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개헌 논의를 경계한다
무분별한 개헌 논의를 경계한다
  • 김충남 대통령학 전문가
  • 승인 2016.10.1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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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20대 국회 들어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 대한 개정 논의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개헌론자들은 헌법이 30년 전에 만들어져서 현실에 안 맞는다고 주장하지만 몇 백 년 된 헌법을 가진 나라들은 어떻게 그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가? 무분별한 개헌 논의가 헌법을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서울대 석사·미네소타대 정치학 박사·육사 교수·청와대 사정·정무비서관

정치권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면서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의 난맥상이 대통령 권한 때문인가 아니면 정당과 국회 때문인가? 개헌이 우리 정치의 고질적 요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과연 우리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인가? 필자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할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의 처지를 ‘동네북’ 같은 존재라 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제멋대로 두드린다는 의미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초에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가 최고 지도자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확산되었다. 그래서 노태우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조기 레임덕 현상에 빠졌다. 그것은 곧 대통령이 허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야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은 줄어들었고 국회의 권한은 강화되었던 것이다. 

현행 헌법은 내각제 요소 포함, ‘제왕적 대통령제’ 어불성설

원래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했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이 원천적으로 제약되었다. 국회의 대정부질문권, 총리 및 장관에 대한 불신임결의권, 국정감사권은 모두 내각제에서 따온 것들이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 장면을 보면, 국회의 위세가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국회 인사청문회의 높은 문턱 때문에 대통령은 총리와 장관조차 임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순수 내각제를 주장하면 그것이 국민의 대통령 선출권을 빼앗는 것이 되기 때문에 역풍을 두려워하여 내각제의 변형인 분권형 대통령제(또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려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외교·안보 등 외치(外治)를 담당하고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치(內治)를 전담하는 제도이다.

한마디로 말해 행정부를 국회에 종속시켜 정치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다. 대결정치 해소를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권 장악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문화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대결정치가 해소될 리 없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일환으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오스트리아 헌법은 우리의 개헌 모델로서 적합하지 않다.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으로 안보 위협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역할은 상징적인 것에 그치고 총리가 행정부를 이끌어 가는 사실상의 내각제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심각한 북한의 위협과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취약성으로 인해 외교·안보가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다. 

프랑스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이다. 프랑스에서는 업무 영역 문제로 대통령과 총리 간에 빈번한 갈등이 일어났으며, 특히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당 출신일 경우 그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외치와 내치를 분리한다고 하지만 양자 간의 구분은 쉽지 않다. 사드 배치 문제는 외교.안보 문제이기도 하기만 중국이 최대 교역대상국임을 고려할 때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개성공단 폐쇄 문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등도 외교.안보 문제이지만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더구나 한국과 같은 대립적 정치문화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권력구조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며, 따라서 어설픈 분권형 대통령제는 최악의 정치체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적으로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는 권력구조를 바꾼 적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는 개헌을 하더라도 헌법 원문은 그대로 두고 변경된 내용을 부칙에 포함할 뿐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무늬만 대통령제이고 실제로는 내각제이다. 내각제는 국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의원이 총리가 되어 의원들로 내각을 구성하여 국정을 전담한다. 내각이 다수 의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총선거를 통해 새로운 내각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빈번한 선거와 내각 교체로 정치가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내각제는 장점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30여 년 간 장기집권하면서 일관된 정책으로 경제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서독의 콜 총리도 18년 간 장기집권하면서 통일을 이룩했다. 또한 대처와 메르켈도 10년 이상 총리로 재직했기 때문에 뚜렷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각제의 단점도 만만치 않다. 지난 30년 간 일본 총리의 재임기간을 보면, 2년 이상인 경우는 3명에 불과하고, 1년에서 2년 미만인 경우가 7명, 1년 미만이 9명에 달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내각제로 인한 정치 불안정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지난 70여 년 간 총리가 60명 내외에 달하는 등, 정치가 불안정했다. 4.19 이후 장면 정부도 집권 9개월 동안 내각이 5번이나 교체된 바 있다. 

북한 위협 상황에서 권력구조 바꾸는 개헌은 역사적 과오 가능성 

더구나 내각제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모든 장관직을 담당하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20-30년의 의원 경험을 통해 전문성과 능력을 겸비한 의원들이 많기 때문에 장관 임명에 어려움이 없지만 우리는 초·재선 의원 비율이 3분의 2 정도여서 장관 자격을 갖춘 의원들이 태부족이다. 

국회의원이 총리나 장관이 되면 국가이익보다 정파와 출신지역 이익을 우선할 가능성이 높고, 요직과 이권 나눠먹기가 횡행하게 된다. 장관이 된 국회의원은 산하 공공조직에 자기 사람들을 내려 보낼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낙하산 인사보다 훨씬 더 심각한 낙하산 인사가 이뤄질 것이고, 이로 인해 부패도 만연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다수 의원의 지지를 받는 의원이 총리가 되기 때문에 총리 지망자들이 경쟁적으로 세력을 규합하면서 파벌정치가 일상화될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의 성공 여부는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성숙에 달렸다고 볼 때 그 같은 방향의 개헌은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국정을 심각한 혼란의 늪으로 빠뜨릴 위험이 있다. 다시 말하면, 개헌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수반될 뿐 아니라 새 헌법의 정착에도 상당한 시행착오가 따른다는 것이다.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대통령제를 선택했던 것은 한국이 처한 어려운 내외 여건 때문이었고 그 여건은 지금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으며, 특히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핵무기 실전 배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은 역사적 과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개헌은 내각제적 요소를 제거한 제대로 된 대통령제로 바꿔 4년 임기에 중임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와 다른 선거들과 사이클이 맞지 않아 대통령 임기 중에 총선거나 지방선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공약을 남발하면서 국력이 낭비되고 국정 기조까지 흔들리게 된다. 또한 총선거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로 간주되어 여소야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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