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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입주의'와 추경편성의 유혹

새 정부 첫 작품이 추경편성이라니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미래한국 편집위원l승인2017.05.29l수정2017.05.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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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미래한국 편집위원  webmaster@futurekorea.co.kr

케인즈 식 ‘국가개입주의’ 사고의 뿌리는 깊다. 그 기저에는 일반 대중의 ‘개인의 자유보다 전체나 국가의 의지를 더 중시하는 이념’이라는 환상이 자리 잡고 있다. 헤겔에 따르면 국가는 ‘자의식을 가진 도덕적 실체’이다.

따라서 국가를 ‘야경꾼’의 위치로 떨어뜨리는 것은 불경한 짓이다. 여전히 일반인의 눈에 시장은 불완전하고 국가는 전지(全知)한 존재로 비춰진다.

만약 경기라도 나빠지면, “국가는 이 막중한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이냐”는 질타가 이어진다. 국가의 대리인으로 정부는 이렇게 시장에 개입한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1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는 일반 대중에 대한 좌파 정부의 ‘화답(和答)’인 것이다.

추경편성의 걸림돌은 늘 재원조달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경편성을 위한 실탄도 확보한 상태다.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 5월호’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세수입은 69조9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조5000억 원 증가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추경편성을 ‘당위(當爲)’로 여기는 것 같다.

추경편성 요건 명시한 국가재정법

추경편성은 정부로서는 일종의 유혹이다. 무작정 편성은 위법이다. 국가재정법은 추경편성이 남용되지 않도록 규율하는 장치이다. 국가재정법은 제 89조에 ‘대규모 재해, 남북관계 변화, 경기 침체’로 추경 사유를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추경을 편성하려면 추가 부양을 통해 경기를 관리해야 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고용도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위기 상황이어야 한다. 하지만 시그널은 일의적이지 않다.

‘2017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 실업률은 11.2%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구조조정 영향 등 ‘고용 하방요인’이 존재하지만, 전체 취업자수는 2657만 명으로 오히려 전년 동월 대비 42만 명 증가했다.

그리고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도 수출증가 등에 힘입어 전분기 대비 0.9% 성장했다. 모건스탠리 등 해외 투자은행도 우리나라 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향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소폭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면 추경이 필요한 경제 상황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추경편성은 재정을 통한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과 연계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추경 이외에도 재정지출 증가율을 연 7%로 높게 잡아놓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 3.5%의 2배에 해당한다. 올해 기금 포함 정부 예산은 400조5000억 원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대로 재정지출을 연평균 7%씩 늘린다면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에는 예산이 561조7000억 원으로 증가한다. 박근혜 정부 계획대로 3.5%씩 늘릴 때 2022년에 도달하게 되는 475조6000억보다 86조 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정상적인 예산편성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추경을 편성해가면서까지 추진할 간절한 이유는 없다. 추경 편성이 새로 출범한 정부의 ‘전리품’이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좌파적 경제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좌파적 경제관’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닌 ‘큰 정부’, ‘낙수효과’ 대신 ‘소득주도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 동안 시장을 통한 즉 기업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인세를 낮추고 규제완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늘지 않았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의 효과가 미진하다는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편의(偏倚) 없는 정책효과를 계측하는 것은 이론적으론 불가능하다. 정책을 ‘시행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상태’를 동시에 직접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은 실험과 다르다. 실험은 대상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정책은 대상을 통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규제완화와 감세로 그 정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가설(반대편 주장)을 기각해야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낙수효과가 없다’는 주장의 논거도 명확하지 않다. 낙수효과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조동근·빈기범, 2014)가 보고되고 있다. 8113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중소 협력업체가 대기업에 납품을 많이 할수록 매출과 고정자산, 고용 등에서 성장이 촉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낙수효과가 없다면’ 수출부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경제는 계약이 맞물림으로써 돌아간다. 경영진이 횡령 배임 등을 저지르지 않는 한 낙수효과가 없을 수는 없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올리는 것을 검토하는 것도 수출호조에 따른 낙수효과에 기인한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는 데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실패는 시장을 통해 걸러지지만 정부의 정책실패는 시장을 통해 걸러지지 않는다. 실패한 만큼 국민경제에 폐해가 누적된다.

