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개헌 통해 ‘경제번영부’ 신설하자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l승인2017.11.24l수정2017.11.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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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webmaster@futurekorea.co.kr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이 각계의 지식인들을 각성시키고 있다. 미래한국은 이에 우리 사회 각 계 전문가들이 집필 편찬한 ‘오래된 새로운 비전’의 주요 논제를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각성 운동 차원에서 발췌 소개한다. (편집자 注)

▲ 지난 11월 8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지방분권 개헌촉구 국민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과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

지난 30여 년 간 한국의 정치권은 소위 ‘경제민주화’의 열병에 걸린 듯 입만 열면 모두 공평하게 잘사는 평등한 나라와 경제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정의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한국의 반(反)박정희 정책 패러다임에 시동을 걸었던 5공 정부 이래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는 세상의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여 공평한 세상을 이루겠다고 공언해왔다.

흥미롭게도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격차, 차별, 불평등이 형성된 현실을 합리적으로 설정된 공정의 법칙에 따라 해소해서 조화롭고 윤리적 상태로 발전 시켜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고, 국가의 존립 이유일 것이다.”(회고록 136쪽)라고 정의사회의 기치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 이후 어느 정부도 좌우이념의 차이를 떠나 경제운영의 방향에 있어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지금 갓 출범한 새 정부도-어쩌면 전두환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에 수용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예외가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경제는 공정하고 평등한 경제의 실현은 고사하고 오히려 저성장과 양극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서서 국내외의 온갖 반대 무릅쓰고 민족중흥의 깃발을 들고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 부흥시키고 나니, 그 이후 너도 나도 대통령만 되면 경제 살린다고 애를 써봤지만 제대로 경제 살린 대통령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으킨 경제에 무임승차를 하면서도 왜 박정희는 성공했는지를 연구하는 사람도 없다.

반(反)박정희의 기치 아래 선진국들의 정책을 베끼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뒤쫓은 지난 30여 년, 한국경제는 이제 저성장·양극화의 함정에 빠졌다. 개발연대에 ‘룸펜’이라 불리던 대졸 실업자들을 말끔히 해소하여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을 이룬 박정희 시대의 정책 패러다임을 청산하고 나니 이제 60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청장년실업사태와 양극화 사태에 직면했다.

한국경제의 성공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니 그 동안 왜 실패했는지도 모르고, 이제 앞으로 어려운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앞날이 참담하다. 정치인들은 표에 도움 된다고 허구한 날 가진 자에게서 빼앗아서 없는 자에게 나눠 주면 된다고 경제민주화니 동반성장이니 떠들어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지식인 사회는 정치권에 줄을 서서 한자리 노리는 사람들은 많으나 제대로 된 답을 내는 자는 별로 없으니 한국경제, 어디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정치인들의 정권쟁탈전에 성장을 멈춘 대한민국 경제와 쪼그라드는 중산층, 양극화의 비애를 어찌할 것인가.

한국경제의 최대 과제는 치솟는 청장년 실업을 막아내고 해체되는 중산층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왜 일자리 창출이 안 되고, 왜 중산층이 해체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문제에 천착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저 외국에서 실패하는 답만 베껴 내놓고 있으니 올바른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 이후 지난 30여 년 우리가 선진화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중산층 해체’를 목표로 내건 정권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럼 어찌하여 결과는 이리 정반대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상식 아닌가. 한국의 정치권과 지식인 사회의 진정한 문제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지난 30여 년 간 한국은 소위 국가균형발전이란 기치 아래, 수도권 규제와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통한 지역 균형,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보호를 통한 기업 생태계 균형, 노사 동등의 경영민주화, 저소득층 복지 확충을 통한 사회 균형, 격차를 없애겠다는 평준화 교육과 지방대학 육성을 통한 대학 평준화 등 온갖 균형정책들을 쏟아냈다.

최근에는 온갖 명목의 복지대책을 쏟아내면서 가히 ‘모두가 잘사는 동반성장의 나라, 모두가 중산층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총력을 기울여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동안 소득 분배는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고, 성장은 북한 정도밖에 못하고 모두가 ‘헬 조선’을 외치고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선거 때마다 경제적으로 잘살게 해준다 하여 던진 유권자들의 표가 역으로 경제에 독이 되어 돌아오는 이 현실을 그냥 두고 봐야만 하는가.

