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사회의 위기와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
저성장 사회의 위기와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
  •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7.06.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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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과 사회적 갈등

최근 IMF가 발표한 2015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만7513달러로 2014년에 비해서 457.6달러가 감소했다. 현실적으로도 경제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지고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감소하면서 계층 간·지역 간·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저물가 저유가 저금리 등에 따른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국민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고용과 분배에 필요한 충분한 성장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우리 경제 사회 프레임으로 국민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7% 내외의 실질 경제성장이 이뤄져야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3%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은 이 정도의 경제성적표에 만족하기 어렵다. 최근 국민이 복지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기는 하지만 더 깊은 내면에는 저성장에 기인하는 팍팍한 생활 형편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헬조선, 흙수저 등과 같은 유행어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불안·불만·불신이 팽배하고, 심지어는 염세적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1970년대 10%대였고 1990년대 초반까지는 8~9%대를 유지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4%대 후반으로 떨어진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최근에는 3%대 후반까지 낮아진 상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12~2017년 3.4%에서 2018~2030년 2.4%, 2031~2050년 1.0%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거시경제 변수로 보면 노동인구 공급 둔화, 근로시간 감소, 설비투자 부진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은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이 OECD 전체의 약 두 배이며, 생산가능인구 비율도 73% 수준으로 OECD 전체 회원국 가운데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5~10년 내에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성장 추세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둔화는 전초전에 불과하고, 일본형 장기 침체는 이제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 있다. 그리고 경제 규모 확대에 따른 성장률의 둔화 현상은 최근 몇 년 간의 중국 경제성장률 추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저하는 인구구조의 노령화, 제조업의 성장률 둔화, 사회 갈등의 확대 등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장기적 추세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둔화는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주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고령화율이 현재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나, 2050년경에는 가장 심각한 상태로 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의 진행에 따라 소득분배이전의 지니계수가 급격히 높아졌다. 한국의 고령화율은 2015년 13% 수준이지만 2050년에는 38.2%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제조업의 경쟁력 하락과 서비스업의 더딘 발전도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수출 대기업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으로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으나, 제조업만의 성장으로는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조업 중심의 성장은 고용 없는 성장 양상을 보이다가 최근 성장률이 지체되자 성장 없는 고용 현상으로 전화되고 있다. 성장 없는 고용의 원인은 서비스부문의 생산성 부진 때문이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국제 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 현황’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2005년 이후 59%대에 머물러 80%에 육박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OECD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고, 국내 고부가가치 지식 서비스의 명목 GDP 비중도 OECD 국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반면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고용 비중(69.5%)은 OECD 평균에 근접한 수준으로 서비스 산업 규모에 비해 고용 비중이 높아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내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절반, 일본의 71% 선에 불과하고 저생산성의 주원인은 진입 장벽이 낮은 저부가가치 서비스 업종 취업자가 늘어나고 있고 실제로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 전통 서비스 업종에서 규모에 비해 취업자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소비지출 구성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요소가 많은 것도 한 원인이다. 서비스부문에서 숙박 음식점업 등의 비중이 높은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엥겔 법칙(Engel’s law)은 저소득 가구일수록 생계비에서 식품비가 차지하는 비중, 즉 엥겔지수가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고소득 가계는 지출에서 차지하는 식품비 비중이 작다. 생존에 덜 필수적인 의류나 문화생활 등에도 돈을 쓸 여유가 있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엥겔지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엥겔지수가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으나 최근에는 엥겔지수가 꽤 반등했기 때문이다. 통계청과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계(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주류음료, 외식비가 차지한 비중은 26.1%였다. 매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할 때 2009년(26.3%) 이후 최고치다.

1990년 상반기 32.9%에 달했던 엥겔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0년 25%대에 진입했고 2014년(25.6%)까지도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소득이 감소된 것이 아니라 가계 식품비가 전년 동기보다 2.1% 늘어나 소비지출 증가율(0.3%)을 크게 넘었다. 식료품비의 지출 양상을 보면, 우리 경제가 물질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지만 정신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여전히 물질소비를 통한 만족 추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갈등 비용이 문제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 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 대상 24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고, 이 때문에 지급하는 경제적 비용은 연간 최대 246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21% 늘어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사회갈등지수가 높은 것도 우리나라의 정신문화 측면에서 선진화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민 생활이 팍팍해지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로 경제성장률은 하락하는데 인구밀도는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활동가능인구 대비 유소년인구와 노년인구 부양률은 지난 50년과 향후 50년을 통틀어서 가장 낮은 조건이지만, 인구밀도를 보면 1970년에는 1㎢ 당 328명에서, 1980년에는 385명, 1990년에는 432명, 2000년에는 487명으로 높아졌고 2014년 현재는 513명으로 높아졌다.

