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서 빛난 ‘대한민국 변호사’
탄핵 정국에서 빛난 ‘대한민국 변호사’
  •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정리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03.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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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대통령 변호인 김평우 변호사

‘수학적 법치주의’ ‘국어적 법치주의’ 알기 쉬운 비유와 명쾌한 논리로 헌재 엉터리 판결 낱낱이 해부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은 촛불정국과 태극기정국을 거치며 몇 명의 스타를 낳고 끝이 났다.  대통령 박근혜는 3월 10일로 전 대통령이 되었고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가 탄핵무효를 외쳤던 시민들은 심한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졌다. 탄핵 전부터 촛불진영이 주문처럼 외우던 벚꽃대선은 5월 장미대선으로 실현됐다.

그러나 그 와중에 많은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문을 통해 법치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 멀게만 느껴지던 법치주의가 국민 일상의 문제가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헌법재판소의 불합리한 탄핵심판이었다.

▲ 사진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김평우 변호사는 헌재 탄핵인용문에 담긴 부실한 논리와 모순을 낱낱이 파헤쳐 일약 태극기 진영의 스타가 됐다. 본지는 그런 김 변호사를 13일 오후 미래한국 사무실에서 만났다. .

8:0은 한국 사회의 편향 상징

-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애국집회 연설에서나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탄핵 이후가 더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과제는 무엇일까요?

탄핵심판이 8대 0 인용만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가 그래도 어느 정도의 충격에서 빨리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너무 쇼킹해서 앞으로 큰 부정적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느낍니다.

국가적 어젠다가 생겼을 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보통 의견이 갈라지는데, 이런 국가적 큰 이슈에 있어 8대 0이라면 원 사이드 한 사회입니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선거에서 90% 이상의 찬성률이 나오지 않아요. 북한이나 사회주의 국가라면 이해가 되나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6대 4를 넘지 않지요.

판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적으로 큰 이슈이고 국민적인 이슈인데 8분의 재판관들이 의견이 8대 0으로 나온 것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 8대 0 인용 결정의 내부 배경이 있다고 보십니까. 결정문에는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 등 명확히 잘못된 부분이 나오는데 재판관들에게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 점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시일이 흐르면 진상이 드러나겠지요. 미국 같은 나라는 하원에서 탄핵소추하면 상원이 심판을 내립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상원에서 심판 할 때는 표결은 하지만 이유는 쓰지 않아요. 미국 상원은 숫자가 100명이죠. 한주마다 2명씩 50개 주니까 100명의 상원이 배심원이 되어 투표를 하는 배심원 재판룰을 따릅니다.

보통 다른 형사재판에서는 대개 12명이고 전원일치를 따르지만, 탄핵은 미국 상원 3분의 2 이상의 표결로 탄핵을 결정합니다. 그게 안 되면 성사가 안 되지요.  우리나라 헌재 3분의 2 결정과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 상원은 법관이 아닌 국회의원이 배심원이기 때문에 일반 정치인의 입장에서 평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8명 전원이 판사와 검사 출신의 법조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헌재 탄핵심판은 정치재판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정치를 판단하기엔 상당히 부족하지요. 미국 상원은 정치가로 자기 의사만 가지고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속한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1차적으로 확인합니다. 자기가 소속된 주의 주민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니 그들의 의사를 먼저 묻는 겁니다.

과거에도 상원의원들은 대개 출신주에 가서 대표들 의견을 듣고 자기 의견을 결정했어요. 정치가들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미국 국민 의사를 모은다는 정치적 의미에서 대표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의 경우는 정말로 정치재판이 되는 겁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헌재는 주민이 뽑은 사람들이 아니고 책임지는 사람도 아니에요.

