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한려수도의 第一味 볼락
초봄 한려수도의 第一味 볼락
  • 도시락
  • 승인 2012.04.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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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지는 갯바위에 내려 초록빛 은은한 집어등을 켜고 천천히 낚싯대를 편다. 가지바늘 채비에 케미라이트가 반짝인다. 청갯지렁이를 끼워 골창에 던져 넣으면 낚싯대가 쭉하고 활처럼 휘며 탈탈거리는 손맛이 전해온다. 천천히 고기를 놀리며 꺼내면 예쁜 줄무늬 고기의 몸은 20센티미터 정도에 눈은 50원짜리 동전만하다. 재수 좋은 날엔 5~60수는 문제없다. 통영, 삼천포 등지에선 뽈라구 또는 뽈래기라 부르는 볼락이다. 그 눈이 늘어난 듯이 커서 일본에선 메바루(目張)라 부른다. 서울에선 도무지 구경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경남 해안의 열성팬들이 서울 사람 입에 들어갈 몫을 남겨주지 않아서다.

(참)볼락은 가을에서 봄에 걸쳐 수심이 얕은 해안에 서식하며 매화 필 무렵부터 벚꽃 필 때까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날이 더워지면 좀 더 깊은 바다의 岩場으로 이동한다. 서울 등지의 마트에서 볼락이라 이름 붙여 파는 분홍색 줄무늬 고기는 실제 불볼락 또는 열기라는 참볼락의 사촌. 맛이 좀 떨어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우럭은 그 정식 명칭이 조피볼락, 참볼락의 육촌쯤 된다. 역시 맛에서는 참볼락보다 한수 아래다.

볼락은 어떻게 먹을까? 우선 회가 있다. 쫄깃한 씹는 맛이 일품이지만 워낙 머리가 큰 생선이라 회로 배채우기는 능숙한 낚시꾼이나 가능한 얘기다. 다음은 조림이다. 담백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아주 고소한 풍미가 있는 볼락을 가장 알뜰하게 먹는 방법이다. 고등어나 갈치 조림하듯이 진한 양념을 하면 볼락에겐 큰 실례다. 일본술, 맛술, 옅은 간장으로 심플하게 조려내야 한다. 봄볼락은 기름이 잔뜩 올라 있어서 구이 맛이 제일이다.

경남 지방에서는 흔히 간장베이스의 양념장을 올려내지만, 역시 좋은 천일염을 뿌려 30분 정도 재운 후 직화에 굽는 것이 가장 좋다. 통영과 인근 지방에선 볼락젓갈도 담근다. 10센티미터 전후의 작은 놈은 방생하는 것이 법이지만, 그래도 간혹 맛보는 양념한 볼락젓갈, 또 볼락젓갈로 담근 무 석박지는 그 시원함을 통해 젓갈이라는 장르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작은 볼락은 등을 갈라 내장을 발라내고 살짝 말려서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힌 후 튀기면 뼈째 먹을 수 있다. 이렇듯 크면 큰 대로 작은 대로 정말 맛있다.

최근에는 참볼락에도 아종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황금색, 검은색, 청색으로 나눠진다는 얘긴데 낚시 경험에 의하면 습성도 약간씩 차이가 난다. 전남 완도에서 나오는 씨알 굵은 청볼락은 군집성이 강해서 대박의 조황을 안겨주지만 맛은 약간 떨어지는 편. 우리나라 물고기는 역시 거제부터 여수까지 한려수도 구간이 가장 맛있다. 아마도 물이 맑고 섬 사이의 해류가 강해서 생선의 살도 찰지게 되는 모양이다.

봄의 한려수도는 나무에 수액이 돌아 싹이 돋듯이 맛있는 물고기가 놀기 시작해 사람의 혀에 입맛을 돌게 한다. 도다리 쑥국, 기름 오르기 시작하는 멸치, 살 단단한 남해 숭어, 5월의 절정을 향해 가는 참돔, 그리고 건조가 끝나 축으로 내걸린 물메기. 그래도 그 중 제일은 볼락이다.
(이 칼럼에서는 맛집을 직접 소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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