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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중국으로부터 지키는 방파제-한미연합사

고성혁 군사전문저널리스트l승인2017.07.26l수정2017.07.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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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혁 군사전문저널리스트  webmaster@futurekorea.co.kr

1975년의 여름은 뜨거웠다. 그러나 대한민국 외교부와 국방부에는 긴장감이 흐르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그해 4월 30일 월남은 패망했다.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유엔 옵서버 국가로서 유엔에 대한 외교는 전적으로 미국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미국의 외교력과 군사력이 종이호랑이로 취급받던 때가 1970년대였다.

더 이상 유엔을 통한 미국의 입김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소련과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는 비동맹권의 제3세계는 유엔을 뒤흔들었다. 다수결로 결정되는 유엔 총회에서 제3세계 비동맹의 힘은 자유진영을 압도했다.

70년대 초부터 대거 유엔에 가입한 신생 비동맹국들은 대부분 과거에 영국, 프랑스 등 서방선진국의 식민지였다. 자연스레 비동맹은 서방자유진영에 대한 반감(反感)이 내재했다. 북한은 비동맹국가들을 외교전선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1975년 30차 유엔 총회는 북한외교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만했다. 북한은 비동맹권 국가들의 힘을 업고 유엔에서 오히려 미국과 대한민국을 압박했다. 1975년 8월 페루에서 개최된 비동맹 외상회의에서 월맹과 북한이 비동맹 회원국으로 가입이 결정되었다. 비동맹의 좌장격인 인도가 북한을 적극 후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는 친소국가였다.

유엔을 무대삼은 북한외교

 비동맹의 정식 회원국이 된 북한은 1975년 9월 22일 30차 유엔 총회에 결의안 제3390-B호 ‘유엔군 사령부의 무조건 해체, 주한 외국군 철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했다.

우리 역시 맞대응 차원에서  남북대화의 계속 촉구, 휴전협정 대안 및 항구적 평화 보장 마련을 위한 협상 개시 내용의 결의안 제3390-A호를 제출했다.

사실 남북간의 유엔에 대한 결의안 제출 외교전은 1974년 29차 유엔 총회에서도 펼쳐졌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한반도 문제는 단골 메뉴였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표 대결은 계속되어 우리 측이 상정한 ‘한반도 평화통일촉진을 위한 남북대화 재개 촉구 내용의 결의안’은 채택되었으나 북한이 친북적인 친소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상정했던 ‘외국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정치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그러나 1년 만에 유엔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친소국가들이 대거 포진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북한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그 결과 북한이 제안한 결의안 제3390-B호가 유엔 총회를 통과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미 양국에 매우 큰 충격을 줬다.

6.25 전쟁 휴전 후 북한을 위시한 공산권에서는 어떻게든 한국에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1975년 30차 유엔 총회는 북한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30차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북한 측 결의안 제3390-B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현재의 정전 상태가 그대로 계속하는 한 지속적인 평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간주하고, 한국에서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하고 한국의 자주,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한국의 국내 문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종식시키고 이 지역의 긴장을 제거하며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결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긴요하다.

1.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유엔 기치 아래 남한에 주둔하는 모든 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2. 정전협정의 실제적 당사자들에게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및 유엔 기치 아래 남한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의 철수와 관련하여 한국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유지,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로서 한국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도록 촉구한다.

3. 남북한에 대하여 남북 공동성명의 제원칙을 준수할 것과 군비증강 중지, 쌍방 병력의 동일 수준으로의 대폭 감축, 군사충돌의 방지 및 타방에 대한 무력불사용 보장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할 것, 이로써 국가의 자주,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한국에서의 군사적 대결을 배제하고 항구적 평화를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대해 거부권을 갖고 있는 미국은 “관계 당사자들이 정전협정 유지를 위하여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정부는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군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으나 미국 정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라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북한의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것에 한·미 양국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로써 미국은 유엔을 통한 한반도 평화유지의 한계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은 북한 측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10월 24일 ‘유엔의 날’(UN day)을 공휴일에서 배제했다.

▲ 지난 18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장 이취임식에서 한미연합사단 소속 한국군 장병이 행진하고 있다. / 연합

중국의 등장과 한미연합사 창설

1971년 10월 25일 26차 유엔 총회에서 대만을 밀어내고 중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대신에 모택동의 중국을 택했다. 이것은 한국에겐 악재(惡材)였다.

유엔에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북한을 후원했다. 게다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은 한국내 유엔군사령부에도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한·미 양국은 유엔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된 지휘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미 양군(兩軍) 지휘부는 1977년 10차 한미연례안보회의(SCM:Security Consul tative Meeting)에서 설치를 합의하고, 1978년 11월 7일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통합·지휘하는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상위기관인 한미군사위원회를 통하여 양국의 국가통수 및 지휘기구로부터 작전지침 및 전략지침을 받아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명문화 했다. 이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한반도 유사시 유엔의 승인이나 간섭 없이, ‘한미상호방위조약(韓美相互防衛條約)’에 의거 한.미 양국군의 힘만으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단일 군사지휘시스템을 확보한 것이다.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대신해 한미연합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하면서 작전권을 행사하는 지휘체계를 수립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함으로써 전쟁 발발 시 미군의 자동개입이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었다.

