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라에서 일어날 볼셰비키 혁명에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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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6.12.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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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사변 80돌, "87체제는 한국판 국공합작"

김정은 미래한국 편집위원

 

"일본군이 피부병이라면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은 피부암이다."

장개석이 한 말이다. 이토록 중공을 꿰뚫어보는 장개석이 어찌 그리 쫄딱 망했을까. 국민당의 부패와 분열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 알고 있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아니 겉만 보고 속을 놓치는 헛똑똑이다. 그 까닭은 한마디로 국공합작이다.

손문이 뭘 몰라 도장 찍어준 1차 국공합작에서 공산당이 바퀴벌레처럼 마구 늘어나자 그에 놀라 장개석이 공산당 토벌을 벌였고 벼랑에 몰린 공산당은 살아남으려 '항일전쟁에 모두 힘을 모으자'는 등 그럴듯한 온갖 선동으로 여론 전쟁을 벌인다.

(인터넷을 뒤지면 거의 중공의 공식해설에 따른 이야기만 나온다. 인터넷을 볼 때 다른 이야기는 없나 늘 따지는 버릇(합리적 의심)을 가르칠 일이다.

아울러 바퀴벌레란 말이 껄끄러울 수도 있는데 이부터가 잘못된 교육 탓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사람에게는 늘 어두운 구석이 있다. 공산당은 그 어둠에서 분노와 저주를 먹고 자란다.

이를 가르치지 않고 어느 놈처럼 광화문에서 떠들 자유만 학원과 미디어를 도배하도록 내버려두면 오늘 대한민국처럼 국가정체성조차 개그가 된다. 다시 말하건대 공산당은 바퀴벌레다.) 

장개석은 버텼지만 그때 국민당에도 공산당 앞에만 서면 흐리멍텅한 이들이 많아서 끝내 장학량, 양호성이 나왔고 그들이 장개석을 막으려 던진 칼이 서안사변이다.

중국 국공합작 80주년, 망해가던 모택동 공산당의 부활 비결 

서안사변 80돌이 됐다. 서안사변은 1936년 12월 12일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토벌을 맡았던 장학량과 양호성이 잡으라는 공산당은 아니 잡고 중공이 가장 미워하고 두려워하던 장개석을 화청지에 가둬 무릎 꿇린 종공(從共) 반역 쿠데타를 뜻한다.

서안사변 탓에 죽어가던 중공은 기적같이 되살아난다. 그 까닭은 셋이다.

첫째, 뒤통수다. 1945년 일본의 패망 때까지 일본군과 싸우는 시늉만 하고 오로지 공산당 세력만 키워나간다. 여덟 해 동안 일본군과 싸우다 지친 국민당군은 여덟 해 동안 푹 쉬면서 싸울 채비만 해온 공산당에게 무너진 것이다.

둘째, 거짓 선동이다. 우리가 다 알 듯이 나중에 ‘대약진’으로 수천만을 굶겨 죽었지만 그때는 토지개혁 사탕발림으로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이니 공산당은 거짓말에 이골이 나 있다. 그래서 선동 또한 잘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운동권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다 그 까닭이다. 거짓말이 곧 선동이요 선동이 바로 거짓말이다.)

셋째, 제5열이다. 장개석의 오른팔들을 보자. 류페이(劉斐)는 총참모부 차장으로서 모든 정보를 빼돌리고 첩자들을 요직에 앉혔으며 황포군관학교 출신의 심복 다이룽광(戴戎光)은 마지막 순간 총부리를 돌려 중공군의 남경(수도) 입성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뒤통수와 거짓 선동과 제5열, 칼을 세 곳에 맞고서도 대만에 쫓겨갈 때까지 국민당이 자그만치 네 해를 버틴 것도 대단하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 서안사변을 일으킨 장학량(왼쪽 세 번째). 항일을 빙자한 그는 공산당과 연합해 장개석을 배반했다.

 

한국판 국공합작의 시작 

오늘 대한민국도 그를 빼닮아간다. 87체제라 부르는 6공화국 30년은 좋게 말하면 '운동권 세도정치 30년'이요, 달리 말하면 '한국판 국공합작 30년'이다. 1987년부터 10년이 국공합작의 준비기라면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이 1차 국공합작이요. 19대 대선을 앞둔 오늘은 시나브로 2차 국공합작의 냄새가 온 나라에 번지고 있다.

먼저 중공을 얘기했듯이 1차와 2차는 그 키가 다르다. 그래서인가 그에 발맞춰 1997년 11월부터 이어져온 어느 당을 송두리째 손보겠단다.

