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되기 위해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창의적인 인재의 확보이고,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런 환경은 지식과 정보의 유통이 원활한 개방적인 환경에서 시장의 논리에 따른 경쟁을 통하여 연구자들의 동기부여가 있을 때 효과가 발휘된다. 

일찍이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영국 국민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종교 박해를 피하여 이주한 위그노족 기술자들을 우대했고, 당시에 국부론이라는 시장경제 이론이 출현하면서 강대국의 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종교 박해를 피한 위그노 족의 탈출은 독일의 번성에도 기여했고, 스위스는 시계산업을 비롯한 정밀공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열성적인 나라는 영국이었으며, 당시 영국 찰스 2세는 특별 이민법까지 제정해 위그노의 정착을 도왔다. 그들을 위해 특허 보호와 상공업 우대 정책을 시행했다. 전문 기술자들과 자본가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준 결과 경제 부흥이 가능했고, 영국은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해상제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자유주의 사상과 개방화된 시장주의 그리고 종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전문 인력의 우대정책이 원동력이 되었다.

산업혁명 이전에 프랑스는 기술자와 기업가를 내쫓았고,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고 우대함으로 인하여 프랑스는 패권을 상실했고,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국가는 자유주의적인 사상과 시장경제가 작동하게 함으로써 기술과 자본 그리고 국가제도가 결합하여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18~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운명을 가른 것은 기술과 기업을 존중하는 문화였고 오늘날 세계적인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또한 기술과 기업을 존중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적인 제도의 역할이 크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협력하여 V시리즈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에게 미국 정부는 면죄부를 주는 조건으로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책임자를 하도록 하여 아폴로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미국은 지금도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기술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있다.

▲ 미래한국 고재영

기술·기업 우대 문화가 프랑스와 영국·미국의 운명 갈라 

일본 또한 우리나라에게는 끔찍한 악몽이자 치욕스런 역사로 기억될 731부대에서 자행한 생체실험 결과가 일본의 생화학 분야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큰 토대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문 과학기술자들은 처벌하지 않았다. 일본 역시 관료주의 국가이지만 과학기술 분야만큼은 그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할 뿐만 아니라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이 맞닥뜨린 위기의 본질은 정책의 연속성과 실행력 결여에 원인이 있다. 요즘 고급 두뇌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업인은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고 해외 과학자를 유치할 때의 국가적인 정책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위그노의 대탈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과학기술분야는 누군가 압박을 하고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해서 인위적으로 연구 결과와 실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와 자생적인 질서가 형성될 때 과학기술발전의 토양이 되고, 예산과 우수한 인력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인프라가 지원될 때 좋은 결과와 실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과학기술 진흥과 규제개혁을 위하여 노력해왔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창조경제의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는 정부 출연연구소 인력 구성을 보면 행정인력이 15∼20%수준이라고 하나, 연구직의 신분으로 감사, 예산, 정책, 시설관리, 연구행정 등에 종사하는 인력과 보직자를 포함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40%대이다. 이는 심각한 인력의 낭비이고 연구소가 관료화되었다는 방증이다. 

연구 현장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피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소극적인 태도와 정부 불신이 크고 자율과 책임이 따르는 개혁 의지마저 퇴색되었다. 지금과 같이 중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이 부재하고 정권만 바뀌면 과학기술 정책이 바뀌는 현실에서 단기 효과에만 연연하게 된다면 예산 낭비의 비효율은 더더욱 커질 것이다. 

행정인력 40%, 관료화된 국책연구소 

정부 출연연구소의 기관장을 임기제로 한 이유는 정권과 상관없이 과학기술 업무에 전념하기 위한 정부의 의도였다. 그러나 기관의 발전과 운영을 위한 적임자를 임명하기 위해 절차가 존재하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이 없으면 기관장으로 선임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과학기술계 수장들의 경우, 정부의 의도대로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과학기술계에서 유능한 리더는 사랑 받고 칭찬 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사람이 유능한 리더이다. 포퓰리즘에 치우치고 보신을 위해 정권의 눈치만 보는 정치적인 기관장이 바로 정권에서 감시해야 할 대상자이다. 

정부 출연연구소는 정부 예산에 수 십 년 동안 의존해 오다보니 스스로 자생력을 잃은 부분도 있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심각한 고민은 뒤로 하고 정치적인 홍보와 단기 실적에 연연해 하고 있다.

그 부작용은 어디서부터 해결할지 이젠 정답이 없다. 그 원인과 책임도 불분명하다. 정부 관료들이 주도한 과학기술 진흥과 발전은 과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창조의 단계를 논하는 현재는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이 기획 관리 평가 활용의 전 주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 창조형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전문성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는 정부와 함께 실질적인 거버넌스의 확대가 필요하다. 관료가 중심이 돼 민간이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위원회가 주도해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식이나 현재의 운영 체제로는 선진 창조형 연구개발의 다양성, 다원성, 모험성을 보장할 수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하는 선진국의 낯선 제도에 대한 경계심도 필요하다. 미국 독일 일본 영국의 제도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 산업계 과학기술계 사이의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그런 전통은 모두 현대 과학기술의 태동기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역사적 환경이 우리와 다른 낯선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특성을 충분히 분석해서 우리에게 맞는 연구개발 관리 제도를 찾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기초·원천·응용의 합리적인 비중도 함부로 정할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탄생하며 개방적인 사회에서 서로 더 잘하겠다는 치열한 경쟁이 있고, 사회 발전과 혁신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동력이 되는 것이다. 경쟁이란 새로운 정보와 혁신을 만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힘이 되지만 안정된 연구 환경을 위하여 주어진 직장이 무사안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자 자신들도 경쟁과 시장의 논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인 스스로의 위상 정립을 위한 노력을 생존의 차원에서 해결할 일이지만 정부 지원의 온실에서 개개인의 안위를 위해 외면해 왔다고 본다. 과학기술자들 스스로 정부의 의존을 탈피하고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함께 자율의 쟁취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분야별로 탁월한 인재의 영입을 열린 자세로 적극 노력하고 연구소간의 장벽을 제거할 때 생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국토교통부 주최로 열린 드론 심포지엄에 전시된 무인헬기. /연합

