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꽃
추위와 꽃
  • 미래한국
  • 승인 201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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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칼럼] 김기선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

올해 들어 기록적으로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계속되었다. 영하 16도의 가장 추웠던 날에 이사를 하다 보니 벤자민 고무나무가 동해를 입었다. 복도에 몇 시간 두었었는데 워낙 날씨가 춥다보니 잎이 모두 피해를 입어 떨어지기 시작하다 이제는 죽은 채로 달려 있어 마치 인조 잎이 달려 있는 것 같다. 나무가 다 죽지는 않았는지 줄기 아래부터 다시 새 잎이 나기 시작한다. 이럴 때 느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상부의 상당수는 가지를 잘라내야 하지만 그래도 밑에서부터 생명이 싹 트는 것이 참 경이롭다.

추위가 식물에 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밀이나 보리는 겨울철 추위를 받아야만 종자가 발아를 하고 이듬해 강건하게 잘 자란다. 국화도 가을에 꽃을 핀 후 겨울에 지상부는 죽지만 땅속의 줄기와 뿌리가 추위를 받아야 이듬해 봄에 충실한 새싹이 나오게 된다. 물론 기온이 평년보다 너무 떨어지게 되면 동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그림과 같은 방한조치를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겨울에 추위를 경과해야만 식물은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열대나 열대성 식물들은 추위를 안 겪고도 잘 자란다. 집안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관엽식물들이 이에 속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대부분의 온대성 작물들은 다 추위를 거쳐야 한다. 대개 0~5도 사이의 온도를 두 달 정도만 받으면 된다고 한다. 이런 추위를 인위적으로 처리해 주는 것을 춘화처리(春化處理)라고 한다. 즉, 겨울을 지나 봄이 된 것처럼 해 준다는 뜻이다.

밖에서 자라다보면 나무나 땅속 지하부가 자연히 추위를 겪게 되나 실내 혹은 온실에서 키우는 화분은 그렇지를 못하다. 따라서 국화나 카네이션 등의 삽수를 냉장고에 보관했다 삽목하든지 아니면 화분을 겨울철에 얼지 않을 정도의 베란다에 놓아서 추위를 맛보게 해야 한다. 대체적으로 추위를 겪지 않은 열대성 식물들은 꽃이 화려할 수는 있으나 조직이 치밀하지를 못하고 병충해에 약하다. 즉, 튼튼하지를 못하다.

하지만 겨울을 매년 거치는 온대성 식물들은 조직이 강하고 튼튼하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온갖 시련을 겪은 사람들은 주위 환경에 적응하고 이겨내는 힘이 강하다. 온대성 꽃이나 나무들은 앞으로 겨울이 올 것을 알고 미리 체내에 탄수화물이나 특정 호르몬을 축적시켜 모진 겨울을 이길 준비를 한다. 어찌 보면 사람들보다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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