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 회원 된 '천안함 프로젝트'의 정지영 감독
예술원 회원 된 '천안함 프로젝트'의 정지영 감독
  • 조희문 영화평론가
  • 승인 2018.12.0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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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신성일 배우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정지영 감독에게 ‘예술원 회원이 되신 것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축하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며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보다 활동 경력이 오랜 선배들이 많은데 먼저 된 것이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뜻인 듯 했지만 표정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예술원 회원은 지명이나 임명제가 아니어서 본인이 가입 신청을 해야 심사 대상이 된다. 일단 본인이 신청을 했고, 단번에 가입 결정이 난 것이니 쟁쟁한 경력을 가진 선배들을 제쳐서 미안하다는 듯한 언사도, 어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도 액면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명쾌하지가 않다.

최근 정지영 감독이 예술원 회원이 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가 예술원 회원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는거냐 라며 긍정하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경력도 경력이냐’, ‘좌파들의 예술원 점령이 시작되었다’는 식의 한탄이 더 많이 들린다.

예술원법의 회원 가입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예술 경력이 30년 이상이며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제4조)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1982년에 ‘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라는 영화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법이 정한 경력 기준을 채우기는 한다. 하지만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이라는 규정에도 적정한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가 영화계에서 활동한 경력 중 상당 부분은 ‘예술가’라기 보다는 ‘운동가’의 이미지가 더 강해 보이는 탓이다.

정지영 감독

1946년생이니까 올해로 72세다. 원로 대우를 받을 만한 나이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영화활동을 했던 인물들 중에서 예술원 회원이 되지 못한 경우는 많다. 영화감독 중에서는 정진우, 최하원, 조문진, 이두용, 이장호 등이, 시나리오 작가 중에서는 송길한, 배우 중에서는 윤정희 등이 지난 몇 년 사이 회원 가입 신청을 했거나 자천 타천으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정지영 감독은 그보다 한 세대 쯤 아래로 꼽힌다.

대학을 졸업한 정지영은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김수용 감독 연출부에 들어가는 것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1982년에 감독 데뷔를 한 이후 ‘추억의 빛’(1985) ‘거리의 악사’ ‘위기의 여자’(1987) 등을 차례로 감독했지만, 여러 신인 감독 중의 한명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영화가 아니라 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의 투쟁과정에서다.

1988년 영화법을 개정을 계기로 외국영화의 국내 직접 상영(직배)이 가능해졌고, 영화계는 직배가 한국영화를 고사시킬 것이라며 격렬하게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정지영은 반대투쟁의 행동대 역할을 했고, 직배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 안에 뱀을 풀어놓는 일까지 실행했다. 뒤늦게 발각 나 파문을 일으켰고, 구속으로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스크린쿼터폐지 반대 운동, 영화법 폐지와 영화진흥법 제정 운동 등 영화계의 논란이 계속될 때마다 그는 중심에 있거나 좌장 역할을 했다. 그러는 사이 정지영이란 존재는 한국영화인협회로 대표되는 주류 영화계와 맞서는 ‘진보’ 또는 ‘좌파’ 운동권 그룹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영화 경향도 바뀌었다. ‘남부군’(1990)에서는 6·25 전쟁 중 지리산으로 피신해 유격 활동을 벌인 북한군 빨치산 이야기를 헌화라도 하는 듯 묘사했고 ‘하얀전쟁’(1992)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후유증에 시달리는 귀환병들을 통해 월남전 참전이 잘못된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부러진 화살’(2012)은 한국의 사법부가 법과 정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비난하며 같은 해에 내놓은 ‘남영동1985’는 중앙정보부가 얼마나 잔혹하게 무고한(!) 민주 투사들의 인권을 유린했는지 자세한 고문 과정을 통해 재현한다.

제작자로 나선 ‘천안함 프로젝트’(2013)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한다며 모든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2017)은 학생들에게 대한민국 건국과 성장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보수 세력의 빗나간 권력욕인 것처럼 비판한다.