국책 연구소의 잇단 비리 왜?

이공계 출연 연구소 기관장이나 대형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 책임자 모두 감사원이나 검찰을 동원하여 미세먼지까지 조사한다면 누구든지 교도소 담벼락을 걸어야 하는 현실에서 자유로움과 창조는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제도의 모순 때문이지 비리나 부정부패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

창조경제를 추구하는 현실에서 전문기술직들의 창업을 장려하는 현실이지만 도덕과 윤리가 강조되는 공직자라는 신분과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업자라는 상반된 현실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하면 누구든지 교도소 담벼락을 걸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과학기술인 사회에서 이런 비합리를 스스로 개선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팽배한 현장의 분위기와 정치에 좌우되면서 보신주의에만 연연해하는 과학기술계 수장들이 기관을 운영하는 한 단합과 신뢰는 없고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인 없는 정부예산, 연구비 받으면 임무가 해결되는 풍토에서 생존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현실에서 적당히 무능한 것이 오히려 보신에 유리한 상황이 된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반영하여 법과 제도의 개선이 빨리 선행되어야 하고 자율과 개방이 보장된 강소형의 연구 분야 조직화를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신산업 창출을 유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쟁을 하면 각박해지고 변칙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정한 경쟁이란 그 결과로써 질서가 형성되고 승자와 패자 간에 인정이 생기며 정보가 넘쳐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사회의 발전이 촉진되고 시장의 논리가 형성됨으로써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게 된다는 점이다. 관료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과 출연 연구소 운용이 공정한 경쟁과 시장의 형성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불필요한 규제가 출연 연구소의 자생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지금과 같이 투서가 만연해 있고, 기관장의 포퓰리즘에 의한 인위적인 평등은 정부 지원에 의존한 부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과학기술계에 대한 정부의 일률적인 규제는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무사 안일의 부작용을 만들어 냄으로써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게 되고 경쟁력 저하를 만들게 된다. 

과학기술인들 스스로 노력하고 쟁취하여 만들어진 자율과 도덕적인 사회는 협력이 쉽고 거래 비용이 최소한으로 줄어 사회가 저절로 번창하는 것이다. 즉 자생적인 질서를 만들 수 있도록 과학기술인들도 노력할 필요가 있지만 집단의 특성과, 이해관계, 정치적인 영향력 부재로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의 문제점은 바로 과학기술자 집단 스스로의 개혁을 위한 노력과 자율을 위한 쟁취의 시도가 부족했던 책임도 있다. 

실용 R&D는 민간에 넘길 필요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과학기술계의 사회적 책무와 결과에 대한 평가가 논의되지만 정부도 시민사회조차도 전문 분야라는 높은 방패막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이 높고 특수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를 타개할 마땅한 대안도 없고 평가하기도 곤란한 현실에서 어떤 평가가 나오든지 불만과 함께 문제점은 나올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을 묻고 제도를 바꾸는 일보다 신뢰와 도덕을 회복하여 자율적인 규제가 더 효율적이지만 공공기관이라는 태생 때문에 비효율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창조를 잉태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과 경쟁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없이 R&D 예산만 계속 늘려 왔다. 이제 실용화를 목표로 한 R&D는 과감하게 민간에 넘기고, 공공복지나 안전 문제와 같이 공공성이 강한 부문과 기초연구 분야에 집중하는 공공 R&D 체제로 구조를 재편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 지도자가 혜안을 가지고 정책의 연속성과 실행력 확보를 위한 결단이 없이 접근한다면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으며, 비능률과 비효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정부실패와 시장실패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출연연 평가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법률체계 정비 등이 선행되어야 하고,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관변단체의 정리도 하루속히 해결해야 할 당면한 문제다. 

정치가 개입된 개혁이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정권 차원의 파괴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을 정책의 강력한 실행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리더십의 지표가 시대에 따라 다르듯,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사명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조직의 통폐합은 물론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 해고가 아닌 발전적 해체까지도 상황에 맞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공유하는 가치와 비전이 유사한 연구 집단이 시장의 요구에 맞게 이합집산하여 개방형 강소형 연구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출연 연구소 무용론에 대해 현장에서는 강한 반발이 있지만 정부는 깊은 고민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부 개혁의 방향은 지금과 같이 연구의 자율성을 명분으로 무책임한 분위기가 아니라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평등과 평균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센티브를 차등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계약제 연구원을 활성화시켜 실질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정규직이라도 퇴출되는 제도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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