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속기획 ] 대중문화, 그리고 정치.... 문화와 정치의 경계 블랙리스트 논란
[ 연속기획 ] 대중문화, 그리고 정치.... 문화와 정치의 경계 블랙리스트 논란
  • 조희문 영화평론가·조희문 영화아카이브 대표
  • 승인 2020.01.03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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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 논란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세월호 사건을 좌파적 진영논리와 그대로 담은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 논란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세월호 사건을 좌파적 진영논리와 그대로 담은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은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중요한 변수로 동원된 것이 이른바 블랙리스트였다.

블랙리스트 문제가 수면 위로 뛰어오른 것은 2016년 10월. 국회의 국정감사 중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예술계 인물 중 각급 단위에서 지원하는 각종 대상에서 배제하는 예술가 명단이 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기했다.

의원실에서 독자적으로 제기한 문제라기보다는 민예총,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등 좌파 성향의 단체들에서 조직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취합하여 도종환 의원실로 넘겼고, 국정감사라는 제도적 과정을 통해 공론화하는 패턴이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블랙리스트 시비는 좌파 성향 언론을 타고 사회적 이슈로 확장되는 과정을 거쳤다. 좌파 세력들이 소문 수준의 이슈를 사회적 관심사로 띄우는 전형적 방식이다.

민예총, 문화연대, 작가회의 등 좌파 성향의 단체와 개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책임자 처벌과 예술 검열반대 예술행동’(이하 예술행동)이라는 조직을 급조해 시위에 나섰다. 이 급조 조직에는 민예총을 비롯한 200여 개의 단체들과 숫자를 알 수 없는 개인들이 참여했다. 지원에서 배제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포함해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되었다고 하는 경우, 이도 저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빌미로 가담한 경우 등을 포함해 여러 유형이 뒤섞인 상태로 구성되었고, 단체 등에 소속되어 있거나 개별 활동으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 무차별적으로 가담했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예술가인지 아닌지는 문제 되지 않았고 실제로 불이익을 받았는지의 여부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무조건 ‘나는 피해자’였거나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지만 궁극의 목표는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과장

이후 특검이 구성되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시비 논란은 대통령 탄핵의 주요 혐의 중 하나가 되었다. 좌파 세력은 블랙리스트 논란을 대통령 탄핵의 중요 명분의 하나로 삼은 것에 그치지 않고 2017년 7월 31일에는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라는 이름을 붙인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영화, 연극, 출판 등 각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사례를 끌어 모은 뒤 본책 4권과 부록 6권 등 모두 10권으로 구성된 백서를 만들었다.

국정원, 청와대비서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문화 예술 관련 업무를 관장하거나 관련 업무를 다뤘다고 지목한 정부, 공공기관에 대해서 저인망식으로 긁어모은 내용을 채웠다.

관련 기관의 직원들을 상대로 탐문하거나 블랙리스트와 연관되어 피해를 받았다고 신고 받은 사례를 들고 확인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미리 설정한 목적에 맞춰 대부분의 사례들을 수집해 놓은 경우여서 객관성이나 공정성은 전혀 보장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분야별로는 ▲정부 기관 단위에서 진행된 좌파예술인 및 단체에 대한 관리 업무와 관련한 내용 7건을 비롯해 ▲연극 공연과 관련한 44건 ▲문학·출판 분야 21건 ▲영화 분야 13건 ▲미술·기타 분야 29건 등 모두 114건의 사례를 모아 놓았다.

정부 기관 단위의 관련 활동은 부록 1편에 수록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국가정보원의 관여 내용 ▲이명박 정부의 특정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탄압사건 ▲한국예술종합학교 블랙리스트 적용사건 ▲박근혜 정부의 좌파문화예술계 배제 문화융성정책 입안 및 실행방안에 관한 직권조사 ▲문체부 건전콘텐츠 활성화 TF 등의 구성 및 운영사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블랙리스트 실행을 위한 지원 및 심사제도 개편 사건 ▲재외 한국문화원 블랙리스트 사건 등 7건을 나열하고 있다.

부록 5권에 수록된 영화 부문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논란과 관련한 ▲부산국제영화제외압사건 ▲한국영상자료원 블랙리스트 실행사건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 ▲영상물등급위원회 문제영화 검열·배제 사건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전용관 상영 검열 및 지원 배제 사건 ▲맹수진의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사전제작지원 심사위원 배제 등 사건 ▲영화진흥위원회의 미디액트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배제 사건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 제도를 통한 문제영화 상영 방해 사건 ▲유인택의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전문 투자조합 출자사업 지원 배제 사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방해 사건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배제 사건 ▲‘㈜시네마달’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 ▲영화사 ‘청어람’의 블랙리스트 관리 및 외압 등 사건 ▲2010~2011 인디애니페스트 및 순회상영 사업지원 축소 의혹 사건 등 모두 14건을 적시하고 있다.

영화 부문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논란이라고 적시한 사례는 대부분 좌파 영화인들의 반정부적, 위법적 활동에 대한 행정적 대응을 모두 부당한 조치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그치는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결정 계기가 되었다는 영화‘ 판도라’. 문재인 정권에‘ 화이트 리스트’에 속한 영화였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결정 계기가 되었다는 영화‘ 판도라’. 문재인 정권에‘ 화이트 리스트’에 속한 영화였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자생한 대중문화·간섭할수록 왜곡 가능성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또는 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논란은 좌파 세력의 정치공세를 문화적 갈등으로 위장한 경우다. 세월호 침몰은 단지 사고일 뿐이었지만 정치적 음모로 조작한 사건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며 정권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는다. 좌파 세력들은 순수한 영화를 왜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느냐며 조직적인 반발에 나섰다.