국공합작 준비기는 '웰컴투동막골'이다. 적군이 인민군이 되고 인민군이 그저 따뜻한 사람으로 뒤바뀌는 때다. '물태우'란 소리를 듣던 노태우 정부 내내 데모꾼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걸핏하면 유격훈련을 했다.

때로는 전철을 멈추고 서울을 벗어나서는 기차와 버스까지 제멋대로 세웠다. 어떻게든 12·12의 약점과 5·18의 '낙인찍기'를 벗어나려는 약점을 움켜쥔 운동권에게 그렇게 나라와 국민마저 덜미를 잡혀 통혁당과 인혁당을 잇는 세력들을 '민주화'에 취한 눈으로 '웰컴투동막골' 해버렸다.

국공합작 준비기가 끝나고 나니 1972년 유신 때부터 1987년 6·10까지 딱 15년 독재의 기간은 1961년 5·16부터 1992년까지 자그만치 30년 넘는 한 세대로 뻥튀기 되고 5천만에게 세뇌되었다.

대한민국의 강역을 1948년 뺏은 평양의 역도들은 나라를 참칭하며 2500만 우리 국민들을 인질로 잡아 어느 틈엔가 이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개칭했다. 참 더러운 행동이다. 그렇게 사람 죽이는 햇볕의 시대가 마련된 것이다.

1차 국공합작은 '화려한 휴가'다. 먼저 10년 동안 적(敵)과 아(我)의 구분이 사라지고 이름마저 뒤바뀌니 끝내 거짓말이 참말로 뒤바뀌는 어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회창을 보라. 두 차례나 병역비리란 거짓말로 대통령 자리를 뺏겼다.

그러나 없는 광우병도 만들어내는 이들과 달리 '억울하다'는 데모 한 번 제대로 않고 참으로 점잖게 사신다. 그랬더니 오히려 오늘도 이회창 집안은 병역비리의 전범으로 이 밤에도 어디선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거짓이 참을 이긴 것이다.

국공합작의 부역자들

이쯤 되면 부역자도 생긴다. 김종필과 박태준이 그렇다. 아무리 하극상을 친 육사 11기 철부지들 때문에 눈이 뒤집혔다 하더라도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나.

설사 한때 선사후공(先私後公)했다 할지라도 곧 벌어진 참극, 남북을 아울러 4천의 '통일의 휴민트(Humint)'를 학살할 때는 제 목을 내놓고 막아야 하거늘 그들은 먼 산 불구경 했다.

아직도 저승에 가지 않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노욕을 볼 때마다 또 그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보수라고 설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왜 대한민국이 운동권 공화국이 되었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그들만이 아니다. 5천만이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낸 '한강의 기적'으로 '선출되지 않는 권력'을 누리는 재벌들. 그들은 알량한 그 권력을 이어가려 기꺼이 파우스트가 되었다.

근로자를 노동자로 마침내 민주귀족으로 모시는 삯으로 산업 현장의 평화를 구걸했고 외환위기 뒤로는 '사장님이라 불리는 6백만의 노예' 영세자영업자들을 대거 배출하는 역군이 되었다.

(이들은 고액연봉 노동귀족을 만들어준 1등 공신들이다. 잔머리 운동권들은 늘 그들이 싸워서 얻어내었다 거짓말한다. 산업현장의 평화를 구걸하려 민주노동귀족을 키운 그들에게 남북평화를 구걸하려 햇볕정책을 펼침은 논리를 떠나 몸에 익은 짓이다. 누구보다 앞장서고 마침내 제 아들까지 바친 왕회장은 저승에서 어떤 보람을 느낄까.) 

그 탓에 대한민국은 '임시직'과 외국인근로자들까지 넘쳐나는 '절망의 땅'이 되었다.

(운동권은 늘 '말의 전쟁'부터 이겨나가며 선동의 멍석을 펼친다. '비정규직' 또한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다. '임시직'이라 불러야 한다. 그 말에서 지니 무기계약직이니 늘 그들의 전술에 말려 먹힌다.)

이렇게 정·재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들이 부역질을 하니 나머지 조무래기들을 어찌 탓할까. 지난 20년 남짓에 대한민국이 통째로 운동권 공화국이 되어버렸다.

