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대선, 안보(安保)가 안보인다
다가오는 대선, 안보(安保)가 안보인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0.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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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1월 30일. 병자호란을 피해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는 결국 59일만에 청(淸)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을 결심했다. 삼전도(현 송파)라 불리는 곳에서 항복례(禮)를 위한 준비가 진행됐다. 승정원일기와 인조실록의 기록을 보자.

“임금이 500명의 신하를 데리고 나아가려 했으나 50명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인조가 성밖을 나오니 백관이 가슴을 치며 통곡했고 해도 빛을 잃었다. 인조가 땅바닥에 나뭇가지를 깔고 앉아 청군의 호송대를 기다렸다. 이윽고 용골대와 청병이 말을 타고 나타나 인조를 데려갔다.”

안보 실패로 맞았던 ‘삼전도의 굴욕’

청병에 호송되어간 인조는 그 추운 날에 한강을 건너 삼전도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된 단 아래에서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敲頭禮)를 했다.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인데 그때마다 이마를 땅에 찧어야 했다. 청의 관리는 인조의 이마 찧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다시 하기를 요구했다. 결국 인조의 이마는 깨져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그나마 삼배고구두례는 합의된 것이었다. 처음에 청군은 항복 의식으로서 반합(飯哈)을 요구했다. 이는 마치 장례를 치르듯 ‘임금의 두 손을 묶은 다음 죽은 사람처럼 구슬을 입에 물고 빈 관과 함께 항복’하는 것이었다. 인조는 차마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한다.

이 수치스러운 기록의 하이라이트는 청의 황제 홍타이지가 배례 중에 단에서 내려와 소변을 보았고 그때 인조도 잠시 쉬었다는 부분이다. 사관(史官)은 그러한 기록을 오히려 후대의 귀감으로 남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삼전도의 굴욕은 조선이 명나라의 소멸을 계기로 소중화(小中華)에 빠져 청을 오랑캐로만 치부했을 뿐, 튼튼한 안보 확립에 소홀했던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18대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대한민국의 안보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지난 2일, 민주통합당의 ‘안보는 여당의 장삿속’이라는 대변인 논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통합당의 그 논평이 나오기 하루 전인 1일, 북한은 유엔에서 “한반도 위기의 전쟁 불꽃은 ‘열핵전쟁(thermonuclear war)’으로 번질 수 있다”며 노골적인 핵공갈을 우리 면전에 해댔기 때문이다.

발언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일 제67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인해 한반도는 대결과 긴장 고조가 반복되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됐다”며 핵전쟁의 원인을 주장했을 때 북한은 9월에만 7차례나 군인이 승선한 어선을 통해 서해 NLL을 침범해 왔고 우리 해군의 퇴각 경고사격이 있자 “NLL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유령線”이라며 현재의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준수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내 언론이나 여·야 대선 후보 그 누구도 일체의 논평이 없었던 것은 후보들의 대통령 자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그나마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의 국내선거 언급 횟수를 근거로 “북한의 대선개입 시도가 5년 전 보다 3배 증가했다”고 주장한 것이 전부였다.

안보가 ‘장삿속’이라는 민주통합당

이러한 주장에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성명은 “새누리당은 선거철만 되면 철지난 레코드를 틀 듯이 북한 위협을 근거로 안보장사를 해왔다”라며 “안보장사 병이라도 걸린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민주통합당의 이러한 입장은 정당한가. 민통당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루머’라고 했던 민주당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의 핵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자위용’이라고 했던 열린우리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을 계승한다. 그들이 ‘안보는 장사’라는 말을 하려면 먼저 자신들이 과거 북핵에 대해 국민을 기만했던 과오를 역사 앞에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선거를 앞둔 정쟁(政爭)의 시기라고 해도 북한이 면전에서 핵공갈을 운운하는 시기에 안보를 ‘장사’라고 폄훼하는 것은 공당(公黨)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한다. 같은 논리로라면 북한의 대남선동과 국지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화해를 주장하는 민통당은 ‘종북의 소굴’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문제는 민통당이 북한의 대남 선동 차원에서 벌이는 사실 왜곡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 달 27일 대남기구인 조국 평화통일 위원회 대변인을 통해 박근혜 후보의 최근 과거사 사과 발언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라고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명백한 선거개입, 그것도 날조를 바탕으로 한 대남 선동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잠시 돌아보자. 9월 27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과 문답에서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5·16 쿠데타와 유신, 인민혁명당 사건 등의 불법성을 인정하면서 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놀음을 벌였다”며 “문제는 기자회견에서 5·16과 유신이 북의 ‘남침 위협’을 막고 안보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변명하면서 우리(북한)를 걸고 든 것”이라고 논평했다. 또 조통위는 “5·16과 유신 당시에 ‘북의 위협’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북과 남에 평화통일 기운이 넘쳐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조통위의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날조에 지나지 않는다.