처음부터 영화는 영화적 수준을 고려하기보다는 세월호 사건을 좌파적 진영논리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는 선동, 선전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부산시장은 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내부적인 검토가 가능했다. 제작 과정에서부터 제기된 이 영화와 관련된 논란은 부산시나 영화제 측 모두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고, 내부적인 조정도 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부산시와 영화제 집행부 사이의 누적된 갈등이 이를 계기로 돌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영화제의 개최 비용 중 60% 정도는 부산시가 지원한다. 부산시의 지원이 없었다면 영화제는 출발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에 따라 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은 부산시장이, 집행위원장은 오랫동안 김동호 전 문화부 차관이 맡고 있었지만 이른바 대외적 간판 역할을 하는 바지사장 역할이었고 실질적인 영향력은 이용관(부위원장, 공동집행위원장,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이사장)과 문성근 등으로 연결되는 좌파세력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일방적으로 부산시의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부산영화제의 위상이 안정 단계로 전환되는 듯 하자, 영화제 운영을 장악한 세력 측에서는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부산시 측은 예산의 상당 부분을 부산시가 담당하고 있는데도, 시의 개입을 배제하며 독자적 운영을 하려는 영화제 측에 대해서 불만을 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다이빙벨’ 상영 여부가 내부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부산시와 영화제 운영 세력들 간 정면충돌 형태로 돌출된 것은 그동안 누적된 내부 알력이 표면화 된 것이다.

부산시의 정당한 운영관리를 통제와 압박이라고 여긴 영화제 운영진과 좌파 세력은 이를 부당한 간섭과 개입이라고 반발하는 형태로 여론화 작업을 시도했고, 결국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다이빙벨’ 상영은 부산영화제 집행부의 기만적 도발이었지만,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이용관은 이를 부당한 외압이라고 진술했고(위원회 보고서), 위원회 역시 이를 블랙리스트 외압사건으로 단정하고 있다. 좌파 세력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대통령의 ‘화이트 리스트’-‘판도라’와 ‘부산국제영화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15일 부산국제영화제에 예고 없이 나타났다. 청와대 측에서는 여러 가지 정황을 살피며 면밀하게 준비했을 것이고, 영화제 측에서도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다들 모르는 척하며 대통령을 맞이했다. 대통령은 영화 한 편을 관람한 뒤 영화 관계자들과 식사자리까지 이어갔다.

일국의 대통령이 영화제 기간 동안 현장에 나타나 영화 보고 영화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이런 저런 말을 듣는 것은 얼핏 여유로워 보이는 듯하지만 대통령의 방문이 갖는 의미와 현장에서 드러낸 표현들을 들여다보면 공공연히 정치적 후원의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부산영화제가 출발한 것은 1995년이지만 회가 거듭되는 동안 구내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주목받았다. 대외적 기반을 확보했다고 판단한 영화제 집행부를 비롯한 좌파세력들은 영화제 장악을 위해 부산시와 갈등을 빚었다. 좌파들의 의도를 파악한 부산시 측은 정상화를 위해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퇴출을 실행했고, 그동안의 운영 과정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사업비를 부당하게 전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이용관과 전양준 프로그래머 등이 형사적 유죄판결을 받았다. 좌파영화 세력들은 이를 부산시의 부당한 압력인 것처럼 호도하며 전방위적인 반발과 압력을 가했다. 김동호 위원장과 강수연 부위원장이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을 맡아 수습에 나섰지만 좌파 세력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영화감독조합, 여성영화인회의 등 좌파성향 단체들은 조직적으로 영화제 참가 보이콧 운동을 폈고, 좌파 언론들 또한 부산영화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문재인의 부산영화제 등장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홍보와 함께, 부산영화제를 좌파 세력의 진지로 인정하고, 지원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은 주변에 모인 영화인들에게 ‘옛날 위상을 되찾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외압에 흔들렸다고 하면서 정작 대통령이 정치적 지원을 약속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동의 모순은, 전 정부에서 좌파 여론에 대응하는 문화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정부적 노력을 ‘화이트리스트’로 분류하며, 권력이 문화예술계를 정치 기반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했다고 비난한 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옛날의 위상을 되찾도록 해주겠다’며 추종 영화인들 앞에서 선언한 것이다.

이후 부산영화제의 운영은 다시 좌파 세력들에게 돌아갔고, 부산시의 관여나 관리 업무는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사실상 영화인들이 영화제의 운영을 장악한 것이다. 이 일은 대통령이 문화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위법 논란을 일으켰다.

현행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문화예술 지원 정책은 결과적으로 모두 좌파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반대한민국 세력을 정부가 양성하는 모양새가 된다. 지금의 문재인 정권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적 반대 세력이나 좌파 정권의 문화 정책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자유 우파 진영에서는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운영 방향의 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의 플랜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의 오락가락하는 각 분야의 정책적 미비함이나 무면허 음주 같은 국가경영 역량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우파 민주 진영이 국가를 경영하게 되었을 때 지향하는 국정 방향이나 가치는 무엇인지, 지금의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좌충우돌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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