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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국제중재 실력을 키워야 할 때”

[인터뷰]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 재선임 박은영 변호사 글·대담 이근미 소설가/사진·영상 이준영 미래한국l승인2017.07.19l수정2017.08.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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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대담 이근미 소설가/사진·영상 이준영 미래한국  webmaster@futurekorea.co.kr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이자 미래한국 편집위원인 박은영 변호사가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상임 부원장에 재선임됐다. 2010년에 LCIA 아시아태평양평의회 평의원에 선임된 이래 2013년 LCIA 아시아태평양평의회 의장, LCIA 부원장에 이어 이번에 재선임된 것이다.

 

1892년에 설립되어 125년의 역사를 가진 LCIA의 부원장을 한국 변호사가 두 번 연속 맡는다는 건 대단한 명예이다. 중재재판을 할 뿐만 아니라 1000여 명의 중재인 선출권을 가진 막강한 자리다. LCIA 35명의 상임위원 가운데 6명만 영국인이고 29명은 외국인이다. 7명의 부원장 가운데 아시아인은 박은영 변호사 단 1명이고 미국인 3명, 영국인 2명, 스위스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중재법원이 하는 역할에 대한 설명부터 부탁했다.

“판사가 해야 할 재판 기능을 민간에 위탁하는 제도입니다. 중재법원에서 판정을 하면 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이 발생합니다. 건국한 지 70년 된 우리나라는 중요한 기능을 대부분 국가가 담당합니다. 민간 영역이 별로 없죠. 서구에서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큽니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와는 다른 형태입니다. 200년 300년 전부터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 만든 중요한 공적 단체들이 판사가 해야 할 기능을 대신 수행하는 거죠.”

런던국제중재법원과 파리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이 쌍벽을 이루는 가운데 싱가포르와 홍콩이 급부상하고 있다. 2015년 런던의 퀸메리대학이 국제중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런던, 파리, 제네바와 함께 싱가포르와 홍콩이 선호하는 5대 중재지에 선정됐다.

박은영 변호사와 LCIA와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재 관련 모임인 런던 연차총회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2박 3일 동안 70명이 모여서 토론회도 열고 규칙도 개정하고 중재 발전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는 자리였다. 아시안은 인도 사람 1명 뿐이었다. 김앤장에서 국제중재 업무를 계속해온 박은영 변호사가 자유토론 때 의미 있는 발언을 하자 이듬해 다시 초청받았고 3년째 참여했을 때 모임의 사회를 맡았다. 이후 평의원, 상임위원을 거쳐 부원장에 오른 것이다. 박 변호사의 국제중재에 관한 관심은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군 법무관으로 국방부에서 근무했어요. 미국과 무기 거래를 할 때 국방부 협상팀으로 미국 펜타곤에 가서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국제 분야에서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국제법률가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죠. 1994년에 판사로 일할 때 나중에 경험을 쌓은 뒤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3년 만에 그만두었지요.”

바로 유학을 가서 국제 관련 업무를 전공할 생각이었으나 “실무를 한 뒤 유학 가는 게 낫다”는 주변의 권유에 김앤장에서 2년 반 동안 일하다 유학을 떠나 2003년에 뉴욕대 법과대학원 국제법 박사를 받았다. 뉴욕주변호사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고부가가치 중재재판을 키워야

박 변호사는 현재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과 싱가포르국제중재원 중재법원 상임위원을 동시에 맡고 있다. 그는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국제중재에 관해 생각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중재 역사가 40년 되었다지만 국제 무역이 활성화된 10여 년 전부터 외형이 발전한 정도입니다. 대한상사중재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는데 분쟁을 행정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에서 그치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경우 법원에 가서 해결해야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수십 년간 소프트웨어를 쌓아온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초기단계지요. 국제중재를 산업으로 보고 키워야 합니다.”
국제간 거래가 많은 지금 분쟁이 생기면 모든 나라에서 국제중재재판을 받길 원하고 자연히 중재가 발달된 나라를 찾는다. 런던 국제중재법원이 의뢰받는 사건 80%가 영국과 관계없는 국제사건이다.

“중재는 고급 법률서비스 산업입니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중재인을 모셔서 국제법원을 확고히 한 겁니다. 우리 경제의 70%가 대외 관련이어서 우리 기업도 해외 중재법원에 많은 돈을 내고 중재를 받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기관이 있다면 우리 기업도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고, 외국에서도 우리를 찾아오겠지요. 그러려면 소프트웨어를 갖춰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중재기관을 국제적 수준이라고 인정할 만한 내용과 제도를 마련해야죠. 한류가 외국에 많이 퍼져나가고 있지만 중재 같은 고부가가치 지식산업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박 변호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위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영국이 식민지에서 철수할 때 법과 제도, 시스템을 두고 왔어요. 항해국가인 영국이 노동집약적인 배는 만들지 않지만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보험과 감리를 모두 영국이 합니다. 분쟁이 생기면 세계 각국이 영국에 와서 재판을 받으니 영국은 여전히 지배자이자 감독자의 위치에 있는 겁니다. 모든 걸 표준화해서 표준을 수출하고, 표준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계속 배출합니다. 영국 변호사의 절반은 외국에 나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술을 개발하고도 제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과학 쪽에서 우리가 스스로 한 게 많습니다. 일례로 핵융합장치의 모형을 우리가 만들었어요. 곧 상용화될 텐데 한국형 핵융합장치의 이름이 K스타입니다. 그런데 핵융합국제기구는 프랑스에 있어요. 한국이 핵융합장치를 만들었다면 학회와 산업회를 발족해 기준을 만들고 변호사들이 가세해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싱가포르가 그 일을 잘 하고 있지요. 뛰어난 리더나 과학자 몇 사람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다면 영국 같은 나라는 뛰어난 사람들 옆에서 생태계를 만들어 그걸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작업까지도 잘하고 있는 거지요.”

