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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일군 베트남 경제 신화

이성은 미래한국 객원기자l승인2017.03.13l수정2017.03.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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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미래한국 객원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다.

▲ 하노이 삼성전자 공장 모습. 베트남 전체 GDP의 20%를 생산하는 베트남 삼성전자는 사실상 베트남의 성장동력을 견인하고 있다.

1975년 4월 30일, 공산 통일을 맞은 월남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월남 사회 지도층과 군인, 경찰 등은 물론, 베트콩으로 활동했던 사람들까지 수십만 명이 숙청을 당했고, 수백만 명이 정신개조수용소에 끌려가 잔혹한 고문 끝에 죽거나 엉망이 되었다.

월남이 하루아침에 패망하자 월남 국민들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다. 조그만 쪽배에 몸을 맡기고 구조선을 기다리며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보트피플은 약 106만 명. 그 중 95만 명은 구조되어 제3국의 품에 안겼지만, 나머지 11만 명은 굶어죽거나 좌초되어 물귀신이 되거나 해적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보트피플 행렬은 무려 20년간 지속되었다. 초기의 보트피플은 자유를 찾아 월남을 떠났지만, 나중에는 베트콩에 가담했던 사람들마저 극심한 빈곤을 버티다 못해 경제 난민이 되어 보트피플 행렬에 가담했고, 그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일례로 월남이 패망한 지 14년이 지난 1989년 한 해 동안 탈출을 감행한 보트피플만 7만5000명에 달할 정도였다.
 

도이모이를 통한 베트남 경제 개방

호치민의 공산 통일은 인민 모두가 행복과 번영을 누리는 천국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국가는 디폴트 위기에 빠지고 인민들은 굶어 죽는 현실로 돌아왔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국면 타파를 위해 1986년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사회주의 기반의 경제자유화정책 ‘도이모이’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1986년부터 농민들의 가족단위 토지소유가 인정되었고, 1987년에는 개인 기업을 허용, 1988년에는 외국합작기업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해외 송금을 자유화하는 외국투자법을 채택했다. 1989년부터는 개인의 토지 임대도 허용되었다. 베트남에도 비로소 시장경제가 형성될 수 있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개혁개방이 이뤄지자 외자 유입과 쌀 생산량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그 결과 월남 패망 이후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던 베트남은 1989년 100만 톤을 생산해 미국, 태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 지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교통 체증을 앓을 정도의 ‘마이카 시대’를 누리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베트남은 1인당 GDP 200달러 남짓에 인구 80%가 절대적 빈곤층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베트남은 갈 길이 한참 먼 나라였다.

세월이 흘러 베트남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지 30여 년이 흘렀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는 시대가 왔다. 현 시점에서 베트남은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뤘을까? 베트남을 공산화로 이끈 월남 패망의 흔적과 현지의 산업 시설을 살펴보기 위해 베트남 현지로 향했다.

하노이에 위치한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베트남 시내의 모습은 예상과 달리 활력이 넘쳤다. 투박하지만 특색 있는 건물들이 통일감 없이 펼쳐져 있었고, 과거 우리나라의 시민아파트를 연상시키는 허름한 아파트의 베란다에는 볕이 좋은 날씨를 이용해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베트남의 상징과도 같던 자전거 행렬은 온데간데없고, 오토바이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동차들도 눈에 띄었다. 주로 한국산 소형차들이 시내를 누비고 있었고, 고가의 외제차도 종종 발견되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세련된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에너지가 도시 전체에서 느껴졌다. 흡사 각종 상가 건물과 시민아파트, 맨션이 즐비했던 1970~1980년대 동부이촌동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베트남을 성장시키는 힘

하노이를 거쳐 경제도시인 호치민으로 이동하자 더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은 고풍스러운 노트르담 성당과 에펠탑을 지은 에펠이 건축했다는 중앙우체국 등 서양풍 건축물들, 리고 호치민시 최대 규모 종합쇼핑몰 빈컴센터를 포함한 호화 빌딩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베트남은 분명 성장 중이었다. 경제 지표를 보면 최근 5년간 5~6%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1인당 GDP도 2100달러 남짓으로 20년간 10배 정도 성장했다. 호치민시의 경우는 1인당 GDP가 5217달러(2015년 기준)에 이른다고 하니, 호치민 시민들은 한국의 1990년 정도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 하노이의 한 아파트 건물. 허름한 아파트 창 밖에 집집마다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이 대한민국 1970년대 시민 아파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이와 같은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외국인들의 투자를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진행하고 있는 건설과 제조, 서비스 등이 주 영역이다. 해외 기업들의 베트남행은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 기업 유치도 한 몫 하지만, 무엇보다 베트남의 환경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베트남은 한반도의 1.5배 남짓한 땅에 1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살고 있다. 국토는 넒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국민 연령이 평균 30세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젊다. 해외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광활한 대지에 젊고 활력 있는 노동력이 싼 값에 노다지처럼 널려있는 셈이다. 이는 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베트남을 제조업 전진기지로 삼고 너나할 것 없이 진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베트남에 521억 달러를 누적 투자하여 베트남 최대 투자국이 되었다. 한국의 베트남 수출 규모 역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며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 비롯한 한국 기업이 베트남 경제 주도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미치는 영향력은 하노이 삼성전자 한 곳만 봐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하노이 삼성전자 공장에는 10만 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삼성 스마트폰과 가전제품들은 ‘made in vietnam’의 표식을 달고 세계 각지로 수출된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삼성 스마트폰은 전체 물량의 40% 정도다.

