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의 동물 이야기 ② / 호랑이 이야기 1부 
강규형의 동물 이야기 ② / 호랑이 이야기 1부 
  • 강규형  명지대 교수·전 애견연맹 자문위원
  • 승인 2022.11.02 0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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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이 고양이과 초대형 맹수는 한국인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아무르 표범에서 얘기했듯이 세상에 한국호랑이라는 종은 없다. 한국을 제외한 세상의 어떤 호랑이 전문 서적에서도 한국호랑이라는 종은 없다. 러시아의 시베리아나 중국의 만주에서 아무르 호랑이를 데려와 한국호랑이라고 둔갑시키는 촌스러운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데려다가 ‘백두산 호랑이’로 둔갑시키는 낯 뜨거운 ‘국뽕’짓조차 서슴없이 하고 있다. 한국 전역에 엄청 많이 살던 호랑이는 아무르(시베리아) 호랑이가 한반도로 서식지를 넓힌 것뿐이다.

한반도는 호랑이의 영토였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호랑이의 사료로 사육되는 대상이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였다. 하도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는 사람들이 많아 전염병과 함께 제일 두려운 대상이었다. 호환(虎患)마마. 10명 중 3명이 호랑이에게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통계를 제시하는 연구도 있다(조유민, ‘모멸의 조선사’ (글항아리)). 하여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리고 가축들이 호랑이 밥이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호랑이는 한번 사람 맛을 보면 다른 어려운 사냥감 대신 손쉬운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 맛도 더 좋았을 듯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은 정말 호랑이가 많은 나라이다. … 조선에서는 1년의 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문상 다니고,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중국속담이 있을 정도다.”

아무르 호랑이
아무르 호랑이

아무르 호랑이는 호랑이 중 체구가 가장 커

일제시대 때 함경도에 러시아 내전을 피해 일단의 백계 러시아인들이 정착했다. 함흥과 청진이 주 활동지였는데 주로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사냥의 달인들로서 고성능 장총으로 주민들을 위해 호랑이를 잡아줘 신적 존재로 대우를 받았다. 제일 유명한 가문은 사냥 역사에 기록되는 얀코프스키(Yankovsky, 정식 표기법에 따르면 Iankovskii) 가문이다. 시베리아에서는 바이코프라는 전설적 호랑이 사냥꾼이 존재했다.

이 폴란드계 러시아 귀족 가문은 청진을 주 무대로 세계적인 리조트를 세우고 호랑이와 표범 잡이를 했다. 특히 함경도 주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한 식인 호랑이 일가를 다 사살해서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그 와중에 아버지 얀코프스키는 호랑이 가족의 리더인 엄마 호랑이에게 거의 죽을 뻔한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났다. 

이들이 세운 리조트들에는 전 세계에서 부자들이 휴양을 위해 왔는데 역시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인 브린너(브린네르) 집안도 그랬다. 블라디보스토크 태생인 청년 율 브리너도 그 리조트를 찾은 게스트 중 하나였다. 나중에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의 대스타가 된 그 대머리 배우 율 브리너.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그의 생가가 있고 뮤지컬 ‘왕과 나’의 몽쿠트 왕으로 분장한 그의 동상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다. 

얀코프스키 일가는 대부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잡혀 시베리아 유형소로 끌려가든가 죽임을 당했다. 두어 명 정도가 탈출에 성공해 그 자손들이 현재는 호주에 살고 있다. 책이나 영화의 주제로도 좋을 만큼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아무르 호랑이는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호랑이 중 체구가 가장 크다. 엄청난 크기와 파워로 자기 지역에서는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점유했다. 삼림이 황폐화하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밀렵으로 한반도의 호랑이는 남한에서는 멸종으로 판단되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에서는 극소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르 호랑이들에게는 국경이 없으므로 러시아와 만주지역의 호랑이들이 한반도 북부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잡힌 호랑이들을 마지막으로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다. 

표범 사냥을 한 얀코프스키
표범 사냥을 한 얀코프스키

표범은 북한은 물론 남에서도 아직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한다. 남한에서도 발자국과 배설물이 발견되고 있다. 맹수가 노루, 고라니 등을 사냥해 먹은 증거들이 있고 발자국이 있는데 호랑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표범의 발자국 크기 정도다. 살쾡이 발자국보다는 훨씬 크다.

아무르 호랑이를 원 없이 보려면 하얼빈(하르빈)에 있는 호랑이 보호소에 가보시라. 평생 볼 호랑이 숫자의 몇십 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 닭을 풀지 말고 꼭 산닭을 풀어달라고 하시라. 일반 닭은 너무 빨리 호랑이가 잡는데 산닭은 그리 녹녹하게 잡히지 않는다.

다음 호에는 가장 숫자가 많은 벵골 호랑이부터 여러 호랑이 아종들과 신비한 백호(白虎)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려 한다. 호랑이도 의외로 아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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