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열릴 희망의 아침, 자유 진리 통일을 생각하다
평양에 열릴 희망의 아침, 자유 진리 통일을 생각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1.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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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편집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2011년 한 해는 유독히 세계의 많은 독재자들이 퇴진 또는 사망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북한의 포악한 지도자 김정일의 사망 소식도 마침내 전세계에 알려졌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오래 참으셨다. 그토록 하나님을 대적하고 수많은 인명을 살해한 살인마 김정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미얀마 아웅산 폭파, KAL기 폭파 테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반인륜적 만행의 핵심에 김정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다.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후 37년 동안 권좌에 앉아 북한을 강압 통치한 김정일은 백성의 기본적 인권을 유린하고 극심한 경제 파탄을 몰고와 3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을 아사(餓死)시켰고,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사선을 넘어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떠돌면서 먹을 것과 자유를 찾아 헤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김정일 폭정의 종식을 얼마나 기다렸고 폭압 정권의 몰락을 학수고대한 것도 실은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인권을 회복시켜 사람답게 살게 해줘야겠다는 신앙심의 표현이었다. 인권회복이나 국권회복운동은 곧 신권회복운동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의 몰락 요인

세계의 이목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온통 북한을 향하고 있다. 많은 역사철학자들은 문명을 유기체로 보고 그 과정을 생성 발전 쇠퇴 소멸의 진행으로 본다. 한 문명이 몰락할 때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첫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가 생길 때 몰락한다. 지금 북한은 사회적 경제적 균형을 심하게 잃어가고 있다. 둘째, 사회보장제도의 약화가 붕괴의 원인이다. 북한의 배급제 사회 구조가 이미 무너졌고 싹이 보이던 장마당마저 김정일 사후 단속, 폐지돼 백성들이 기댈 곳이 없게 됐다. 셋째, 지적 수준의 급강하로 비판 정신 마비 또는 실종은 그 사회를 무너지게 한다.

대한민국은‘미제국주의자들의 노예가 됐기 때문에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키는 것’이 저들 국가 목표가 됐다.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해석은 무지의 소치임을 입중한 것이다. 넷째, 정신적 죽음은 지적 저하보다 더 심각한 몰락을 초래한다. 변칙적 공산주의를 만들고 있는 북한은 그들의 어버이 수령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고 유령통치를 하는 나라다. 하나님 없는 무신론자들의 영은 죽었으니 무슨 분별력이 있겠는가.

경쟁 없는 공생의 공산혁명이 완성되면 이밥에 고깃국을 주겠다던 김일성의 허욕은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자들이 쥐와 파충류를 잡아 먹어야 연명하고 혹독한 노동과 고문에 의한 피맺힌 신음소리로 대치됐다. 선군정치를 해서 강성대국을 이루면 지상낙원을 만들어 주겠다던 김정일의 허식은 핵무기를 만들어 세계를 위협하는 깡패집단으로 낙인찍힌 해괴한 나라로 추락케 했다. 사람들은 쓰레기와 가치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마비를 넘어 무덤에 내려간 자같이 됐다.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은 그들에겐 적이 돼 버렸다. 읽을 가치가 없는 교조주의적 문서가 그들의 교과서가 됐고 적자생존의 비천한 논리마저 교활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교자생존 법칙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은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할 수없이 통곡도 하고 아우성도 쳐 본다.

우리가 악귀를 달래주는 무당인가?

북한의 현재 상황으로 보아 북한 정권은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미국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조차 북한의 정권승계가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랄 뿐 아니라 체제 안정을 돕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언필칭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기조 유지를 위해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미국이 그리고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다던 대한민국이 햇볕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북한의 비위 맞추기에 얼마나 많은 물질과 시간을 낭비했고 그들에게 핵무기 제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재원을 제공한 역사적 과오를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철권 통치 하에서 신음하며 형언할 수 없는 억압을 받으면서도 북한 민주화를 꿈꾸며 자유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의 3대 세습을 확고히 뒷받침해주고 북한 지배체제의 안정을 도모해 주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절망의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의 불장난으로 희생당한 유족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살인마를 연계하는 세습제도를 인정하고 신앙 자유마저 유린한 악마의 정권의 존속을 돕겠다는 것은 무슨 정치 논리인가?

