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은 ‘국가의 적’을 어떻게 다뤘나
노무현 정권은 ‘국가의 적’을 어떻게 다뤘나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6.11.07 06: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석]

노무현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 테러리스트, 해적과 같은 공공의 적들에게 항상 양보와 타협의 자세를 보였다. 그 결과는 끊임없는 대한민국의 위신 추락이었다 

지난 10월 14일, 책 한 권이 한국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나온 내용 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2007년 유엔 총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직전 노무현 정권 관계자들이 기권할 것이냐 찬성할 것이냐를 놓고 내부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김정일에게 물어본 뒤에 ‘기권’을 했다는 점이다. 

송민순 前 장관의 회고: “국정원장이 北에게 의견 묻자 했다” 

송민순 前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앞둔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에서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김경수 비서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김장수 국방장관, 윤병세 외교안보수석 등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이때 김만복 국정원장이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자”고 제안했고, 이를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틀 뒤인 11월 20일 북한의 의견을 받아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기권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송 前 장관은 이때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북한은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는 명령조의 의사 전달과 함께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반협박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송 前 장관은 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 투표를 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이렇게 물어봤으니 그냥 기권하자”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송 前 장관의 주장에 대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중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한 김장수 駐중국 대사(당시 국방장관), “찬성했다”고 밝힌 윤병세 외교부 장관(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에는 모두 송 前 장관이 “틀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007년 11월 18일 서별관 회의, 송민순 설득 위한 자리” 

문재인, 이재정, 김만복, 김경수 등 ‘서별관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은 송 前 장관이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지난 10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이재정 경기 교육감(당시 통일부 장관)은 “2007년 11월 16일 당시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비공식 회의가 열렸는데 송민순 장관과 제가 아주 격하게 토론했다”면서 “토론 끝에 대통령께서 ‘이번 상황은 통일부 장관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다, 이걸로 결론내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즉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은 이날 이미 결정됐다는 뜻이다. 

이날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북한 측과의 의견 조율은 있을 수 없다. 반응이 어떨지 너무 뻔한 걸 물어보는, 그런 바보가 어디 있느냐”며 송 前 장관의 주장을 비판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그러면서 “나는 15일 열린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기권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당시 이견이 있었다”면서 “나는 18일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경수 당시 청와대 연설담당 기획비서관(現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7년 11월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여부를 결정했다”면서 “그 전날인 11월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 논의 결과를 대통령께 보고했고, 16일 최종 결정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김경수 당시 비서관은 “2007년 11월 18일 서별관 회의는 북한인권결의안 찬성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송민순 前 장관을 설득하기 위한 자리였다”면서 “북한의 입장을 듣기 전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결정을 먼저 하고, 이를 북한에 통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송 前 장관의 주장을 비판했고, 송 前 장관은 “증거, 기록이 있다”고 맞서면서 논란은 더욱 커진 것이다. 

종편 채널들은 이를 두고 다양한 분석과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2007년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은 송 前 장관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시 盧정권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하기 전에 일어난, 많은 일들 때문이다. 

▲ ‘상식’을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 그는 2007년 UN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 결정이라는 상식 밖 행동을 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또 다른 문제: NLL 

송 前 장관의 회고록 논란만 살펴보면, 여야 간의 진실 공방만 보인다. 하지만 2012년 10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을 함께 보면, 누구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대선을 두 달 가량 남겨둔 2012년 10월,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盧대통령과 김정일이 NLL 무력화를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소위 ‘NLL 대화록’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정문헌 의원은 “노무현 前 대통령은 대화록에서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이후 대선이 끝난 뒤에도 ‘NLL 대화록’은 큰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서 언론들은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盧대통령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에는 ‘NLL 무력화’뿐만 아니라 서북도서 일대부터 한강 하구, 인천 앞바다까지를 북한과 ‘공유’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 드러났다. 소위 ‘서해평화수역’ 설정 계획이었다. 

여기에 대해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비밀 회담이 아니라 공식 대화록이 존재한다”고 확인했고, 2013년 2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해당 대화록을 직접 봤다”며 “해당 내용을 밝힐 경우 ‘국격’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민 정서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13년 6월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은 ‘NLL 대화록’ 가운데 문제가 된 부분을 공개하며 盧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옹호하려 시도했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대단히 나빠졌다. 북한에 영해를 갖다 바치려 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국민들은 盧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나 NLL을 무효화하고, 연평도 등 서북도서 주변과 한강 하구, 인천 앞바다 등 8000㎢ 넓이의 영해를 북한과 함께 사용한다는 ‘서해평화수역’을 논의한 것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게다가 그 이후에는 제2의 개성공단을 짓는다는 계획도 있었다. 이는 사실상 북한에 굴종하는 태도였다.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런 내용을 논의한, 당시 盧정권 핵심 관계자들이 불과 40여 일이 지난 뒤에 김정일의 뜻을 거스르며,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할 가능성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盧정권은 집권 이듬해인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유엔 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 북한이 6자회담에서 9.19 합의를 한 직후 핵실험을 단행했던 2006년에만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했고, 2007년에는 또 다시 ‘기권’으로 돌아섰다. 

盧정권 샘물교회 피랍, 테러리스트에 무능

송민순 前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는 盧대통령에게 유엔 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해야 하는 당위성을 적은 호소문 성격의 자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면서, 자신과 盧정권의 코드는 매우 달랐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송 前 장관 또한 盧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2007년에 있었던, 다른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 봉사활동을 떠난 샘물교회 선교단 일행이 카라바그 지역에서 탈레반에게 피랍 당했다. 피랍 당한 인원은 모두 23명. 한국에서 떠난 일행은 20명이었다.

