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노무현’ 꿈꾸는 원석 같은 남자
‘우파의 노무현’ 꿈꾸는 원석 같은 남자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1.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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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세상을 혁신하고 바꿔야죠” 원영섭 법률사무소 집 대표변호사 [인터뷰]

자유한국당 서울 관악갑 당협위원장 원영섭 변호사가 눈에 들어온 건 순전히 서울 관악이라는 지역에 깃발을 꽂은 젊은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관악구는 보수정당에게는 그야말로 ‘동토의 땅’과 같다는 순전히 개인적 편견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보수정당 출신 젊은 정치인이 당선된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래도 ‘아니, 스펙도 빵빵하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왜 하필 그곳에?’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정치를 꿈꾸는 젊은이들도 대부분 양지만 좇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따분한 추세를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솔직함과 순수함에 조금 놀랐다. 그의 도전은 성공할까? 그는 우파의 노무현이 될 수 있을까? 건설부동산전문 변호사, 한국당 관악갑 당협위원장 타이틀로 서초 법조타운, 관악구를 오늘도 열심히 누비는 원 변호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온도 조절이 안 되는 화끈한 중앙난방 덕분에 연신 땀을 닦아가며 답변하는 환한 미소 속엔 그만큼 뜨거운 열정도 느껴졌다.

- 가장 진부한 질문 가운데 하나이지만 쓸모 있는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많을 텐데 굳이 변호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정치하려고요.

- 의외의 답변인데요.

대학을 서울대 건축학과에 갔어요. 가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거예요. 저는 훌륭한 건축가가 되겠다가 아니었고, 세상의 건축을 바꾸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집을 지어야 되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좀 삐딱한가요?

- 지금 집 짓는 방식이 어때서요.

제 고향이 부산이에요. 딱 봐도 다 쓰러져가는 아주 비루한 달동네에서 살았죠. 보기만 해도 힘들고 난개발로 어지럽고. 이런 집들은 다 밀고 쌔끈하게 지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3때였어요. 원래는 의대 지망이었어요. 시골에서는 이과를 가면 당연히 의대를 간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서울대 의대를 지망하다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유치해요. 그때는 다들 당연히 서울대 의대가 제일 세다고 생각했는데, 종로학원에서 나온 배치표를 보니까 글쎄 아닌 거예요. 서울대 건축학과 열풍이 불었어요. ‘아니, 건축학과가 더 세?’ 이상했던 거죠. 그래서 건축학과에 대해 알아봤어요. ‘아, 난 이 학과를 가야 되겠다’ 마침 우리 동네도 엉망이고 내가 좀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비루한 달동네 출신이라고 하는데, 가정 형편이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나 봐요.

아뇨. 저는 무수저 중 무수저 출신이에요. 원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가난한지 잘 몰라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다가 뒤늦게 ‘우리 동네가 이렇구나’, ‘우리 동네가 못 사는 동네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안철수 아버님이 부산 빈민촌 의술을 펼치러 갔잖아요? 그 동네가 우리 동네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감기 걸리면 그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어요.

- 거기 유명한 동네 아니에요?

영화 <친구> 보셨어요? 그곳이에요. 올드하다고 할까 전통이 있다고 할까,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인데 정겨운 곳이죠. 거기 가면 <친구> 촬영지라고 소개해 놓고 있어요.

- 그래서, 서울대 건축학과에 가니 어떻던가요.

제가 생각하는 서울대라는 학교는, 세상을 바꾸고, 혁신하고, 이끌고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근데 가보니 다 소시민인거에요. (웃음) 학점 잘 따고, 좋은 회사 취직하고 그런 생각들을 하는.

- 원대한 포부와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실망했겠네요.

학교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청년이 원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아니에요. 건축설계소도 건축주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고요. 여기도 보세요. 왜 다들 성냥갑처럼 짓겠어요. 이걸 바꾸려면 정책이 바뀌어야 하죠. 3학년까지 공부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에요. ‘야, 이거 내가 제도하고 역학 계산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 어쩐지 정치하려고 변호사가 됐다는 말과 연결되는 거 같은데요.

