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을 거슬러라!
시대정신을 거슬러라!
  • 이원우
  • 승인 2012.12.0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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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著 <다시 경제를 생각한다>, 21세기북스 刊, 2012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18대 대선정국은 당혹스럽다. 어떤 후보도 시장경제의 본질에 천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난무하는 것은 경제를 디자인하려는 설계주의의 유혹과 경제민주화라는 정체불명의 조어뿐이다.

예를 들어 지난 11월 22일 국회에서 있었던 새누리당-민주통합당 간의 충돌은 한국의 경제현실을 상징하는 한 편의 우화와도 같았다.

이날 두 당은 대형마트 영업종료 시간을 오후 10시로 정할 것이냐 자정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충돌했다. 2시간 정도 종료시간을 미루자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민주통합당은 “그들의 경제민주화는 거짓”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허나 신문에 실리지 않았을 뿐 “대형마트 영업종료시간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다. 김정호 연세대 교수는 그 중 한 명이다.

강단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음을 깨달은 그가 코미디연극 무대에까지 진출했음은 <미래한국> 434호에서도 밝힌 바 있다.

<다시 경제를 생각한다>는 김 교수의 신간이다. 총 7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본저에는 통념을 깨는 내용이 많다. 재벌은 양극화를 심화시킨 게 아니라 ‘완화’했다는 사실, 문어발 확장에 반대하는 참여연대도 문어발 확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가공자본을 비판한 안철수의 안랩도 가공자본을 갖고 있다는 사실 등이 객관적 자료와 함께 증명되고 있다.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시대정신’에 대한 언급을 할 때다. 그는 대한민국이 ‘시대정신을 거슬렀기에 성공했다’고 단언한다. 책에도 첨부된 194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충격적이다.

당시 미군정청 여론조사국이 국민 8,4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6,037명의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공산주의를 원한 사람도 7%나 됐고 자본주의는 14%에 그쳤다. 해방정국의 시대정신은 사회주의였고, 시대정신을 따랐다면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됐을 거라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판도를 바꿔놓은 것은 귀속재산 매각 등으로 자본주의를 뿌리내린 이승만이었다. 시대정신을 거슬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한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갈라놓은 두 리더의 성공비결이 반(反)시대정신이었다는 점은 단지 대중들이 환호한다는 이유로 경제민주화를 테마로 잡은 21세기의 정치인들에게 둔중한 울림을 던진다.

훌륭한 부분만 있는 책은 아니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원고를 모았기 때문에 연결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제목도 많이 아쉽다. 갖가지 도발적인 주장과 함께 “기업에게 야성(野性)을 회복시켜주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치고는 제목이 지나치게 ‘시대에 부합’하고 있다.

책도 하나의 기업이다. 전(全)방위적으로 펼쳐지는 그의 활동만큼만 역동적이고 도발적인 표현법이 가미됐다면 한결 더 유쾌해지지 않았을까. (미래한국)

* 20자평: 대세를 추종하는 자는 역사의 대세가 되지 못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① 자유, 뭥미? (박효종) ② 죽은 CEO들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③ 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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