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계] 바니타스(vanitas)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술 세계] 바니타스(vanitas)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오재학 전 주호치민 총영사
  • 승인 2024.01.17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 개선행진은 에트루리아의 관습대로 개선장군의 얼굴을 붉게 칠하고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타며 시내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를 합니다. 당사자는 신으로 추앙받는듯한 벅찬 감동에 젖습니다. 이 마차에 가장 신분이 미천한 노예 1명이 장군과 같이 탑승해 끊임없이 귓전에 아래와 같이 속삭입니다. 

“Memento mori.”(그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그대는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뒤를 돌아보라.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중세 수도원에서 수행하는 수도사들의 인사말도 “Memento mori” 였다 전해지고 있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합니다. 

“Memento mori.(그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Hora fugit.”(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니)

즉 머지 않아 당신도 죽게 될테니 너무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경계의 외침이었습니다. 

구약성경 전도서(Ecclesiastes) 1장 2절에 보면 이 세상의 온갖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왕의 절규가 나옵니다.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이 라틴어를 풀이하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의 허망함, 물질적 부유, 세속적 쾌락의 허무함을 설파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덧없으니 모두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찾으라 외칩니다. 

이 모든 것들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 부유, 아름다움, 명예, 권력들이 부질없음을 일깨워 줍니다. 동시에 죽음의 불가피성을 강조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인생의 헛됨과 덧없음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너무나 허무하고 덧없는 인생이므로 그만큼 인생을 더 소중히 여기며 겸손하고 경건한 인생을 살아가라는 역설적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16~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에 플랜더스(Flanders)에서는 정물화가 크게 유행합니다. 네덜란드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독립하면서 개신교가 득세하고, 해상무역 확대와 도시화 진전으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르네상스 이래 유럽을 풍미했던 화풍에도 커다란 변화가 도래합니다. 중세 교회와 귀족층을 위해 그려졌던 종교화가 퇴색하고 정물화와 풍경화 장르가 유행하게 됩니다. 

1348년을 기점으로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0%가 사망했습니다.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터키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과 신대륙이 발견되며  가톨릭 세력은 급격히 쇠퇴한 반면 개신교와 신흥계급이 부상하며 화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17세기 동양(조선과 중국)에서도 정물화가 유행하게 됩니다.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 1644년 청나라 건국(명나라 멸망) 등을 거치는 동안 동서양 모두 ‘소 빙하기(little ice age)’를 맞아 재해나 기근 등 비정상적인 죽음이 만연하게 됩니다(1670~1671년 조선 현종 때 경신 대기근 등). 이 시기 동서양에서는 기술 발전에 따른 풍요와 불가항력적 죽음을 동시에 겪게 됩니다. 

16~17세기 조선과 중국에서 ‘고동서화(고동:골동품/서화:글씨.그림)’가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양의 정물화, 풍경화 유행과 맞물리게 됩니다. 서양의 그림은 ‘Memento mori’ 흐름에 따라 죽음의 비극성만을 강조한 데 비해 동양의 그림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여 화조도(꽃과 새)와 4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림이 유행하게 됩니다. 

베일리의 젊은 화가의 초상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베일리의 젊은 화가의 초상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공허함과 덧없음을 상징하며 인생의 유한성을 묘사한 바니타스화

16~17세기 ‘바니타스(vanitas)화’가 크게 유행했는데 바니타스란 인간의 유한함, 생의 헛됨과 물질의 무가치함, 허무함을 상기시키는 여러 상징적인 오브제를 포함한 정물화의 한 장르입니다. 이들을 정리해 봅니다. 

(가) 인간의 유한성
해골, 모래시계, 하루살이, 시계, 촛불, 시든 꽃, 파리, 나방, 썩은 과일, 거품(풍선껌), 나비

(나) 부유함 상징
금, 은, 숟가락, 칠기, 술잔, 보석, 지갑, 금화, 비단, 고급 일본도(swords), 스카프, 접시

(다) 현세부귀, 쾌락
왕관, 담뱃대, 포도주잔, 주사위, 거울, 트럼프카드, 도자기, 조개, 호도

(라) 지식, 지성
책, 잉크병, 펜, 지도, 지구본, 망원경, 편지

(마) 악기, 악보(음악이 머물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는 상징적 의미) 
악기, 악보

(바) 기타
껍질벗긴 레몬, 월계수, 담쟁이

이들 소재를 모두 사용하여 인생의 공허함과 무가치함, 덧없음을 상징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생의 유한성, 쾌락의 무상함, 죽음의 불가피성을 극명하게 묘사했습니다.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그린 화가들은 대부분 네덜란드 출신이었으나 유럽국가 출신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가) 네덜란드 출신
Abraham Mignon/Adrian Utrecht/Carstian Luyck/
Clara Peeters/David Bailly/Edward Collier/Harman Steenwyck/Hendricks Andriessen/Jan Davidsz de Heem/Jan van Kessel/Jan Lievens/Jan Sanders Hemessen/Jones de Cardua/Maria van Oosterwijck/Peter Claesz/Peter Potter/Peter Steen/Sebastian Stoscopff/Willem Claesz Heda/Willem Kalf..