평등주의 정치가 죽어야 경제와 중산층이 산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기업을 경제 불평등의 원천으로 보고 기업 성장을 적대시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1인 1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평등이념과 친구가 될 소지를 안고 있다. 그래서 특히 평등주의 민주정치와 경제번영은 상극이다.

민주정치제도는 인간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해 낸 제도일 뿐 빈곤 탈출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고안된 제도가 아니다. 인류는 아직도 개인과 국가의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이론이나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늘날 민주정치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류의 4분의 3이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민주정치가 발달하고 있으나 저성장·양극화가 심화되고 해결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평등이념은 사치재와 같아서 경제성장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경제평등과 경제민주화에 집착한다. 오늘날 세계 정치가 모두 사회주의 평등이념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로 귀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도 30여 년 전에 도입된 경제민주화란 유사 사회주의 이념이 2만 달러 소득을 넘으면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제 사회주의 경제평등 이념은 전 세계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다. 불행하게도 민주주의 정치는 그 1인 1표라는 속성상 사회주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기 어려웠다.

중산층은 자본주의 경제가 발명한 주식회사 기업 속에서만 창출되는 특이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기업의 성장이 중산층을 만들어 내는 장치다. 자본주의적 기업이 없는 농경사회나 사회주의 사회에는 중산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과 기업의 본질은 구성원들의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별을 통해 인간에게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 부여를 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일자리와 중산층을 만들어낸다. 민주정치가 이런 차등과 발전의 원리와는 반대로 사회주의적인 나눠 먹기식 평등보상 제도를 만들어내면 시장과 기업은 작동을 멈추고 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멈춘다. 그 결과 중산층은 사라지고 경제는 하향평준화 되어 양극화가 심화된다.

지난 반세기 이상 국민 모두를 중산층으로 만든다는 사회주의 평등 이념 하에 열심히 추진한 소득재분배, 노조활동 강화, 반기업적 정책에 기초한 복지제도가 오히려 중산층을 죽이고 양극화를 초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력과 성과에 관계없이 정치적 힘에 의해 평등한 결과를 보장하겠다는 사회에는 저성장과 양극화만 만연하게 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지난 50~60년간 수정자본주의, 복지국가 이념 하에 소위 진보적 평등 이념이 주류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화당과 민주당 등 기성 정치권 모두가 평등주의의 노예가 되었다. 결과는 하향평준화와 백인 중산층의 몰락이었고, 이들의 반란이 트럼프의 당선을 가져온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자체 모순인 계급투쟁과 자본수익률의 저하로 해체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마르크스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번영을 먹고 자란 민주주의 평등이념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

지난 세기 실패한 무산자 혁명에 의한 사회주의 실험을 1차 사회주의 혁명기라 한다면, 현재의 민주주의에 의한 사회주의 광풍은 2차 사회주의 혁명기라 부를 수 있다. 사회주의 평등이념에 휩쓸린 민주정치를 바로잡지 않고는 성장과 중산층 복원은 불가능하다.

‘경제번영부’를 헌법에 신설하자

헌법개정 문제가 등장하면 정치권은 항상 권력구조에 관심이 높다. 권력이 가져오는 지대를 서로 분점하기 위한 소위 권력 분점에 관심이 많다. 지금의 문제 많은 대통령 5년 단임제도 바로 권력 분점 묵계의 결과임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요즘 4년 중임제 의견이 많지만 현재의 5년마다 벌어지는 죽기 살기 식 정권쟁탈 투쟁이 4년마다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도록 하거나 내각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정치권 행태로 볼 때 확실한 대안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역으로 87년 헌법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삭제한 반면 국회의 대통령탄핵소추권은 유지하고 있어 의회권력이 더 우위에 있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이를 증명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국회 때문에 대통령의 통치에 어려움이 크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권력 구조보다도 국가의 번영과 개개인의 경제적 삶을 윤택하게 하는 헌법인가 아닌가가 더 큰 관심 사항이다.

필자는 평소부터 ‘정치의 경제화’가 번영을 가져오고 ‘경제의 정치화’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해 왔다. ‘경제의 정치화’란 ‘1인 1표의 민주정치가 초래하는 경제정책의 사회주의화 경향 때문에 시장의 신상필벌의 차별화 기능이 무력화되어 똑바로 세워져야 할 경제적 사다리가 ’평평하게 눕혀지는 상황’을 말한다.

