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뉴라이트는 가능한가?
새로운 뉴라이트는 가능한가?
  •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
  • 승인 2016.10.13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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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뉴라이트 운동의 비상과 추락

최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뉴라이트를 내걸고 여전히 활동 중인 단체는 사실상 없었다. 유일하게 뉴라이트경남학부모연합의 기자회견 등의 활동이 발견되었으나 정작 중앙조직인 뉴라이트학부모연합의 홈페이지는 2015년 3월 이후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

▲ 서울대 정치학과·전 국가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자유주의 연대 사무총잧

뉴라이트의 대표 조직이었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활동이 중단된 지 오래다. 2004년 뉴라이트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자유주의연대는 2008년 뉴라이트재단과 통합하여 시대정신으로 개칭하여 활동하고 있다.

단체들만 뉴라이트에서 철수한 건 아니다. 뉴라이트에 관여했던 인사들도 대부분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뉴라이트가 어떤 지향을 의미하는지 모호해졌고, 심지어 뉴라이트 경력이 오명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경력자들이 공직 후보에 오르게 되면 논란이 되는 게 마치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 

이 정도라면 뉴라이트운동은 침체나 잠복 수준이 아니라 사라져버렸다고 봐야 하는데 좌파에 의한 뉴라이트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최근의 건국절 제정론에서 뉴라이트가 이를 주도한다는 비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슈를 제기하는 학자, 시민운동가 중에 뉴라이트운동 출신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조직화된 뉴라이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뉴라이트라는 유령이 계속 떠돌면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인가? 

뉴라이트는 어디에?

뉴라이트는 초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보수 혁신과 좌파 폭주 견제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집권 좌파의 편향과 무기력한 한나라당에 대해 균형을 갈구하던 국민들이 뉴라이트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줬다.

그러나 보수 또는 우파의 발언, 행동, 정책 등을 싸잡아서 뉴라이트라고 규정하면서 뉴라이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종국에는 뉴라이트 딱지 붙이기가 좌파들의 매우 편리한 반대파 공격 수단이 되어버렸다. 

뉴라이트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단일한 지향이나 경향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저 ‘나쁘다’는 이미지의 표현만 남은 것 같다.             

뉴라이트의 추락 

뉴라이트가 초기에 기대 이상의 관심과 호응을 받게 되자, 뉴라이트 단체들이 급속하게 늘어났고, 심지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언론에서 뉴라이트 인사로 규정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 결과 뉴라이트의 통일성은 처음부터 강하지 못했고, 갈수록 다양한 성향의 단체와 인사들이 뉴라이트라는 브랜드만 공유하는 상태로 가버렸다. 

뉴라이트가 단 한 번도 노선과 지향을 공유한 단일한 세력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뉴라이트의 놀라운 단명의 가장 큰 이유라고 믿는다. 

뉴라이트 추락의 원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급한 정치화를 지적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뉴라이트 세력이 독립성을 잃고 이명박 후보와 지나치게 밀착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와 MB정권이 결속되어 있다고 보면 결국 뉴라이트는 현실 권력으로 간주된다.

시민단체와 야당에 대해서는 대체로 너그럽지만, 권력에 대해서는 냉정한 국민들의 정서상 뉴라이트가 권력으로 판단되면, 그 평가의 기준도 깐깐해지고 비판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MB의 집권은 뉴라이트로부터 정권 견제세력이라는 프리미엄을 회수하고 역으로 견제 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뉴라이트는 초기에는 그 명칭이 의미한 대로 보수 혁신에 큰 관심을 가졌다. 자유주의연대는 체제 전복 세력 외에는 사상의 다양성에 기초한 좌우의 정책 경쟁을 제기했다. 뉴라이트에 여러 세력이 참가하고 대선 국면에서 이념 대립이 격화되면서, 보수 혁신은 희미해져버렸다.

뉴라이트의 대표 인사들이 기성 정치 세력에 합류하면서 오히려 뉴라이트가 마치 우파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하는 세력처럼 인식되자 뉴라이트의 차별성은 사라져버렸다. 

뉴라이트 추락에 있어서 구 통진당 세력이 주도한 의도적인 안티 뉴라이트 활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2008년 광우병 정국부터 ‘안티 뉴라이트’라는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뉴라이트는 친일파이며 이런 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은 연합되어 있다’는 왜곡된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제작해 전국적으로 40만부 이상(스스로 공개한 실적표에 의하면)을 배포했다. 

새로운 뉴라이트 운동을 찾아서

뉴라이트는 친일파라는 악의적 공격은 뉴라이트의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이들뿐 아니라 이른바 안티 MB 세력들은 뉴라이트를 약화시키는 것이 MB정권 공격에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집요한 타격을 가했다. 

불행하게도 광우병 정국에 이르면 뉴라이트 단체들은 활동의 절정기를 지난 상태였고, 단일 세력이 아니라는 원초적 약점 등이 겹치면서 엄청난 화력이 동원된 안티 뉴라이트 운동 앞에서 수수방관하고 만다. 이때부터는 어떠한 왜곡을 해도 나서서 반격하는 자가 없는 일방적인 게임이 지속되었다. 

‘뉴 뉴라이트’라는 말도 있듯이 새로운 뉴라이트 운동에 대한 기대가 있다. 과거 뉴라이트 운동처럼 폭발적인 호응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희망을 줄 만한 사회 발전 전략과 정책에 대한 갈증일 것이다. 뉴라이트운동 제기가 이미 10년이 넘었으니 세상 또한 많이 변화했다.

우선 사회 양극화가 더 심해졌고, 특히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일자리의 감소는 심각한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과거 뉴라이트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화하자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주창했는데, 노동시장의 자유화나 규제 완화 등 여전히 유효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일변도의 처방의 한계 또한 뚜렷해졌다. AI시대가 예고되듯이 컴퓨터와 로봇의 발전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고 고실업 사회는 피하기 어렵다는 예상이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사회 갈등을 관리하려면 국가 주도의 복지와 사회적 고용의 확대라는 비시장적 정책의 동원이 불가피하다. 

뉴라이트는 ‘세금폭탄’이라는 구호 하에 적극적 감세정책을 주장했지만, 복지 확대에 따른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증세 정책 또한 외면하기 어렵다. 법인세 인상은 기업 부담이 크고 국외 이탈을 낳을 수 있어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증세 없이 양극화 시대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뉴라이트는 10여 년 전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강조했고, 올해 초 북한인권법의 여야합의 통과에서 보듯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북한인권 개선은 여전한 과제이고, 나아가 통일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가 요구된다.

북한의 체제 변화와 통일은 향후 한국 사회의 결정적인 사회 변동의 요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동서독과 달리 남북한은 단순한 격차를 넘어 근대와 전근대 정도로 사회발전단계가 다르다고 볼 만하다. 그만큼 통일과정의 대응과 통일국가 운영은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헤쳐 나갈 수 있다. 

뉴라이트가 등장한 시기보다 오히려 이념 갈등은 더 심화된 것 같다. 지난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감을 볼 때, 극단적인 이념 갈등에 대한 피로증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념 갈등 격화의 평가 이전에 과연 우리의 시대에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으로 사회 발전의 깔끔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좌우의 패러다임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 다수의 공리를 추구하는 정책 경쟁과 소통이 공동체에 더 많은 이익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색들이 과거 뉴라이트 운동과 어떤 연계가 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정치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분명한 것은 노선과 정책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과거 뉴라이트처럼 지향의 공통성도 없이 어떤 정치적 계기에 편승한 반짝 유행의 이합집산의 반복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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