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회계비리, 이대로 둘 것인가?
노조의 회계비리, 이대로 둘 것인가?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승인 2016.10.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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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1987체제와 노조의 회계 투명성

현재 좋은 직장이란 공공부문(정부와 공기업), 은행, 방송, 통신 같은 규제산업과 독과점 산업·기업. 

한국의 노조는 법제도에 의해 두터운 지대가 제공되는 이 곳에 포진되어 있다 

노조는 헌법 제33조에 의해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보장되어 있다.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합법적 담합·독점권이며, 단체행동권은 합법적 업무 방해·해태권이다. 이런 권리들이 헌법에 들어간 것은 유럽,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지혜가 노동3권의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인정,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과 노동력 상품의 특수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노동3권이 단위 기업이나 공장을 뛰어넘어 국가·산업·직업 차원의 직무에 따른 근로조건의 공정한 표준을 형성하여 근로계약의 공정성과 사회적 연대성 및 안정성(갈등 완화), 효율성을 제고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노조와 노동관계법은 헌법이 노동3권을 통해서 추구하는 공공성에 반하는 측면이 많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고, 적어도 2000년대 이후는 그렇다.

▲ 부산항 화물연대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원들에 저지되는 파업 미참가차량. 조합원들이 던진 계란이 차체에 맞아 깨지며 흘러내리고 있다.

지대가 있는 곳에 노조가 있다

단적으로 한국에서는 사람 값(근로조건)은 직무성과=생산성이 아니라 소속(직장)에 따라 천양지차가 난다. 노조운동의 본령인 산업 차원의 근로조건의 표준이 사실상 없을 뿐만 아니라,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팔자’가 피고, 못 들어가면 ‘팔자’가 비루해진다. 직장이 계급인 사회가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좋은 직장은 근로자의 창의와 열정을 최대한 끌어올려 높은 생산성을 구현하는 훌륭한 조직문화와 경영능력이 있는 곳도 없지는 않지만, 대종은 공공부문(정부와 공기업), 은행, 방송, 통신 같은 규제산업과 독과점 산업·기업이다. 대체로 시장구조나 법제도에 의해 두터운 지대(렌트)가 많이 제공되는 곳이다. 한국의 노조는 주로 이 곳에 포진되어 있다.

지대(렌트)는 본질적으로 소비자나 협력업체, 또는 세금(국민)을 약탈한 것이기에 노조는 한국에 즐비한 공공성을 파는 거대한 지대추구 집단의 하나이다. 게다가 한국 노조의 철학, 가치, 행태는 전후방 가치생산사슬에 종사하는 다수 근로자를 조직하지도 보호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노동관계법에 의해 공공부문과 대기업에서는 노조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고, 중소기업에서는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자, ‘사회적 노동시장’을 가로막는 강고한 장애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은 헌법부터 노동관계법령까지 대체로 노조의 권리 보호에 치중해 있다. 근로자와 노조를 동일시한다. 따라서 노조도 엄연히 기업이나 경제단체와 마찬가지로 사익집단이라는 인식이 흐릿하기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비껴가 있다.

단적으로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 제33조 앞에는 31조(교육의 권리)와 32조(근로의 권리)가 있고, 그 뒤에는 34조(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개별 인간(국민)의 권리와 이익집단의 권리가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 연방헌법은 제26조 (재산권의 보장), 제27조 (경제적 자유) 뒤에 제28조 (조합결성의 자유)가 있다. 이 역시 ‘근로자와 사용자’의 권리(무기)와 ‘파업과 직장폐쇄’ 권리(무기)가 병기되어 있다. 