재정을 통한 공무원 신규채용은 일종의 ‘셀프 고용’이다. 아래 돌을 빼내 위로 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지속가능하지 않다.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정부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일 발간한 ‘주요국 리쇼어링 동향과 정책 시사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현지 일자리 수는 2005년 53만 개에서 2015년 163만 개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창출한 일자리 수는 20만 개에서 27만 개 느는 데 그쳤다. 들어온 일자리와 나간 일자리의 격차가 2.5배에서 6배로 확대된 것이다.

 

한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지난 5년간(2011~2015년) 464억 달러(52조4700억 원)로 세계 37위에 그쳤다. 직전 5년(2006~ 2010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2.8% 감소했다. 2005~2015년 국내총생산(GDP)에서 투자 유입·유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유출이 4.3%에서 20.2%로 증가하는 동안 유입은 11.7%에서 12.7%로 제자리걸음 했다.

종합하면 한국의 일자리부족은 해외로 일자리가 많이 나갔기 때문이다. 줄어들은 일자리를 재정을 통해 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는 태엽이 풀리면 서는 ‘자동인형’을 국가 예산으로 마구 찍어 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그리스 꼴이 날 수도 있다.

전임 정부의 추경편성 사례
 
<표>는 외환위기 이후 시행된 추경의 내역을 정리한 것이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태풍 등 자연재해에 따른 추경편성’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부여되지만 기타 추경은 일종의 정치적 요구에 의한 추경으로 그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세수 결손을 만회하기 위한 추경은, 예측불가의 돌발적 상황에 따른 대응이라는 ‘추경편성의 본연과 거리가 먼’ 경제운영의 실패를 반영한 추경인 것이다. 만약 이번에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추경을 편성한다면, 명분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권 출범이 명분일 수는 없다.

추경편성은 구조개혁을 막는 임시처방

케인즈 식 국가개입주의는 큰 정부를 부르게 되어 있다. 정부 개입을 통한 유효수요의 관리는 케인즈적 사고의 정수(精髓)이다. 추경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률 관리도 그 연장선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이 없듯이 공짜 성장도 없다.

추경은 추경을 부르고, ‘정부 의존’을 타성화 시킨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데, 성장을 한다는데 이 정도 희생은 기꺼이 치러야 할 것 아닌가 라는 케인지언들의 아우성이 도처에 메아리친다. 하지만 국가개입주의와 추경편성이 문제 해결의 열쇠일 수 없다.

유권자가 공공지출 규모, 즉 정부 규모에 대해 투표할 때, 투표는 ‘투표자 자신이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부담한다’고 믿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는 공공선택의 치명적인 ‘내재적 함정’이 아닐 수 없다.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제 둔화, 원화 강세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위험 요소를 감안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조개혁과 규제완화이다. 자동차운전에서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을 수 없듯이, 추경편성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구조개혁이라면 추경편성은 ‘구조개혁 포기’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잠시를 위해 미래 기반을 다지는 조치를 포기하려는 것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2016년 매출액 기준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이 공개됐다. 500대 기업 중 한국의 기업 수는 15개로 오히려 전년도 17개보다 2개가 줄었다. 미국은 134개, 중국은 103개, 일본은 52개이다.

그 나라의 경제적 위상은 몇 개의 글로벌 기업을 갖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들 글로벌 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것이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일본 아베 그리고 프랑스 마크롱 모두 민간의 활력을 살려 고용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 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새 정부 정책 1호가 ‘추경편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걸었다고 한다. 정부 능력을 과신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은 없다.

<편집자주: 미래한국 549호 지면(35페이지)에 게재된 본 칼럼의 제목 "'국가 개입주의'와 묻지마 복지의 유혹"을 저자와의 협의에 따라 위 제목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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