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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다 비켜! 독심술 도사 궁예가 돌아왔다!

‘증거는 없지만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는 희대의 판결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부 겸임교수l승인2017.09.11l수정2017.09.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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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부 겸임교수  webmaster@futurekorea.co.kr

그야말로 ‘세기의 판결’이었다. 동서(東西)에도 없었고 고금(古今)에도 없었으며 인간의 이성이 진보한다는 전제 하에 미래에도 절대 없을 일이다.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5년을 선고한 근거는 오직 하나 ‘묵시적 청탁’이었다.

묵시(默示). 사전적인 의미는 둘이다.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임’ 혹은 ‘(특히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계시를 내려 그의 뜻이나 진리를 알게 해 주는 일’이다. 이번 선고의 경우 둘이 다 쓰였다.

▲ @ 미래한국 고재영

증거 대신 초능력으로 판단한 재판부

판결문의 요지를 보면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말 없는 가운데 청탁을  주고 받았으며 재판부는 보지도 않은 그 비밀스런 장면을 신의 계시를 통해 부당한 거래가 오고 갔다는 것으로 알아차렸다는 설명이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 선다. 이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그리고 판사들이 모두 초능력자일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 초능력도 없는 주제에 어딜 감히. 그래서 세기의 판결이다.

아니, 전 세계 사법 역사를 새로 쓴 날이다. 초능력에 의한 인류 최초의 판결. 절대 비아냥거리는 거 아니다. 부러워서 그렇다. 그 놀라운 능력을 왜 나는 타고 나지 못했을까 샘이 나서 그런다.

재판부의 초능력은 디테일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명시적인 부정 청탁은 없었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당혹스럽다. 청탁은 ‘없었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형 선고’ 사이의 이 놀라운 간극 혹은 점프 컷. 당연히 이 부분은 초능력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뇌물 액수는 89억 원이었다.

89억 원. 큰돈이다. 8, 9억도 평생 못 만져볼지 모르는 입장에서 분명 엄청난 돈이다. 그런데 그걸 ‘묵시’적으로 주고 받은 사람들은 10대 경제 강국의 대통령과 연 매출 300조 원에 그 나라 수출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증시 시가총액의 약 30%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총수 후계자였다. 좀 웃기지 않는가.

오해의 소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겨우 이걸 달라 협박하고 그 대가를 ‘묵시’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그 둘이 세 번이나 만났다면 이건 인건비도 안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회동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아프리카 최빈국에서나 통용 가능한 뇌물 수수 액수인 것이다. 그래서 국내 언론에 꼭 부탁드리고 싶다. 이번 초능력 판결을 어떤 식으로 보도해도 좋은데 액수는 제발 말 안했으면 좋겠다. 신빙성 떨어진다.

재미있는 게 또 있다. 청탁을 주고 받은 건 박 전 대통령이었는데 돈은 최순실이 챙겼다. 이건 약간 일본 스타일이다. 야쿠자 ‘오야붕’은 직접 돈을 만지지 않는다. 직접 돈을 만지지 않는다는 말은 은유법이 아니라 직유법이다.

그들은 돈 자체에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경우 돈을 칼에 얹어 받는다. 돈 문제만큼은 초월해 있어야 권위에 투명성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해서 돈을 주고 받는 건 ‘꼬붕’들의 몫이다. 보스가 돈을 부하들에게 맡기는 이들이 경제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돈이 최순실에게 갔는데도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을 걸고넘어진 건 둘이 경제공동체라는 논리였다. 여기서 발생하는 게 ‘공모’다. 공모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작전을 짜고 역할을 분담한 다음 범행을 실행하고 그 받은 뇌물을 나누기로 한 증거가 포착되어야 한다. 증거, 당연히 없었다.

어떻게 돌파했을까. 논리가 이렇다. ‘공무원과 공모한 공무원 아닌 사람이 돈을 받은 경우 받은 돈이 꼭 공무원에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인데 참 납득하기 어렵다. 뇌물을 나누기로 한 증거도 없고 돈도 수중에 안 들어왔다면 대체 왜 공모를 한 거지?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일이다.

그리고 또 초능력이 이어진다. 증거는 없었지만 추론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초능력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따져 묻기가 어렵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능력을 통해 혐의를 확신한다는데 뭘 더 이상.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문

글의 제목을 보고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40대 이상의 독자라면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실 것이다. 최수종이 왕건으로 김영철이 궁예로 나왔다. 드라마 막판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궁예가 몰락해 가는 과정이다. 그때 궁예에게 찾아온 증세가 관심법(觀心法)이다.

혐의자를 앞에 세워 놓고 궁예가 ‘너의 마음이 보여~’ 하면서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것으로 궁예는 이 초능력인지 정신이상 합병증세인지를 남발하다가 최종적으로 인심을 잃고 만다. 증거도 없고 설명도 납득이 어려운데 ‘보면 알아’로 논리를 마감하는 재판부를 보며 궁예와 관심법을 떠올렸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그런데 재판부의 판결을 보다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올해 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그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읽었지만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파면함으로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했는데 대체 그 크기는 어떤 자와 저울로 잰 것일까.

법원에 가면 눈을 가리고 양 손에 칼과 저울을 든 동상이 서 있다.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인 디케로 라틴어로는 유스티치아(justitia)라고 하는데 영어의 저스티스(justice)가 여기서 나왔다.

세상의 모든 정의를 관장하는 것이 이 여신의 일이다. 판결을 기다리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죄를 묻고 그 형량에 따라 단죄하는 것이다. 누구는 눈가리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누구는 죄에 대한 심판인 칼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법 앞의 평등도 좋고 죄에는 벌이 따른다는 인과응보도 좋다. 그러나 눈가리개나 칼보다 더 중요한 게 저울이다. 정확히 근수를 달지 못한다면 눈을 가리는 게 무슨 의미이며 후속 조치인 단죄가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저울이 고장 난 디케는 맹목과 무자비한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올해 봄과 이번 여름 재판부의 저울은 디케의 고장 난 저울이었다. 더구나 이번 재판은 형사재판이다. 형사재판은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있을 때만 유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을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법률을 적용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유죄선고는 그와는 반대였다. 역시 세기의 판결이다.

불운(不運)은 유죄 사유?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불운이 겹쳤다. 왜 박 전 대통령은 하필 이재용 부회장을 불러 승마 지원을 ‘묵시’적으로 청탁했을까. 간단하다. 승마는 전통적으로 삼성의 거의 독점적인 후원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승마사(史)에서 삼성을 빼면 절반이 남을까 말까다.

그런데 하필 최순실의 딸이 말을 탔다. 이게 첫 번째 불운이다. 두 번째는 독대의 시기가 하필 경영권을 승계하던 때와 겹쳤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독대 1주일 전의 일이다.

세 번째는 대통령을 쫓아낸 이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상황을 따져 볼 때 아무리 무죄가 확실해도 그 권리의 보호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무죄면 박 전 대통령도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대체 왜 탄핵을 한 거지? 라는 질문에 현 정권은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초능력 재판부를 만난 것이다. 상급심 재판부 역시 고장 난 저울에 초능력 보유자일 경우 불운은 다섯이 된다. 불운이 다섯이면 피해가기 어렵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사적으로 근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모든 사람이 규칙을 존중하는 법치의 확립입니다.” 목소리 큰 집단,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법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우리 사회는 아직 근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재판은 세기의 재판이자 대한민국의 전 근대성을 만방에 알리는 역사적인 재판이자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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