사연이 있죠. 원래는 건설 정책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려면 기술고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그걸 알아봤죠. 근데 알고 보니 기술고시가 행정고시의 ‘시다바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제 생각입니다. (웃음) 제대로 된 보직도 못 받고요. 기껏해야 무슨 강원도 박물관 관장으로 가는 정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행정고시로 눈을 돌려 알아보니 행시는 정치의 하부 구조가 돼 있더라고요. 영혼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 사람들이 이래서 서울대 법대, 판검사, 판검사 하는구나.’ 그때 깨달은 거예요. ‘법을 바꿔야 세상의 기준을 바꿀 수 있구나. 그럼 사법시험을 해야겠다’ 정치는 법을 만드는 과정이고, 법에 정통해야만 정치를 할 수 있고, 내게도 자격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1차 합격했어요.

- 얼마 만에 합격한 거죠? 상당히 빠른 것 같은데.

1차는 빨리 됐어요. 대학 3학년 마치고 1999년 7월에 입대해서 2001년 9월에 전역했는데, 2002년 2월 말에 사법시험 1차 합격했으니 5개월 만에 합격한 거죠. 굉장히 빨리된 거죠. 그때 합격하고 바로 2차 합격했으면 진짜 기록 세웠을 텐데. (웃음) 1차 합격한 다음 자만심이 들었어요. ‘별거 아닌데? 조금만 하면 되는군’ 그러다 떨어지고 해거리로 3시 했는데,  그때 군필 중 제가 최연소 합격자로 알고 있어요. 비공식 확인이라 단정해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건축 쪽 변호사하면서 로펌에 1년 정도 일하다 독립해 사무실 연 지 횟수로 한 10년 됐습니다.

- 변호사도 호시절이 지나서 어려운 변호사들도 많던데, 운영은 괜찮나요?

건설 쪽은 전문적이라서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에요.

- 블루오션을 발견한 거군요?

진입 장벽이 높다는 건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에요. 초창기 때는 정말 숨이 넘어가겠는 거예요. 봐야 할 자료는 너무 많지,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가격을 비싸게 부를 수도 없지, 죽겠더라고요. 그래도 고생해 가며 사건을 10년간 맡아 일하면서 나름대로 효율성도 갖춰졌고 노하우도 쌓였습니다.

- 좀 뜬금없지만 고승덕 변호사까지는 몰라도 공부의 달인에 속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 연애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시촌에서 아이 엄마를 만났어요. 아이 엄마는 의약 쪽으로 가려고 준비하다 저 때문에 접었어요. 집에서 살림하면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두 아이 열심히 키우고 있어요.

- 고시촌 커플은 어떻게 연애하는지 궁금하네요.

힘든 일이 정말 많았어요. 고시 결과 기다리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옆에서 저를 많이 도와줬는데, 스트레스 받을 땐 같이 탁구 치면서 연애 했죠. 처음 만난 날 잊을 수가 없어요.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서 아내한테 ‘당신과 꼭 결혼할 겁니다’라고 말했었는데 결국 성공했습니다. (웃음)

- 고전적인 모범생의 연애 스토리군요. 그나저나 어떻게 정당에 입당하게 됐어요? 정치가 목표라고 하긴 했는데, 계기가 있었어요?

정당인이 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지난 4·13총선 전에 입당하고 예비후보로 바로 공천 신청하고 출마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한 민변 로펌, 겪어보니

- 새누리당 시절 입당했군요. 보수정당을 선택한 이유는 이념 때문인가요?

원영섭 법률사무소 집 대표변호사
원영섭 법률사무소 집 대표변호사

본래부터 전 이념적으로 확고했어요. 대학 다닐 때도 친구들이 멋있게 보는 좌파 논리가 저는 너무 이상했거든요. 90년대는 학생운동의 시대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때도 그런 운동권 스타일은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엔 굉장히 호의적이면서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이나 정치적 상대에게는 굉장히 적대적이라든지 하는 태도는 전혀 납득할 수 없었어요.

꿈을 나눈다고 하는데, 그게 나눠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공산국가들이 망하면서 보여줬잖아요? 그러는데도 계속 그게 맞는다고 우기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결론에만 함몰돼 있고 굉장히 권위적이에요. 저는 보수정당이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곳에 와서 보수가 더 자유롭다는 걸 느꼈어요. 개방적이죠. 지금도 전 당에서 할 말 다 하는 편입니다.