1987년 이후 노사가 격렬하게 대립하던 시절, 즉 노사관계가 안정이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노조 간부가 해고와 구속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노조 공금은 일종의 전쟁 비용으로 여겨졌다.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문제 삼는 조합원도 없었다. 사용자 측에서도 노조 간부의 약점인 노조 공금 유용 비리를 오히려 반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조 간부의 타락도 사용자 측의 무기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노조

그런데 지금 불법 파업 등을 통하여 해고와 구속을 감수하고 근로조건을 쟁취하는 사례는, 적어도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에서는 드물다. 노조 간부(경력자)에 대해서도 차별하는 사용자는 거의 없다. 노동조합은 젖과 꿀이 가득한 창고가 되었고, 노조 간부는 누구나 선망하는 이권을 주무르는 자리가 되었다. 한마디로 ‘요령 것 해 먹는 자리’가 되었다.

그래서 노조 공금 유용 비리와 노조가 주무르는 이권 관련 비리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노조 계파들이 노조 임원 자리를 두고 각축하는 대기업과 공기업은 그래도 상호 감시, 견제의 눈길이라도 있으나, 그 위(상급단체)나 아래는 이마저도 없다.

민주주의의 학교라고도 할 수 있는 노조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는 것은 개별 노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노조 간부는 으레 ‘해 먹는 자리’라는 인식은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이는 노조 조직률 향상에도, 노조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에도 부정적일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조합 재정비리의 원인과 향후 과제>(2005)에서 노동조합의 재정비리를 크게 4가지로 나눴다. 조합비 유용 비리, 조합비 이외의 재정 관련 비리, 복지시설 운영 관련 비리, 회사와의 담합구조로 인한 비리가 그것이다.

“조합비 유용 비리는 노조집행부가 조합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리로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비리이다. 조합원 선물비나 조합원 티셔츠 등을 조합비로 구매하는 과정에서 납품업자와 결탁하여 선물비 등을 과대 계상하는 수법을 사용하거나 리베이트를 조합 간부가 사용(私用)하는 비리이다.

이외에 금융산업노조 국민은행지부에서와 같이 자녀 등록금, 가정부 고용비,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조합비를 쌈짓돈으로 여겨 개인적으로 횡령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조합비 횡령 이외의 재정 관련 비리로는 주택조합을 결성할 목적으로 모은 주택기금이나 지방자치단체나 사용자측이 제공한 복지기금 등을 유용하여 일어나는 비리이다.

복지시설 운영 관련 비리는 노동조합이 소비조합, 복지회관, 자판기 등을 운영하거나 업자에게 위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주로 대공장노조에서 일어나는 비리이다.”

▲ 지난 10월 10일 오후 서울 청계천로에서 열린 집회에서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조합원들. / 연합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 법령도 무시 

김정한은 노조재정 비리의 발생 원인을 3가지, 즉 구조적 측면, 개인적 측면, 자주성 측면으로 구분했다. 구조적 측면에서는 노조의 지배구조상의 문제와 회사와의 담합구조로 대별하였는데, 노조 지배구조상의 문제로 지적한 것은 ‘노조 재정의 미공개 및 투명성 결여’와 ‘회계감사시스템의 실효성 미확보’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법에는 노동조합의 모든 재원 및 용도,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6월에 1회 이상 실시하여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고, 그 장부 및 서류를 노조 사무실에 비치하도록 하여 노조의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제25조 내지 26조). 그리고 행정관청의 요구 시 노동조합은 결산 결과 및 운영 상황을 보고하여야 하며, 미보고·허위보고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규정하고 있다(노조법 제96조)

그런데 박지순 등의 연구 ‘노동조합 재정투명성 확보방안’(2011.12)에 따르면 회계감사는 지극히 부실한 상태다. 

“회계감사원의 수가 노조 규모에 의한 차이가 크지 않고, 외부회계감사를 거의 받은 사실이 없다. … 이는 현행법 상의 문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조의 여건상 문제 삼을 필요성 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규약상 회계감사 주기와 실제 회계감사 주기는 6개월에 1번이라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지만 1년에 1번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게 나타났고, 또 정기감사 외의 회계감사가 전혀 없다는 응답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노조 운동과 더불어 노조 재정 비리의 역사도 긴 미국과 영국은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 내지 책임성을 인식하여 법률을 통하여 한국보다 엄격하게 규제를 한다.