미국 상원의 탄핵심판과 우리나라 헌재의 탄핵심판

이 사람들은 그냥 임기 동안 자신의 법률지식을 가지고 평생 배워온 법관의 양심에 입각해 위헌이냐 위법이냐 이런 법적 판단만 하는 겁니다. 헌법에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한국 헌재는 법률재판인 것이지 정치재판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판이 정치재판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시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자신들이 마치 정치재판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정치재판이냐 법률재판이냐가 논란이 되기는 했지요. 그러나 그 당시 ‘중대한 위반’이라는 부분은 헌재 재판관들이 법률 위반을 전제로 따진 것입니다.

다만 중대한 위법이냐 아니냐 라는 중대성 판단이 법률판단이냐 정치판단이냐 자체는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중대한’이 무슨 뜻이냐는 건 지금도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옳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대한’ 이라는 건 애매한 표현입니다.

이건 위험한 판결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노무현 탄핵심판 사건 때도 위법성은 전제가 돼 있었어요. 위법은 하지만 아주 중대한 것이냐 아니냐 이지요. 박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았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8인 재판은 위헌이라고 했던 헌재 재판관들

- 변호사님은 이번 탄핵심판의 부당성을 글과 연설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셨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제일 큰 것은 8인 재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일반 국민이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헌법조항 중 숫자로 된 조항이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에서 이 5년이란 숫자는 법률가만 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모든 국민이 5년의 의미를 알지요. 그런데 5년이 안 됐는데 물러나라고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수학적 법치주의라고 부릅니다. 숫자로 표시된 것은 증거가 필요 없고 높은 법률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이지요. 헌법 준수는 숫자로 표시된 헌법 조항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수학적 법치주의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또 하나, 헌법에 9인 선출 방법도 명시돼 있어요. 대통령 지명 3인, 국회 지명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재판관들 중 이정미·이진수·김이성 재판관은 8인 재판은 위헌이라고 스스로 재판한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이번 판결문을 보면 이 점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단지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7인으로 재판할 수 있다고 법에 있다는 것,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7인 이상 재판관이 심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법에 의한 심리라는 것이 심리인가의 문제가 있어요. 탄핵 인용한 게 심리인가요?, 아닙니다, 이건 조사인 것이죠. 국어사전에도 심리는 조사로 돼 있습니다. 22조에는 ‘심판은 9인으로 한다’고 돼 있어 헷갈릴 수가 없습니다.

- 이번 탄핵정국에서 태극기 진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태극기 진영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변호사님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앞으로도 정치에 끼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법률가와 법치주의자로 기억됐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보니까 사람들은 24시간 언론에 완전히 잡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뉴스나 정보를 어디서 접촉하는가 하는 문제인데요, 우리 뇌와 마음은 99%가 정보매체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한국 사람보다 쓰레기 정보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여기 와서 보니까 한국 사람은 불쌍하게도 90%의 사람이 쓰레기 정보에 오염돼 있어요. 안타깝습니다. 한국 분들은 쓰레기 언론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것만 집중하세요.

- 그래도 가장 덜 오염되고 지식 수준이 높고 가장 공정한 게 법원이고 재판관들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번에 확인된 것은 법조계마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됐다고 보십니까.

한국에 와서 최근까지 저도 그 의문이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시제도 사법시험 제도를 도입하면서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비슷하게 법조인이라는 양반 클래스를 양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습니다.

나쁜 점은 당파싸움이 심했다는 것이지요. 백성들은 당파싸움 안 했어요. 양반들만 한 겁니다. 좋은 점은 선비정신입니다. 내가 과거에 합격했기 때문에 선비이니 일반 백성과 다르게 청렴하고 깨끗하고 곧아야 한다는 선비정신을 갖게 되는 겁니다. 나쁜 면으로서 양반의식이지요. 영감 소리 듣고 좋아하는 의식, 일반 백성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우월의식이 다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어요. 그러나 좋은 면으로는 적어도 선비정신은 있었다는 것인데요, 이게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개발하고 소득 2만 달러 이상 잘사는 나라가 되면서 이 양반들이 선비정신을 잊어버린 겁니다. 이 양반들이 보통 국민과 똑같이 돈 벌기에 나선 것이에요. 법관 출신들이 하루아침에 몇 억씩 돈을 벌기 위해 소위 전관예우를 받습니다. 이 전관예우가 결국 법조계를 완전히 망쳤어요. 저는 변협 회장 하면서 이 전관예우를 없애려고 무단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재판정보공개도 요청했는데 이뤄지지 않았지요. 정보공개가 되어 일반 국민에게 재판 내용을 다 알려주면 특권의식을 가진 법조인들이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판결은 아직도 정보 공개되지 않아요. 한국의 법조인들은 4색 당쟁의 당파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고 선비정신만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탄핵심판에서도 틀린 걸 알면서도 외면합니다.

