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직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사회주의 메카’ 등극?
‘神의 직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사회주의 메카’ 등극?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0.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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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2천명 ‘철밥통’ 직원 중 과장급 80%, 임원연봉 2억원, 비결은 …

지난 10월 9일 국회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건보공단이 시행하고 있는 ‘수진자 조회’ 업무에 대해 문정림 선진통일당 의원이 개인의 인권 침해라며 법적인 근거를 추궁하자 김종대 이사장이 오히려 의원들에게 “문제가 없다”며 호통을 쳤던 것.

수진자 조회 제도는 건강보험 가입자가 병원을 이용한 적이 있는지, 어떤 질병을 치료받았는지를 공단이 직접 국민들에게 물어 조회하는 업무다. 당연히 국민 개인의 사생활권이 침해된다.

그래서 이 제도는 일반 병원 이용환자가 아니라 요양기관 이용자들에게만 적용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의사들의 탈세를 막는다는 취지로 마구잡이식의 조회를 실시해 왔던 것이다.

김 이사장과 문정림 의원은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고 결국 김종대 이사장이 무례를 사과하는 쪽으로 마무리 됐다. 하지만 그가 사과와 함께 내뱉은 말은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수장임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조원 운영적자에도 ‘돈잔치’ 펑펑

“제도는 제도권 밖의 국민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원은 제도권 내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김종대 이사장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 제도의 정당성을 법적 근거가 아니라 ‘인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북한의 소위 ‘인민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역시 ‘국민의 시각’이었기에 정당했고 정부의 미 쇠고기 수입정책은 잘못된 것이 된다. 보기에 따라 포퓰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그렇다면 건보공단은 왜 이런 뻔뻔한 주장을 거침없이 행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건강보험공단의 구조적인 모순이 작용하고 있다. 즉 방만한 운용으로 인한 적자 경영을 방어하기 위해 의사와 국민 간에 갈등을 부추기며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적인 정책마저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건보공단은 2010년 1조1800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건강보험의 구조적 하자로 인해 약 5조6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돼 있고 2020년에는 17조, 2030년에는 49조원의 경영적자가 확정돼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정부는 이미 건보공단의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건보공단은 노조를 앞세워 직원을 늘리고 상여금 잔치를 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잠시 이 조직을 들여다 보자.

건보공단에는 현재 약 1만2,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약 80%가 과장급 대우를 받는다. 임원 연봉은 2004년 8400만원에서 2010년 1억8000만원으로 올랐다.

직원 업무의 대부분은 전산기록을 뒤져서 보험 체납자의 돈을 받아 내는 일이다. 그런 일은 고졸자로도 충분하다. 그런 일에 건보공단은 평균 58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한다.

문제가 된 수진자 조회의 경우 지난해 진료내역통보건수 612만8000건의 0.4%인 2만3745건을 뒤지는 데 12억원을 들여 10억원을 회수했다. 한마디로 비효율이 이를 데 없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지난해 발생한 주한미군 사고 341건 중 건강보험공단이 미군을 대신해 의료비를 대신 지급한 사고는 상해와 폭행, 폭력 79건 등 94건에 달했지만 실제 얼마만큼의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됐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조롱마저 듣는 실정이다.

환자가 돈내고 추가 치료 요구해도 불법

건보공단의 의료사회주의정책의 백미는 역시 포괄수가제에 있다. 이 제도에 의하면 환자의 상태가 어떻든지, 정부가 고시한 치료비 외에 의사는 의료비를 더 받을 수 없다.

당연히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안과, 산부인과 등의 의료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자기 돈을 더 내서 치료받는 것도 불법이다.

건보공단은 의료수가 안정을 이유로 처방약도 직접 지정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의료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 환자의 시술법과 치료법을 정하고 약마저 처방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건보공단의 의료사회주의는 부족해지는 의료 공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생 정원 확대’라는 정책을 세웠다.

현재 의료수가가 원가의 70%대 수준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의사 수만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이를 통해 지방의료 부족에 대해서는 ‘보건소 확대’를 유력한 대안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9월 건보공단이 주최한 의료인력 부족 대책 세미나는 건보공단이 우리 의료정책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기회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료 전문가들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부족해지는 의료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 수가 아니라 현행 적자 의료수가를 정상화해서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건보공단의 입장을 대변했던 측의 주장은 정반대였다.

“의사가 많아진다고 국민들이 피해볼 게 뭐가 있나. 차라리 외국처럼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간호사에게 공공의료에서 의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의사를 향한 뿌리 깊은 반감

이 주장은 건보공단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 변호사의 발언이었다. 외국의 10년 이상 경력의 간호사들이 자유화되고 선진화된 그들의 의료 시스템에서 교육되고 훈련된 노하우는 생략하는 이 놀라운 발상의 기저에는 ‘의사들은 모두 예비적 탈세자, 협잡꾼들이고 병원들은 비리의 온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름 아닌 사망선고를 받은 건보공단이 그들의 철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이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의료정책은 이제까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그 성공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의료 공급자들과 통제자인 정부 간에 이념 대결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바야흐로 의사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고된 이 싸움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의료 수요자인 국민들이다. 문제는 정치권의 누구 한 사람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대한민국 공공의료 사회주의는 성공적인 모델로 둔갑돼 우리 사회 각 영역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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