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것을 빨갛다고 하면 안 되나?
빨간 것을 빨갛다고 하면 안 되나?
  • 미래한국
  • 승인 2012.06.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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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택 - 美 영화 <빨갱이들>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었고 지금도 있기는 있다. 그 설립자 중 한 명이 존 리드(John Reed)라는 인물이다. 저널리스트로 러시아 10월 혁명을 다룬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 유명하다. 제1차 대전 당시 유럽에 특파원으로 나가 있었는데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을 당시 페트로그라드 현장에서 이를 목격하고 쓴 것이다.

美 공산당 설립자 존 리드

미국에서 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존 리드가 미국으로 돌아와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출간한 1919년 바로 그해였다. 그는 일찍부터 미국 사회당 당원이기도 했는데 러시아 혁명 이후의 진로를 둘러싼 노선 대립으로 당에서 쫓겨나자 사회당 좌파의 공산주의 노동당 창당에 참여했다. 그런데 창당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권력투쟁이 벌어지자 리드는 아예 소련으로 ‘돌아가’ 소비에트 선전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존 리드는 그러다 뉴욕 주재 소련영사로 임명돼 미국으로 왔다. 미국정부가 이에 강력히 항의하자 리드는 영사직을 사임하고 막 창당된 미국 공산당의 코민테른 승인을 받으러 소련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모스크바에 머물던 존 리드는 1920년 티푸스에 걸려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한 리드는 레닌의 애도 속에서 크렘린 담장 옆 ‘붉은 광장’의 혁명가 묘역에 매장됐다.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했다.

그의 일대기가 1981년 미국에서 워렌 비티(Warren Beaty)에 의해 영화화됐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이 <Reds>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빨갱이들>이라고 하면 되겠는데 어감에 기분 나빠 할 자들이 있겠다. 그렇다면 <붉은 자들>이라고 하면 될까? 좀 어색하다.

하지만 존 리드 자신은 이런 ‘색깔’ 지칭에 불쾌해 하거나 어색해 한 적은 결코 없다. 오히려 Red를 자랑스럽게 내세웠으며 <붉은 러시아 Red Russia>(1919년)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혁명을 찬양하는 또 다른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연한 게 Red는 좌익의 상징색 아닌가?

게다가 <Reds>는 존 리드를 전적으로 호의적으로 묘사한 영화였다. 워렌 비티는 할리우드의 영화인이 대개 다 그렇듯 진보좌파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존 리드를 얼마나 흠모했는지 각본 감독 주연에다 제작까지 맡았다. 그러니 리드가 살아 있다 해도 그 제목의 ‘색깔’에 유감을 가질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색깔론

그런데 이건 미국의 경우이고 한국은 좀 다르다. 한국에서는 정치와 이념에 대해 색깔을 논하는 것은 늘 시빗거리다. 이른바 ‘색깔론’이다. 물론 이런 시비는 거의 전적으로 존 리드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쪽에서 나온다. 이들은 ‘색깔’ 이전에 그냥 좌익을 좌익이라 하는 정도에도 색깔론이라고 펄펄 뛴다. 요즘 들어 마침내 종북본색을 드러낸 통진당은 물론 그 동조 위성집단이 된 민통당도 마찬가지다.

하긴 존 리드가 살아 있다면 적어도 한국의 종북파들을 Red라고 하는 데 대해선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존 리드의 기준으로 볼 때는 그나마 통진당의 이른바 신당권파 정도는 돼야 Red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신당권파들은 물론 민통당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동조세력들도 그런 ‘붉은 명예’가 결코 달갑지 않은 듯 여전히 극구 손사래를 치는 분위기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에는 어떻든 아직도 ‘붉은 짓’에 대해선 거부 정서가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 좌파들로선 그러한 레드 콤플렉스를 정권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그보다는 좌익 자체의 원죄가 크다. 6.25를 일으켜 초래한 민족적 참화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6.25 이후 끊임없이 지하에서 암약하며 한국사회에서 기회를 노렸지만 한계가 있었던 것은 결코 정권의 ‘단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대중들이 거부하고 있었다. 해방공간에서 대중들의 정치 정서에서 우위를 점한 쪽은 일단 좌익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건국과 6.25를 거치며 완전히 역전돼 버렸다. 한국 국민들은 한마디로 좌익들의 난장판에 넌더리를 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좌익들은 지하에서 은밀히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극구 본색을 숨기고자 했다. 붉은 깃발 대신 노란 깃발을 흔든다든가 계급 이전에 민족을 내세우고 민중을 운운한 것이 다 그런데서 연유한 것이었다. 특히 북쪽에 직접적이든 정서적이든 선이 닿아 있는 부류들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차라리 자생적인 이른바 PD계열 좌파들은 어떻게든 좌익의 정치적 시민권을 공개적으로 획득해보려 발버둥을 쳤지만 종북주사파들은 그런 순진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언제나 좌파본색을 숨기고 주로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워 북한의 입지를 확장시켜주는 데 봉사했다. 그리고 종북본색을 약간만 지적하기만 해도 색깔공세라며 길길이 날뛰곤 했다.

한국 좌파의 기만성

마침내 종북주사파 출신들이 국회에 들어서게 됐다. 여기에는 그들과 선거연합을 한 민통당의 책임도 크다. 그런데도 민통당에서는 아직도 “색깔론 공세에 편승하지 말라”는 따위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물정을 모를 만큼 순진한 바보라서 그렇든지 아니면 민통당에도 통진당 종북주사파들과 비슷한 불순한 자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붉은 것을 붉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색깔론 운운하며 시비하는 것은 “Red”를 우리말로 “붉다”고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뻔한 기만이 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행세를 하고 있다. 대중은 “설마” 하고 있다가 당해서야 비로소 그 정체를 깨닫는다 치자. 한심한 것은 그래봐야 별거 아니라고 잰척하다 뒤늦게 후회하는 똑똑한 바보들이다. 물론 정말 가증스러운 것은 다 알면서도 새삼 놀라는 척 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존 리드의 사후 스토리가 교훈이 된다. 그의 책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1927년 소련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타인에 의해 영화화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탈린의 요구에 의해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책 자체도 스탈린 시대 내내 소련에서 아예 금서가 된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열흘> 속에는 스탈린의 흔적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트로츠키가 주로 두드러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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