어느 시장이 특별관리하는 법조계와 언론계는 인민재판과 혁명의 불꽃 '이스크라'로 가는 길목에 서 있고 NGO는 '그람시의 진지전' 그 전범을 보여주는 거룩한 사제가 되었으며 학계는 NGO가 주무르는 리바이어던 '크나큰 정부'의 젖을 한 모금이라도 더 얻어 마시려 늘 NGO 앞에서 색동옷 입고 재롱떠는 신세가 되었다.

공공이라 여기는 정부나 지자체는 어떤가. 스톡홀름 증후군 단계는 이미 지났고 그들 또한 대한민국 상위 10%의 귀족들이기에 알아서 부패한 보수세력과 운동권 귀족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며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90% 애국시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판 국공합작 30년에 '10 대 90'의 사회가 자리 잡아 버렸다. 이를 제대로 모르니 공무원연금 협상을 그 따위로 한 것이며 공무원노조의 입이 벌어지는 만큼 젊은이들의 한숨이 커지니 총선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6·29 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

 

무섭다, 2차 국공합작 그 셋과 셋 

대한민국 국회가 멘셰비키(러시아 온건파 사회주의당) 소굴이 되어버렸다. 멘셰비키가 잔뜩 있어도 동물 국회와 식물 국회를 되풀이하며 볼셰비키(러시아 강경파 사회주의당)들의 장난감이 되었는데 이제 그 수마저 적으니 참으로 막막하다. 한 가지만 이를테면 이렇다.

대통령을 닭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정작 제 머리는 닭대가리다. 먹고살 길을 얘기하라니 기껏 하는 게 경제민주화(다른 말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니 사회적 경제니 5·24조치 해제 따위다. 그렇다고 그들이 설마 닭이겠는가.

알파고 시대의 길을 찾으려니 상위 10%로 국민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귀족노조-전교조-공무원노조와 싸워야 하는데 도무지 오금이 저려서 알파고 눈에 원시인으로 보이는 녹음기 소리만 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는 몽땅 이스크라(러시아 사회주의 기관지)다. 그 광기를 이미 2004년에 제대로 겪었음에도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지난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광우병 난동으로 초죽음이 되어 내내 끌려 다녔다.

이 정부도 바보짓 했다. 집권 첫 해에 손을 썼어야 하는데 어영부영 하다가 세월호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왜 그랬을까. 대한민국의 해묵은 병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인수인계를 얼렁뚱땅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먼저 한 바보짓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부패보수세력과 귀족운동권과 선동언론을 아울러 국민통합을 하겠다 했으니 될 턱이 없다. 세월호 칼을 맞고 나서야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하려 하니 끝내 오늘의 사단을 맞이한 것이다. 그 사이 미디어는 선동운동권의 나팔수로 뒤바뀌어 '무당 언론'이 되어버렸다.

'극우 사대종북' 운동권의 딜레마를 살펴봐야 한다. 애국세력이 아무리 건국 대통령 우남을 얘기해봤자 저들은 4·19 프레임으로 늘 바보를 만들어 왔고 아직은 늘 선동에 휩쓸리는 대한민국의 낮은 지적 수준에서 먹혀왔다.

(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백두혈통을 따르거나 존중하거나 손을 잡은 이들을 극우라 부르지 않으면 누가 극우인가. 그래서 종북좌파는 틀린 말이다. 반북하지 않으면 좌파가 아니니 우리 야당은 극우세력이 주도한다 말해야 옳다.

또한 그들은 사대주의자들이다. 6.25를 보라. 김유신이 억울해 통곡할 일이다. 운동권의 뿌리인 어느 조직은 박헌영의 사생아를 모시고 만들었다. 어느 이는 제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버리고 자랑스레 그 이름을 쓰고 다닌다.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어떻게 버림받고 김성주에게 어찌 죽었는지 앎에도 사대주의가 거의 정신병 수준이다. Old Fashion~ 좌파나 빨갱이 말고 앞으로 반드시 극우사대종북 운동권이라 불러주길 바란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을 이룬 첫 박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아예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이 맺혔다.

꿩 대신 닭이 김재규인데 그리 애썼음에도 김재규를 민주열사로 못 만든 터에 그 딸이 대통령이 되어버리니 곧장 당선 날부터 날이면 날마다 하야선동을 한 것이다. 그들을 앞에 두고 국민통합을 얘기했으니 한심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 참 많은 금쪽 같은 나날을 까먹었다.

박근혜 당선일부터 시작된 '대통령 하야' 운동...  

