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기 싫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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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1.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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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김영준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
▲ 김영준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



수년 전 국내 TV에 보도가 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이 있다. 초등학생 딸을 둔 부모가 있었다. 딸의 배에 종양이 생겨 배가 남산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모가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받는 것을 거부했다.  이유인즉 하나님이 고쳐주시겠다는 응답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딸의 배가 남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을 느껴도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결국 국가가 강권적으로 개입해 그 딸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수술을 해서 종양을 제거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 국가가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시한 것 뿐만이 아니고 올바른 신앙과 광신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질문을 제기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신앙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상식을 초월한 잘못된 신앙이 있는 것도 문제이다. 장애물은 양쪽에 존재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어야 하지만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올바른 신앙으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후자가 더 어렵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차라리 무언가를 찾는 마음이 있지만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자기가 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불신자·불법자·불량한 사람들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 믿고 행한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을 핍박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도 바울을 핍박한 사람은 불량배·범죄 집단이 아니고 율법주의 유대인들이었다. 그릇된 신앙이 바른 신앙을 핍박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세속주의가 되면 종교의 비중이 줄어들 줄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세속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종교의 비중은 크다. 그리고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판단하는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웬만한 것을 만만하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든 집을 사든 자식의 교육문제든 자식을 시집장가 보낼 때 만만하게 넘어가지 않고 철저하게 따지고 또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런데 신앙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다. 의견이 있어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순수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분별력. 성령의 은사 중의 영분별이라는 은사가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

영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다른 것, 물건을 사든 집을 사는 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이 땅에서 그치지만 영적인 손해는 다음 세상까지 가는 것이다. 비판을 하지는 않더라도 분별해야 한다. 이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악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인간의 욕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성령을 말미암은 것이냐, 사람의 생각을 말미암은 것이냐, 선한 동기냐 아니면 거짓된 것이냐, 이걸 분별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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