과거 변협 회장 때도 제가 ‘이거 틀리지 않았느냐, 의견서 내 봅시다’ 하면 회원 90% 하는 말이, 옳은 말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은 어렵다고 빠집니다. 당파의식만 남고 선비정신은 없어진 것이지요. 소득이 올라가면서 지도층에는 선비의식이나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라지고 오직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는 데만 전념을 하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법조인들이 이번에 알면서도 나서지 않고,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라고 봅니다.

“법원 판결문 공개하면 판사들과 법조계가 바뀔 것”

- 탄핵 정국 과정에서 김변호사님의 설명을 듣고 법리적 문제가 뭔지 이해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왜 법치주의를 이야기하는 제 이야기에 공감을 표시할까요? 사실 이 분들이야말로 법과 먼 분들 같은데 말이지요. 법조인들마저 법치주의를 외면하는 현실에서 도대체 왜 이분들은 제가 말하는 법치주의에 공감을 하는지 이 모순을 최근에야 알아냈습니다. 특권을 가진 자들에 법치주의가 적용되지 않으니 관심이 없는 겁니다. 자신들한테 적용되는 게 아니니까 무관심한 거지요. 그러면 일반 국민들은 왜 저렇게 법치주의에 열광할까, 법치주의가 무너졌을 때 제일 피해를 입는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해석이 틀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일감이 그렇다는 겁니다.

- 말씀하신 판결문 공개를 제도화하면 문제가 달라질까요?

그렇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인터넷이 덜 발달된 것 등 여러 이유로 산별적으로 잡지에 공개합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공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만 공개할 뿐, 지방법원 판결을 공개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읽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팩트가 없고 추상적이어서 그렇습니다. 법조문에 다 있는 걸 다시 풀어낸 것에 불과하지요.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를 다룬 팩트 부분입니다. 이 사실관계는 대법원 판결에 나오지 않고 1심 판결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1심 판결이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게 공개되면 팩트 관계가 나오는 겁니다.

팩트가 나오면 그 다음 사건을 재판할 때 이 팩트와 같은가 다른가를 비교해야 합니다. 팩트가 같을 때만 그 판결을 인용해야 합니다. 이번 박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국회의 소위 의결 방법이나 증거조사를 붙이느냐, 일괄투표냐 개별투표냐 등이 의회자율권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퍼즐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퍼즐을 맞출 때 똑같은 모양새일 때 맞춰 끼우지요? 판례라는 건 과거 사건하고 이 사건하고 똑같은 형태라야 합니다. 중요한 요소가 같아야 해요. 나아가 조금 틀리다 정도가 아니라, 상황이 같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어떤 결정이 내려지고 선고가 내려질 수 있지요. 노무현 탄핵심판과 박근혜 탄핵심판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딴 나라 이야기에요. 그때 판결에서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렇다? 법리가 다른 겁니다.

사건 내용이 달라서 같은 이론을 적용하면 안 되는 거예요. 유사한 판례를 찾아야 하고 우리나라에 없다면 외국에서라도 찾아야 하는 거지요. 법조인들이 이 사건을 볼 때 법률만 보고 있어요. 하지만 법률과 사실을 같이 봐야 해요. 같이 묶어 전체를 봐야지, 사실은 떼놓고 법률만 떼어다가 붙이면 잘못하면 사람 잡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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