(나) 프랑스 출신
Jean Simeon Chardin/Nicolas Poussin/Philipp de Champaigne

(다) 스페인 출신
Antonio de Pereda/Juan Valdez Leal/Ruth Ignacio

(4) 이태리 출신
Giuseppe Reco/ Salvatore Rosa/ Pierfrancesco Cittadini

(5) 독일 출신
Barthel Bruyn/George Flegel/Hans Holbein

바니타스 화가들이 활동한 주요 도시는 할렘(Haarlem)과 델프트(Delft), 레이덴(Leiden), 유트레히트(Utrecht), 암스테르담(Amsterdam), 도르드레히트(Dordrecht) 등이었습니다. 

홀바인의 대사들
홀바인의 대사들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죽을 운명임을 드러낸 홀바인의 ‘대사들’

유럽 각국의 바니타스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삶과 화풍을 조망해 봅니다. 

(A) 베일리(David Bailly, 1584~1657/ 네덜란드)
1584년 바니타스 그림의 출발지 라이덴에서 출생해 부친 피터와 쟈크 드 게인으로부터 그림을 배웠습니다. 1608년 유럽 그랜드 투어(Grand Tour) 대장정에 나선 베일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함부르크를 방문하고 티롤 알프스를 거쳐 이탈리아 베네치아,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1613년 네덜란드로 돌아와 정물화와 초상화를 배웠고 이때부터 바니타스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촛불과 시든 꽃, 악기, 해골, 거품 등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1648년에 성 루카조합의 수장이 되었고 피터 스텐베이크(Pieter Steenwijck) 등에게 정물화를 전수했습니다. 

그가 1651년에 그린 'Self portrait with vanitas symbols'를 살펴봅니다. 이 그림은 다른 바니타스 그림과 달리 화가 자신의 자화상이 들어 있습니다. 백발이 된 늙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은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이 느껴집니다. 촛대 위 연기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연상시키고 공중에 떠 있는 거품 방울도 같은 은유적 표현입니다.

화병의 꽃은 시들어 쳐졌고 모래시계의 모래는 바닥으로 내려 앉았습니다. 테이블 위의 잔은 모든 것이 비워지는 순간의 허무함을 악기와 책,목걸이는 예술, 명예, 부귀가 부질없음을 나타냅니다. 부인 Agneta를 상징하는 여인 조각도 인생무상을 상징하고 해골은 Memento mori를 외칩니다. 테이블밖 종이에는 "vanitas vanitatum,et omnia vanitas(헛되고 헛되니,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B) 홀바인((Hans Holbein,1497~ 1543/독일)
1497년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출생한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마지막 화가로 불립니다. 1515년부터 바젤에서 다시 1526년에는 에라스무스(Erasmus)추천으로 런던으로 이주했으며 1536년부터 영국 헨리 8세 국왕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가받았으며 뒤러(Albrecht Duhrer), 크라나흐(Lucas Kranach)로 대표되는 독일 르네상스 초상화를 최고 정점까지 끌어올린 화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모델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극명한 세부묘사, 명쾌한 화면 구성, 인물 성격에 대한 투철한 이해 등이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그가 1533년에 그린 ‘대사들(Ambassadors)’은 그림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바니타스 정물화’ 라는 차원에서도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주영국 프랑스 대사 당트빌(Jean de Danteville)과 친구 드셀브 주교(Georges de Selve)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천문학과 항해술이 크게 발달했던 시기입니다.

2단탁자 하부에 줄 끊어진 류트(lute, 현악기)와 피리 몇 개가 있습니다. 줄 끊어진 류트는 불화의 상징이고 피리는 전쟁을 뜻합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지구본과 루터교 찬송가는 신.구교 분열을 의미합니다. 피터 아피안의 수학책도 있는데 역시 종교간 분열을 암시합니다.

펼쳐진 찬송가의 왼쪽에는 구교를 대표하는 "인간이여 행복하라"는 성가가, 오른쪽에는 루터파 신교합창곡인 "성령이여 오소서"가 실려 있습니다. 탁자 꼭대기에는 천체시계들이 있는데 저마다 시간이 다릅니다. 두 사람은 삶이라는 시간 밖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일그러져 바닥에 늘어져 있는 해골은 바게뜨빵이나 오징어뼈처럼 묘사되었는데 형태를 비틀어 특정한 위치에서 보아야 정상적 모습을 알게 됩니다. 이를 왜상기법(anamorphosis)이라고 합니다. 