예술원 회원의 자격은 무엇일까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예술계 인사들의 예술원 회원을 향한 열망은 뜨거울 정도다. 예술가 여정의 마지막 완성이라고 여기는 수준이다. 평생을 헌신해온 자신의 활동에 대해 공인받는다는 자부심이 있고, 얼마간의 수당도 받는다. 국가가 인정하고 후원하는 국립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6·25 전쟁이 멈춘 이듬해인 1954년에 설립된 예술원은 문학(정원 28명 / 현원 25명), 미술(정원 25명 / 현원 18명), 음악(정원 22명 / 현원 21명), 연극·영화·무용(정원 25명 / 현원 24명) 등 4개 분과로 구성하고 있으며 정원은 100명이다. 당초에는 25명 정원으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분야별 활동 인원이 많아진 것을 반영하려는 듯 50명(1966), 65명(1981) 75명(1988), 100명(1996)으로 정원이 확대되었다. 6명의 회원을 배당받고 있는 영화 부문에는 영화감독 김수용, 임권택, 변장호, 정지영 배우 남궁원, 김지미가 회원이다. 영화 부문 회원이었던 김기덕 감독(1934-2017)이 지난해 타계하면서 공식이 된 자리를 이번에 정지영 감독이 채운 것이다.

회원 가입은 각 분과의 추천을 받아 총회에서 과반수의 출석과 과반수의 찬성으로 인준한다. 규정은 그러하지만, 각 분과 또는 부문별 회원들이 참석하는 회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신규회원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총회는 분과별 후보를 추인하는 요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우선하여 분과별 후보 추천을 받는 것이 승패의 분수령이다. 예선이 곧 결선인 셈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보듯 영화계 또한 감독, 배우, 시나리오, 촬영을 비롯한 기술 분야 등의 직능별 구분이 심하고, 개인간 호불호가 엇갈리는 경우도 흔하다. 누군가를 추천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내면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지난 수년간 회원 가입을 시도한 경우들에서 객관적으로는 경력이나 평판이 충분해 보이는데도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견제가 작동했다고 보는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예술원이 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계에서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위상이 높았을 뿐 배우나 그 밖의 기술 분야는 기능직 보조원 정도로 인식할 만큼 대우가 달랐다. 카메라맨은 감독이 주문하고 지시하는 사항만을 이행할 뿐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동안 12명의 회원이 타계했는데, 감독이 7명(이병일, 안종화, 김소동, 이규환, 김기영, 유현목, 김기덕), 시나리오 작가 4명(오영진, 최금동. 김지헌, 신봉승), 배우 1명(황정순)이다. 감독이 압도적으로 많고 배우는 현재 회원을 포함하더라도 3명에 지나지 않는다. 스타 중의 스타로 주목 받았던 신성일, 그의 오랜 파트너이자 부인인 엄앵란, 가난한 50-60년대를 위로했던 조미령, 부흥기 여배우의 위상을 높인 윤정희, 고은아를 비롯하여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미희, 한국영화 기업화에 기여한 고 신상옥, 최은희 부부는 예술원 회원이 되지 못한 경우다.

국가이념을 바꾸겠다는 이들이 예술계도 접수

현재 영화부문의 회원 구성이 감독 중심으로 기울어 있는 것은 초기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배우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보였다고 할 수 있지만 다양하게 전문화하고 있는 현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현재의 구성은 시대 변화를 담지 못한 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보인다.

전체 회원 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고, 임기는 4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회원이 되면 사실상 종신제다. 빈자리가 생기는 것은 해당 분과의 회원이 사망했을 때다. 어쩌다 생기는 빈자리를 두고 지원자들의 경쟁이 치열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몇 년 사이 김지헌, 신봉승 시나리오 작가, 황정순 배우가 타계했을 때 신규회원 가입을 두고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정지영 감독 이름은 나오지도 않았다.

새로운 신규회원 추천이 진행된 올해에 처음 지원서를 냈고, 별다른 논란 없이 새 회원으로 결정되었다. 회원 가입 신청을 한지 첫 번 만에 신규회원이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예전 같으면 결과에 대해 시비하는 말들로 시끄러웠을 수준을 넘었을 터인데도 이번 경우에는 못 본 척 모르는 척 누구도, 어디에서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영화계에 크고 작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던 사람조차 웬일인지 조용하다. 이번 신규회원 자리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모 감독에게는 현재 회원인 어느 감독을 통해 ‘이번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말고 조용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대한민국의 이념지형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공언하는 정치 권력이 예술원까지 접수하겠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다.

정지영 감독의 예술원 회원 가입이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겠다는 기존 회원들의 자발적 의사인지, 권력의 입김이 작용한 스캔들이 될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판명날 것이다. 지금은 도무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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