우리 정부도 지난해 ‘중재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중재진흥법)을 만들었는데 앞으로 잘 발전시켜 나가길 바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박 변호사를 비롯한 몇몇 법조인들이 세계 법률기관에 진출해 각개전투로 나라를 알리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김앤장을 비롯한 몇몇 국내 로펌에서 국제중재업무를 맡아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김앤장은 박은영 변호사를 비롯한 40명의 국제중재변호사들이 뛰고 있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2015년 하노칼과 IPIC인터내셔널이 한국 정부와 벌인 2000억 원대 투자자·국가간 소송 중재 사건에서 하노칼의 소송취하를 이끌어내 국내외에 이름을 알렸다. 이런 국제적인 분쟁사건에서 상대방의 소송취하를 이끌어 낸 건 승소와 다름없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로펌·변호사 평가 기관인 체임버스 아시아 퍼시픽으로부터 2008년부터 10년 연속 국제중재 분야 국내 로펌 1위로 선정됐다. 국제중재 전문지인 GAR은 2012년 김앤장을 세계 30대 로펌 가운데 24위로 평가했다. 이는 아시아 로펌 중 역대 최고 순위다.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할 때

한국 기업들이 김앤장을 비롯한 국내 로펌을 많이 찾고 있지만 여전히 해외에 중재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박은영 변호사는 한국 법조인들이 우수하기 때문에 앞으로 중재 분야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선진국 문턱까지 왔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후진국이나 변혁을 거친 나라들은 집단 학살이나 내전을 겪으면서 국제재판을 받아 국제 기준을 수용할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전쟁을 비롯한 격변을 겪었지만 우리 나름의 기준을 갖고 우리 식으로 해결해왔습니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국제기준에는 다소 둔감했던 게 사실입니다.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국제사회에 적응했는데 법조는 국내 중심으로만 발전해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적었고 우리 기준을 국제적으로 올리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어요. 법조계도 빨리 국제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중재시장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더 많은 법조 인력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변호사가 많아서 로스쿨을 줄여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는데 뛰어난 자원들이 국제화 될 수 있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죠. 싱가포르는 모든 변호사를 국제변호사로 만들어 전 세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전략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략을 잘 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15년 전에 국제전문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토종 변호사여서 불가능하다고 다 말렸습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도전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유학도 가고 외국어도 익히고 국제적 소양도 갖추며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중재를 사진 찍는 것에 비유한 그는 똑같은 사건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사진은 각도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음악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듯 법률가도 사물을 설명과 설득을 통해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데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법률 공부는 성실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실성에다 창의성을 갖춰야 A플러스가 됩니다.”

국제중재에 꿈이 있다면 ‘열린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이 분쟁이 생겨 중립지인 파리에서 재판한다고 할 때 중재인으로 벨기에인과 독일인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각 나라의 법이 다르니 증거를 어떻게 판단할지 예측불허입니다. 열린 생각이 중요하고 결국 남는 건 국제적 기준입니다. 합리적으로 답을 찾아가야 하니 열려있지 않으면 중재하기 힘들지요.”

두 나라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박 변호사는 한 달이면 1주일을 외국에서 보낸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로 업무를 볼 정도로 바쁜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시간관리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관은 존경과 불신을 동시에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그는 미가서 6장 8절의 ‘정의, 인자, 겸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박은영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시급히 국제중재, 더 나아가 국제적 분쟁 해결 실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세계 경제의 축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분쟁을 싱가포르가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힘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통일이 되면 국제중재법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실력을 키우며 준비해야지요.”

해외에 나가 일하면서 우리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고 한다.

“지난 정부들이 지식산업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을 만들어서 시도를 많이 했으나 제도화하고 시스템화하는 일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단기적 성과를 내려 하지 말고 멀리 바라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임기응변에 급급하기보다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 전략을 굳건히 밀고 나가야 발전이 있습니다.”

중재를 하면서 본 대한민국 수준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전 세계 200개 국가 중에서 10% 안에 들지요. 200개 나라 중에서 150개 나라는 자발적으로 꾸려나가기 힘든 형편이니 결국 50개 나라 가운데 중간 정도입니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데다, 극한의 환경을 거치면서 생존 능력이 탁월해진 만큼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자원은 ‘사람’이니만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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