이 해골은 우리에게 ‘Memento mori’를 상기시켜 줍니다. 녹색빛 도는 커튼 뒤의 십자가 예수상은 이 작품에 나타난 바니타스적 차원을 한 단계 높여 줍니다. ‘대사들’이라는 높은 지위와 그들의 모든 지식, 명예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있으며 해골이 암시하는 것처럼 언젠가 죽을 운명임을 나타냅니다. 지상의 삶을 천국을 예비하는 자세로 살라는 숨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홀바인(Holbein)이 중세적 주제인 죽음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은 ‘소름끼치는 춤(dance macabre)’을 묘사한 그의 목판화에서도 잘 드러나고는 했습니다. 

(C) 푸생(Nicolas Poussin, 1594~ 1665/ 프랑스)
17세기 프랑스 근대화의 시조라 불리는 푸생은 노르망디의 레장들리(Les Andelys) 출생으로, 라파엘로의 작품에 매료되어 1624년 로마로 가서 카라치파(Carracci)의 그림을 배웠습니다. 1628년 성베드로 대성당 제단화를 그리고 1639년 프랑스 루이 13세 궁정화가로 초빙되었습니다. 그는 회화의 최대 목적은 인간의 숭고한 선행과 도덕적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또한 역사주의와 영웅주의를 조화시키려 하였고 그 결과 신화와 성서를 그린 그림에 문학적 판타지까지 가미하여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푸생이 그린, 고전주의 미술의 백미라 불리는 ‘아르카디아 목동(The Arcadian Shepherds: 프랑스 어로는 Les Bergers  d'Arcadia)’를 살펴봅니다. 

3명의 목동들이 석관주위에 모여 여신에게 거기 새겨진 문장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Arcadia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이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자연과 목동의 신 Pan이 살던 이상향을 의미합니다. 석관에는 'Et in Arcadia ego' 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ego)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상낙원 아르카디아에서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은유적 메시지입니다. 지상 낙원 아르카디아, 거기에도 내가(죽음이)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가 이 그림의 주제가 됩니다.

푸생은 대부분의 바니타스 화가들이 해골과 모래시계, 촛불 등의 소재를 등장시켜 그린 것들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아한 여신, 목동들을 등장시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를 초월하는 영웅적 해결책을 찾아보려 노력했습니다. 바니타스 그림을 영원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싶어했습니다.

(D) 샹페뉴(Philippe de Cham paig-ne, 1602~1674/ 벨기에)
160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생해 1621년부터 파리로 이주해 푸생(Nicolas Poussin)과 함께 뤽상부르 궁전 장식에 참여했습니다. 프랑스 최고 예술기관인 ‘Royal Academy of Painting and Sculpture’의 창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루이 13세 국왕의 궁정화가로서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을 위해 소르본느의 추기경궁 장식을 맡기도 했고, 리슐리외 추기경 초상화를 11회에 걸쳐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주로 루이 13세를 비롯한 프랑스 궁정인물, 귀족, 고위 성직자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플랑드르인의 성실한 기질과 프랑스 귀족의 기품을 겸비했고 우아하고 균형잡힌 그림으로 프랑스 고전주의 화풍의 진수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그림 ‘튤립, 해골, 모래시계가 있는 정물화’를 감상해 봅니다. 덧없는 인생과 운명을 상징하는 3가지 전통적 표상을 그렸습니다. 튤립은 짧고 덧없는 영광, 모래시계는 세월의 무상함, 해골은 불가피한 죽음을 나타냅니다. 프랑스 왕실과 가톨릭 사제단, 귀족층의 초상화를 주로 그린 샹페뉴가 이러한 바니타스 그림을 그렸다니 정말 아이러니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샹페뉴는 최고 상류층들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은연중 그들의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인생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결국은 허망하게 끝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만인에게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에게도 죽음이 최후의 종착점임을 깊이 깨달은 결과였습니다. 