10월 유신 체제가 들어서기 4년 전인 1968년, 고딘디엠 정권의 베트남은 무장 게릴라 NLF(민족해방전선)의 구정(舊正)공세와 폭동 시위로 아수라장이 됐고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는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심리적 위축감이 팽배해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1965년 월남에 대대적인 파병을 시행한 직후였다.

사실 왜곡으로 선거 개입 나선 북한

그러면 당시 북한의 행동은 무엇이었던가. 북한은 그해 1968년 김신조 등 무장공비를 침투시켜 서울 한복판에서 교전을 벌였고 같은 해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이 두 개의 사건이 당시 국내에 미쳤던 영향은 베트남전과 맞물려 실로 막대했다.

동시에 북한이 사주하는 자생적 공산세력의 파업시위와 민주주의 이름을 도용한 체제전복의 기도들은 더 심각해졌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북한은 10월 유신 직전에 “북의 위협은 없었다”며 날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1974년 신년사설에서 남한의 ‘북한 유엔동시가입’ 제안을 거부하고 ‘고려연방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적화(赤化)가 아닌 통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북한의 야심 앞에 당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무엇이었는지 민통당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런 날조를 통한 선거개입을 자행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실마리를 주는 부분이 있다. 지난 달 북한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과거사 사과 문제를 날조된 사실로 비판하면서 “새누리당 후보의 집권은 유신 독재의 부활과 북남 사이 대결의 격화, 전쟁 위험의 증대 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9월 29일 경기도 김포와 파주군 일대를 군당국이 수색한 결과 ‘종북교육은 독재 옹호 교육’, ‘국방부의 종북교육은 조봉암, 장준하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라는 등의 문구가 새겨진 대남 전단 1만6,000~1만7,000여장이 발견된 사실도 있다.

이 모든 선동과 함께 북한이 지난 9월에만 7차례나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우리 군의 경고 사격에 대해 ‘서해 NLL은 유령線’이라고 주장한 것은 본격적인 남남갈등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분석을 내놓은 전문가가 있다.

북한의 뻔한 속내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켄 고스 해외지도부 연구국장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선에서의 영향력 행사와 별도로 북한은 자신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새정부가 들어서길 바라고 이와 같은 도발을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스 국장은 또 “북한 당국이 자국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국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북한이 최근 보이는 대남 강경책이나 도발 등은 남북간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한국의 차기 정부가 북한에 개입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도발을 통해 국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기보다 대선 이후 들어서는 새정부와 북한의 관계 설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이 옳다면 북한 고위층은 남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평화협상을 통한 북한체제의 흔들림보다는 차라리 대결 국면을 통한 내부단결을 선호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대선을 전후로 평화적 제스처 보다는 국지전 도발을 통해 남한 정치권에 경고를 함으로써 야당이 집권할 경우 과거와 같은 일방통행식의 협상을, 그리고 보수적인 새누리당의 집권시에는 대결모드를 강화함으로써 남북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北, 내부단결 위해 국지 도발 가능성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경우 북한의 도발은 엉뚱하게 남남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은 선거철만 되면 안보문제를 거론한다”고 비난하는 주장은 결국 북한 도발시 그 책임을 새누리당에 전가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민통당의 안보정책을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민통당의 안보정책은 통진당과 야권 시민단체들이 연석해서 마련한 소위 ‘2013년체제’의 아젠다 속에 구속돼 있다. 흔히 ‘진보 빅텐트’, 혹은 ‘원탁회의’로 불리는 이 야권연대의 아젠다는 모두 20개 조항으로 돼 있고 안보 부분은 18번째 항으로 돼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18) 자주외교·균형외교·평화외교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이 우리 세대에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 6·15, 10·4 등 남북 정상간 합의를 존중하며, 상호체제 인정과 국민적 동의에 기초하는 평화통일을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시민참여의 기회를 확대한다.
- 호혜평등과 평화지향적인 자주외교를 추진하며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 남북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을 강화한다. 가스관 사업, 유라시아 철도 연결을 추진하며 앞으로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 치앙마이 협정의 확대, 공동 대외보유고 관리 등을 추진한다.
- 제주평화의 섬 건설을 위해 제주해군기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국가 안보문제 전반에 대한 결정에서 시민참여를 보장한다.

이어서 19조항에는 이를 실천할 권력기관 개혁의 내용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군공안기구·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독립성 강화로 국민의 인권을 적극 보장한다.
-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포함하여 인권을 탄압하는 반민주악법을 개폐한다.
- 쿠데타 기구에서 통과되었거나,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한 악법은 전면적 재점검을 통해 개정하거나 폐지한다.

이처럼 민통당의 국가안보정책은 종북성향에 크게 기울어져 있다. 문재인 후보 역시 이 구심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의 안보정책은 어떨까. 안 후보의 안보정책은 평가할 만큼 드러난 것이 없다. 그가 해군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군대생활이 ‘지루했다’든지, ‘비효율적이었다’는 식의 발언이 안보관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특히 안철수 후보의 경우, 본지 <미래한국>이 처음 제기한 북한 V3 백신 무단 제공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의혹을 해소할 숙제가 남아 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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