- 자유한국당이 권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좀 있는데, 또 그런 분위기는 아닌 모양이군요?

민주당 분위기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제가 느끼기엔 그래요. 이렇게 일례를 들면 간단할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 몸담았던 법무법인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곳 분위기가 아마 지금 여권과 비슷할 거예요. 제가 면접보고 처음 입사한 로펌이 ‘한결’이라고 민변 로펌이었어요. 제가 그런 성향이 아닌데, 합격해서 딱 가보니까 민변이었던 거죠.(웃음)

- 와,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진 경우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엄청난 우연이네요.

처음엔 뭣도 모르고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그곳도, 대학 때 제가 좌파들에게 느꼈던 모순과 정치적 담론으로 가득한 거예요. 조직이 가진 전력 중 정치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았어요. 끝도 안 나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제가 대학 때 운동권들을 보면서 느꼈던 비슷한 행태들이 거기서도 벌어지더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그때도 제 우파 성향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에 로펌에 계신 분들도 저의 스타일을 알고 계셨죠.

그렇지만 갈수록 이게 뭔가 싶었어요. 개념을 확장해서 국가라고 생각해 보세요. 국가가 그런 식으로 흘러갈 때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가, 시간이 가면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데, 갈수록 ‘이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확신만 더 생기는 거예요. (웃음) 로펌을 나온 건 제가 다른 야심이 있어서이지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때 제 생각이 많이 정리가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곤 그 이후 새누리당이 하는 걸 유심히 본 거죠. 물론 국정교과서 정책과 같이 약간 이상하게 처리한 것도 있지만 공무원연금개혁과 같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걸 보면서 ‘대단하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무원연금개혁은 선거에서 지겠다고 하는 정책이에요. 근데 그걸 밀어붙이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

- 말이 나온 김에, 변호사님 지역구 이야기 좀 하죠. 어쩌다 관악갑이란 보수에겐 ‘동토의 땅’인 곳에 깃발을 꽂게 되셨어요?

이것도 제가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게 당의 이념이 저와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지역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거기서 제가 좀 살았잖아요. 대학도 다니고 고시 공부도 했고, 연수원 끝나고 결혼한 다음 낙성대 쪽에 와서 오래 살았거든요. 현재도 살고 있고요. 물론 중간에 잠시 다른 곳에 가기도 했지만요. 관악구는 낙후돼서 고칠 부분이 많아요. 반대로 그만큼 잠재력과 가능성이 큰 지역이기도 하죠.

- 고3 시절 부산 고향 달동네를 보면서 느꼈다는 도전의식이 또 생긴 거로군요.

그런가요? 어쨌든 저는 도시계획에서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원석 같은 동네인데, 낙후돼 있는 게 안타까웠던 거죠. 제가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당선 가능성인데, 이 대목에서 제가 어쩌면 또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어요. 말하자면 이런 거죠. ‘아니, 지도자라 하면 원래 힘든 곳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거요. 이곳이 아무리 어렵다지만 내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저는 희망을 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씩씩하게 가고 있지만, 만약 안 된다면 그 이유는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 어떤 면에선 확실히 이상주의자 같아요.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닌가요?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어요. 그 본능은 사실 나머지 모든 것을 누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본능이라고 봐요. 문제는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느냐인 거죠. 그리고 지역주의라는 것도 말을 먹고 사는 괴물 같은 거라서 그걸 가지고 싸워야 정치적 의미가 있지, 순응만 한다면 대체 뭘 바꾸겠다는 거죠?

- 우파의 노무현이 되겠다?

처음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나도 그런 스타일링을 해야 되나 싶어요.(웃음) 아무튼 관악이 보수정당 정치인으로서 불리한 지역이라는 문제가 제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돌이켜 보니 또, ‘내가 그때 너무 순진했나’ 싶은 거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상황은 벌어졌는데. 여기서 살아남아야죠.

- 그런 생각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그런 노력이 쌓이고 커져서 단단한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동감이에요. 전 그런 도전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왔어요. 근데 1년 반 넘게 당에서 생활해오면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저는 나이 드신 분들은 노련미, 경험에서 나오는 어떤 능력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보기에 당이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걸 보면서, ‘아 그분들이 어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이유가 있겠지’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근데, 글쎄 이 분들이 원래 생각이 없던 거였어요. 처음엔 목소리를 내기보다 듣고 배우자는 심정이었는데, 그걸 깨닫고는 이후로 저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작은 소리에 불과해서 들리지도 않겠지만요. 안타까운 건 그런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뭐 대표도 아니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말이죠.(웃음)

- 자유한국당 생리가 젊은이, 밑의 후배가 치받는 거 안 좋아하죠?