반면 ‘정치의 경제화’는 민주정치의 사회주의화를 막아 신상필벌의 차별화 기능을 보강함으로써 경제적 사다리를 바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의 동반성장은 반공을 국시로 내걸고 정치를 경제화한 결과인 반면, 오늘날의 경제 저성장과 양극화는 지난 30여 년 동안 소위 87년 체제하에서 반공을 버리고 경제민주화의 깃발 아래 경제를 정치화한 결과다.

필자는 그 동안 헌법 개정을 논의하려면 권력 구조보다 87년 헌법 제 119조의 ‘경제장(經濟章)’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해 왔다. 우선 경제민주화조항이라 불리는 현재의 제2항을 대폭 수정하되 경제민주화를 삭제하고 대신에 정치의 경제화를 담보하기 위해 시장기능의 본질이며, 경제번영의 기반인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도입하고, 국가가 경제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새로운 항을 신설하여 이 원칙을 지켜 경제번영을 책임질 ‘독립된 집행부’로서 ‘경제번영부’를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민주정치체제의 보편적 정부조직은 행정, 입법, 사법의 3부를 표본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행정을 분리하여 경제만을 다루는 ‘경제번영부’를 제4부로 신설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비경제문제를 다루고, 국민경제운영은 경제번영부가 담당하도록 하여 경제의 정치화를 막는다는 발상이다.

제4부는 대통령은 물론 국회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하여 경제번영의 근본 원리인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 시장원리’를 구현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제번영부는 한국은행보다 상위기관으로서 거시통화정책기능은 물론 미시경제정책기능을 포괄적으로 수행하되, 지금의 사법부와 유사한 독립성이 보장되는 정부기관이어야 한다.

헌법에 경제운영의 원칙을 천명하고 이 원칙하에 경제번영부가 경제를 운영하도록 전권을 위임하되, 국회의 입법기능 중 세세한 경제 관련 입법권은 최소화하여 경제번영부가 정치로부터 독립하여 국민경제를 운영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경제운영의 원칙’에 합의하고 경제와 경제 아닌 사안을 정의하고 경제 사안을 국회권력이나 일반 행정권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민주주의 정치의 맹점을 시정한다는 시각에서 논의해야 한다.

경제번영부의 기능

경제번영부는 우선 거시정책 기능과 미시적 경제발전제도 정책을 담당한다. 거시정책의 경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기능과 정부의 재정기능 중 거시안정화정책 기능부분을 통합하여 통화재정정책의 정책 믹스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한다. 미시 경제발전정책의 경우 국민경제의 인센티브 구조를 결정하는 경제제도 정책을 담당한다.

국가의 미시적 공공정책은 경제(발전)정책과 사회정책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동안 경제학의 상식은 경제정책을 경제성장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사회정책은 저소득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이나 보편교육정책 등 소위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사회적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 분류해 왔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은 경제적 효율을 강조해 온 반면, 사회정책은 사회적 형평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사회정책은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N분의 1로 공평하게 공공자원을 배분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상식이 되었다.

경제번영 관점에서 보면 경제정책은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 원리’에 따라 성과에 기초해서 차별적으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경제정책마저 평등주의 함정에 빠졌다.

1987년 정치 민주화 이후 사회정책이 강화되면서 과거의 차별적 지원정책이 경제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사회정책화 되었다. 개발연대 이후 중소기업육성정책, 김대중 정부의 벤처육성정책, 노무현 정부의 10대 동력산업 육성정책,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정책 등의 산업정책들이 형평과 균형의 이념에 따라 지원됨으로써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표를 의식한 정치권과 정부가 평등과 형평, 균형 이념을 명분으로 내세워 경제정책을 왜곡 변질시킨 결과다.

경제번영부의 미시적 경제발전제도 정책은 두 가지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경제정책을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 정치화되어 사회정책으로 변질된 중기지원정책, 산업정책, 지역개발정책 등 경제발전정책을 성과에 따른 차별적 지원정책으로 정상화시켜 경제 내의 성장유인을 살려내야 한다.

사회정책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모델삼아 인센티브를 차별화함으로써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나 집단에 더 큰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최근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취약계층의 사회역량강화정책(social empowerment policy)도 차별화된 지원정책을 통해 성과를 높여야 한다. 개발연대 한강의 기적은 이 원리의 실천 결과다.

▲ UCLA대 경제학 박사 /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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