이튿날 탈레반은 “한국인 선교단을 납치했다”면서 “한국 정부는 파병한 부대를 즉각 철수시키라”고 요구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盧정권은 어찌 대응해야 할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넷에서는 2006년 여름, ‘인터콥’ 등 한국 선교단체 회원 등 2000여 명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아프간 평화 행사’라는 명목으로 현지에서 금기시하는 온갖 ‘추태’를 벌인 사실, 당시 정부가 출국 자제를 요청한 일을 ‘샘물교회’ 사건인양 꾸며 퍼뜨리는 등의 행태도 나타났다. 이 내용은 지금도 ‘사실’처럼 통용되고 있다. 

아무튼 탈레반은 한국 정부가 우왕좌왕 하면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사이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2007년 7월 25일 선교단 인솔자인 배형규 목사를, 7월 31일에는 심성민 씨를 살해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탈레반의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은 8월을 넘기게 됐다. 

2007년 8월 16일, 한국 정부 측은 탈레반과 ‘협상’을 시작한다. 이후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몰라도 인질들이 한둘 씩 풀려나기 시작한다. 8월 28일 한국 정부와 탈레반은 인질 전원 석방에 합의했고, 8월 29일과 30일, 인질들은 5차례에 걸쳐 석방됐다. 

사건 당시 해외에서는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매우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며 연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테러조직과의 공식 협상, 정부가 테러조직에게 몸값 지불 등이 그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몸값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이 최근 송민순 前 장관의 회고록과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지낸 김당 기자의 책을 통해 드러났다. 

송 前 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샘물교회 피랍 사건 당시 탈레반은 한국 정부에게 ‘탈레반을 테러조직이 아니라 아프간 내전의 정식 교전단체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송 前 장관은 “탈레반은 이어 인질을 석방시키고 싶으면 한국 정부의 신임장을 휴대한 대표를 보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盧정권 고위층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위해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렸는데, 김만복 국정원장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면서 “탈레반에게 정부 신임장을 써 보내자”는 주장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도 찬성했다고 한다.

혹자는 “그까짓 신임장 하나 써주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국가 신임장’이란 다른 국가와 정식 외교관계를 맺기 전에 사전 동의를 구하는 문서라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즉 盧정권 핵심 관계자들의 말처럼 탈레반에게 ‘신임장’을 써줬다면, 한국은 테러조직을 국가로 인정한, 사상 최초의 나라가 될 뻔했다는 뜻이다. 

김당 前 오마이뉴스 편집장은 자신의 책 <시크릿 파일: 국정원>이라는 책에서 샘물교회 피랍 사건 당시 한국 정부가 탈레반에게 2000만 달러 상당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이 돈은 국정원의 정보활동에 쓰이는 예비비에서 빼낸 돈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2007년 여름 당시 해외 매체와 국내 정보계통에서 돌던 소문과 거의 일치한다. 한국 정부는 샘물교회 사건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현지 주둔하던 군 병력을 3개월 뒤 철수시키는 등 외교적으로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 2007년 9월 배형규 목사(분당샘물교회 청년부 담당) 장례예배 모습. 피랍된 배형규 목사는 한국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탈레반에게 살해됐다.

송민순 ‘마부노 1-2호 피랍’에 무심

2007년 盧정권이 저지른 사고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샘물교회 피랍 사건보다 2개월 전에 일어난 한국인 피랍 사건 당시에는 인질 가족들과 이를 취재한 언론에 대해 협박까지 했다. 

2007년 5월 15일, 아프리카 케냐를 떠나 동아프리카 해안에서 조업을 하던 부산 선적 새우잡이 원양어선 ‘마부노 1호’와 ‘마부노 2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 당한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은 한국인을 포함해 24명. 이 소식은 한국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얼마 뒤 모두 사라진다. 盧정권 관계자들은 “인질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며 언론들의 보도를 통제했다.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7월부터 8월까지 소말리아 해적들과 마부노 호 선사 간의 협상이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해적들이 요구한 몸값이 워낙 높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에 선사 측에서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盧정권은 “테러조직과의 협상은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007년 9월 마부노 호 선원 가족과 이들을 도우려는 해운항만노조 관계자들을 취재했을 때 외교부는 매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고,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은 인질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꾸 떠들지 마라, 계속 이런 식이면 두 번 다시 배를 탈 수 없게 만들겠다”고 협박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재외국민보호과에는 인력과 예산 모두 문제 해결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盧정권은 청와대는 물론 이들을 비판한 송민순 前 장관 시절에도 재외국민 보호에는 무관심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현재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송민순 前 장관은 자신들이 盧정권 시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을 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盧정권 시절 자신들이 재외국민보호에는 얼마나 무관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 또한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칭 보수우파’라고 떠들면서, 盧정권 시절 핵심 실세 행세를 했던 ‘짝퉁 우파’ 인사들과 비슷한 부류로 보이는 이유다.

즉 송 前 장관이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盧정권, 특히 문재인 前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가 우파는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그 또한 盧정권에서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차지했다는 점은 기억되어야 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유명남 2016-11-18 00:34:37
그들이 말하는 평화라는게 그런게지.그들에게 대한민국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