잘 치받는 게 힘든 거죠.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해요. 말이 되게 치받는 것. 예를 들어 정치란 게 마약 같아서 정치인들은 대개 주목받고 싶어 하잖아요. 근데 주목받는 방법으로 무리수를 자꾸 두면 정치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죠. 문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면 사람들이 잘 주목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티느냐 결국 이 문제죠. 이번에 홍준표 대표와 류여해 전 최고 사건, 전 홍 대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런 모습들이 우리 자유한국당의 현 주소라는 거죠.

- 78년생, 아직 만으로 30대시죠? 젊은 정치인이니 젊은층에 대한 이해도 상대적으로 깊을 것 같은데요. 한국당이 젊은 친구들에 인기가 없는데 그 오래된 숙제,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세요?

우리가 젊은층한테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제가 젊은 애들한테 입당원서 받아보면 다 맞다고 그래요. 처음엔 아니었죠. ‘자유한국당 쪽팔리는데요’ ‘남들이 알면 안 되는데요’ 이래요. 근데 이야기를 나누고 제 설명을 들으면 그 친구들이 끝에 가선 맞다고 받아들여요. 우리 자유한국당에는 젊은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메시지가 많아요.

문제는 메신저죠. 지금은 롱패딩에 후드를 뒤집어쓰는 게 스타일이 맞잖아요. 근데 귀가 춥다고 드라마에 나오는 6·25 때나 쓰던 토끼털을 써 봐요. 귀는 따뜻하겠죠, 쪽팔려서 그렇지. 스타일이 전혀 안 살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자유한국당 메신저들이 지금 젊은이들한테 6·25때 쓰던 토끼털을 한번 써 보라고 권유하면 곤란해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은 한국의 아파트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건축학 공부하셨고, 관심도 많으신데 실제 세계에 나가 유명 건축물 많이 보셨어요?

안 가봤는데요.

- 심플한 답변이네요. 안 가봤어도, 공부는 하셨으니, 보기에 어떤 건축물이 가장 아름답던가요?

우리나라 아파트요.

- 우리나라 아파트요?

우리나라 아파트가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해요.

- 외국이나 건축 전문가들은 흔히 한국 아파트가 흉물이라고 하지 않아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한국 아파트는 공동주택의 극한을 이뤘어요. 우리가 우리 것을 스스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파트 문화가 딱 그 경우죠. 지금 건설 수출 부문에 신도시 수출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어요. 이게 반응이 엄청 좋은 거예요. 신도시 수출은 실제론 아파트를 근거로 하거든요. 이라크에도 10조짜리인가 신도시 건설을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데, 현지 사람들이 이 아파트를 보고 놀라는 거예요.

아파트는 기능, 활용도 등 여러 기능과 아이디어를 축적시킨 거거든요. 외국에서도 아파트를 기초로 한 도시계획 전체를 수입하려는 거죠. 게다가 LH공사와 같이 이런 트렌드를 만들어갔던 메인 척추가 있어요. 외국인도 한국 아파트 살다 다른 나라로 가면 불편하다 그래요.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다는 건 그만큼 검증됐다는 이야기예요.

- 우리나라 아파트를 최고의 건축물로 꼽는다는 말씀 인상적이네요. 최종적으로 꿈이 뭐예요? 정치인으로서요. 대통령인가요?

아휴, 아직 그런 말 하긴 너무 이르죠. 전 제 메시지가 생명력을 갖고 남기 바라요.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제 메시지가 실행이 돼서 사람들이 행복해할 수 있는 그런 거요. 메시지라는 건 실현 가능해야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새롭기도 해야 하고요. 생명력이 있는 메시지는 계속 살아 남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 힘이 있는 권력자가 이 메시지를 가지고 ‘이렇게 바꿔 볼까, 저렇게 바꿔 볼까’ 하고 요리를 하겠죠. 제 메시지가 그런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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