또 더 있다. 평양이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 광화문 좇아다니는 따라지들 말고 운동권 전략가들은 잠을 못 이룬다. 평양이 무너져 모든 정보가 쏟아지면 30년 운동권 세도정치는 끝이다.

이 둘만 해도 견디기 어려운데 부패 수사로 심장을 겨눠온 것이다. 처음이야 2L(롯데+엘시티)이지만 부산저축은행 거쳐 마지막이 '바다이야기'임을 어찌 모를까.

청장년 국민들의 주머니 돈과 어르신들 쌈짓돈까지 눈 딱 감고 싹싹 털어 축재한 그들은 우리 자식들 우리 손주들 자사고 미국 유학 보내고 귀족 가문에 시집장가 보낼 때까지 눈에 흙이 들어와도 평양이 무너지면 안 된다. 토요일마다 운동권이 사돈팔촌까지 집안 코흘리개까지 동원한 까닭이다.

자, 이까지 읽었으면 필자가 야당만 아니라 여당 지지자도 아님을 느낄 것이다. 오로지 한국판 국공합작을 깨려고 애쓸 따름이다.

그리 봤을 때 위에 말한 삼각파도를 잘 헤쳐 나갈까 걱정이 앞선다. 지난 30년 동안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처럼 늘 떡 주고 팔다리 다 주다가 잡혀 먹히고 끝내 우리만 오롯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오누이 신세다.

이제까지 늘 그리 안팎으로 퍼주기 하다가 이 정부 들어 30년 동안 처음으로 통진당 해산부터 국정교과서 추진까지 자유통일의 문을 열고 김영란 법을 비롯한 부패추방에 발 벗고 나서자 마침내 '태블릿 게이트' '언론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말해 애국세력은 처음으로 덤볐고 저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우리는 아직 보잘 것 없고 저들은 덩치가 말 못하게 크다. 저들 말대로 '자주적 민주정부' 즉, 제5열이 머리가 되는 적화혁명 전야의 나라가 되지 않으려면 길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싸우는 길이다.

마침 다음 해가 정유재란 7주갑이다. 싸우다 죽겠단 각오가 없으면 자유통일은 커녕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다. 상유십이척(尙有十二隻 :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을 잊지 마시라.

칠천량에서 죄다 물고기 밥이 되고난 뒤 임금과 조정이 한마디만 했다. 호남도 수군도 다 포기하라. 장병들도 백성들도 따랐건만 갈 곳이 없으니 같이 죽으려 따라온 것이다. 그 벼랑에서 기적을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갈 길이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 글의 제목이다. <가장 잘 사는 부자 나라에서 일어날 볼셰비키 혁명에 가슴이 벅차다> 참말이다. 사람들은 이 판을 이끌어나가는, 이제까지 오로지 혁명전야를 바라며 놀랍도록 무서운 자제력으로 평화시위 나들이 연출을 하는, 숨어있는 이들을 어찌 알 것인가.

어설픈 먹물들, 무당 언론들은 더더군다나 제 서 푼어치 읽은 글줄 때문에 봐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무서운 이야기가 참이다. 그들은 인류사에 없었던 메피스토펠레스의 기적을 대한민국에서 만들고 싶어 한다. 누구 좋으라고.

반드시 막아내어야 한다. 저들이 민중총궐기라면 우리는 극우사대종북 운동권에 맞서 국민불복종이다. 교과서에서 준법을 빼고 그들이 심어놓은 말이 시민불복종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들께서 함께 하시길 엎드려 빈다.) 

[덧붙이는 글] 개헌 함부로 떠들지 말지니

헌법 전문(前文)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딱 보니 대한민국에 애국보수가 없는 게 맞다. 개헌 한다고 많이 설치는데 아래 일곱 꼭지를 헌법 전문에 제대로 싣을 자신이 없으면 아예 떠들지 마라. 아니면 건방지게 애국보수라 읊어대지를 말든가. 참으로 부끄럽다.

<인류사의 새벽부터 홍익인간의 가르침으로 유라시아의 대륙과 바다를 아울러 지구문명에 이바지한 역사, 백색제국주의와 적색제국주의를 한꺼번에 싸워 이겨낸 건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나라를 세운 건국, UN과 함께 세우고 6.25 때부터 UN과 함께 지켜낸 나라, 아직도 평양의 역도들에게 노예로 시달리는 우리 국민을 되찾지 못한 나라, 지구마을 가장 밑바닥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이른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내며 자유통일을 앞둔 나라.>

* 필자 김정은은 서울대 86학번 출신으로 80년대 주사파 운동권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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