삼성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세계 각지로 팔려나가는 규모는 베트남 전체 GDP의 무려 20%에 해당한다. 베트남 국내총생산의 5분의 1을 삼성이 차지하고 있으니,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철수하면 베트남은 구석기 시대로 회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도 베트남 사업을 적극 확장하고 있다. LG전자는 2년 전 하이퐁에 가전 생산단지를 건설했고, LG디스플레이도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모듈 생산 공장의 완공이 임박한 상황이다.

포스코는 2년 전 베트남에서 포스코베트남홀딩스라는 대표법인을 세우고 철강, 건설, 무역, 에너지 등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가 1992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은 20억 달러가 넘는다. 이 밖에도 신발제조업체 태광실업, 의류생산업체인 팬코 등의 알짜 중소기업들도 베트남에서 1만 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대규모 사업을 벌이며 베트남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 차원의 자립적 발전 모델 부재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은 저렴한 인건비로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장이지만, 이것이 베트남 시장에서 무조건 성공하는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동시에 베트남의 경제성장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다.

우선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답게 기업이 아닌 노동자 위주의 정책을 펼친다. 기업 유치를 적극 유도하고 있지만,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삼성이나 포스코 등의 대기업은 공산국가 베트남에서 기업 운영의 애로 사항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현지에서 굴지의 한국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공산당 간부들의 로비 압박과 텃세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20년 넘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도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포스코를 비롯해 많은 기업이 고전을 겪고 있으며, 간단치 않은 현지 사정 때문에 유턴하는 한국 기업들도 많다.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도 외자를 유치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 이상의 거시적 플랜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성장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하노이 삼성전자 공장의 경우만 해도 열에 아홉은 최종 학력이 중·고졸이다. 그마저도 공고를 나온 기능공의 자질을 가진 노동력이 없다는 것이 삼성 측의 설명이다. 사실상 국가적 차원에서 고급 인력, 기능 인력, 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미비한 셈이다. 삼성은 이들을 입사시킨 후 자체적인 사내 기술 교육을 거쳐 생산 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단순 제조업의 경우는 간단한 교육을 시켜 생산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작업이 요구되는 고급 노동력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들을 교육시키겠다는 포부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 시절 전국 곳곳에 공고와 특성화 고등학교, 기술직업학교, 각 대학에 기술 전문인력 양성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갖춘 것과는 대비가 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은 공단에 여공들을 위한 기숙사를 만들고 야학을 설립해 여공들의 학업 수준을 높이는 데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비전을 실현하면서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슬로건 하에 국가기반시설을 만들고,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의 육성을 적극 지원했다. 공고를 설립해 기능공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첨단과학기술을 배운 인재 양성을 위해 포스텍과 카이스트도 설립했다.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백년대계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다방면의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베트남 현지의 산업 현장은 블루칼라의 노동 환경마저도 매우 쾌적하게 마련되어 있다. 전 세계 일류 기업들이 최첨단 시스템을 도입해 최적의 근로 환경을 만든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월등한 생산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도국 수준인 베트남이 매년 6% 성장을 하는 것은 그다지 큰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5·16 군사혁명 직후인 1961년부터 1991년까지 30년간 1인당 국민소득(GNP)이 79배 성장했다. 대한민국이 1960~70년대 지독히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악바리처럼 일해 이와 같은 결과를 이뤄낸 것에 비해, 베트남이 최근 20년간 10배 성장한 것은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전 세계가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상황에서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겉보기엔 공산 국가의 화려한 부활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트남은 사실상 해외 기업, 그 중에서도 맨 땅에 헤딩하며 자립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기업들의 노동력 전진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지 못하고, 국가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노동시장으로서의 메리트가 사라지는 순간 베트남 경제는 또 다시 곤두박질 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이 매년 10% 이상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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