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中오성기 함께 걸고 중국서 새마을운동 강의
태극기·中오성기 함께 걸고 중국서 새마을운동 강의
  • 미래한국
  • 승인 200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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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진석 흙살리기참여연대 대표
▲ 새마을운동 교수로 중국 전역에서 초빙을 받고 있는 정진석 흙살리기참여연대 대표

중국은 어떤 계기로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 서울에서 정진석 흙살리기참여연대 대표(66)를 만났다. 그는 2004년부터 중국공산당 산하의 중국과학기술협회의 초청으로 6년째 중국 고위관리들을 대상으로 새마을운동 강의를 해오고 있다.

정 대표에 따르면 중국은 모택동의 지도하에 ‘국토통일, 언어통일, 종교(이데올로기)통일’이라는 3대 통일을 이룩했지만 배 굶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때 등소평이 등장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침으로써 무서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도농간의 격차, 26개 성(省) 지역 간의 격차 그리고 56개 소수민족 사이의 격차였다. 이로 인해 커다란 사회적 갈등이 야기됐고 중국은 지배체제의 붕괴마저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중앙당은 당과 정부체제와 나란히 하는 국가개혁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국과학기술협회를 전격 설립했다. 그리고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의 석학들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방안을 연구하도록 했다. 그 결과 두 가지의 방안이 중앙당에 보고됐다. 첫째는 유대 민족을 벤치마킹할 것과 둘째는 한국 민족을 벤치마킹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결론적으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삼아 중국 농촌에 접목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김대중 정권이 집권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주요 업적인 새마을운동을 폄하할 때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새마을운동을 ‘애심양광(愛心陽光)’이라고 부르며 새마을운동을 다각도로 연구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무렵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 또는 새마을운동 관련 기관이나 단체를 접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새마을운동을 가르쳐줄 전문가에게 직접 접근했다.

중국과학기술협회가 선택한 새마을운동 전문가는 정교관 전 새마을연수원 부원장(73)과 정진석 대표 등 두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2004년부터 중국 중앙당과 각 성(省)의 고위관료들을 대상으로 새마을운동을 매달 1회(1주일간) 씩, 지금까지 모두 94회 강의했다고 한다. 그들이 듣고 싶어한 것은 새마을운동에 관한 이론이나 정리된 지식이 아니었다. 그 부분은 이미 학자들에 의해 잘 정리돼 있었다. 그들은 구체적인 성공사례 중심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던 것이다.

정진석 대표의 증언에 의하면 중국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중국 농촌을 살릴 최적의 기회로 생각하고 전력을 쏟았다. 2004년 중국과학기술협회에서 새마을운동 강의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강의장으로 제공된 곳은 중국 정치 엘리트의 최고 산실인 북경 중국공산당학교(일명 당교) 대강당이었다. 이곳에 500여명의 중앙당 고위관료들이 참석했는데 놀라운 것은 강당 전면의 높은 벽 전체에 한국의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기가 나란히 붙어 있었으며 강의 시작 초두에 국가에 대한 경례와 함께 양국 국가가 나란히 연주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중국의 외교적 표현 의례로 여겨졌다.

‘한국 농촌이 심각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새마을운동을 통해 한국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내용의 2시간에 걸친 첫 강의가 끝나자 진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아이디어를 어떤 계기로 창안할 수 있었느냐, 군사정권에 대한 불신이 깊었을 텐데 국민들이 어떻게 새마을운동을 수용할 수 있었느냐, 새마을운동이 전국가적 개혁운동으로 자리 잡은 진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중국 상황은 당시 한국 상황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과연 새마을운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등 새마을운동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북경에서의 6개월 강의가 끝나고 그 다음은 각 성(省)의 공산당위원회가 주관하는 지역 강의가 이어졌다. 이른바 지방순회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강의 과정을 통해 정진석 대표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만난 중국의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30대의 젊은 엘리트들이란 사실이었다. 각 성(省)의 시장, 군수들이 대부분 유학파 출신이고 영어도 유창했다고 한다. 이제 이들이 만들어갈 중국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가는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현재 중국 농촌에서 일어나는 개혁은 바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혁 정신이 오늘날 중국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한국은 지난 10년간 좌파정부하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부정해 왔고 중국은 오히려 그 시간에 새마을운동을 자신의 국가개혁 동력으로 적용시켰다는 것이 역설적인 역사의 현실이 된 듯하다.

정진석 대표는 “이제라도 새마을운동은 재평가돼야 하고 한국의 사회적 이념적 갈등구조를 타파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다시 점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평가절하해버린 새마을운동을 중국으로부터 다시 배워 와야 할 시점에 놓였습니다. 나아가 새마을운동을 세계의 가난을 퇴치하는 국제적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중국의 변화와 개혁의 출발점은 1978년 12월 8일부터 5일간 중국 북경에서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였다. 이 회의는 중국 공산당이 취할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였는데, 당시 등소평은 이곳에서 중국의 위대한 전환점으로 개혁개방을 선언했던 것이다.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이하는 2008년 중국은 제17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농촌의 개혁과 발전에 국가적 역량을 올인하겠다고 새로운 국가적 목표를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농민들에게 토지의 매매와 양도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해 2020년까지 농촌 소득을 현재보다 2배 이상 상승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중국의 농민 인구는 모두 8억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60%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들의 소득은 도시 사람들에 비해 평균 3.5배나 저조하다. 이러한 도농격차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중국이 통일된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 결단이 바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진석 대표는 “한국정부가 중국조차 이념을 뛰어넘어 배우려고 하는 새마을운동을 되살릴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동남아 등 세계가 새마을운동을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한국정부가 이 운동을 “국격을 높이는 마케팅 기회로 삼아 좀 더 정책적으로 체계화시킬 열의가 없어 보여 아쉽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중국 농촌을 돌아보며 과연 누가 제2의 새마을운동을 이 땅에 재점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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