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늙은 목숨, 조국통일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제 늙은 목숨, 조국통일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 미래한국
  • 승인 200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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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기도
▲ 해방 직후 1945년 11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개최된 환영예배에 참석한 김규식, 김구, 이승만, 아놀드(좌로부터)

“하나님, 총이 없는 우리 아이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이승만 대통령이 매일 밤 피난지 대구에서 절규한 기도다. 당시 대통령은 대구의 교회에서 “하나님은 언제고 정의의 편에 서신다며 자유와 정의를 위해 피를 흘리는 이 땅의 젊은이와 우방군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살펴 달라고 기도했다”고 프란체스카 여사의 비망록이 전하고 있다. (중앙일보 1983/7/1, ‘6·25와 이승만 대통령’중)

당시 적은 사방에서 대구를 향해 진격중에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하나님이 기적을 내려주시지 않는 한 대구가 적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좀더 신속히 행동해주길 바라며 “하느님 제발 이 나라를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기도 뒤에는 프란체스카 여사와 오스트리아 빈의 그의 어머니 언니 베티까지 전쟁이후 근심하며 밤을 새워 금식하며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한 이들이 또한 있었다.

이후 9월 10일 때늦은 고마운 장마로 낙동강전선에서의 혈투는 약간의 소강상태를 보였고 이는 아군에게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 군의 보급과 전열정비에 도움을 주었다. 이후 미군이 군산과 인천을 포격하기 시작했고 포항에서도 서서히 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낙동강 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미국의 워커 장군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편에 계시니 누가 감히 우리와 대항해 싸울 수 있겠느냐며 독려했다.

서울 수복후 1950년 11월 19일 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중공군이 처들어온다는 보고를 들은 후에 하나님이 한국을 구하려는 방법이라며 위로했고 최악의 경우가 닥칠지 모르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끝까지 공산당과 싸울 것이며 하나님은 기어이 우리나라를 구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중앙일보 1983/10/18, ‘6·25와 이승만 대통령’중)

이러한 확신은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때 교인 20명 정도만 참석한 서울 정동교회의 예배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니 아무리 강한 적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기어이 물리칠수 있다며 참석한 교인들을 격려한 중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매일밤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갖게 해주시고 이 민족을 올바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했다.

“일본의 압제에서 우리민족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 아버지 저의 늙은 목숨을 조국통일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불쌍한 우리민족을 굽어살피사 통일과 재회의 기쁨을 안겨주시고 영세자유와 평강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의 보잘 것 없는 영혼을 조국의 통일 제단에 바칠테니 원하실 때에 아버지 곁으로 거두어 주옵소서.”(중앙일보 1984/3/1, ‘6·25와 이승만 대통령’중)

이 기도는 당시 대통령이 전쟁속에서도 남북의 통일을 생각하며 시대를 초월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란중 대통령이 했던 많은 일중에 가장 간절히 했던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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