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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흔한 오해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l승인2017.02.13l수정2017.02.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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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언론에 의한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 월터 리프만의 <여론:Opinion> 中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성적 모욕 그림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들이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야당은 예술과 사상의 자유를 보호하는 법안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표현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의 본원적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진보적 인사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고 단언한다.

▲ '사상과 의견이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제여 한다. - 프랑스 인권선언 제11조 -

과연 그런가.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는 여왕의 하야를 주장하면 법에 저촉된다. 실제로 최근에도 처벌된 사례가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 폐지를 비판하는 언론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당시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노예제를 합헌으로 판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날 누구도 링컨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를 자연권적 기본권으로 본다면 언론에는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설정할 수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공정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언론에도 공정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면 되는 것이고, 무책임한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널리 퍼뜨려도 문제될 것이 없다. 진실에 침묵하는 행위도 부작위할 자유에 속한다.

자유주의 언론관은 언론에 자유가 허용된다면 대다수가 진실에 침묵하더라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하려 할 것이고, 무책임한 의혹을 반박하는 주장들도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자유로운 주장과 표현들이 공론화를 통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진다는 생각이 공리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이성적 자유주의자의 낙관이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가 <자유론>의 저자 스튜어트 밀이었다.
스튜어트 밀의 이성적 낙관주의 자유언론관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진 프랑스 시민혁명과정에서 저널리즘이 어떤 양태를 보여줬는지 고찰한 바가 없는 규범주의적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로 인민을 학살한 <인민의 벗>

서구의 근대 자유주의 저널리즘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 시기를 그 기점으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이전에는 저널리스트라고 불릴 만한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프랑스 혁명기에 직업적인 저널리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이는 바로 선동에 탁월했던 의사 출신의 마라(J.P Marat)였다.

그가 창간한 <인민의 벗>은 자유의 이름으로 로비에스피에르에게 공포정치를 할 수 있는 여론을 창출했다. ‘반혁명 세력의 척결’을 내세운 <인민의 벗>에서 마라는 제거해야 할 대상들의 이름을 열거했고, 그가 지목하는 인물은 혁명세력에 의해 단두대에 섰다.

마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프랑스 왕정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로비에스피에르, 당통과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주요 인물로 거론되었다. 그런 마라의 <인민의 벗>은  왕정이 전복된 1792년 9월, ‘정치범들이 반혁명을 꾀하고 있다’는 루머와 함께 이들에 대한 숙청 선동을 통해 3일 만에 아베이 감옥 등에서 무장 군중을 통해 성직자등 1100명에서 1400명을 학살했다.

희생자 가운데 원래 살해 대상이었던 반혁명 정치범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비슷한 학살이 각지의 여러 도시에서도 일어났다. 희생자의 총계는 1만4000에서 1만6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른바 ‘9월 학살’을 선동한 마라의 <인민의 벗>은 프랑스 왕정이 1788년 <삼부회> 소집에서 ‘언론의 자유’를 부여한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1789년 프랑스인권선언에서 언론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 인권선언 11조-

프랑스인권선언은 언론의 자유를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로 천명하면서도,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함을 명시하며, 그 자유의 남용은 법에 의해 규정된다고 선언한다. 반면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처음으로 헌법에 명문화한 1791년 미국 수정헌법  제1조(The First Amendment)는 “연방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천부인권에 준하는 권리로 표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헌법의 언론자유가 지켜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는데, 1791년 수정헌법은 연방정부가 주정부들의 독립성을 해칠 수 없다는 선언적 의미였을 뿐이다.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는 각 주마다 그 정도는 달랐으나 존재했으며, 실제로 링컨 대통령은 당시 합헌이었던 노예제를 헌법파괴로 폐지하면서, 이를 위헌행위라고 비판하는 남부 주들의 언론사를 강제 폐간시키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제에 반대하는 주장들을 주 정부와 연방법원이 탄압했다.

언론은 자유지만, 표현의 자유는 엄격한 영국

영국의 경우,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영국은 현재도 영국 왕실 폐지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처벌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최근에도 처벌이 있었다. 이 문제는 2003년과 2013년 영국 가디언지의 비판 대상이 되었으나 법무 당국의 태도는 단호했다.

또한 1986년에 제정된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 1986)에 의하면 종교와 인종에 대한 차별, 내란과 테러리즘 옹호의 경우 언론·출판은 규제되며 사전 검열도 가능하다. 공포정치와 학살로 자유의 혁명을 외치던 로비에스피에르의 파리코뮌 역시 시민들의 저항과 여론 비판이 일자 왕정이 폐지했던 언론 통제법을 3년만인 1792년 8월에 다시 부활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스튜어트 밀의 이성적 낙관의 자유주의 언론관이 ‘현실의 구체적 질서’(Concreat order of Reality)와 만날 때 보편적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러한 이유는 영국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데이비드 흄이 갈파한 바, ‘인간의 이성이란 언제나 욕망을 충족하려는 의지에 봉사하는 합리적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의지가 있으며, 그러한 의지는 자유롭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자유(Liberty)와 자유의 남용을 불러오는 자유의지(Will of Freedom)를 구별해야 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하며, 자유에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게 된다.