“노조가 각 국가에서 정치적·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되고 노조 간부의 부패·전횡과 조합원의 권리보호 문제가 제기되자 각국은 노조의 관리·운영 등 내부관계를 법적으로 규율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경우 노조는 매년 노동부 장관에게 재정보고서를 제출하고, 또한 노조의 모든 임원 및 직원은 자신 또는 배우자, 미성년 자녀가 보유한 주식, 채권, 기업으로부터 취득한 소득을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김정한)

노동관계법 개혁과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의 최대 걸림돌은 노조의 반발이 아니다. 문제는 노조를 노동 인권의 보루이자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의 선봉 부대로 생각하는 낡은 관념일 것이다. 부정비리가 좀 있다손 치더라도 다른 정권과 기업의 부정비리와 비교하면 깃털도 안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이 낡은 관념을 혁파하지 않는 한 노동개혁도, 노조개혁도 될 리가 없다. 공공개혁도 같은 운명일 것이다. 

노조는 약자가 아니라 수혜자일 뿐 

노조는 공무원과 함께 19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 중의 하나이다. 노조는 1987년 체제의 상징이자 모순부조리의 집약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노조 조직률 10%, 협약적용률 10% 운운하며 노조의 위력을 과소평가해 왔다.

하지만 한국의 노조는 고용체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5천만 명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한다. 노조는 공무원을 포함한 수많은 이익집단의 선봉이자 롤 모델이기에 그 위력이 큰 것이다. 노조가 공무원의 비호를 받으면서 만든 체제가 바로 직장계급 사회, 공공양반 사회, 지대추구 사회다.

1987년 체제는 대통령 및 지자체장 직선제, 공명선거,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억눌린 권리(노동권, 주거권 등)와 빼앗긴 내 몫 찾기 투쟁을 화산처럼 폭발시켰다. 1987년 이후 한국 노조운동은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대기업과 공기업노조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의 철학과 정서는 “단결하면 힘이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곳에서 선도적 투쟁을 통해 근로조건을 끌어올리면 주변 지역이나 동종 산업으로 파급되어 나머지 전체의 근로조건을 끌어올린다는, 사익과 공익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가정을 깔고 있었다. 

헌법이나 노동관계법도 사회적 약자(?)의 억눌린 권리 회복, 빼앗긴 몫 찾기가 곧 정의라는 생각을 받아 안았다. 당연히 가치생산 생태계의 균형이나 노동의 양·질에 따른 합리적 불평등(공평)의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욕구 분출의 자유를 사실상 무제한 허용한 자유시장시스템이 초래한 파국적인 결과―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누구나 알고 있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한참 벗어난, 최상위 먹이사슬을 차지하고 있는 공공부문과 대기업 조직노동과 규제산업 및 직업의 욕구 분출의 파국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나 둔감하고 대범하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은 경제·산업 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산업이 성장하고 인민의 욕구가 천차만별로 분화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민주화가 개인과 집단의 욕구 분출을 의미한다면 아무래도 힘센 개인과 집단이 더 많은 욕구를 분출하고 더 많이 실현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욕구를 좇아 각개 약진하는 존재들, 즉 재벌·관료·공무원·토건회사·전문직능·노조 등은 강한 국가나 정치에 의해 제어되든지, 경쟁자나 소비자에 의해 제어되든지, 하다못해 사회적 책임의식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가치생산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게 되어 있다. 

현재 한국은 보수 기득권과 진보 기득권, 공공(관료) 기득권과 배타적 업역을 가진 민간업자들의 기득권 담합체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결과가 20세 이상 인구 기준 분위별 소득 점유율 통계가 아닐까?

이는 선진국이라면 1000만 명이 먹을 파이를 한국에서는 500만 명이 먹는 경제사회 체제이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힘들고, 새로운 산업과 기업도 태어나기 힘든 체제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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