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현정화의 눈물
21년 전 현정화의 눈물
  • 미래한국
  • 승인 2012.05.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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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남북 화해?

하지원, 배두나 주연의 영화 <코리아>가 인기다. 지난 3일 개봉해 2주 만에 관객수 100만명을 넘어선 후에도 극장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코리아>는 1991년 일본 지바의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벽에 번번이 가로막혔던 남한과 북한의 탁구대표가 단일팀으로 출전해 세계 정상을 차지했던 실화를 소재로 했다. 남한의 에이스 현정화(하지원)와 북한의 국가대표 리분희(배두나)가 만나 서로를 경계하다 친자매 이상의 동료애를 나누게 된다는 내용.

 

영화는 여느 스포츠 소재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감동적이다. 만년 2인자들이 최강자를 꺾고 우승하는 탄탄한 스토리 라인에 현정화와 리분희의 절절한 개인사도 더해졌다. 현정화는 무명 탁구선수 출신으로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리분희는 간염에 걸린 몸을 일으켜 혼신의 스매시를 날린다. 최강자인 중국 선수도 남북한의 선수를 철저히 무시하는 ‘공공의 적’ 역할을 잘 수행한다.

그런데 넘치는 게 문제다. 영화 전체적으로 흐르는 감정의 과잉은 좋게 보려 해도 조금 어색하다. 결승전을 포기하려는 북한 선수단을 향해 남한 선수들이 출전을 권하는 대목이 대표적인 예다. 현정화를 비롯한 남한 선수들이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북한 고위층 숙소 창문을 향해 “함께 시합에 나가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함치는 장면은, 21년의 시간차를 감안해도 왠지 쑥스럽다. 이때 현정화를 연기하는 하지원의 울부짖는 얼굴이 스크린 전체를 꽉 채우는데, 예전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신파 멜로영화에서나 봤음직한 모양새다.

있는 그대로도 감동적인 실화를 이런 식으로 양념을 쏟아 부으면서 감정을 강요한 이유가 뭘까. 조금 삐딱하게 보면, 영화는 “무조건적인 남북 화해 정책이 善”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남북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영화를 보고난 관객은 무의식중에 남북 간의 화해 조성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법하기 때문이다. 대립의 이유야 어찌됐든 말이다.

다만 남북한 소재를 다루면서 북한 주민의 현실이 조금이나마 드러난 점은 다행이다. 남한 선수가 북한의 김일성과 이름이 같아 벌어지는 촌극이 그런 예다. 남한 선수가 “일성아”라고 동료 이름을 부르자 북한 선수들은 “수령님을 모욕한다”며 격분해 몸싸움까지 벌인다. 그리고 영화에서 북한 선수단이 철수하려는 것도 자국 선수가 외국 코치에게 받은 명함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게 이유다. 북한 당국이 망명이나 탈북에 극도로 민감했기 때문이다.

21년 전 단일팀을 위해 흘린 현정화의 눈물이 있었다면, 2012년 우리 앞에는 실제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눈물이 있다. 오늘도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영화 <코리아>로 우리 사회가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실상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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