자유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신조 하에 그 자체로 선언되고 전제되는 ‘절대적 가치’이며, 그러한 자유를 실행에 옮기고자하는 방법으로써, 개인이 갖는 자유로운 의지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수용할 수 있다면, 이제 언론의 자유와 책임도 사실은 언론에 종사하는 개인들의 자유의지와 책임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란 ‘진실을 알권리’

언론의 자유가 전제되는 ‘리버티’의 양태라면, 그것을 자유의지로 실행하는 ‘표현’은 한계를 지녀야 할 ‘자유의지’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형법으로 죄인을 처벌하는 것에 대해 법학자들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보호법익을 침해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국가는 인간을 형법으로 처벌할 근거를 잃게 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인코딩된 어떤 결정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 천명하는 자유는 언론, 출판, 결사가 자유롭다는 의미인 것이고, 이를 표현의 자유로 해석하는 것은 자유와 자유의지를 혼동하는 데서 오는 착오라 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한 판결을 보자.

“신문, TV, 라디오, 잡지 등 대중 보도 매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신속하게 보도할 의무가 있다."
- 1986년 대법원 판결문 中 -

1986년 대법원은 언론의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언론이 가진 사회적 기능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표방했다. 문제는 이 판결의 관점에서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에 대해 신속함 못지않게 ‘공정성’이나 ‘정확성’을 유지할 의무는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1986년이라는 민주화 열기의 시대 상황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국민에게 알권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알권리’인 것이지, 허위나 착오라도 상관없는 알권리는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회고해 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

2011년 9월 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에서 7개 쟁점 중 3개 사안을 허위라고 판단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MBC PD수첩 제작진 전원은 무죄가 확정됐다.

쟁점은 ①주저앉은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 ②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이 광우병이라는 보도 ③정부가 월령 30개월 미만인 소의 SRM 5가지에 대한 수입을 허용했다는 보도 ④우리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보도 ⑤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우리 정부가 독자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보도 ⑥라면 스프, 알약 캡슐, 화장품 등에 의해서도 인간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보도 ⑦정부가 수입 위생조건을 졸속으로 개정했다는 보도 등 7개 부분에 대한 허위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에 1심은 ①, ④를 허위로 인정, 정정보도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③의 경우 허위는 아니지만 반론의 기회를 주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②는 PD수첩이 후속보도를 통해 충분히 농림수산식품부의 주장을 보도해 줬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나머지도 “사실적 주장이 아닌 피고의 판단일 뿐”이라며 정정 또는 반론보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에서는 허위 부분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다. 재판부는 ④, ⑤, ⑦이 허위라고 판단했고 정정보도 판결을 선고했다. 또한 1심과 마찬가지로 ③의 경우 허위는 아니지만 반론의 기회를 주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청구는 기각했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사건은 다큐멘터리 제작의 전문가라면 대부분 이 방송에 심각하고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왜곡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취재 중 확인하지 못한 아레사빈슨의 사망 원인을 MBC 제작진은 미국 취재에서 돌아온 이틀 후에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확인을 하지 않고 광우병에 의한 것인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이다.

만일 법원의 판단대로 MBC PD수첩 제작진의 방송에 허위가 있었다면 그러한 허위가 단순 착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중대한 실수에 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고의에 의한 것인지 정도는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라는 이유로 면책을 시행했다. 대법원은 합리적 비판을 했던 전문가들의 주장을 모두 무시했다. 만일 지금 다시 판결한다고 해도 같은 법리를 적용할지 의문이 든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수많은 다른 언론사들로 하여금 과장과 날조, 허위의 융합적 상승을 가져왔다. 스튜어트 밀의 주장처럼 언론에 자유가 있다면 광우병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주장이 경쟁사인 KBS나 SBS에서 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MBC 내에서는 PD수첩 제작팀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기자나 PD가 한 사람도 없었으며, KBS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진정으로 합리적 이성의 공론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MBC 광우병 보도 판결, 고의성은 왜 따지지 않았나?

세월호 보도는 어땠는가. ‘학생전원구조‘라는 오보를 처음 낸 MBN 기자를 비롯해 메이저 언론들은 팩트를 구조 책임을 지고 있는 해경이나 상황본부를 통해 확인하지 않고, ‘전원이 구조되었단다’고 강당에서 말한 학부형의 주장을 ‘신뢰할 만한 근거’로 삼았다. 담당 데스크 역시 그렇게 올라온 상황 보고에 대해 공식 확인 여부를 체크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단순한 속보 경쟁의 문제점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후에 이 문제에 대한 공론적 반성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만큼 한국 언론의 자성력은 너무나 빈약한 것이 진실이다. 많은 국민들과 언론학자들은 한국 언론의 맨 낯이 ‘수준 미달’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한국에 언론의 자유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실일까.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이 유부남과 7시간 동안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식으로 언론들이 보도해도 문제가 없었으며,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서 KBS 보도국장에게 ‘살려달라’며 해경구조에 대한 왜곡보도에 대한 시정 요청을 해도 묵살이 가능한 나라였다. 세월호 보도 참사가 언론자유가 없어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처럼,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은 그 나라 언론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와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의 효용이 정치와 정책의 수준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처럼, 언론 역시 수용자의 수준이 공급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에 대한 국가의 정책 방향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언론에 자유를 부여하면서도, 언론시장을 규제하는 정책은 확고하다. 언론에 자유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방법은 언론인과 언론사 스스로 시장을 차별화해서 고급 저널리즘의 트리클다운 효과로 전체의 수준이 높아지는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 언론사들의 자본 규모가 더 커져야 하고, 광고시장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광고시장이 커지려면 그 나라의 기업들의 수익성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것과 해외기업과 자본들이 국내에 몰려들어 서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언론이 독자뿐만 아니라, 광고주들에 대해서도 클라이언트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서로 ‘Good Society’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길만이 최선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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