푸생의 군중에게 세례를 주는 성 요한 세례자
푸생의 군중에게 세례를 주는 성 요한 세례자

바니타스화는 인생의 허무함만이 아닌, 오늘을 즐기란 메시지 시사

(E) 클라스(Pieter Claesz, 1597~ 1661/ 네덜란드)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 인근 Berchem 출생으로 1620년 할렘(Haarlem)으로 이주, 그곳에서 주로 활동하였습니다. 할렘의 성 루카조합 소속으로 많은 정물화, 특히 바니타스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책이 있는 정물화’ ‘칠면조 pie정물화’ ‘pipe.card정물화’ ‘violin/해골 정물화’ ‘해골과 시계 정물화’ 등 수많은 바니타스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같은 앤트워프 출신 클라라(Clara Peeters)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헤다(Willem Claesz Heda)와 쌍벽을 이루는 바니타스 화가였습니다. 

피터 클라스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인생의 덧없음과 쾌락의 허무함,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켜 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특히 단색(monochrome) 정물화로 유명했습니다. 붉고 흰 아네모네, 시계에 부착된 푸른 비단 리본 등 채색화 요소가 있었으나 1630년 이후에는 회색, 녹색, 노랑색 등 단색 정물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3단계로 구분됩니다. 1625년까지는 은그릇, 음료수잔, 과일 등 평범한 정물화를 그렸고, 이후 1640년까지는 접시, 정어리, 컵 등 단순 정물화에 몰두했으며 1640년 이후에는 화려한 접시, 꽃, 과일, 사냥감 등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 모든 그림에 인생의 무상함과 죽음을 내포한 바니타스 화풍이 가미되었습니다. 

(F) 발데스 레알(Juan Valdez Leal, 1622~1690/ 스페인)
1622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출생, 세비야 아카데미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레알은 코르도바에서 교육을 받았고 1653년까지 카스티요(Antonio del Castillo)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았습니다. 무리요(Esteban Murillo)와 절친했던 그는 이국적인 색채, 극적인 채광, 활기찬 붓터치 등으로 스페인 로코코 화풍을 주도했습니다.

세비야와 마드리드 출신 화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레알의 그림은 점차 무시무시하고, 박력이 넘치며, 극적인 경향을 띄게 되었습니다. 그의 많은 그림들이 바니타스 화풍으로 기울었는데 덧없는 인생과 죽음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비야 소재 자선병원(Chariry Hospital)에 그려진 2가지 그림이 유명합니다. 2개의 그림 모두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의 보편성을 표현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라틴어 제목 'In ictu oculi(인 익투 오쿨리)'입니다. 번역하면 ‘눈 깜짝할 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신의 모습입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성공의 부질없음을 나타냅니다. 해골만 남은 인간이 한쪽다리로 지구를 밟고 다른 쪽은 무기와 권력, 지식의 상징들을 밟고 있습니다. 그의 팔에는 관(coffin)이 들려 있고 오른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라틴어 제목 'Finis gloriae mundi(피니스 글로리아에 문디)'가 붙여져 있습니다. 번역하면 '세상 영광의 종말'입니다. 1418년 Thomas a Kempis 성인의 말에서 인용된 것인데 라틴어로 "O quam  cito  transit gloria  mundi(How quickly the glory of the world passes away!)"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명예와 영광이 허무하게 사라져 간다”라는 뜻입니다. 사악한 벌레들이 부패한 시체를 뜯어먹는 장면입니다. 시체의 주인은 사제(bishop)와 기사(knight)입니다. 

지금까지 바니타스 화가들의 그림을 살펴봤습니다. 바니타스 화풍의 그림들은 단순히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 죽음의 불가피성만을 강조하는 데 그친 것은 아니라는데 일말의 희망이 엿보입니다. 허무한 인생을 한탄만 하지 말고 그 안에서 최대한 보람과 거치를 찾으라는 역설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오늘을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해져야 합니다.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가 바로 최고의 순간입니다. 인생의 온갖 시련도 열정과 담대함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는 날아오를 수 없고, 물의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으며, 우리를 짓누르는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내재적 가치를 믿고 긍정적 자세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현재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음은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의 싯구절입니다. 

"카르페 디엠 꾸암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s!: 현재를 즐겨라. 미래에는 최소한의 기대만 걸어라)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으니 오늘을 붙잡고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어제와 같은 태양도, 구름도, 꽃도, 나무도, 풀도 없다. 오늘 이 순간의 하늘과 바다, 구름, 태양, 꽃을 보고 즐거워하라 외칩니다. 정글 속의 타잔처럼 잡았던 옛줄을 과감히 놓고 새로운 줄을 잡는 자세로 오늘을 살라고 합니다.

어제는 역사(history), 내일은 미스터리(mystery), 오늘은 선물(present)이라고 합니다. 선물로 주어진 오늘(present)을 즐기며 보람되게 의미 있게 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Memento mori는 (Remember you must die)는 Memento vivere(Remem ber to live)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결론적으로 Memento mori =Carpe diem입니다. 죽음이 곧 삶이라는 역설적 메시지입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