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 것들
바뀌지 않는 것들
  • 이성원
  • 승인 2011.11.22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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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는 관념철학 따라 ‘인격-진선미의 통합’을 꿈꿨다. 사회에 나와서는 마쓰시다 경영철학 따라 ‘직장 - 양질. 염가. 대량 생산으로 사회에 공헌하면 사회가 반드시 보답한다’를 마음에 새기고 거기 따르려 했다.
이제 7,80대의 ‘삶의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할까.

프랑클의 마지막 보루 - ‘삶의 보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유대인 철학도 빅터 프랑클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돌볼 사람 없이 혼자 뒤에 남겨놓고 온 손자, 도중에 중단된 필생의 연구과제, 핍박받는 유대민족의 살길 모색... 그리고 프랑클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 소름끼치는 반인류적 범죄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밝혀내야겠다는 집념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먼저 동물로서 식욕, 성욕의 ‘쾌락’을 위해 살고, 다음 단계에선 사회적 존재로서 조직 속의 ‘권력’을 위해 산다. 그러나 생명 자체가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쾌락도 권력도 아닌, ‘왜 살아야 하나’하는 ‘삶의 보람’인 것이다. 이것이 프랑클이 아우슈비츠의 참극에서 찾아낸 인성에 대한 철학적 발견이었다.

바뀌는 것 - ‘無用의 長物’

우리는 ‘똘똘이의 모험’과 6.25 전후 ‘건설붐’으로 살았다. 우리 2세들은 ‘피터 팬’과 ‘포니 자동차’로 살았다.

지금 사람들은 ‘해리 포터’와 ‘스티브 잡스’로 산다. 세상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변해 간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 7,80대가 스마트폰이나 e-mail에 꼭 엉겨 붙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GE의 잭 웰치는 회사를 떠나면서 가장 기쁜 일이 휴대폰을 안쓰게 된 일이라 했다. 은퇴인에게는 ‘무용의 장물’- ‘good-for-nothing’이라는 얘기다.

할아버지가 이메일을 배워 손자와 통신한다고 자랑한다. 중년 부인이 대학원에 들어가 목사 자격을 땄다고 자랑한다.

카네기가 편지 답장을 않는 손자를 두고 바로 답장을 쓰게 한다는 데 내기를 걸었다. 그리고는 편지에 1만 달러를 동봉한다고 쓰고는 실제 돈은 넣지 않았다. 냉큼 답장이 왔다. “할아버지, 돈 넣으시는 것을 잊으셨나 봐요.”

목사 자격을 딴 부인은 주위에서 ‘참, 대단하세요’ 인사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칠순 잔치가 어제 일 같은데 오늘 팔순 잔치 얘기가 나온다. 이 광속으로 흐르는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무용의 장물에 쏟아 붙는단 말인가.

바뀌지 않는 것 - ‘타고난 천성(天性)’

7,80대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몇 십 년 더불어 살아온 ‘인성’뿐이다. 다 바뀌어도 인간의 인성만은 바뀌지 않는다. 10만년은 가야 조금 바뀔까 말까다.
민족성, 가족성(유전), 개성 - ‘타고난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

식욕, 성욕, 명예욕 - ‘인간의 욕망’은 바뀌지 않는다.
진.선.미 - 지고 지선의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
생.로.병.사 - ‘인간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성경, 논어, 불경 - ‘인류의 경전’은 바뀌지 않는다.
희.로.애.락 - ‘사람의 감정’은 바뀌지 않는다.

노년의 행복은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사는 보람’이 있는 생활이다.

건강은 식사와 운동이다.
‘사는 보람’은 타고난 ‘천성’에 따라 변하지 않는 ‘인성’을 좇아 사는 길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 자연을 따르라’ 한 것도 같은 뜻일 것이다.
나의 천성 - ‘재능’과 ‘취향’을 찾아내 그것을 가꾸고 키워 심신 함께 한껏 즐기는 것이 신의 경지에 가까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한 것은 몽테뉴였다.(이성원 /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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