이후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에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지휘권을 넘기고 정전협정과 관련한 임무만 맡고 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의 가동, 중립국 감독위원회 운영만을 맡고 있다. 결과론적으로는 북한은 유엔을 통해 한국 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려다가 오히려 한미연합사라는 보다 큰 혹을 붙인 꼴이 되었다.

한미동맹의 결정체, 한미연합사와 전시작전권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미동맹의 결정체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 양국의 군사지휘부가 하나의 단일체로 결속된 것은 한미연합사가 유일하다. 참모부는 ‘책임의 균등한 원칙’에 입각해 동수(同數)의 한미 양국 고급장교로 구성된다.

1992년 12월 2일 한미연합사령부 예하 지상군 구성군에 대한 지휘권이 한국군에 정식 이양되었다.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사부사령관직을 맡고 있다.

한미연합사 조직은 미국의 동맹국들조차 매우 부러워한다. 한미연합사는 전면전을 가정한 한반도 전구(戰區:Theater)급 WAR-GAME 시뮬레이션 훈련과 기동훈련을 매년 실시한다.

이것은 미국의 동맹국 훈련 중에 한미연합사가 유일하다. 이 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나라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우방국 중에 극히 일부 국가만이 훈련을 참관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꽃인 한미연합사는 노무현 정권에서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한미연합사 해체는 무기연기에 재합의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유동적이다. 언제든지 다시 해체를 합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한미연합사 대신 유엔군사령부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 전시작전통제권 관련 일지
○ 1950년 7월 14일 한국,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 이양
○ 1954년 11월 1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작전통제권으로 용어 대체
○ 1978년 11월 7일 작전통제권, 유엔군사령관에서 한미연합사령관으로 이전
○ 19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 2006년 9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
○ 2007년 2월 23일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 2012년 4월로 결정
○ 2010년 6월 26일 한미 정삼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 2015년 12월로 연기
○ 2014년 10월 24일 46차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2020년대 중반으로 전작권 전환 재연기 합의

중국이 있는 한 대북 경제제재는 무용지물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은 대북제재결의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매번 결의안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중국이 북한을 후원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하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2016년 미국은 중국 한 업체를 적발하고 중국에 통보했다. 북한에 대량살상무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를 수출한 혐의다. 워낙 사안이 중대한 나머지 중국 공안도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북한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를 수출한 혐의로 중국 공안은 랴오닝훙샹(遼寧鴻祥) 그룹의 마샤오훙(馬曉紅·44) 대표를 체포했다.

마샤오훙은 선박회사도 소유하고 있었다. 중국 생활용품을 수출하고 북한의 석탄 등을 수입하는 형태로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채택 이후에도 대북 무역을 지속했다.

문제가 된 것은 순도 99.7%의 알루미늄괴(塊)와 산화알루미늄 분말이었다. 특히 알루미늄 분말은 미사일 엔진의 추력을 증가시키는 필수 물자였다. 랴오닝훙샹(遼寧鴻祥) 그룹 적발은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발사 실험을 주시한 미국의 추적 결과였다.

지금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또 다른 루트로 북한에 대한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운반 차량은 중국산이다.

이 역시 유엔 결의안 위반이다. 이 뿐만 아니다.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의 위력에 주목하고 있지만 미사일을 통제하는 핵심 부품을 과연 북한이 자체생산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탄도미사일의 정확도는 원형공산오차(Circular Error Probable·CEP)로 측정한다. 우리 군의 미사일의 공산오차는 수 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의 구형 스커드 미사일은 공산오차가 수백 미터에 달한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미사일이 사거리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대폭 향상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말은 미사일 자세 제어의 핵심 부품인 자이로스코프(gyroscope)의 정밀도가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용 자이로스코프는 자유진영 우방국끼리도 기술이전 제한품목이다.

우리나라도 군사용 초정밀 광학 자이로스코프 개발은 몇 년 전에 완료했다. 과연 북한이 초정밀 자이로스코프를 자체 개발했을지는 의문이다. 개발했더라도 그 기술은 분명 중국을 통해 들여왔을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아무리 유엔이 대북 결의안을 의결해도 중국은 절대로 북한을 놓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제재를 할 경우엔 흉내만 내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지원을 한다. 지난 G20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북한과의 관계를 ‘중국과 조선은 혈맹’이라는 말로 강조했다.

중국의 내정간섭 막는 역할도

사드 배치는 2014년부터 진행되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미 의회는 주한미군과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 예산을 배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언론플레이하다가 시기를 놓쳤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중반일 외교는 중국에게 틈을 줬다. 2015년 9월 3일 천안문 망루에서 시진핑, 푸틴과 함께 중국의 전승절 군사퍼레이드를 관람한 것은 박근혜 정부 군사외교의 패착이었다.

결국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은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했다. 한국의 정치권은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사드 배치에 부정적인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사드 배치는 계속 추진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한미연합사가 존속하는 한 군사적 문제에 중국의 개입은 힘들다. 결국 한미연합사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막는 방파제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文 정부가 지켜야 할  한·미 레드라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첫 주한 미국대사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6월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양국 모두 건너선 안 되는 레드라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중 핵심은 바로 중국과의 관계다. 빅터 차 교수는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압박 때문에 한미동맹을 약화함으로써 북한에 관여하거나 중국을 달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며 그런 접근 방식은 “전술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지만, 전략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양쪽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지원을 매우 제한된 선에서 미국이 눈감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만일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요구에 굴복한다면 그것을 한.미간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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