본래 재래종교에서 악귀를 달래는 자를 무당이라 불렀다. 그 악귀가 재앙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귀신을 잘 대접해야 재앙을 면할 수 있다는 뜻으로 무당은 굿을 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백성을 죽이는 악마의 집단인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이로울 것이 없으니 우리가 귀신 달래는 무당이 되자는 것인가? 성경은 악을 대적하라 했지 타협이나 야합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같은 귀신 달래기 정책은 작전상 후퇴가 아니라 자유, 정의 그리고 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운 대한민국 국가 이념과도 크게 반(反)하는 발상이다.

슈펭글러나 독일 철학자들은 몰락이 문명의 과정 자체에 내재하며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데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경제적 몰락에는 정신적 요소도 있다고 한다. 한 사회의 몰락을 몇 가지 요인만으로 속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아직도 없지 않은가. 하물며 현재 진행 중인 문명사회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로마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종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근대 서유럽의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이 없었다면 오늘의 서구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같은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인도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종교적 역할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중세 초기 수도원과 교회는 인간의 내적 요구나 죄와 관련된 양심에 등을 돌리고 무관심했다.

사회 변화와 종교의 역할

회개는 고해성사의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2세기에 내적 회개와 참회 그리고 내적 성찰을 시작했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면전(Coram Deo)에서 살 것을 강조했다.

오늘날 국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수도사와 개혁자가 돼야 한다. 새로운 개혁자나 수도사는 오늘의 사회적 실상을 제대로 짚어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희구(希求)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다.

그 자유의 가치를 안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자유는 싸구려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목숨보다 귀한 자유가 하나님의 형상따라 지음받은 인간에게 인권으로 주어진 것이다.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어디서나 자기 원하는 방법대로 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권이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가치가 결정된다.

자유는 싸구려 상품이 아니다

인간이 자유로우려면 법으로 다스려지는 정부 하에서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가 있다. 그러나 인간이 원하는 자유의 성취는 법이나 체제가 바뀐다 해도 사람의 마음 속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억압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진정한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찌니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라고 예수님은 선포하셨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첫째, 무지로부터의 자유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가 속박을 가져온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무식한 사람은 사고와 행동에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자기들을 자유케 하려고 도와주는 어떤 노력도 항거한다는 데 있다. 철없고 지식이 모자란 어린이를 꾸짖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의 북한의 실상이 폐쇄정책으로 세계 일등 빈국이 되었으면서도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지상 낙원을 이루었다고 가증스럽게 위장선전을 하고 있지 않은가!

로마 황제상이 그려진 동전을 사용하던 유대인들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었다고 예수님께 항변했지만 그것은 자기 기만일 뿐이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모르고 김일성 우상화에 허수아비처럼 춤을 추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그들의 오만으로는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북한의 진정한 자유는 강성대국 완성이 아니라 진리를 먼저 아는 일이다. 둘째, 죄로부터 자유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했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복음화된 통일 조국을 주창한다. 빈곤으로부터의 자유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폭정으로부터의 자유는 진리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인간의 근본적 문제인 영적인 문제 즉 죄 문제, 죽음의 문제, 심판 문제를 생각할 수 없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렀던 평양에서 신앙 자유 회복운동이 일어난다면 북한이 살고 우리 민족에겐 희망의 아침이 열릴 것이다.

기독교 선진국으로 자리매김을 한 대한민국은 잃어버린 북녘땅에 복음의 씨를 뿌려 참자유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백성은 책임 있는 천국시민이 될 터이니 자유를 얻은 백성답게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진정한 자유의 나라를 우리의 우방들과 함께 세워가야 한다. (미래한국)

이 종 윤 편집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서울교회 원로목사
세이브엔케이 대표회장
전주대 총장 역임
연세대 신학과 졸업
英 세인트앤드류스대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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