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잔치’로 마음 씻는 풍자극
‘말의 잔치’로 마음 씻는 풍자극
  • 미래한국
  • 승인 201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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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대학살의 신



연극 <대학살의 신>은 우선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감탄하게 된다. 대학로 하면 떠오르는 지하의 비좁고 불편한 극장이 아닌 쾌적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앞사람에게 전혀 방해받지 않고 연극을 즐길 수 있다.

암전이 걷히면 네 명의 베테랑 배우 김세동(미셸) 오지혜(베로니카) 박지일(알렝) 서주희 (아네트)가 소파에 앉아 있다. 더 이상의 등장 배우 없이 네 명이 똑 같은 비중으로 90분 동안 연기해 공연 내내 꽉 찬 느낌을 받게 된다.

두 아이가 다투는 과정에서 한 아이의 이가 부러졌고, 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모인 두 부부. 이들의 모습에 교양으로 살짝 눌러놓은 욕심이 순간순간 치밀어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는 우리 자신이 숨어 있어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경청하며 자녀문제를 논의하던 두 부부가 어느 순간 격앙되고, 다시 고상함과 우아함을 가장하다가 폭발해버리는 과정에서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똘똘 뭉쳐야 할 상황에 갑자기 변절하여 상대 배우자와 낄낄대고, 느닷없이 여자끼리 뭉쳐 남자들을 조롱하는 장면에서는 우리 삶의 추태가 그대로 드러나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소통의 부재가 파국으로 치닫다 급기야 대학살의 신으로 비약하는 이 격조 높은 코미디 연극은 90분 동안 무대 장치 한 번 바꾸지 않고 오로지 말의 성찬을 이어간다. 사회풍자 코미디의 대가인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는 중산층에 대해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학살의 신>은 2009년 초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여 1,000석이 넘는 극장에서 400회 넘게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 2009년 토니상 연극부문 주요 3개상을 휩쓸었으며 뉴욕타임스로부터 ‘First class(1등급)’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연극의 대표연출가 한태숙 씨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대학살의 신>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슬랩스틱 요소를 집어넣어 극에 생동감이 넘친다. 연출가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다름 아닌 배우 선발. 네 명의 노련한 배우는 정통 연극을 통해 차원 높은 코미디 연기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막장드라마 때문에 정신이 혼탁하고 저질스러운 댓글로 인해 혐오감이 깊은 사람에게, 말의 맛과 멋의 오묘한 경지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시원한 소통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연극을 권한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5월 5일까지 공연한다. ☎02-557-1987#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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