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성들이여, 우리는 모두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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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1.11.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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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가정회복의 기적 일구는 ‘두란노아버지학교’

 
“나는 우리 집 개 다음이야.”
사석에서 만난 어느 공기업 부장의 푸념이다. 회사에서는 대접 받는 중역인 이 부장도 집에만 가면 찬밥 신세라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들 둘은 데면데면하다, 아내는 뭐가 불만인지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따져보면 집에서 귀여움 받는 애완견만도 못한 처지라며 자신의 서열을 개 다음으로 매겼다.

“애완견의 사료 값은 대면서도 대접은 강아지보다 못 받는다”는 이 부장의 하소연처럼 한국의 아버지들은 일은 일대로 하고 인정은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삶을 살아왔다. 감정 표현에 서투른 탓도 있고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위엄과 체신 때문에 이런 고민조차 가족에게 털어 놓지 못한다. 술 아니면 화로 풀어낼 뿐이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두란노아버지학교’가 세워졌다. 하지만 아버지학교는 가장 먼저 한국의 왜곡된 남성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집에서는 생활비에 쩔쩔매는 아내를 몰아세우고 카드 연체료를 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술자리에서는 폼 나게 카드를 긁는 체면문화, 결혼기념일에도 아내의 생일에도 열심히 일만 하는 모습이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일 문화, 술 없이는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고 ‘사나이의 통은 술통과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음주문화는 남자들의 발걸음을 회사 아니면 술집으로 향하게 했다.

휴일에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없다. ‘낚시과부, 골프과부, 테니스과부’를 낳은 남성 중심의 레저문화를 즐기며 스트레스 풀기에 바쁘다. ‘여자와 북어는 때려야 맛이 난다’는 소리까지 나왔던 과거의 폭력문화도 적지 않은 가정을 파경으로 치닫게 했다.

가정 내 아버지의 문제는 90년대 말 터진 IMF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이 회의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방황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역할을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당시 발간된 <아버지>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오르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아버지학교가 사회에 발을 뗀 시점도 IMF를 기점으로 해서다. 1995년 10월 두란노서원에서 개설한 두란노아버지학교는 본래 기독교인을 위해 세워진 학교였다. IMF 시기를 맞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몇 차례 강의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2004년부터는 아예 기독교 색채를 배제한 ‘열린아버지학교’가 개설됐다.

20만명 수료, 국내외 300여 지역서 실시

현재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토요아버지학교’와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열린아버지학교’로 나뉘어 4~5주간 진행된다. 현재까지 20만3,000명이 넘는 아버지들이 수료를 마쳤으며 2011년 현재 국내 70여개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해외 43개국 230개 도시에도 개설돼 있다.

입소문으로 퍼진 아버지학교를 권유하는 이들은 대부분 아내와 자녀들이다.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이들은 드물고 대개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약속은 했으니 한 주만 듣고 말아야지”했다가 수료 후 주변인에게 ‘강추’하는 아버지들이 많단다. 정작 아버지들이 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생계부양’이라고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직업에서의 성공이 곧 아버지로서의 역할 완수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바뀌면서 아버지 역할에 대한 기대도 바뀌고 있다. 가족 규모가 줄어들고 여성들의 취업이 늘어남에 따라 부성 역할에 대한 기대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상한 아버지, 더 나아가 친구처럼 친밀한 아버지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두란노아버지학교의 김성묵 국제운동본부장은 강의 시간에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시작한다. “한국 남성들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보통 부장이냐, 이사냐, 사장이냐를 묻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하며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아버지학교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아버지학교를 “인생을 축구경기에 비유한다면 ‘아버지학교’는 성공과 과업 달성을 위해 달려왔던 전반전 후의 휴식시간으로 멋진 반전을 위해 작전을 점검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혹시 나는 ‘가정적인 아버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혹시 이것이 ‘나는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와 동의어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라”며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비싼 외제 축구공을 사다 안기는 아버지보다 자신과 1시간이라도 축구를 할 수 있는 아버지를 자녀는 더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성묵 국제운동본부장은 ‘아버지학교’가 한국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상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낙관해본다고 전했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아버지학교에서 진행되는 5주간의 수업은 크게 강의와 소모임으로 나뉜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토요아버지학교는 찬양 순서가 들어가고 강의 내용도 복음적이다. 강의 후에는 8~10명으로 구성된 멤버가 한 조가 된다. 조장은 기존 아버지학교 수료생 중 선발된 사람들이 맡아 토론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도 한 명이 말문을 트면 다른 조원들도 하나 둘 마음을 열며 훈훈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첫째 주 수업은 자신의 아버지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거꾸로 지금의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인지 생각하며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혹시 지금 그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군림하며 윽박지르거나 난폭하게 행동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조원들 앞에서 고백한다.

