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위기, 인터넷에서 답을 찾다
문학의 위기, 인터넷에서 답을 찾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5.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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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 찾아온 ‘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PC의 출현과 스마트폰 보급 이후 본격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유저들은 휴대폰에 몰입하느라 책 볼 틈이 없어 보인다. 실시간으로 종이 위의 활자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휴대폰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이미 90년대부터 한국소설은 외국소설에 밀리는 경향을 보였다. 지지부진한 주제의식과 난해함에 갇혀 참신한 발상과 감수성을 내세운 외국소설에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사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학의 정체현상은 신춘문예 모음집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신춘문예 스타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형화된 등단작이 양성되면서 신인작가 특유의 도전정신은 퇴화돼 갔다.

인터넷 소설 전성기

어렵게 등단한 작가들이 개성을 펼칠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들 무명작가에 가까운 신인보다는 유명작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학계는 신춘문예 스타일에서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작가들과 기존의 틀에서 미학적 완성도를 더해가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혜성 같이 나타난 작가들이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도 했으나 문화계의 비주류로 밀려나는 흐름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문학이라는 장르가 미디어세대와 소통하기에는 무리수라는 시각도 팽배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스타급 판타지 작가와 10대 작가 귀여니는 무수한 팬들을 양산했다. 문학의 차세대 주자인 젊은 층은 인터넷 소설에 열광하며 순수문학을 ‘교과서 문학’ 쯤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평단은 철학이 부재한 자리에 난무하는 은어와 이모티콘을 문제 삼으며 문학의 질적 하락을 비난했다. 이때까지도 인터넷 소설은 작가가 범접해서는 안 될 하류 문화 정도로 인식됐다.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현상으로 곧 사라질 것 같기도 했다.

잠시 주춤하던 인터넷 소설은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옥탑방 고양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늑대의 유혹> 등 인터넷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이후 인터넷 소설은 영화계의 주요 자원이 됐다. 너도나도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인기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해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인터넷이 독자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아가자 출판계와 문단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분기점 역할을 한 작가는 2008년 순수문학 작가 최초로 네이버에 <촐라체>를 연재한 박범신이다. 이어 황석영이 “<촐라체> 조회수가 100만이 넘어 시작했다”며 연재한 <개밥바라기별>이 대성공을 거두자 작가들의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공지영의 <도가니>,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백영옥의 <다이어트>, 김훈의 <공무도하> 등 2000년대 후반, 내로라 하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인터넷 공간에 연재 되면서 인터넷은 문학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쌍방향 소통의 중독

인터넷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 이유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란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 가능하다. 인터넷 소설은 ‘독자와의 소통, 공감’이라는 부분에서 가장 힘 있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외국작품이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만의 특별한 공감대를 한층 정밀하게 짚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환경을 갖췄다.

독자들은 PDA, 스마트폰 등 다양화된 도구로 전자책을 구입하거나 새롭게 올라온 인터넷 소설에 즉각적인 댓글을 달 수 있다. 나의 댓글이 반영된 소설을 읽는 재미는 화초나 애완견 키우는 재미에 비견된다. 물을 주면 싹이 나는 화분, 먹이를 주면 힘차게 달리는 강아지, 나의 의견에 성실히 답하는 작가 모두 쌍방향 소통을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이다. 중독성 있는 재미라 한번 보면 또 보게 된다. 작가와 비평가끼리만 이루어지던 상호간의 소통이 작가와 독자라는 수평적 구조로 이동된 것이다.

수평적 구조는 작가의 입문과정까지 수월하게 해줬다. 블로그, 카페, 홈페이지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대중의 호응을 얻은 작가들이 양산된 것이다. 나이 제한도 없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하다. 이들 중에는 작가로서의 타이틀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취미삼아, 재미삼아 하는 경우가 많다. 권위의식에서도 자유롭다. 작가들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소설의 전개 방향이나 인물의 캐릭터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여주인공의 성격을 여섯 가지로 구분해 독자들에게 표결을 붙이고 그 결과를 공개한 작가도 있다.

장르문학화 한 순수문학

인터넷의 개방적인 환경에 익숙한 작가들은 그렇다 쳐도 백지 위의 절대 권력자였던 기존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피드백은 압박이 되지 않을까? 새로운 창작 환경에 대해 작가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범신은 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넷은 상호 소통의 빠른 길로서 정말 생생한, 살아 있는 마당이라고 하는 것을 매우 감동적으로 느꼈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황석영은 <M25>와의 인터뷰에서 이보다 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문법이 얼마나 재미 있던지, 두세 마디, 두서너 줄로 표현되는데 그 안에 삶의 결들이 보인다”며 인터넷 소설 예찬론을 펼쳤다.

반면 <공무도하>를 연재한 김훈은 원고지에 쓴 작품을 출판사에 넘긴 채 연재 기간 내내 컴퓨터에는 한 번도 접속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의 주체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리틀 시카고>를 연재한 정한아 또한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부담스러워 며칠간 글을 못 썼다”며 인터넷 연재의 힘겨운 심정을 토로했다. 작가가 작품을 냉철한 시선으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한데 일정한 분량을 매일 연재하느라 성찰의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정한아의 말처럼 인터넷 연재에서는 깊은 사유보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독자들의 구독 수가 소설의 수명과 출판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모니터의 특성상 장문보다는 단문이, 내면의 흐름보다는 빠른 전개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 스토리 전개 위주로 쉽고 재미 있게 쓸 수밖에 없다.자연스레 인터넷에 뛰어든 작가들의 작품은 점차 장르문학화돼 가고 있다. 이것이 한국문학의 위기인지 새로운 장르의 도래인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분명한 건 이제 인터넷 소설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라는 점이다.

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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