에너지 등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식량자급률도 25%에 안 되는 국토 상황인데 인구수는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획기적인 innovation이 일어나지 않은 한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경제성장과 국민행복에 대한 재 고찰

역사적으로 어떠한 국가도 영원히 성장을 끊임없이 했던 국가는 없다. 성장률의 장기적 저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요한 것은 성장률이 저하하는 국면에서도 대응하는 국가 전략에 따라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국민의 행복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경제적으로는 저성장시대에 진입하고 있지만 인간의 행복이 단순히 1인당 GDP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GDP는 일정 기간 한 국가에서 새로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것을 말한다. 하지만 GDP라는 지표가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GDP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실제로 향상시키는 경제활동과 그렇지 않은 경제활동을 구분하지 못한다. 실업으로 인한 정부지출과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은 GDP를 증가시키지만, 환경오염 같이 삶의 질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반영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근래 고용, 보건, 교육, 환경 등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지표인 행복지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유엔(UN) 산하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SDSN)’는 지난 2012년부터 토대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하고 있다. 이는 1인당 GDP, 건강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인식 등에 대한 갤럽 세계 여론조사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되어 세계행복 보고서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UN 행복보고서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행복방정식을 추정하고 있다. 행복도는 1인당 GDP, 건강수명과 같은 정량적 지표와 사회적 지원, 선택자유, 관용, 부패 등 정성적 지표와 높은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2016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58개 조사 대상 국가 중 한국은 58위를 기록, 2015년의 47위에 비해 11계단이 하락했고 2013년과 비교해 17계단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한국의 GDP 순위는 행복지수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 세계행복보고서는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등의 국가가 10위권에 속하고 있다. 복지국가로 통칭되는 북유럽의 국가가 포진되어 있다. 한편 미국 13위, 영국 23위, 독일 16위, 프랑스 32위인데 일본은 53위였다. 자연환경이 좋은 국가와 석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이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높았다.

우리나라의 행복도는 최근 몇 년간 왜 급격히 하락하고 있을까? 행복도가 하락하는 것이 경제성장률의 둔화에 기인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가 행복도가 1위인 덴마크,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성장모형으로 생각하고 있는 독일, 우리나라의 성장모델과 가장 유사한 선진국인 일본의 행복도와 비교해 봤다.

 행복도 결정요인 국가비교 (동일 측도)

먼저 행복도에 영향을 주는 1인당 GDP 변수는 한국이 덴마크 독일 일본에 비해 뒤지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한 건강수명의 경우 덴마크와 독일과 비교해오히려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고 일본과 거의 비슷했다. 즉, 객관적인 정량지표 측면에서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인식 측면 등 정성적 지표들에 있어서는 덴마크와 독일에 비해서는 뚜렷한 차이는 나타냈고, 일본과 비교할 때도 관용의 경우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미소하게 양호했지만 다른 지표들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낮았다.

즉,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도가 낮은 것은 경제적 요인보다는 비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원인이었고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 등의 측면에서 열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경우 방사선형 그림표 상으로는 덴마크와 독일과 큰 차이가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행복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특히, 관용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낮은 점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일본이 높은 경제적 수준에 비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을 만큼 팍팍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사회전반적 갈등구조의 해소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정신문화적 측면에서의 선진화가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행복은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국가 전반적으로 평가되는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 프레임과 관계가 있다. 한국은 70년의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성공한 모범적 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성공은 한국인의 우수한 자질과 근면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국민 모두가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잘 짜인 효율적인 국가 프레임이 오늘날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의 한계가 나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 문화 융합 선진화가 시급하다.

경제와 정신 문화 융합 선진화 필요

문화는 한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발전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문화는 문명(civilization)이란 개념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문화는 정신적 발전 상태를, 문명은 물질적 발전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된다. 매슈 아놀드(Mathew Arnold)는 문화를 인간 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는 의미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예컨대 우리가 문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 흔히 그것은 뛰어나고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문화의 개념이 그것이다. 문화 변동은 한 순간에 급속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지속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문화 변동 과정에서 기존 문화와 새롭게 출현한 문화 간의 모순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물질 문화나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문화가 충분히 적응하지 못 하는 문화 지체(cultural lag)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문화 지체 현상이 있을 때 심각한 사회적 부조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은 외형적인 높은 편의성과 효율성의 이면에, 내적인 불안정성에 따른 시스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어 국민 대다수가 힘들고 불안하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이러한 우리 모습을 ‘피로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효율적인 경쟁과 유인 시스템의 이면에 국민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의 우월한 성장 프레임은 끊임없는 고도 성장이 전제되지 않으면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 동안의 복지(福祉) 담론도 이러한 맥락에서 분출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단순히 복지 예산 확대로 땜질 처방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삐걱거리고 있는 경제·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대증요법으로만 대응할 일이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준 성장 프레임을 어떻게 리노베이션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저성장시대 하에 국민 행복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경제와 정신문화 융합 선진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미래 한국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전은 함께 잘 사는 성숙한 사회로 하고, 이를 위해 정신 측면에서 도덕적이고(Morality) 사람과 사람이 서로 공감하며(Sympathy), 경제적으로는 절제하여(Moderation), 풍요로운 문화(Culture)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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