고백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부여되는 과제는 ‘낯간지러운’ 이벤트가 많다. ‘나의 아버지에게 편지 쓰고 발표하기’, 아내와 연애 시절 자주 들렀던 카페나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내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 들려주기 같은 것들로 한국 남자의 성향으로 볼 때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이때 만큼은 솔직해져야 한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라고 불효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어 ‘아버지의 사명’을 배우는데 남자의 최고 신분은 대기업의 간부나 수십 억 원의 재산을 가진 갑부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 됨’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보내주신 소중한 자녀를 내가 대신해서 키우고 있다는 ‘아버지의 영성’을 배운다. 이때는 자녀와 함께 하는 ‘일일 데이트’가 숙제로 주어진다. 비싼 외식보다는 떡볶이 집이나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며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표다.

졸업식에는 아내가 도시락을 싸와 함께 먹는 시간을 가지는데 하이라이트는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주며 바른 아버지와 남편으로 살 것을 다짐하는 남편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열린아버지학교도 토요아버지학교와 비슷한 순서와 내용으로 진행된다. 단지 기독교적인 색채를 배제해 비기독교인이 듣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학교, 사회단체, 관공서, 정부부처에서 점점 확대 개설되고 있다. 2004년 8월 성북구청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후 2005년에는 고양경찰서, 경기도청, 경기 제2청사, 성북구청, 인천 서구청, 당진군청 등 6회에 걸쳐 관공서에서 개설됐다.

재소자도 노숙자도 모두 아버지다

2006년에는 광명시청, 당진군청2기, 이천시청 등으로 확대 개설, 2007년에는 서울 및 경기 지역의 시, 구청과 전주, 광주, 부여, 군산, 횡성 등 지방 관공서에도 열렸다. 기업체도 가정친화경영의 모범 사례로 삼아 한국전력공사, 신한은행, 이수화학, 한독약품, 한국원자력연료, GS 칼텍스, 하림, 효성, 서울메트로 등에서 개설됐다.

기업과 관공서 뿐 아니라 교도소와 노숙자를 위한 수업도 있다. 재소자이든 노숙자이든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교도소아버지학교는 전국 26개 교정시설에 개설됐고 수업을 받은 재소자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나자 새로운 교정프로그램으로 주목 받고 있다.

2005년에 열린 아시아태평양 교정국장 회의에서 태국, 인도 등 외국 교정기관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2005년에는 경기도 측의 지원을 받아 노숙자를 위한 재활지원프로그램으로 개설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아버지학교는 한국에 나와 있는 몽골, 미얀마,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러시아, 몽골, 일본, 대만, 스리랑카, 인도에 본부를 개설해 넓혀가고 있다.

‘미래의 아버지’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학원 복음화를 위해 2004년 현대고등학교에서 개설된 이래 잠실고등학교, 서울대, 경민대 등에서 ‘예비아버지학교’가 열렸다.

젊은이들이 많은 군부대에서도 열리고 있다. 2000년 대구 보병 50사단 강철교회 1기를 시작으로 해군특수여전단(UDT SEAL)에서부터 육해공군까지 150회 이상 진행됐다. 일반 장병 뿐 아니라 계급사회의 딱딱한 문화에 익숙한 고위층의 군인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2005년 한국전력과 경기도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00% 만족도를 얻었으며 호응에 힘입어 어머니학교, 부부학교도 개설돼 진행되고 있다. (미래한국)

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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